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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현의 서재입니다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윤백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24 10: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147
추천수 :
104
글자수 :
93,280

작성
23.05.12 10:00
조회
413
추천
7
글자
11쪽

제5장

DUMMY

캄캄한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떴다.

보름달을 보좌하듯 주변에 크고 작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선선한 밤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크로닌은 몰래 별채를 빠져나왔다.

걷던 도중 상의 주머니에 넣어둔 회중시계를 꺼냈다.

현재 시간은 밤 10시.

크로닌이 좋아하는 시간대였다.

사실 크로닌뿐만 아니라 모든 흑마도사들이 밤을 좋아했다.

어둠은 숨기 좋았고.

어둠 속에 인간의 본성이 묻혀 있으며 어둠 안에 인간의 욕망이 들끓고 있으니까.

그는 사방을 경계하며 걸었다.

야심한 시각에 외출했다는 사실이 호재로 작용할 일은 전혀 없었다.

조심하며 걷던 도중.

크로닌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올빼미와 눈을 마주쳤다.

올빼미는 크로닌을 빤히 쳐다보다가 휙 고개를 돌렸다.

알아도 모른 척 한다.

역시 밤 식구는 밤 식구의 규칙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10여 분을 걸어 도착한 묘지.

묘지 입구는 지키는 이가 없었으며 묘지 주변을 높고 넓은 돌담이 에워싸고 있었다.

크로닌이 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글로리 가문의 유서가 깊은 만큼 대리석으로 만든 묘비의 숫자도 수두룩했다.

한 눈에 담기 벅찰 정도였다.


- 산다는 것이 가장 위대한 마법이다.


- 모든 마법은 도전이다. 더 많이 도전할수록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른다.


- 인생은 짧고 마법은 길다.


누가 마법 명가 아니랄까 봐.

스쳐 지나가는 묘비명은 전부 마법에 관련된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이들에게 도움을 받을 날도 올지 몰랐다.

크로닌이 묘지 중앙에 자리를 잡고 섰다.

크로닌의 발소리마저 끊기자 묘지의 사위는 더욱 적막해졌다. 바람 소리조차 뚝 그쳤고 밤벌레조차 울음이 없었다.

크로닌이 서 있는 곳은 적막의 한가운데였다.

‘슬슬 시작해볼까?’

암흑 마나와 마나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수련이 필요했다.

수련의 기본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풍부한 마나를 보유하는 것이었다.

마나가 돈이라면 마법은 물건이었다.

마나를 지불하지 않으면 마법을 쓸 수 없었다.

고민 끝에 크로닌은 암흑 마나부터 빠르게 축척하기로 했다.

참고로 암흑 마나를 축척하기에 가장 환상적인 장소가 바로 묘지였다.

죽음의 기운이 넘실대고 있기에.

주변을 쓱 둘러보고.

크로닌이 두 눈을 감았다.

입을 살짝 벌린 채 입으로 숨을 쉬었다.

쓰으읍. 후우우.

쓰으읍. 후우우.

숨을 들이마실 때 가슴이 팽창하고 숨을 내쉴 때 가슴이 수축했다.

호흡으로 받아들인 암흑 마나를.

크로닌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회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오직 크로닌만 들을 수 있는, 종소리 같은 공명음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과거 유일무이했던 8클래스 흑마도사였던 만큼.

암흑 써클을 만드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서클은 점점 커지고 두꺼워졌다.

가슴께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뽐냈다.

‘역시 축복받은 몸이야. 암흑 마나도 쭉쭉 받아들이는 군.’

호흡하면서 크로닌은 씨익 웃었다.

육체의 재능과 경험의 재능.

이 두 가지가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크로닌이 게걸스럽게 암흑 마나를 탐하던 그때!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크로닌의 평화를 깨트렸다.

“거기 누구야?”


***


크로닌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등불을 든 한 사내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빛 속에 있었고.

크로닌은 어둠 속에서 사내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크로닌이 묘지 돌담까지 달려간 다음 돌담을 넘어 자리를 피한다면 사내는 크로닌의 정체를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옳을까.

이 저질 몸뚱이로 사내를 따돌릴 수 있을까.

설령 따돌린다고 해도 저 우람한 돌담을 넘을 수 있을까.

그랬다간 일이 꼬일 것만 같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버려라’라는 원칙에 따라 크로닌은 일단 자리를 지켰다.

“이 봐. 대답 안 해? 누구냐니까?”

거리가 가까워지자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기어이 얼굴을 확인하겠다는 듯 손에 든 등불을 크로닌 쪽으로 확 내밀었다.

크로닌이 몸을 완전히 돌려 사내와 마주했다.

달빛 아래, 그리고 등불 앞에 유약하지만 잘생긴 미청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헉! 크로닌 공자님?”

“그래. 나다.”

크로닌이 팔짱 낀 채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야밤에 묘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불쑥 어머님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

“아. 네.”

묘지기도 레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크로닌이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의 원래 주인 녀석.

얼마나 불쌍하게 살았으면 식솔들까지 동정한단 말인가.

“자네. 이름이 뭐지?”

“낙스라고 합니다.”

“묘지를 순찰하는 시간대는?”

“순찰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밤시간에 묘지에서 아예 삽니다. 예전에 어리석은 도적놈들이 선조님들의 무덤을 도굴하려고 했던 적이 있거든요.”

말을 마친 낙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건 공자님도 다 아시는 내용 아닙니까?”

“그래서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게 불만인가?”

크로닌의 싸늘한 눈길을 받고 낙스가 다급하게 양팔을 저었다.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공자님을 오랜만에 뵈었더니 헛소리가 튀어나온 모양입니다.”

“....”

“승마 도중 크게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산책하러 돌아다닐 정도는 돼.”

크로닌은 말을 하면서 낙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묘지기라고는 하지만 복장이 깔끔하고 단정했다.

허리춤에 검도 차고 있었다.

도적들을 막기 위해 묘지에 상주한다면 최소 중급 검사는 되어 보였다.

“내가 이 시간에 묘지를 찾았다는 건 비밀로 해주겠나?”

“아.... 그게....”

“왜? 못하겠어?”

“가주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밤에 묘지를 출입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보고를 해달라고 말입니다.”

낙스의 대답에 크로닌이 얼굴을 찌푸렸다.

대체 왜?

야밤에 묘지로 출입하는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는 걸까.

성격이 특이한 걸까.

아니면 다른 숨겨놓은 이유라도 있는 걸까.

크로닌은 갑자기 떠오르는 질문을 머리 한 켠으로 밀어버리고 생각에 잠겼다.

묘지에 출입한 사실이 백작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묘지가 크로닌의 수련 장소라는 점이었다.

묘지는 암흑 마나 수련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앞으로도 밥 먹듯이 찾아와야하는 곳이었다.

출입을 통제 당해서는 곤란했다.

“요즘 따라 어머님이 몹시 그립더군.”

크로닌이 동정심을 유발하며 말을 이었다.

“밤마다 어머님이 꿈에 나와서 미칠 지경이다.”

“네. 공자님.”

“오늘뿐만 아니라 당분간 이 시간대에 자주 묘지를 찾게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자네가 나를 모른 척 줄 순 없겠나?”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백작님의 명령인지라....”

낙스가 딱 잘라 거절했다.

부탁을 할 때부터 느낌에 쌔하긴 했다.

낙스는 융통성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크로닌도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었다.

“자네만 너그럽게 눈을 감아주면 내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다만....”

“정말 죄송합니다.”

낙스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고.

뜻밖의 암초를 만난 크로닌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이런 전개라면.

묘지에서의 수련은 물 건너가고 만다.

굳이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문제는 크로닌이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 외에 딱히 돌파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휘이이잉.

돌담을 타고 넘어온 바람에 옷자락이 흩날렸다.

등불 속 불빛도 거칠게 허리를 흔들어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한 상태에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바람도 쌀쌀한데 그만 별채로 돌아가심이 어떨까요?”

“그 전에 잠깐 부탁할 것이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눈이 침침해서 말이야. 시간을 좀 봐주겠나?”

크로닌은 상의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회중시계를 꺼냈다.

회중시계는 금박이었고.

상단부에 줄이 달려 있었다.

딸칵!

크로닌이 회중시계 뚜껑을 열고 한손으로 줄을 잡았다.

회중시계가 진자처럼 규칙적으로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계가 너무 빨리 움직이는데요?”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보지. 그래도 자세히 보면 시간이 보일 거야.”

말을 하면서 크로닌은 소량으로나마 모아둔 암흑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암흑 마나를 회중시계에 흘려보냈다.

회중시계를 감싼 검은 아지랑이는 크로닌의 눈에만 보였다.

째깍. 째깍.

분침과 시침이 분주하게 달리는 소리.

낙스가 분주하게 눈알 굴리는 소리가 일치한 순간.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낙스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게 변했다. 입은 바보처럼 벌어졌으며 허리는 구부정해졌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본 것을 잊는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본 것을 모두 잊는다.”

크로닌이 선창을 하자 낙스가 후창을 했다. 후창하는 낙스의 목소리에 얼이 빠져 있었다.

“묘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묘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묘지에서 마주치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묘지에서 마주치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크로닌은 낙스에게 최면과 암시를 걸었다.

수학을 공부하면 덧셈과 뺄셈부터 배우듯.

최면과 암시는 흑마도사가 익혀야 할 기본 소양이었다.

워낙 기초고.

별 볼 일이 없어 보여서.

최면과 암시를 무시하는 흑마도사가 많지만 이 둘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특히 8클래스 마스터인 크로닌이 쓰면 그 위력이 배가 되었다.

상대를 순식간에 최면에 빠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암시를 더 오랫동안 걸어둘 수 있었다.

최면과 암시의 장점은 또 있었다.

세뇌는 엄연히 술법이라 사제나 마법사가 해제할 수 있지만 최면과 암시는 해제할 수 없는 것이다.

“볼 일은 끝났다. 꺼져.”

“볼 일은 끝났다. 꺼져.”

“그것까지 따라하진 말고.”

“그것까지 따라하진 말고.”

앵무새처럼 자신의 말을 따라하는 낙스를 보며 크로닌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좌우로 흔들던 회중시계의 뚜껑을 닫아 상의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잠시 후 낙스의 눈동자가 본래 생기를 되찾았다.

낙스가 크로닌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크로닌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상하네. 왠지 꺼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네.”

낙스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크로닌을 지나쳐 묘지 북쪽으로 이동했다.

멀어지는 낙스의 뒷모습을 크로닌이 빤히 지켜보았다.

새로운 몸으로 펼친 최면과 암시는 대 성공이었다.

앞으로 묘지 수련이 방해받는 일은 없으리라.

다시 수련하기에 앞서 크로닌은 보름달을 올려다보았다. 노란 보름달 위로 원수 헥스의 얼굴을 겹쳐놓았다.

그리고 오로지 헥스만을 위한 저주문을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어느새인가 크로닌의 육신에서 까만 아지랑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는 음산하고 소름 끼쳤다.

헥스도 달을 보고 있다면.

저주는 분명 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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