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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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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3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0.12.17 20:00
조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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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8화

DUMMY

"음...으윽."


세바스는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지만 아직 독기운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건지 아니면 탈진한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완전히 제정신을 찾지는 못했다.


'살아, 있는 건가. 신께서 나를 돌보셨군.'


눈앞이 흐리고, 똑바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누구지...?'


흐릿한 시야에서 보이는 것은 사람의 실루엣이었는데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세바스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큭, 어서 일어나야...뭣, 이 냄새는 뭐지?'


시야가 점점 돌아오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 얼굴을 똑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세바스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람이 금발의 여자라는 것 정도만을 알아낼 수 있었다.


'머리가, 빛나고 있어?'


향기로운 냄새와 빛나는 머리칼, 이 두 가지의 키워드가 아직 혼란한 세바스의 머릿속에서 빙빙 돌며 평상시라면 절대로 내놓지 않을 엉망진창의 해답을 내놓았다.


"처, 천사님...?"

"이건 여기에 두고 갈게요. 맛있게 드시면 좋겠네요."

"기, 기다려...주십시오."


세바스가 온 힘을 다해 한손을 살짝 들어 올렸지만 안젤라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 세바스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크윽, 움직여라. 이 쓸모없는 몸뚱이...!"


그로써는 드물게 욕설을 내뱉으며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상체를 세울 수 있었다.


"잠깐, 마티아스는 어디 있지?"


거의 제정신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신성무구를 찾는 세바스, 다행히 그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떨어져있는 마티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서 쫓아가야 하는데."


세바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당장은 무리겠군. 음, 그러고 보니 이건?"


냉정하게 자신의 몸 상태를 진단한 세바스는 아까부터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의문의 냄비로 시선을 옮겼다.


"이건 야채, 인가? 어떻게 야채에서 이런 향이 나는 거지?"


세바스는 잠깐 요리와 눈싸움을 하는 기행을 벌였지만 이내 당연하게도 이건 그냥 요리일 뿐이라는 사실만 깨닫고는 친절하게도 냄비 안에 걸쳐져있던 스푼을 집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먹으라는 소리를 들었었지."


세바스는 중얼거리며 채소볶음을 한 스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음?"


스푼을 입에 넣은 채 세바스는 몇 초간 굳어있었고 잠시 뒤 정신을 차린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채소볶음을 입으로 가져갔다.


"흠..."


그 다음부터는 그저 말없는 폭풍 흡입의 향연, 세바스는 이 자리에서 두 가지 맹세를 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천사를 언젠가 꼭 찾아내리라는 것, 두 번째는 같은 재료로 요리를 그따위로밖에 못하는 이단심문소 취사관들을 모조리 갈아치워야겠다는 것이었다.


-----


"악마님."

"...뭐."

"혹시 삐졌나요."

"...안 삐졌어."

"삐진 거 같은데."

"안 삐졌다고! 내가 그따위 채소볶음 따위에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냐?"

"어, 지금 화내신 거예요?"

"은긌그든..."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재료들을 사온 루시퍼가 발견한 것은 홀로 쓸쓸히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뿐이었고, 안젤라에게는 숲에서 만난 거지(루시퍼의 의견)에게 채소볶음을 모조리 줘버렸다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속이 다 막히는 말을 들은 직후인지라 루시퍼는 제대로 뿔이 난 상태였다.


"후후, 악마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네요."

"그래. 아주 신나셨겠어. 젠장. 뭐 하나만 걸리기만 해봐라."


의외로 뒤끝이 있는 성격인 루시퍼는 걷는 내내 궁시렁거리며 후일을 도모했다.


"그래도 재료가 있으니 다음에 또 해드릴게요. 마을에 도착해서 제대로 된 설비를 이용할 수 있다면 더 맛있게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거예요."

"헤에...흡. 아니지. 그깟 채소볶음 따위엔 관심 어, 없다니까?"


루시퍼는 답지 않게 말까지 살짝 더듬으며 무관심을 표방한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후후, 알겠어요. 고기 요리도 해드릴게요."

"오오! 약속한 거다? 음. 크흠...쓸데없는 짓에 제법 시간을 낭비했군."


시간 낭비의 대부분은 루시퍼의 미식 쇼 때문이었지만 안젤라는 그 부분은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네놈. 생각보다는 잘 걷는군. 평소에 여행을 다녀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이렇게 먼 거리를 움직이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좀 피곤한 것 같기도 하네요."


안젤라가 허벅지를 콩콩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그런 사실은 미리 말해라. 중간에 쓰러져버리기라도 하면 일이 더 귀찮아지니. 뭐, 이 몸의 마력이라면 피로 회복 정도는 여유다만?"

"그런 것 때문에 죄업을 쌓고 싶지는 않네요."

"역시 안 넘어가는군.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네놈에게서 내 마력의 잔향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된 거냐?"

"마력의 잔향이요? 그게 뭐죠?"

"네놈은 원래 가진 마력이 원체 적기 때문에 내 마력을 사용할 때마다 사용하고 남은 미약한 마력이 감지된다는 거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음, 이걸 제대로 설명하려면 마나 순환 이론까지 들먹여야 한다만."


루시퍼가 중얼거리며 안젤라의 표정을 슬쩍 살폈고, 아니나 다를까 안젤라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두세 개쯤은 띄운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고, 그런 안젤라를 본 루시퍼는 굳이 복잡한 길을 가지 않기로 했다.


"쉽게 말해서 악마 냄새가 풀풀 난다는 거다."

"엣. 저 냄새나요?"


안젤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옷소매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고, 루시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고는 해도 유난히 민감하게 마나를 감지하는 녀석들이 아니면 눈치 못챌테니 신경 꺼도 좋다. 이 몸이야 본인의 마력이니 쉽게 눈치 채는 거고."


달리 말해 루시퍼 급의 실력자도 쉽게 눈치 채지는 못할 거라는 말. 그러나 안젤라는 냄새난다는 말만이 기억에 남았는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우우...더더욱 쓰기 실어졌어요. 악마님의 마력."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을...하.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루시퍼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어쨌든 네놈의 체력으로 야간행군은 무리일 테니 오늘은 근처 마을에 들러야겠군."

"근처에 마을이 있었나요?"

"그래. 이름이 어디보자, 맬리스 마을인가 그럴 거다."

"아! 들어본 기억이 나요. 에또, 고든 아저씨가 맬리스 마을 토종닭이 품질이 아주 좋다고 자주 다녀오신다고 했어요."

"헤에, 그렇단 말이지. 이건 기대되는군."


또다시 루시퍼의 미식 혼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그럼 망설일 것 없지. 바로 가자고."

"네. 좋아요. 저도 기대되네요."


안젤라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마을을 떠난 후로 했던 경험의 대부분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런 새로운 경험을 앞둔 안젤라의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부지런히 걸은 끝에 안젤라와 루시퍼는 해가 지기 전에 맬리스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대단하네요."

"그저 그런 촌동네로군."


분명히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데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둘이었다.


확실히 루시퍼의 말대로 왕국의 수도 정도의 번잡함과 화려함은 없었지만 산골짜기의 인적 드문 마을인 안젤라의 고향 마을과는 제법 큰 차이가 있는 마을이었다.


마침 시간대도 저녁 식사 시간 이어전이어서 시장에는 음식 재료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이 엄청 많아요. 악마님."

"그러냐."


루시퍼는 뭔가 신경이 쓰이는 게 있는지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왜 그러시나요?"


루시퍼의 반응에 안젤라가 질문했고, 루시퍼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대답했다.


"뭔가 이질감이 드는데. 어이. 네놈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냐?"

"전 잘 모르겠는데요?"


애초에 모든 게 새로운 안젤라는 뭐가 이상한 건지도 잘 모를 터였다.


"흠. 과민반응인가. 게다가 묘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자연 상태 그대로의 마나인지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발생한 마력인지 긴가민가한 루시퍼였다.


"기분 탓일거에요. 저기, 악마님."


안젤라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우물쭈물하며 망설였고, 루시퍼는 그런 안젤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묘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 같은 마을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응? 뭐냐.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앗, 네."


안젤라는 그 말을 듣고 나서도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 잠깐 혼자서 시장 구경을 좀 해봐도 괜찮을까요? 저, 이렇게 큰 시장은 처음이라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요."

"아. 난 또 뭐라고. 안될 게 뭐가 있냐. 구경 다니다가 맛있어보이는게 있으면 좀 사오기나 해."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게 은화 하나를 꺼내 안젤라에게 튕겼다.


"엣, 앗, 어엇."


갑자기 날아온 은화에 안젤라는 허둥거렸지만 어떻게든 놓치지 않고 동전을 잡아낼 수 있었다.


"남는 돈으론 간식이라도 사먹던가."


안젤라에게는 말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마을에서 출발하기 전에 잠시 촌장에게 들러 약간의 돈을 뜯어낸 루시퍼였다. 그렇기에 지갑 사정은 가난한 안젤라와 도긴개긴인 형편의 루시퍼였지만, 절약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 루시퍼였기에 별 부담 없이 은화 한 닢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준 것이다.


"바, 받을 수 없어요! 이런 큰돈을..."

"야. 누가 네놈보고 다 가지라고 했냐? 음식 재료 사오라니까. 설마 나에게 싸구려 재료들로 만든 음식을 내올 생각이었냐?"

"하지만..."

"기왕이면 여기 명물이라는 토종닭 고기도 좀 사오고."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난 저기 초록색 지붕 여관에 숙소를 잡을 테니 볼일 다 보면 저기로 와."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쿨하게 사라졌다.


"참. 제멋대로인 악마님이네요."


안젤라는 중얼거리며 루시퍼가 준 은화를 소중히 감싸 쥐고는 종종걸음으로 시장으로 들어섰다.


-----


루시퍼가 여관을 문을 열자 문에 달린 종이 청명한 소리를 울렸다.


"어서 옵쇼. 혼자왔수?"


딱히 특별한 행사나 축제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모험가들이 자주 들릴 일이 없는 마을인 맬리스 마을의 여관은 한산했고. 계산대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던 여자가 루시퍼를 맞이했다.


"당신이 주인장?"

"오우. 그렇다마다."


주인장이라는 여자는 완전히 남자의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고, 상체에는 여성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하반신에는 위쪽 옷이랑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차림이 독특하군."


그러고 보니 시장에서도 묘하게 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난 루시퍼였다.


"아 뭐, 그렇습죠. 이 마을 전통 같은 거라 생각하면 편할 거유."

"별 특이한 전통이 다 있군."

"그건 그렇고 혼자왔수?"

"아니. 둘이다. 방은 따로 잡아주면 좋겠군."

"예입. 1박에 동화 서른 다섯 닢이오. 원래는 마흔 닢인데 비수기라 깎아준거요."

"흠."


루시퍼는 안젤라에게 했던 것처럼 주인장에게 은화를 튕겨 보냈고, 주인장은 안젤라와는 다르게 능숙한 손놀림으로 은화를 잡아챘다.


"어이구. 이런 귀한 은화를 함부로 던지시면 쓰나."

"잔돈은 가지고. 알아서 잘 준비하도록."

"어이구. 통 크신 손님께서 오셨네. 예입. 알아서 잘 모시도록 합죠."

"아. 그리고 일행이 오면 잠깐 주방을 좀 빌릴 수 있나?"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여편, 아니. 바깥양반에게 전해 둡죠."


은화 한 닢에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게 된 주인장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 술이라도 한 병 내올깝쇼? 일행분이 올 때까지 기다리시기도 심심하실 텐데."

"술이라...흥미롭군. 가져와봐."

"예입.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주인장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방 쪽으로 들어갔고, 루시퍼는 테이블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사실 작가는 생선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펭귄인데 말이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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