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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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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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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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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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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불한당(不汗黨).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가 처음으로 연출하게 되는 TV시리즈 <불한당> 출연 배우들이 3개월 전부터 인천의 人Best 훈련장으로 출퇴근했다.

외부 일정을 얼추 마무리한 류지호가 본격적으로 <불한당> 프리프로덕션에 팔을 걷어붙였다.

가장 먼저 인천으로 내려가 최영웅 스턴트팀의 지도로 훈련을 받고 있는 배우들을 확인했다.

배우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본 류지호가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정말 사람을 잡겠다 싶을 정도로 배우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너무 심한 거 아냐?”

“배우라는 사람들이 몸 쓰는 기본이 안 되어 있더라고.”

“오늘은 좀 일찍 끝내 줘.”

“뭐 해?”

“배우들과 소주 한 잔 하게.”


이 날 이후로 <불한당> 프리프로덕션을 하는 틈틈이 류지호는 배우들과 만났다.

대학로나 종로 등지에서 막걸리를 함께 마시며 캐릭터 이야기를 나눴다.

한남동 집으로 서른 명의 주요 출연진을 초대해 성대하게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류지호의 명성과 지위에 눌려 자칫 신인 배우들이 어려워 할 수도 있었다.

친해지기 위해서 류지호가 먼저 다가갔다.

모든 일은 상대를 보아가면서 해야 한다고 믿는 류지호다.

상대의 퍼포먼스를 알아야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으니까.

일이란 것이 내가 하기에 달려있긴 하지만, 파트너에게도 큰 빚을 질 경우가 많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과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완성하는 영화는 더욱 그렇다.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더라도 온전히 혹은 그 이상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면 그 결과물은 잘해야 70~80%의 결과만 나오게 된다.

류지호가 영화라는 직업세계를 좋아하는 것에는 ‘내가 잘되면 너도 좋고, 네가 좋으면 나도 잘된다’라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화의 결과가 좋으면 그 수혜를 감독과 배우가 가장 많이 받지만, 참여한 이들도 약간이나마 성과에 대한 분배를 받는다. 알량한 보너스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다.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 경력이 되면서 차기작부터 찾는 곳도 많아지고, 약간이나마 몸값이 상승하는 효과를 누린다.

내가 잘한 것은 오로지 내가 잘한 덕분이기에 함께 한 이들에게 떨어질 건덕지가 없는 구조라면 그 산업이 흥할 수가 없다.

홍콩이 그랬고, 일본이 그러고 있고, 중국이 그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한국 역시 그랬어야 했다.

류지호가 개입함으로써 최악으로 흐를 것 같진 않았다.

많이 모자라지만, 분명 홍콩과 일본 영화계와 다른 길을 가고 있었기에.

암튼 ‘깡패‘ 영화 특성상 등장인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류지호는 배우들을 데리고 WaW종합촬영소로 가서 카메라 없는 블로킹(blocking) 리허설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그 사이 스태프들과 단합대회도 두 번 했다.

배우들까지 모두 불러서 무주리조트에서 성대하게 단합대회를 하고 있는데, 김우영 비서실장이 찾아왔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19일 점심에 청와대로 들어오시랍니다.”

“촬영 앞두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도 들어오래요?”

“네.”

“왜 요?”

“오밤 대통령이 방한을 한 답니다. 환영 오찬에 의장님이 꼭 참석해 주셨으면 한 답니다.”


바룩 오밤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온 모양이다.


“일본을 거쳐 중국을 방문하고, 한국에서 마무리하는 일정이랍니다.”


이번이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들러리라는 비판이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다 나왔다.

아시아 첫 순방 국가로 일본을 선택한 것이나, 중국에서 3박 4일을 머무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귀국길에 20시간 정도 체류하고 떠나기 때문이다.

그런 세간의 말들이 신경 쓰였을까.

내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이전 삶에서 한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 미국대통령이 바룩 오밤이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환영 오찬에만 참석하면 된답니까?”

“예.”

“그건 다행이네요.”


혹시나 FTA협상과 관련해 힘을 실어달라는 부탁을 하면 어쩌나 싶었다.

워낙에 국내 반발이 심했기에.

류지호가 바룩 오밤 대통령 당선을 위해 막대한 금전적 지원을 한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친할 줄 안다.

그다지 친하진 않았다.

전화통화만 몇 번 했다.

취임식에 만나 본 것 외에 사적으로 친분이 있진 않았다.

대신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인 모리스 메타보이 회장이 바룩 오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죽하면 내각에 들어간다는 루머가 돌고 있을까.

의형인 매튜 그레이엄 역시 오밤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고 있고.

두 사람이 대통령 본인 혹은 행정부 주요 인사들과 친하기 때문에 류지호는 바룩 오밤과 사적인 관계를 만들진 않았다.

전달해야 할 것이 있으면 의형이나 메타보이 회장을 통하면 되니까.


“진짜 목적이 뭐래요?”


독재시대도 아니고, 청와대가 아무나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게다가 류지호 정도 거물의 의전 문제는 몇 달 전부터 조율을 하는 편이고.


“공군레이더 교체사업을 오찬자리에서 언급해 주길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석유카르텔이라면 몰라도 오밤은 군산복합체와 접점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청와대에서 선물이랍시고 생색을 내려는 건가....?”

“정상회담과 외교·국방 장관 간 2+2 협의 안건으로 올리고 싶어 하는 눈치입니다.”

“하여간 그 놈에 보여주기 쇼는....쯧.”


정치인의 행동은 본래가 고도의 이벤트이며 쇼의 연속이다.

말만 정상회담이다.

이번 방한 수행원에 미국 국무장관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주요 인사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과 국무부 차관보가 끼어있을 뿐.

국무장관도 동행하지 않은 채 미국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는 법은 없다.


다 떠나서, 그런 문제는 류지호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 미국 시민권자인데.... 한국 재계 인사로 분류한답니까?”

“....모르셨습니까?”

“뭘요?”

“의장님께 복수국적을 허용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

“내년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국적법에 과학자, 스포츠 선수, 예술가 등 한국에 꼭 필요한 인재거나 크게 기여한 인물의 귀화를 촉진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규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88년 이전 출생자에게도 적용된다고요?”

“예.”


개정 국적법에 특별귀화자라는 예외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유공자의 후손, 한국을 위해 특별히 공헌한 외국인,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외국인 등이 이에 해당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학자, 운동선수, 예술가 등이다.

류지호는 만장일치로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언제 몇 시까지 청와대로 가면 된대요?”

“19일 10시에 의전팀이 모실 예정입니다.”

“알겠어요.”


<불한당> 크랭크인을 앞둔 어느 날.

바룩 오밤 미국대통령이 오산 미군 공군기지를 통해 방한했다.

저녁 늦게 도착한 오밤 대통령은 휴식을 취한 후에 다음 날 청와대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영부인이 오밤 여사에게 한국요리를 소개하는 영문 책자를 선물했다.

정의국 대통령은 오밤 대통령에게 태권도복과 검은띠 그리고 명예단증을 선물했다.

공인 태권도 3단인 류지호가 들러리를 섰다.


“상원의원 시절 태권도를 배우셨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잠깐 맛보기만 본 수준이다.

태권도를 배웠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누구도 그 문제를 트집 잡진 않았다.

이어진 오찬에서 류지호는 한국측 인사가 아닌 골드만대거스 출신의 미국 관료들과 어울렸다.

오찬 음식으로 불고기와 숯불구이 바비큐가 나란히 나왔다.

불고기는 한우, 바비큐 고기는 미국산을 썼다고 설명했다.

다분히 한미FTA와 관련해서 미국산 소고기를 의식한 메뉴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오찬장에서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내가 전해 듣기로 뉴욕에서 억만장자들이 비밀 회동을 가졌다고 들었는데. 미스터 류는 참석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한국에서 TV시리즈를 작업하고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오찬장에서 류지호는 억만장자 모임 이야기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기후협약 캠페인과 관련해서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

청와대의 부탁대로 한국공군의 노후 레이더 교체사업에 관해서도 미국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는 모양새를 만들어주었다.

한국정부는 오밤 대통령 방한에 맞춰서 3,200억짜리 계약을 안겨줬다고 여겼지만, 정작 미국 측에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번 방한에는 국방안보협력국장이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따로 지시를 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미스터.”

“감사합니다.”


그것이 다였다.

청와대는 공군레이더 교체사업과 관련해 미국 측의 호의 가득한 감사를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뭔가 극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류 의장, 내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진짜 공군레이더를 교체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혹시 가온이 방산분야로 진출합니까?”

“방산사업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그저 자발적인 방위성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액수가 상당합니다. 그리고 류 의장은 미국시민이 되지 않았습니까?”

“미국 시민 되었다고 제 뿌리가 LA가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유대인들은 대놓고 이스라엘에 지원합니다. 대통령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지난 외환위기 시절에 전 세계 동포들이 십시일반 한국에 달러를 많이 보내주었습니다. 수구초심이지요.”


중국 화교는 전 세계 화교가 그냥 화교다.

즉 중화민족의 후예다.

그런데 유대인은 조금 다르다.

이스라엘 유대인, 미국 유대인, 유럽 유대인, 기타 유대인.

각각의 정체성이 묘하게 다르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탄압을 피해 무려 200만 명의 유대인이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그들의 후손들은 부모의 전통과 종교를 따르는 한 편, 부모 세대와 달리 미국 시민으로 자랐다.

그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잊지는 않지만, 2~3세대들은 전형적인 미국시민에 더욱 가까웠다.

과거에 이스라엘에 전쟁이 나면 미국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했다.

이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국적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별로 곤란하지 않습니다.”


류지호는 대통령의 호의를 거절했다.

국적 문제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있으니까.

청와대까지 나서서 뭔가 해주면 나중에 뒷말만 무성해질 뿐.


‘방위성금이라....’


류지호는 방위성금과 관련해 썩 좋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까지 매해 10월 말 경 학교에서 방위성금을 걷었다.

초등학교때부터 해마다 10월 말~11월 초순에 크리스마스 씰 판매, 사랑의 열매 모으기, 불우이웃 돕기와 함께 이 방위성금을 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발적인 성금이 아니었다.

사실 국민학교 시절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상 방위성금을 제때 내본 적이 많지 않았다.

학급에서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기도 하고, 국방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참고로 방위성금은 1973년 10월 북한의 연이은 서해 5도 수역 침범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로 모금이 시작되어 1988년 8월 폐지될 때까지 약 15년 간 국민과 기업체, 해외 동포 등으로부터 약 609억 원을 모금했다.

당시 모금된 방위성금은 F-4D 팬텀기와 500MD 헬리콥터 구입 및 한국형 장갑차 개발 등 군사장비 보강에 257억 원이 사용되고, 군사시설 보강에 119억 원, 방어진지 구축에 6억 원, 예비군 전투력 보강 2억 원 등 총 465억 원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가용잔액 약 144억 원은 군사전투력 증강사업에 계속 투자됐다고 밝혔는데.

국민 누구도 방위성금이 올바르게 사용되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이 없다.

암튼 방위성금과 관련한 고위층의 잇단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준조세라는 모금방식이 기업 등에 부담이 돼 1988년 9월부터 폐지된 바 있다.

이 시기에는 강요는 아니라지만 10월 말이면 여전히 각 학교로 방위성금 관련 공문이 내려가고 있다.

이 시기의 한국의 국방예산이 대략 26조 원이다.

류지호가 약 12%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때다 싶었는지, 정신 나간 극우언론이 방위성금 부활을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진보언론에서는 가온그룹의 방산분야 진출을 위한 밑작업이라 주장하고.

어쨌든 미국 대통령까지 구두로 협조를 언급함으로써 공군레이더 교체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게 됐다.

그 동안 헛소리만 늘어놓던 방위사업청이 적극적으로 가온그룹 의장 비서실에 협의를 요청했다.

류지호는 관련 협의를 비서실에 일임하고, 드라마 <불한당> 작업에만 매달렸다.


❉ ❉ ❉


FMS(Foreign Military Sales).

대외 군사 판매, 즉 미국 정부가 군수물자 무기,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외국 정부에 판매하는 일을 말한다.

외국 정부는 Pacific Aero Company 같은 군수업체에 직접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방안보협력국(DSCA)의 조율하에서 조달·구입·전달 및 훈련을 지원 받는다.

미국에서 무기를 구매할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미국 정부로부터 구매하는 정부 간 거래, 이를 FMS(Foreign Military Sales) 방식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미 업체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방식, 이를 상용구매(DCS : direct commercial sales) 방식이라고 한다.

FMS 구매방식은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의 성능과 효과를 도입국가가 똑같이 보장받을 수 있다.

여기에다가 무기의 가격, 서비스 호환성, 표준화에서 미군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무기를 구매할 수 있다.

한국이 지금까지 미국 무기를 구매하면서 많이 애용해왔던 방식이다.

방위산업 기반이 취약했던 시절에 한국군 전력증강에 큰 기여를 했던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폐해도 적지 않다.

대량으로 무기를 구매하게 되면 핵심 기술을 이전받거나 기술도입생산을 함으로써 국내 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데, FMS 방식은 이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FMS는 무기를 공급하는 미국 업체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기술과 생산설비 등을 한국으로 이전해 달라는 요구를 차단하는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의장 비서실에서 대외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안병훈이 설명했다.

그가 방위사업청 및 공군과 공군레이더 교체사업 기부를 협의하고 있다.

한국 공군에서 구입을 희망하는 업체의 레이더 재원을 설명하고 구매방식에 대해 보고했다.


“일단 이 방식은 무기체계 뿐만 아니라 관련 예비 부품, 훈련장비, 시설물 건설, 사후관리 품목과 서비스까지 일괄거래를 합니다. 때문에 한국이 필요 없는 부분을 제외시키기 어렵습니다.”

“.....음.”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서울 불바다’ 위기 당시에 도입이 추진된 대포병레이더 ANTPQ-37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한국군은 ANTPQ-36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유사한 장비를 구매할 경우 부수장비는 빼고 도입할 수 있었는데, FMS 방식으로 긴급 조달되면서 부수장비까지 몽땅 다 사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산이 낭비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8년에 한국형 전투기사업(KFP)를 추진할 당시에 미의회가 미국방부에 한국에 핵심기술을 이전하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하기도 했어습니다.”

“기억나네요. one another japan이었나 그랬을 걸요?”

“예. 당시 미의회에서는 아시아에 또 하나의 일본을 만들 우려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이 일본의 국방을 컨트롤했을 때였죠, 아마?”

“그것 보다는, 당시 일본이 전투기 개발을 추진한 것에 대해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이 크게 위협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여파가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 회피로 연결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02년 차기공격헬기(AH-X)사업 추진이었다.

당시 참여정부는 아파치를 도입하지 않고 그 예산으로 한국형헬기사업(KHP)을 추진하려고 했다.

이를 방해하는 움직임이 노골적이었다.

참여정부가 한국형헬기사업을 추진하면서 유럽의 유로콥터와 협력했다.

주한미군은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동맹에 중요한 위협이 된다’고 본국에 보고했고.

곧바로 미국의 방해공작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방해공작들이 이번 정부 들어서 성공하는 모양새다.


“정부 고위급 인사가 미국을 몇 번 오가고, 국방부가 지난 정부의 국방개혁을 재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형 공격헬기사업이 축소·변형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형공격헬기를 해외에서 직구매하는 것으로 정책을 뒤집었다.

그 해외란 미국이다.

기종은 아파치고.


“확실히 FMS 방식은 구시대의 유물이긴 하네요. 어떤 나라든 필요한 무기를 좋은 조건에 살 수 있도록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과거 냉전시대에 공산권에 대한 군사기술 유출 방지와 동맹국을 자국의 무기체제에 묶어두는 수단으로 고안된 미국만 운용하는 해외 무기판매 방식을 여전히 따르고 있으니.....”


참여정부 시절 방위사업청을 따로 설치한 것은 방산비리 방지도 있었지만, 자체적으로 무기도입 거래 방식의 다변화와 그걸 뒷받침할 내적 역량을 키우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비리는 비리대로 근절되지 않았고, 미국의 FMS 판매방식에 끌려 다니면서 방사청의 외국 방산업체에 대한 협상력이나 정보취합 노하우를 쌓는데도 실패하고 말았다.

냉전이 종식된 지 20여년이 흐른 시점에 이 방식으로 계속 무기를 도입하게 되면 미국의 높은 장벽과 기술통제에 순응하게 되면서 결국 미국무기에 종속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참고로 인도는 한국 못지않은 무기 수입국입니다. 그들은 FMS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는 무기구매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 관련 리포트입니다.”


안병훈 팀장이 류지호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류지호가 건성으로 보고서를 들춰보았다.

보고서에는 인도가 러시아, 중국, 프랑스제와 미국무기를 함께 운용하고 있다는 점과 그러고도 무기체계 간의 호환성이나 상호운용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 또한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크게 문제가 없음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공군레이더 사업도 FMS 방식입니까?”

“미공군 담당자가 한국 측에 상용거래가 아닌 FMS 방식으로 판매하겠다고 통보했답니다.”

“그럼 끝인 겁니까?”

“방사청은 별다른 저항 없이 전폭적으로 수용하려는 것 같습니다.”


허.

류지호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님이 왕은 아니라지만,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갑인 것은 변함없다.

한국과 미국의 무기 거래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형태가 세계에서 7번째로 국방비를 쓰면서 세계 무기시장에서는 10위권 밖으로 한참 밀려나 있는 한국의 국방산업의 현주소인 것인가.....”


자국의 방위산업을 희생시켜가며 우방인 미국의 무기를 사주고, 전 세계 미국무기 수입 1위 국가의 반열에 올라서는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는 한국의 국방부와 방사청이다.

국산화 사업을 시행하게 되면 대형 비리사건이 터져 더 큰 문제를 유발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가 있긴 하지만.


“그나마 작년 미하원 외교위원회에서 ‘Arms Export Control Act(무기수출통제법)’을 일부 수정해 한국의 대외무기판매 프로그램 지위를 ‘NATO+3국(일본 호주 뉴질랜드)’ 수준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뭐가 좋은데요?”

“그에 따르면 한국은 1억 달러 이상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할 때만 미의회의 심의를 받게 됩니다. 최장 50일이던 의회의 판매 승인 검토 기간도 15일로 단축되어서 한국의 미국산 군사장비 구매 절차가 한층 간편해졌습니다.”

“어차피 미국산 무기만 사는데, 기간 단축된 것이 대수겠어요?”

“또 미국이 첨단무기를 개발하는 데 사용한 비용 중 일부를 구매자 측이 부담하도록 한 NRC·Non-Recuring Cost(비순환비용)를 면제받고 계약행정비도 감면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 의장님께서 기부체납하게 될 공군레이더에 대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왠지 엎드려 절 받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병훈 팀장은 별다른 대꾸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로서도 뭐라 할 말이 없기에.


“내가 상용구매 조건이 아니라면 기부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없던 일이 될 공산이 큽니다.”

“3,000억짜리 거래를 엎어버린단 말입니까?”

“골치 아픈 건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것이 공무원입니다.”

“또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것도.”

“.....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제를 들여올 순 없어요?”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방사청과 함께 알아보면 되잖아요?”


FMS 방식의 또 다른 장점은 무기상이나 중개인을 배제해 수수료나 커미션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가 방사청을 설립한 취지에 그럴 경우 무기중개인들이 하는 일을 공무원을 투입해서 하려고 했었다.

즉 장기적으로 방사청에 무기구매 관련 노하우를 습득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력대비 작업 효율, 전문성, 인건비 면에서 도리어 중개인을 쓰는 것만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중남미 소국의 군대도 아니면서 언제까지나 중개상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일진데.


“불행하게도 한국 군대에 무늬만 장교인 군바리가 너무 많죠.”


야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군인보다 작전과 행정 보직에 능통한 군인이 대우받는 비상적인 군조직이 한국의 군대다.

무기에 관해 중개상보다 모르는 현역 장교가 많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무기를 알아야 비싸게 사는 데서 그치는데, 무기를 모르면 사기를 당하고도 그런 줄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니 방사청 사업에 재항군인회 늙은이들까지 끼어들어 온갖 악취를 풍기지.”


류지호는 레이더 구매 계획을 철회할까 생각했다.

좋은 일을 하면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세상에 있을까 싶었다.

앓느니 죽는다.

또 모르는 게 약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좋지만, 나쁜 점까지 알게 되면 짜증만 난다.


“그냥, 공군에 3,200억 주고 빠질까.”

“안됩니다. 의장님.”

“압니다. 답답해서 한 소리에요. 공군 최고 책임자와 미팅 자리 마련해 봐요. 만나서 담판 짓게.”

“예.”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주식 일부를 처분해서 한국에 정찰위성 몇 대를 구입해서 기증할 계획도 궁리 중이었다.

새만금간척지 개발과 연관 지어서 기상청이 사용하고 통신 관련 위성이라고 연막(?)을 쳐야 하겠지만.

정찰위성의 대당 구매가격은 대략 1억 달러 수준.

한반도 상공에 급한 대로 5대 정찰위성을 쏘아 올려 두면 북한의 핵위협도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의 기분 같아서는 그럴 마음이 싹 달아난다.


“차라리 에티오피아나 케냐에 고속도로나 철도를 놔줄까. 그러면 그 나라 국민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되돌리기에 늦었다.

류지호는 금방 공군 레이더 교체 사업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본업에 충실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통해 다른 문제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도록.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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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dropper
    작성일
    24.04.11 10:40
    No. 1

    교육계 작전계는 대외비이상급 서류본다고 서약서 작성하고 전역후 한1년 외국여행도 가지말라하면서 똥별들은 퇴직하면 바로 미방산업체 로비스트 계약직함 한 2년 정도에 월 오백정도 받나 단한방의 계약위해서 웃기지 제약없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4.04.11 13:56
    No. 2

    방위성금은 몰라도 평화의 댐 때문에 내 세배돈 다 날림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4.11 14:54
    No. 3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2******..
    작성일
    24.04.12 06:43
    No. 4

    너무 허무맹랑!!! ㅗ노후ㅠ레이더를 개인 사비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4.04.12 21:02
    No. 5

    방위성금은 진짜로 똥별들 저금통 이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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