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윤백현의 서재입니다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윤백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5.24 10: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149
추천수 :
104
글자수 :
93,280

작성
23.05.14 10:00
조회
353
추천
6
글자
12쪽

제7장

DUMMY

쿵! 쿵! 쿵!

별채 2층 복도를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요란했다.

성난 발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말레브였다.

그는 자신에게 기어오른 첩의 자식, 크로닌 때문에 잔뜩 열 받은 상태였다.

벌레만도 못한 놈이 자신에게 감히 기어오르지 않았던가.

약 올리는 듯한 말투.

팔짱을 낀 거만한 행동.

화룡점정이라면 마지막에 보여준 눈빛이었다.

차가운 것 같기도, 뜨거운 것 같기도 했던 살기 넘치는 눈빛.

지금도 그 눈빛만 떠올리면 뒷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했다.

크로닌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레브에게 맞고 자랐다. 그래서 말레브의 그림자만 봐도 벌벌 떨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성격이 저리도 바뀐단 말인가.

낙마하면서 머리를 다치더니.

정말 겁을 상실해 버린 걸까.

하지만 크로닌이 돌변한 이유를 곱씹는다고 해서 정수리까치 치솟은 모욕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말레브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장식용 탁자 위에 놓인 화분을 양손으로 쥐고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쨍그랑!

유리 화분이 비스킷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말레브는 장식용 꽃을 구둣발로 연신 짓이겨댔다.

“도련님. 무슨 일 있으세요?”

요란한 소리를 들었는지 하인 레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있었지. 아주 불쾌한 일이. 그건 그렇고 넌 못 보던 얼굴이군.”

“아. 네. 저는 계속 별채에서만 생활해서요. 넷째 도련님이 저를 보실 일은 거의 없으셨을 거예요.”

레미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이에 말레브가 한 손을 뻗어 레미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백옥처럼 뽀얀 피부.

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

라일락처럼 분홍빛이 감도는 입술.

하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외모였다.

하녀복만 입지 않았다면 귀족의 영애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말레브가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레미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묻었지.”

“그게 뭔가요?”

“예쁨.”

말레브는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레미의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너 하인으로 지내기는 많이 아쉽군.”

“농사 말고 평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요. 그나저나 다치신 곳은 없으실까요?”

레미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본인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게 거북하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없어.”

“괜찮으시다면 청소부터 하겠습니다.”

레미가 들고 온 빗자루로 화분 조각과 흙을 쓸기 시작했다.

말레브는 청소하는 레미의 몸매를 구석구석 훑으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너 이름이 뭐지?”

“레미라고 합니다. 크로닌 도련님의 전담 하인입니다.”

“그래? 오늘 저녁 일이 끝나는 대로 내 방으로 찾아 와.”

“혹시 이유가....”

레미가 빗질을 멈추고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말레브는 레미에게 바짝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그때 가서 알려줄게.”


***


침소 한 구석에서 크로닌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양손을 단정하게 모아 단전에 올려놓고 마나 연공법을 훈련하고 있었다.

들이 마시는 숨에 마나가 체내로 흘러들었다.

내쉬는 숨에 마나가 심장 주변에 띠를 이루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과 마나가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굳이 마나를 의식할 필요도 없어졌다.

서클의 토대라고 볼 수 있는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환의 고리’란 물살과도 같았다.

한 번 물살이 생기면.

그 물살에 유입되는 물들은 그 물살을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환의 고리는 더욱 두껍고 거세졌다.

오늘 새벽에 축적한 암흑 마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전개라면 서클이 심장을 벗어나 흩어질 것이 뻔했다.

‘올 것이 왔군.’

크로닌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나를 축적하는 것과 동시에 암흑 마나를 운용하는 고차원의 운용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암흑 마나 특유의 흡입력으로.

마나를 심장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이는 전직 8클래스 흑마도사인 크로닌만이 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크로닌의 정교한 통제에 따라.

마나는 암흑 마나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무아지경에 빠졌던 크로닌이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 주변에서 느껴지는 두 개의 고리가 그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마도사이면서 흑마도사.

대륙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듀얼 마법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태어나고 있다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확실히 마법 재능으로만 놓고 보면 대단한 몸이야.’

크로닌은 자신의 육체에 감탄했다.

마나를 쌓는 속도가 결코 암흑 마나를 쌓는 속도에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사실 말이 안 됐다.

더 많은 암흑 마나를 더 게걸스럽게 쌓기 위해 흑마도사는 입 호흡을 개발해냈다.

하지만 크로닌은 코로 호흡을 하고 있는데도 암흑 마나와 비슷한 마나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 뜻은 명백했다.

이 육체가 말도 안 되는 마나 감응력과 흡수력을 타고 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7클래스 마도사의 핏줄을 진하게 물려받았다. 이것 말고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했다.

‘고맙다. 덕분에 복수가 빨라졌으니.’

크로닌은 몸의 원래 주인을 떠올려 보았다.

형제에게 괴롭힘을 당해.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별채에 유배되어 쓸쓸한 삶을 보내다가 몹쓸 음모에 당해 세상을 떠난 가엾은 영혼을.

나중에 상위 클래스가 된다면.

그때까지 녀석의 영혼이 살아 있다면.

대화라도 나눠보고 싶었다.

어쨌거나 크로닌이 그에게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었다.

크로닌은 그의 육체를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빈 육체를 찾아 들어온 것뿐이니까.

상념을 마친 크로닌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을 못 자서 피곤했는데 마나 연공법을 하고 나니 팔다리가 가볍고 머리가 개운해졌다.

‘이게 바로 마나의 효과인가?’

크로닌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마나는 생명의 힘.

마나를 보유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모자란 체력이 보충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크로닌은 내친 김에 다음 스텝을 밟아보기로 했다.

치료 마법은 모르지만.

몸 상태를 좀 더 호전시켜 보기로 한 것이다.

크로닌은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서클에서 마나를 뽑아냈다. 뽑아낸 마나를 전신으로 퍼뜨렸다.

위아래로는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좌우로는 왼팔부터 오른팔까지.

은은한 온기가 마치 물 컵에 떨어진 잉크처럼 서서히 번져 나갔다.

마나의 촉감이 사라진 뒤.

크로닌은 방 가운데를 빙빙 돌아보았다.

확실히 몸이 더 좋아졌다.

피로를 거의 느끼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이 몸은 마나 감응력과 마나 흡수력만 좋은 게 아니다.

마나 활용력까지 뛰어나다.

그야말로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크로닌은 턱을 쓸어내리며 새로운 깨달음을 정리했다.

문득 이 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암흑 마나 1서클 달성.

마나 1서클 달성.

크로닌은 이 두 가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둘 다 그리 어려운 숙제는 아니었다.

몇 주면 끝낼 수 있는 것이었다.

‘회복 마법 비스 무리한 것도 펼칠 수 있게 됐으니 그걸 준비하는 것도 좋겠군.’

계획을 정리한 크로닌이 창가로 이동했다.

봄 햇살이 포근했다.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어루만져 주었다.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높게 솟은 거목이 있었고.

거목 나뭇가지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녀석은 아까부터 크로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크로닌과 눈을 마주쳤는데도 도망갈 기색이 없었다.

“이 봐.”

크로닌이 까마귀에게 말을 걸었다.

까마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누가 봤으면 크로닌이 동물과 소통을 하는 미치광이라고 오해할 만한 장면이었다.

“마계의 대공이 이렇게 좀스러운 짓을 하면 되겠나?”

“....”

“용건이 있으면 직접 찾아와. 기분 나쁘게 염탐 따위 하지 말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크로닌이 암흑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에 까마귀의 머리 위로 직사각형 형태의 새까만 칼날이 생성되었다.

크로닌이 직접 개발한 흑마법 ‘길로틴’이었다.

3년 전쯤이었을까.

크로닌을 심판하겠다며 찾아 온 이단 심문관들을, 그들이 사랑하는 신들의 품으로 신속하게 돌려보내 준 흑마법이었다.

딱!

크로닌의 엄지와 검지가 경쾌하게 튕겨졌다.

서걱!

까마귀 머리 위에 떠 있던 길로틴의 매서운 칼날이 까마귀의 대가리를 단 번에 베어버렸다.

까마귀의 머리가 먼저 추락하고.

그 뒤를 머리 잃은 몸통이 뒤 따랐다.

허공에선 두 개의 깃털이 허공에 팔랑거렸고 까마귀가 추락한 자리에서 붉은 피가 물감처럼 번져 나갔다.

크로닌은 까마귀의 사체를 덤덤하게 내려다보았다.

못 볼 꼴.

험한 꼴.

더러운 꼴을 다 경험한 그에게 까마귀 사체 정도는 티끌만큼의 동요도 일으킬 수 없었다.

크로닌은 창문을 닫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역시 손에 익은 게 편하단 말이지.’


***


마계의 대공실이라고 해서 인간 귀족들의 집무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책상이 있고 옷장이 있고 테이블도 있었다.

문 옆에는 그림도 한 폭 걸려 있었다. 불지옥에 빠진 인간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허우적거리는 그림이었다.

화가의 이름은 누베.

요즘 잘 나가는 악마 화가였다.

하지만 마계 서열 2위인 아가레스의 대공실은 다른 대공실에 없는 책장이 존재했다.

책장은 성인이 양 팔을 쭉 뻗은 정도의 길이였다.

총 4단이었으며 책 대신에 무척 특이한 것이 진열 되어 있었다.

바로 플라스크 유리병이었다.

유리병 안에는 각기 다른 색을 가진 불꽃들이 담겨 있었다.

“으음....”

책상에 앉아 유리병을 감상하던 아가레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한 순간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크로닌에게 보낸 사역마가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사역마에게서 전해진 충격으로 추측하자면 길로틴을 사용한 듯 했다.

길로틴은 크로닌이 개발한 흑마법이었다.

복수에 눈이 먼 녀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흑마법을 창안하곤 했는데.

길로틴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흑마법이었다.

크로닌에게 붙은 ‘잔혹한 처형자’라는 별칭은 이 길로틴 때문에 만들어졌다.

“암흑 마나가 1서클도 안 됐을 텐데 벌써 길로틴을 쓰다니. 괴물 같은 놈.”

사역마가 당했는데도 아가레스는 희죽희죽 웃었다.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는 까마귀의 눈을 통해 똑똑히 보았다.

크로닌이 마나 연공하는 모습을.

얼핏 보면 크로닌이 흑마도사의 길을 버리고 마도사의 길을 택한 것 같았지만 길로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크로닌이 마나와 암흑 마나를 동시에 쌓고 있다는 사실을.

크로닌도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랬다면 굳이 길로틴을 사용하지 않았을 테니까.

마법이 탄생한 이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다니. 빛과 어둠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니.

크로닌의 업적에 아가레스를 혀를 내둘렀다.

마계 서열 2위로 올라서고.

한 번도 마음이 동요한 적이 없거늘.

크로닌과 계약을 맺은 후로는.

계속 놀랄 일만 생기고 있었다.

아가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플라스크가 진열된 책장 앞에 섰다.

4단 책장 가장 앞 열에 텅 빈 플라스크가 하나 있었다. 크로닌의 영혼을 담기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플라스크였다.

‘네 영혼으로 나는 마계의 주인이 될 것이다.’

문득 심한 갈증을 느낀 아가레스.

그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플라스크를 손에 쥐고 그 안에 담긴 영혼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에서 영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8클래스 흑마도사의 귀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제17장 +1 23.05.24 151 5 12쪽
16 제16장 +1 23.05.23 159 3 12쪽
15 제15장 +1 23.05.22 177 4 12쪽
14 제14장 +1 23.05.21 205 3 12쪽
13 제13장 +1 23.05.20 217 6 12쪽
12 제12장 +1 23.05.19 231 6 12쪽
11 제11장 +1 23.05.18 252 4 12쪽
10 제10장 +1 23.05.17 272 3 12쪽
9 제9장 +1 23.05.16 284 5 12쪽
8 제8장 +1 23.05.15 316 5 12쪽
» 제7장 +1 23.05.14 354 6 12쪽
6 제6장 23.05.13 380 7 12쪽
5 제5장 23.05.12 414 7 11쪽
4 제4장 23.05.11 484 8 13쪽
3 제3장 23.05.10 568 10 13쪽
2 제2장 23.05.10 734 11 13쪽
1 제1장 23.05.10 952 1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