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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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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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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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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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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Christmas Cargo. (1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국으로 돌아온 류지호는 곧바로 <Christmas Cargo> 촬영에 합류하지 않았다.

뉴욕을 경유했다.

케네디 국제공항을 나선 류지호는 곧바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향했다.

매디슨 스퀘어가든은 전 세계 대중문화계의 톱스타들이 서고 싶어 하는 곳이다.

클래식 음악계에 카네기홀과 링컨센터가 있다면,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계에서 그에 비견되는 무대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다.

뉴욕 맨해튼의 펜실베이니아역 옆에 있는 이 거대한 실내 체육관 겸 공연장은 1879년 문을 연 이후로 수많은 대중문화 공연과 권투, 레슬링 등의 대형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뉴욕 NBA팀 닉스(농구)와 NHL팀 레인저스(아이스하키)의 홈구장이기도 하고.

콘서트가 열릴 때 만석은 2만 석이다.

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팝의 황제 마이키 잭슨의 콘서트가 열렸다.

작년 여름 영국 런던의 The O2 Arena에서 화려하게 막이 올랐던 <This Is It!> 월드투어가 세계 곳곳을 돌고 마침내 종착지 뉴욕으로 왔다.

8년 만에 열린 월드투어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3년을 준비한 공연답게 각종 기록과 화제를 남겼다.

유니벌스뮤직그룹도 화끈한 프로모션으로 팝의 황제를 예우했다.

마지막 날 공연에는 전임 대통령 부부, 뉴욕시장 부부, 동료 팝가수들,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엔터계의 거물들이 대거 자리했다.

류지호 역시 빠질 수 없는 자리다.

본래 계획은 딸을 장모에게 맡기고 레오나와 함께 와서 즐기는 것이었다.

신종플루 대유행을 우려해 처자식을 여주 가온타운에 남겨두고 왔기에 아내와 전설적인 공연을 함께 할 수 없었다.

레오나도 크게 아쉬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차라리 캘피포니아 변호사 시험을 치르지 못한 것을 더욱 아쉬워했다.

류지호는 콘서트를 끝까지 관람했다.


[If you want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Take a look at yourself, and then make a change](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를 만들어 봐~).

월드투어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곡은 오랜만에 <Man In The Mirror>가 장식했다.

마이키 잭슨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 류지호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다.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이키 잭슨의 노래 중에서 3위에 뽑히기도 했다.

인상적인 것은.

뮤직비디오에서 한국의 시위 장면이 나온다는 점이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전경을 향해 돌을 던지는 대학생, 그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며 진압하는 전쟁 같은 민주화 시위 모습이 나온다.

뮤직비디오 감독과 마이키 잭슨이 보기에 20세기 세계에 영향을 끼친 사건 중에 한국의 민주화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


어쩌면 특유의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마지막 공연일 지도 몰랐다.

류지호가 소개한 의료진이 세심하게 건강을 살피곤 있다고 하지만, 어느새 마이키 잭슨의 나이가 지천명이다.

단발 공연은 몰라도 체력소모가 매우 심한 월드투어는 점점 쉽지 않을 터.


‘앞으로 공연을 하게 된다면 현란한 퍼포먼스보다는 보컬 위주로 하게 될지도....’


퍼포먼스가 없으면 어떤가.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류지호에게 감동 그 자체인 것을.


❉ ❉ ❉


텍사스주의 코퍼스 크리스티시(Corpus Christi City).

이곳에는 선상 박물관이 있다.

1991년 퇴역한 항공모함 렉싱턴호가 바로 선상 박물관이다.

앨런 포스터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항모를 수소문했다.

모든 항모가 퇴역했다.

고철 등으로 팔려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해군에서는 영화 <진주만> 등에 사용된 적이 있는 렉싱턴호를 추천했다.

1976년 영화 <미드웨이>에서 일본 항모로 사용된 바 있는 렉싱턴호는 벤자민 베이 감독이 <진주만>에서도 일본 항모로 써먹었다.

여담으로 <진주만> 촬영 시에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생존자회에서 크게 반발했다.

렉싱턴호를 적군인 일본 항모로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진주만> 제작진이 큰 홍역을 치룬 사연이 있다.

<Christmas Cargo>에서는 그런 우여곡절을 걱정할 일은 없었다.

다만.

멕시코 만에서부터 워싱턴주의 해상까지 운항하는 것이 문제였다.

움직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잘만 운항했다.

무지막지한 연료비를 부담해야 했지만.

렉시턴호가 남부아메리카를 빙 돌아 열흘 만에 태평양 연안의 워싱턴주 퍼시픽 비치 먼 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퍼시픽 비치에는 당시 흥남을 재현해 놓았는데, 다큐멘터리 필름을 토대로 최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하게 각종 미술과 소품들이 세팅되었다.

바다에는 렉싱턴 항모와 샌디에고 해군기지로부터 지원받은 각종 전함들이 떠 있고.

모래사장에는 상륙선이 종류별로 세팅되어 있다.

정면 도크가 개방되어 있는 상륙선 앞에는 탱크와 장갑차 등이 대기하고.

상륙선 주변에는 물에 뜨는 것이라면 다 활용이라도 한 것인지, 온갖 고기잡이배가 가득했다.

고기잡이배는 당연히 나무로 제작되었다.

프롭 마스터들이 당시 사진자료와 영화 자료를 토대로 실제와 똑같이 만들었다.

상륙선보다 고기잡이배들이 훨씬 많았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사용한 실제 화물선을 구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제작비 문제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장진호 생존자 장병들과 다큐멘터리 필름, 미군 기록에 따르면 피란민들은 미군 병사의 통제를 잘 따랐다고 한다.

무질서한 모습을 보인 것은 흥남철수 마지막 날 정도.

류지호는 그 같은 고증을 충실히 따랐다.

해변에서 상륙선이나 수송선에 승선하는 피란민들은 다큐 필름처럼 비교적 질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다만 레인 빅토리호에 고기잡이배를 대놓고 필사적으로 승선하는 피란민 모습은 다소 긴박하게 표현했다.

그래야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한국영화 <국제시장> 수준으로 과장하진 않았다.

<Christmas Cargo>는 국군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영화가 아니다.

미군 입장에서 또한 그들이 기억하는 장진호 전투가 중심이다.

즉 작전명 ‘Christmas Cargo‘를 담담하게 재현하고 재구성한 영화다.

때문에 국군홍보영화에서나 볼 법한 국군 지휘관들의 모습 따위는 없다.

전쟁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밑바닥과 휴머니티를 동시에 드러내며 최고의 스펙터클까지 제공하는 장르이다.

그래서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쟁영화들은 대체로 실화 소재다.

실화를 소재로 했기에 지금 시기에 없는 과거 속 영웅과 그 현장 속의 ‘정의‘를 현재로 소환한다.

현실에는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영화적 클리셰로서 ‘판타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에는 없지만 상상으로나마 즐기고 싶은 어떤 것, 즉 일종의 상상효과다.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허구를 통해 즐기는 것.

전쟁영화는 장르로서 그런 기능이 있다.

액션 장르로서 전쟁영화가 득세할 때는 현실에는 없는 ‘정의’나 뛰어난 ‘리더‘를 갈구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다.

류지호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Christmas Cargo>에도 비평적으로 그런 함의가 내포될 수밖에 없다.

감독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현재 미국의 정치·사회·경제적인 여러 문제 속에서 그 난관들을 앞장서서 이끌어줄 용감한 ‘리더’의 모습을 <Christmas Cargo>의 인물에서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할리우드가 클리셰로서의 판타지를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찾는 분위기로 바뀌는 모습이다.

어쩌면 판타지라는 표현보다는 비전이라고 봐야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순진한 기대감과 낭만적 설렘보다는 구체적인 계획이자 예측이 필요한 시대이기에.

2010년대를 맞이하는 할리우드는 현실과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엔 있었지만 현실에 없는 것.

그것을 통해 위로 받고 싶고.

영화를 통해서라도 비전을 얻고 싶고.

그렇게 현실에서 판타지를 꿈꿀 수 없으니 과거를 소환해야 하는 대중들은 팍팍한 일상을 견뎌내고 있다.

<Christmas Cargo>가 미국인들에게 어떤 노스탤지어를 선사하게 될지 류지호로서는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애국적이거나 사명감 투철한 한국인들을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까지도.

다만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결국 관객은 영화 속 허구가 아니라 역사의 오늘을 살아야 하기에.

그렇기에 영화 <Christmas Cargo>는 과거를 재현하는 것 이상의 판타지와 비전을 담아낼 수 있는가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터커!”


조감독 터커 레이튼이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옛썰 보스!”


한국 로케이션에 따라 올 수 없어 섭섭할 만도 하거늘, 촬영에 합류한 터커 레이튼은 여전히 활기찼다.


“오늘과 내일 이틀간 바다 방향 셋업 모두 끝내야 합니다. 가능하죠?“

“문제없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영화 제작비의 15% 가량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묘사한 오프닝 시퀀스에 쏟아 부었다.

류지호는 장진호 전투의 마지막 날 즉 하갈우리로 철수하기 직전 장진호 곳곳에서 벌어진 야간 전투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했다.

흥남부두 시퀀스는 CG가 일부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워싱턴주 퍼시픽 비치 촬영에 아시아계 엑스트라 1,200명이 동원되었다.

한국계, 중국계, 일본계 심지어 필리핀 등 동남아계도 일부 섞여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해병 전우회가 팔을 걷어 붙였다.

한국계 해병 전우회와 전역자 모임에서도 자원 봉사 문의가 쇄도했다.

미군 엑스트라는 800명이다.

그들 모두를 해변에 풀어 놓았다.

2,000명이 미군복과 한국전쟁 당시 한복차림으로 어슬렁거리자 분위기가 묘했다.

모래사장에는 상륙선이 전면을 활짝 개방한 채 탱크를 품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현장 세팅이다.

포스트프로덕션에서 CG까지 덧입혀 지면 지금까지 나온 전쟁영화 가운데 가장 장엄하고 복잡하고 실감나는 철수작전이 묘사될 예정이다.

허둥대는 스태프는 아무도 없었다.

이 정도 촬영은 식은 수프 떠먹는 거라는 듯이.

단기로 고용된 비조합 출신 스태프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촬영을 보조했다.

다만.


‘한 번 삑사리라도 나면... 후우.’


이 촬영현장에 유일하게 마음이 급한 사람은 감독뿐이었다.


❉ ❉ ❉


혹한의 날씨.

심하게 일렁이는 검은 바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포격과 폭격.

하늘을 뒤덮은 전투기의 굉음.

필사적으로 배에 오르려는 사람들.

비명과 통곡이 뒤섞인 생이별의 현장.

류지호 세대에게 흥남철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미국의 참전용사에게는 역사상 가장 장엄하고 처절한 철수작전이며 자유진영의 휴머니즘을 증명한 작전인 동시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선물 받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남아 있다.

미국전쟁사에서 중요한 전투 가운데 하나가 장진호 전투다.

한국전쟁의 여러 전투 중에서도 미국에서 꽤나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전투에 참가했던 장병들에 대해 존경과 예우를 보낸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장진호 전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흥남철수는 대중가요로 만들어져 익숙하지만.

군사정권 시절에 흥남철수작전의 한국군 영웅이라고 크게 부각된 국군 지휘관이 있긴 하다.

이후 그 인물의 이전 행적들이 낱낱이 밝혀지며 논란을 불러왔다.

흥남철수 작전에서 미 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을 설득했다고 알리진 국군 지휘관은 두 사람이다.

그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8년, 전남 여수·순천과 제주에서 상당수의 지역주민을, 민간인을,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던 지휘관이었다.

그들이 갑자기 개과천선이라도 했을까.

인민군에게 협조했을지도 모를 북한지역 피란민을 기를 쓰고 수송선에 태우려고 맥아더 장군의 오른팔을 설득한다?

류지호는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군부독재 정권에서 볼 때 흥남철수 작전이라는 중요한 사건에 국군 영웅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권 차원에서 과장하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을 해보았다. 미국 측 생존자들의 증언도 엇갈렸다.

그래서 논란이 일 수 있는 인물의 존재 자체를 아예 영화에서 없앴다.

대신 미군 자료와 많은 증언이 남아있는 미제10군단 통역관이자 민사부 담당 고문관이었던 한국인은 등장시켰다.

함흥출신, 기독교인, 미국 유학파 수련의사.

한국전쟁판 ‘쉰들러‘라고 불리는 닥터 현이 그 주인공이다.


[피란민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한국군을 대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닥터 현으로써는 고향의 기독교인들과 반공주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민간인들을 배에 태울 순 없다.]

[저들은 절대 불순분자나 제오열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며 공산주의자들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 작전을 실행할 때만 해도 알몬드 군단장과 참모들은 흥남부두에 집결한 수만 명의 피란민을 수송선에 태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군 지휘관인 그들 입장에서 피란민들의 존재는 미10군단 12만 병력의 보존과 군수품의 이동을 성가시게 하는 존재일 뿐이었기에.


[장진과 함흥 일대에서 모여든 수만 명의 민간인이 중공군을 피해 어디로 피란을 갈 수 있겠습니다. 중공군이 사방에서 쳐들어오고 있는 마당에 갈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닥터 현(존 주)이 구구절절하게 알몬드 장군(게랄트 올드먼)에게 하소연 했다.

게랄트 올드먼이 연기하는 알몬드 장군 캐릭터는 권위적인 지휘관이다.

서사 구조 안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빌런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군은 참모회의에 민사 고문을 반드시 참석시켰다.

때문에 철수작전을 논의하는 회의에 한국인 통역이자 민사 고문이 참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따라서 영화적으로 피란민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으로 묘사했다.

류지호는 영화 <국제시장>처럼 선상에서 단번에 알몬드 장군이 허락하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영화적으로 허구를 추가했다.

올리버 사단장(제라드 깁슨)이 해병1사단과 함께 철수하기 전 알몬드 군단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피란민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묻는 장면을 만들어 넣었다.

바버 중대장(클리프 레저)은 피란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 F중대가 가장 마지막에 부두를 떠나겠다고 나선다.

배런 렌프로와 카투사 몇 명이 자원하는 장면도 찍었다.

많은 이들이 피란민을 수송선에 태우자고 건의하자 알몬드 장군은 도리가 없다.


[미스터 현.]

[옛설!]

[기독교인과 UN군에 협력했던 민간인 5,000명을 수송선에 태우게.]


알몬드 군단장은 처음부터 모든 피란민을 태우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조건을 건다.

그러나 한국인 민사 고문(존 주)은 지시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피란민을 수송선에 태워 후방으로 보낸다.

알몬드 군단장은 5,000명 만 선별해서 태우라고 했지만, 민간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화물선을 몰고 철수작전에 참여한 민간인 선장들(대표적으로 매러디스 빅토리호)이 적극적으로 피란민을 자신의 배에 태운다.

한국영화였다면 한국인 민사장교가 영웅으로 묘사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인 선장이 영웅으로 묘사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먼저 떠난 이들을 제외하고 8만여 명 될 겁니다.]


알몬드 장군은 흥남을 떠나기 직전 비로소 마음을 바꾼다.


[수송선을 비우고 그 자리에 저들을 태우고 가게.]

[.....!]

[물자는 모두 부두와 함께 파괴하는 것 잊지 말고.]


상당한 군수물자를 포기하고라도 피란민을 승선시킬 것을 지시한다.

영화 내내 고구마만 먹인 빌런 같았던 알몬드 군단장이 그것들을 해소할 결단을 내린다.

알몬드 군단장은 군인으로써는 무능할지 몰라도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은 아니었던 것.

실제 역사에서 12월 12일부터 미10군단과 해병1사단의 해상 철수작전이 시작되었다.

피란민들을 철수작전에 포함시키기 시작한 것은 12월 16일에 가서였다.

12월19일은 피란민들이 본격적으로 배에 타기 시작한 날이었고.


[새끼줄을 쳐놓은 그 안쪽 구역을 들어가서 대기하십시오! 그 줄을 잡아야만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군이 새끼줄을 쳐놓고 피란민들을 구분했다.

UN군에 협조적이고 기독교인들 중심으로 5,000명을 선별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피란민들은 그 줄을 잡아야만 배를 탈수 있다고 해서 어떻게든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이산가족이 많이 생겼다.

어쩔 수 없었다.

함께 철수하던 국군이 일부 미군 통제에 손을 보탰지만, 흥남부두로 모여든 피란민의 숫자는 10만여 명에 달했다.

말도 통하지 않았다.

통역 겸 민사 고문 닥터 현은 마지막 철수작전이 전개되기 이틀 전에 흥남부두를 떠났다.

작전의 최종일인 24일과 그 전날은 사실상 피란민들이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닫히는 수송선 쇠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어요. 쇠문에 끼이는 사람, 쇠문에서 떨어져나가는 사람, 비명과 통곡이 뒤섞인 처참한... 아비규환이었지요.”


류지호는 그런 모습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배에 기어오르려다가 바다로 추락하거나.

서로 살겠다고 아등바등 대는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피란민을 연기하는 한국계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은 간절하고 처절하지만, 전반적인 모습은 침착하고 질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흥남부두의 철수 작전을 담백하게 그린 것이다.

즉 신파(눈물 강요와 감정 과잉)를 배제했다.

그렇다고 냉정하거나 차갑지는 않았다.

힘겨워 하는 임산부.

수없는 인파들로 뒤섞인 혼란 속에서 가족과 헤어진 어린이의 모습.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세간 살림을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하는 피란민들.

흥남부두에 남겨진 여러 마리의 소들.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

피란민의 아비규환을 묘사하는 것 대신에 그런 이미지들을 넣었다.

류지호는 쓸데없이 이야기를 질질 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원시원한 영상을 선호하기도 하고.

롱 쇼트와 롱 테이크를 좋아하는 것은 이제 그 만의 특색이 되어버렸다.

한 화면 안에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동시에 묘사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 심리와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감독의 연출 능력을 판별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롱 테이크와 롱 쇼트 연출의 미장센과 밀도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류지호는 흥남부두 철수 작전을 그렇게 묘사했다.

카메라가 정신없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이것저것 잘라서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굵직굵직한 서사와 인물을 중심으로 한꺼번에 한 화면에 담았다.

거대하고 광활한 Eye-MAX의 장점을 살리는 연출이기도 하다.


풍덩!


라루 선장(월터 윌리스)의 매러디스호가 해변에 닻을 내린다.

미육군 31특임부대들이 승선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10군단 장교들이 가장 먼저 승선했다.


[지금 당신의 배가 이 지역에 남은 마지막 배들 중 하나입니다. 혹시 이 배를 해변으로 접안시켜 피란민 중 얼마라도 태우고 나올 수 있겠습니까?]


10군단 고위 장교라고 해도 전쟁에 지원을 나온 민간인에게 피란민을 탑승시키라는 명령을 내릴 순 없다.

때문에 배런 렌프로는 조심스럽게 제의하는 태도를 연기로 표현했다.

결정은 모두 민간인 선장이 하는 것.


[피란민들....?]

[상급선원들과 협의해서 결정을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정 했수다. 해변에 배를 대고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태워서 철수하면 되는 거요?]

[몇 명이라도 좋으니 철수하는 김에 피란민들을 태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수다.]


매러디스호는 총 59명의 인원이 탈 수 있도록 설계된 화물선이었다.

배에는 라루 선장을 포함한 상급선원 12명과 승무원 35명이 타고 있었다.

새롭게 태울 수 인원은 고작 12명.

여분의 물과 식량도 단 이틀치분이었다.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미처 하역하지 못한 300 톤의 항공유도 고려해야 했다.

흥남 연안에는 북한군의 기뢰가 부설되어 있었다.

북한의 잠수정도 이따금 출몰했고.

이들의 공격을 받기라도 하면 자칫 유례없는 선박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선원들이 그 같은 문제를 지적하지만, 라루 선장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피란민 구호를 약속한다.


[항공유를 제외하고 모든 물자를 부두에 내려놔!]


배런 렌프로의 31특임부대원들이 선원들과 함께 매러디스호 화물칸에 있던 물자들을 흥남부두에 버린다.

라루 선장은 선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수의 피란민을 배에 태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항공유를 제외한 모든 물자를 내려놓은 것은...


12월 22일.


그날 오후 9시 반부터 피란민 탑승 작업이 시작됐다.

다음날 아침까지 무려 1만4천 명의 피란민이 바지선을 이용해 매러디스호에 올라탔다.

또 다른 민간 선박인 레인 빅토리호에도 상당히 많은 피란민들이 승선했다.

한국인들이 흥남부두 철수하면 떠올리는 배안의 풍경.

배의 모든 공간이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바로 기네스북에 단일 선박에 최대 승선인원 기록을 등재시킨 역사적인 사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덕동고개 전투의 영웅들인 F중대 부하 몇 명이 어슬렁거리는 한우와 개 몇 마리를 지나쳐 공병대원을 호위해 해변으로 나온다.

공병대원의 손에는 폭파스위치가 들려있다.

미해병대 상륙주정(LCVP)까지 뒷걸음질로 물러난 공병대원이 힘차게 폭파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LCVP에 승선한다.

LCVP가 흥남부두 앞 바다로 나아가면.


꽝!

과과과꽝!


흥남부두가 폭발한다.

실제로 엄청난 폭약이 소요된 폭파씬이었다.

이 날 촬영의 폭발 소음이 수 킬로미터 떨어진 시내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12월 23일.


메러디스호가 흥남부두에서 마지막으로 출항했다.

미군은 중공군의 항구 사용을 막기 위해 흥남부두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철수작전 중에 상당한 군수물자를 후방으로 옮겼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물자도 상당했다.

부두 시설과 함께 군수물자도 함께 파괴되었다.

완전한 초토화.

주로 공병부대가 폭파를 주도했지만, 영화적으로 전투기 폭격도 묘사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강조하는 불꽃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낌없이 제작비를 쏟아부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역사에 기초하려고 노력했다.

일정 부분 영화적 스펙터클을 위해 폭발의 강도나 흥남 앞바다에 떠 있는 선박의 숫자를 부풀렸다.

가장 중요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강조하기 위해 두 주인공이 속한 부대가 끝까지 흥남부두에 남아 있었고, 매러디스호 안에서 대미를 장식하도록 허구를 추가했다.


1950년 11월~12월 기간.


미해병대 제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상자 4,395명에 비전투 손실 7,338명까지 총 인명손실 1만 5천여 명을 기록했다.

군사적으로 보면 부대의 인명손실이 30% 이상이면 부대로서 기능을 잃었다고 간주, 재편성을 요구한다.

장진호 전투 정도면 거의 전멸 수준이었다.

다만 서부전선의 군우리 미 2사단 철수작전의 경우 중장비를 모두 버리고 몸만 탈출한 데 비해 장진호의 해병 1사단은 중장비를 거의 다 가지고 탈출했다는 사실.

표면적으로 해병1사단의 피해가 막심했다지만, 교전비에 있어서 적군 측 피해가 훨씬 더 막대해서 전술적으로는 아군이 승리했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중공군 9병단 예하 각 부대의 사상자는 모두 2만5000명 정도.

부상 또는 실종자는 약 1만 2500여 명.

동상환자는 미군의 약 3배에 달하는 1만여 명.

당시 중공군 관련 피해에 대한 정확한 집계가 없다.

따라서 미군에서 추정한 수치를 참조했다.

중공군 9병단은 동부전선의 주축이었다.

장진호 전투로 인해 이들의 예기가 꺾였다.

그로인해서 전선 전체에서 적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우선 미10군단을 비롯해 동부전선에 진출한 아군의 병력, 물자와 장비, 그리고 적지 않은 피난민이 흥남을 통해 남쪽으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점.

그들이 부산에서 전열을 정비해 곧바로 전선에 투입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중공군 9병단은 장진호에서 UN군을 몰아냈지만, 전투부대로써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Christmas Cargo‘ 작전으로 인해 더 큰 변수가 생겨버렸는데, 중공군 9병단이 공세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력을 손실함으로써 향후 38선을 향해 벌였던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서 완전한 병력을 갖출 수가 없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일시 봉합되면서 승패를 가르지 못했다.

미국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이긴 전투라고 하고.

중국도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하는.

장진호 전투.

과거와 달리 미국 내에서 ‘졌지만 잘 싸운’ 전투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렇기에 류지호가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또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작가의말

연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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