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4,806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0.12.14 20:00
조회
95
추천
3
글자
12쪽

5화

DUMMY

"루시퍼님, 당신은 역시 악마가 맞는 것 같네요."

"그러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가 천계에서 추락한 그날부터, 본인이 천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아, 악마...라니. 그게 무슨."

"아 진짜,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럽네. 좀 꺼져봐. 중요한 얘기중이니까."

"우, 우와아아악!?"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한 촌장이 루시퍼의 마력이 담긴 손짓 한방에 저 멀리로 굴러가 버렸고, 촌장을 날린 마력이 루시퍼와 안젤라의 주위를 옅게 감싸기 시작했다.


"방해꾼은 사라졌고, 저 덩치도 이제 여긴 신경 안쓸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이딴 마을 확 사라지게 냅두고 저 멀리 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말이야."

"..."


확실히 현재로서는 그 말대로 하는 것이 최선, 아니 거의 유일한 수단일 것이었다.


하지만 안젤라는 치맛자락을 더욱 강하게 쥐며 루시퍼를 여전히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분명, 무한한 힘을 준다고 약속하셨죠."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무한한 힘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말할 건 아니긴 한데...뭐, 저놈 정도야 개구리 정도로 보일 정도의 힘은 줄 수 있지."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렇게 말하는 안젤라의 눈에는 눈물과 함께 강인한 의지가 맺혀 있었다.


"전, 그렇게 착한 사람은 못되나봐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 와중에도, 모든 것에게 화가 나요. 정말...이 세상의 모든 것이 미워요."

"호오..."

"차라리, 차라리 이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다 사라져버리면, 제 가슴 속의 이 차가우면서도, 또 뜨거운 무언가는 사라질까요."

"그건 대답해주기 곤란하군."


안젤라가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계약, 할게요."

"아주 현명한 판단이야."


루시퍼는 악마 주제에 천사 같은 미소를 띠며 안젤라에게 한걸음 다가왔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며 손등을 살짝 깨물었고, 그러자 약간의 피가 흘러나와 땅에 떨어졌다.


단 몇 방울의 피가 떨어졌을 뿐이지만, 땅에 떨어진 핏방울은 빠르게 번져나가며 복잡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하며 마주 선 안젤라와 루시퍼의 주변을 둘러쌌다.


"나, 타락의 악마 루시퍼의 이름으로 고한다. 지금 이 순간, 인간 소녀 안젤라의 영혼을 걸고...아, 이게 아니지."


뭔가 거창해 보이는 주문을 읊어보려는 듯 했지만 엄숙한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맥 빠지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젠장, 조건이 이렇게 덕지덕지 많이 쳐붙은 계약을 해 봤어야 말이지. 아, 몰라. 대충 약식으로 진행하지."


생각보다 엄숙한 의식같은건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뭐 이러쿵저러쿵 해서 안젤라는 루시퍼의 권능 일부와 마력의 일부를 적재적소 그럴싸한 장소, 시간에 본인 영혼의 타락을 대가로 빌리는 계약을 하실 겁니까아?"

"...하겠어요."

"좋아. 그럼 너도 여기 바닥에 피 한 방울 떨어뜨리라고."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지손가락을 깨물어 핏방울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러자 그려진 문양이 검은 빛으로 빛나며 시커먼 기운이 안젤라의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놀란 안젤라는 주춤했지만 이내 눈을 감고 들어오는 기운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좋아. 계약 완료다."

"이런 형식으로 된 건가요."

"헹. 형식에 집착하는 건 실력에 자신 없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이 몸 정도 되면 형식 따윈 필요 없이 계약의 본질만 지키면 돼."


어느새 바닥의 문양은 사라져있었고, 안젤라는 손을 쥐락펴락하며 물었다.


"딱히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요."

"계약에 명시되어 있었잖냐. 적재적소 필요한 때만 빌려간다고. 이래봬도 계약에는 제법 까다로운 편이란 말이지. 악마들은."

"그런가요."

"그래서, 이제 어쩔꺼냐. 개인적으론 저놈과 한편 먹고 마을을 쓸어버리는 것도 추천하는 바인데."

"..."


안젤라는 말없이 루시퍼를 노려볼 뿐이었고 루시퍼는 빙글거리며 양손을 들고 말했다.


"어우 무서워라. 뭐 농담이야."

"루시퍼 씨는 농담을 좀 자제하는 편이 좋겠어요."

"네이, 네이. 뭘 하려면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놈저거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루시퍼의 말대로 사람들이 도망가는 것을 잔혹한 눈빛으로 즐겁게 지켜보던 발락이 한 발짝씩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락 입장에서야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이지만 워낙에 덩치가 크다보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재앙이나 다름없었지만.


"힘을 쓰는 방식은 뭐...어지간한 건 네놈이 바라는 대로 될 거다. 예를 들면, 이렇게."


루시퍼가 물을 쓸어 올리듯이 팔을 휘두르자 작은 마력의 파도가 루시퍼의 옆에 서있던 애꿎은 나무를 반으로 잘라버렸다.


"한 가지 충고하는데 말이야. 네놈이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저놈들이 너에게 감사할 거라고 생각하냐?"

"..."

"내가 볼 땐 아니올시다야. 아마 또 다른 괴물이 나왔다고 난리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내가 말하기도 그렇지만 내 마력은 인간들 입장에선 좀 사악해 보여서. 크크큭."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요."

"그렇다면야 뭐, 난 충고했다?"


이제 루시퍼는 이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듯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고, 안젤라는 루시퍼에게서 등을 돌리고 발락을 향해 뛰어갔다.


"...왜 굳이 뛰어가는 거지."


힘을 가졌으니 날아가면 될 텐데,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루시퍼는 팔짱을 끼고 본격적인 구경에 나섰다.


-----


=크하하하하! 즐겁구나!


발락이 광소를 터뜨리며 민가들을 향해 앞발을 내질렀고, 평범한 시골 마을의 집에 마법적 방비가 되어있을 리도 없었기에 집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박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더더욱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마침내 몇 명이 산기슭과 마을의 출입구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크하하하하!


발락이 앞발을 바닥에 내려치자 사람들이 도망친 방향에 거대한 불벽이 올라왔고, 나가려던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갇힌 신세가 되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크하하하하! 어림도 없다 미천한 인간들! 네놈들은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씹어 삼켜주마!


"아, 안 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어, 엄마아..."

"이런 젠장, 아직 아다도 못 뗐는데..."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울부짖기 시작했고, 그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응? 네놈은 뭐냐. 가장 먼저 죽고 싶다고?


"...살려만 주십시오!"


앞으로 나선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목숨 구걸을 시작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 남자를 시작으로 뒤에서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엎드리기 시작했고, 이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꼴이 아주 우습군! 아주 유쾌해! 유쾌하구나!


참으로 웃음이 많은 발락이었다.


"멈춰주세요."


저 멀리서부터 뛰어온 안젤라가 숨을 고르며 발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응? 뭐야 인간 놈들은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몰았다고 생각했는데. 넌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이제야 안젤라의 존재를 눈치 챈 발락이 한쪽 머리만 이쪽으로 돌려 안젤라를 주시했다.


순간 고개를 숙이려던 안젤라는, 멈칫하더니 입술을 짓씹고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 발락과 눈을 마주쳤다.


"당신의 뜻대로 하게 둘 순 없어요."


=참으로 용감한 꼬마로구나. 저기의 인간 놈들과는 틀리군. 재밌어.


발락이 중얼거리고는 양쪽 머리 모두를 안젤라 쪽으로 향하며 몸을 돌렸다.


=그래서, 내 뜻대로 하게 둘 순 없다면 어쩔 테냐? 날 막기라도 하실 텐가?


"그렇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당신을 쓰러뜨리겠어요."


=크, 크하하하하하! 이건 멍청한 건지 용감한 건지 모르겠군! 마력이라고는 한줌밖에 느껴지지 않는 어린 인간 놈이 이 대악마 발락님을 쓰러뜨리겠다고? 으하하하하!


또다시 사방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어젖히는 발락이 어느 순간 웃음을 뚝 그치고는 말했다.


=어이, 거기 벌레같이 엎드린 인간 놈들.


느닷없는 발락의 지목에 이쪽을 힐끔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움찔했다.


=선착순이다. 이년의 목을 따는 인간 한 놈만 살려준다.


그 말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고, 가장 먼저 엎드린 남자가 좌우를 살피더니 안젤라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미,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안젤라!"


안젤라는 남자의 이름을 몰랐지만, 이것저것 돈 되는 일은 거의 다 하면서 살아온 안젤라는 나름 마을의 유명 인사였기에 남자는 안젤라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마력이 쥐꼬리만 한 양으로 간단한 화염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안젤라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려온 남자는 안젤라를 향해 혼신의 태클을 날렸고, 안젤라는 뜻밖에도 무저항으로 남자의 태클에 당해 쓰러졌다.


"어, 어쩔 수가 없다. 안젤라. 용서해라..."


마운트 자세를 취한 남자는 주변에 굴러다니던 돌조각을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내려찍는 자세를 취했다.


"...저희 어머니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목숨을 빼앗으셨죠."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촌장 혼자서 진행한 일이라 눈앞의 남자는 당연히 모를 일이었다.


"부디, 그만둬 주세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흐, 흐흐흐...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넌 저 괴물이 보이지 않아? 어차피 다 죽을 거라고! 나 혼자라도 살아남겠다는 게 뭐가 나빠!"

"...이런 죄를 짓고도.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기랄!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까지 착하게 살아오셨다면, 분명 죽어서 천국에 가실 수 있을 거예요."

"젠장맞을! 너희 모녀는 아직도 그놈의 천국 타령이냐! 그놈의 신이 있다면 지금 상황부터 어떻게 하라고 해 봐!"

"..."


신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고, 말솜씨도 부족한 안젤라는 당장 눈앞의 남자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기에 그저 말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이, 이이이익!"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온 힘을 다해 돌조각을 내리찍었다.


=흥. 재미없군.


"...젠장. 젠장! 젠장!"

"그걸로, 되었습니다."


돌조각은 안젤라의 머리를 내려찍지 못하고 안젤라의 귀 옆의 땅에 박혀있었고, 남자는 눈물콧물을 쏟으며 외쳤다.


"나도! 제기랄! 한 번도 사람 같은 거! 죽여본 적 없어! 이, 씨바아알! 내가 대체 뭔 잘못을 했는데에!"


살고자 하던 의지 속에 숨겨져 있던 남자의 본심이 터져 나왔고, 남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통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어제도 오늘도 그저 오늘 저녁 찬거리나 생각하면서 살아왔다고! 근데 왜 씨발 저딴 웃기게 생긴 도마뱀 새끼 때문에 살인자가 되어야 하는데! 다 좆까라그래! 씨빠아알! 좆까라고!"


남자는 꺽꺽거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고, 그런 남자의 비통함이 전염이라도 된 것인지 엎드린 사람들 사이에서도 울음소리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흥이 깨졌다. 죽음으로 사죄해라.


권태로운 표정으로 변한 발락의 양쪽 입에서 화염구가 안젤라 쪽으로 날아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자, 그럼 이제 연회의 시작...음?


다시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발락의 눈이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사이에서 무언가를 포착했다.


=저건...


발락이 발견한 것은 찬란히 빛나는 황금의 구였다. 반투명한 황금의 구는 안젤라와 남자를 감싸고 있었고, 안젤라는 누운 자세에서 상반신만을 일으켜 남자를 끌어안았다.


"지금은, 그 마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죄를 짓기 싫은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애로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안젤라의 목소리에 남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끅끅거리기만 할 뿐이었지만, 알 수 없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 했다.


"윽, 끄흐윽...큭."

"이제부터는 저에게 맡겨주세요."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특히 댓글이요.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8화 20.12.17 75 3 12쪽
7 7화 20.12.16 79 3 15쪽
6 6화 20.12.15 92 3 13쪽
» 5화 20.12.14 96 3 12쪽
4 4화 20.12.13 116 3 13쪽
3 3화 20.12.12 135 3 16쪽
2 2화 20.12.12 157 3 11쪽
1 1화 20.12.12 276 4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