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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완 님의 서재입니다.

닉네임 군필여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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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린완
작품등록일 :
2018.10.19 17:38
최근연재일 :
2023.01.15 06:06
연재수 :
1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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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7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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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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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2. 롤드컵 결승전(3)

DUMMY

결승전 두 번째 경기.


경기 시작 30분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LAC게임즈의 미드라이너 진수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은 힘들거나 피곤해서가 아닌, 의욕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반동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아름을 쳐다봤다.


탑 솔킬.

더블 킬.

두 번째, 세 번째 솔킬.


자기 라인을 아주 박살을 내곤 탑에 고속도로를 뚫어버린다.


라인관리 능력, 스킬 샷, 신묘한 템트리, 포지셔닝, 콤보력, 반응속도, 동체시력, 심리전······.


이제는 뭐 설명하기엔 입만 아플 정도의 완벽한 플레이였다.


“진수야 뭐해? 핑 체크 안 해?”

“아, 미안.”

“집중하자 집중. 연습 아니다?”

“미안 미안.”


아름이 어떻게 알았는지, 잠깐 딴생각했다고 그걸 꼬집는다.


하지만 한 번 주의가 흐트러진 진수는 다시금 8강전이나 4강전 때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슬쩍 맞은편의 북미팀, 오버웰의 선수들이 앉아있는 게임부스를 쳐다봤다.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하는 건 분명 너희들 정도겠지······.’


진수는 눈을 내리깔곤 혼자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가 있다.

각자 파왔던 구멍이 있고, 걸어온 길이 있다.


우리는 같은 분야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뛰어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역사 속에서 그 분야의 위인이나 큰 업적을 세운 사람을 보면 나의 롤모델로 삼고, 존경심을 갖고 그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역사 속 위인이 자신의 대학 동기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역사에 획을 긋는 천재와 같은 분야를 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정신으로 그와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은 왜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았느냔 말인가.


옛 이야기 속 인물의 탄식처럼, 진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롤드컵에서 한 번만 우승해봤으면- 따위가 진수의 목표였다면 지금 이렇게 우울한 기분이 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게임을 해 온 사람이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인정받고, 주목받고,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사람이었다.


“어!? 정글러 동선 이상한데? 동선 놓친 듯?”

“괜찮아. 그대로 바텀이랑 드래곤 챙겨. 정글러 스펠체크는?”

“점멸 47초, 궁은 모르겠어.”

“확인. 미드는?”

“······.”

“미드는? 진수야?! 뭐해 아까부터?”

“어? 나? 왜?”

“······아냐. 됐어.”


진수가 정신을 팔고 있던 사이, 또 탑에서 소규모 한타가 벌어졌다.


2차 타워 아래쪽의 정글 몬스터를 스틸하던 아름을 적 팀 세 명이서 저지하려다가, 오히려 한 명을 잡아내고 무사히 도망친다.


그 침착하고 깔끔한 플레이에 또다시 해설자들과 관객들이 비명을 질러댄다.


비록 선수들은 방음부스 안이고 헤드셋까지 착용한 상태라서 그 소리가 정확하게 전달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밖의 분위기가 어떨지. 그리고 카메라가 지금 누굴 잡고 있을지.


진수는 착잡한 마음으로 마우스를 딸깍딸깍 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피해망상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우리 같은 건,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 아냐?’

‘내가 아무리 똥꼬쇼를 해봤자, 해설자들이 내 이름을 언급이나 해 줄까?’

‘아름이가 원래 미드라이너였잖아. 사람들은 나 같은 건 얼른 비키고, 아름이가 미드라인에 서길 바라겠지’


“아?!”


롤드컵의 결승전은 장난이 아니었기에, 잠깐이지만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진수는 황당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팀의 실수가 나온 상황에선 보통 격려의 말이 나왔으나, 이번엔 팀원 모두가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진수도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를 보곤 정신을 차렸는지 입술을 깨물곤 말했다.


“미안해. 진짜 정신 차릴게.”

“갑자기 왜 그래? 컨디션 안 좋아?”


아름이 직접 고개를 돌려서 진수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녀가 진지한 게임 도중에 모니터에서 눈을 떼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기에, 진수는 아름이가 진짜 열받았나보다 싶어 얼른 대답했다.


“아냐. 진짜로 집중할게. 미안.”

“······.”


아름은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긴 했지만, 곧 다시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진수도 이를 악물어가며 게임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결국 그 한 번의 해프닝을 제외하면 결승전 또한 8강전이나 4강전과 다를 바 없는 일방적인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북미 팀 오버웰에서 나름대로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은 아름이 손바닥안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허무할 정도로 2경기, 3경기가 모두 끝나버렸고, 끝까지 자신이 활약하거나 도드라져 보일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경기 후 선수들끼리 악수를 나눌 때, 진수는 역시나 상대팀과 자신의 표정이 똑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할 때도 모두가 연호하고 있는 이름은 역시나 아름이었고, MVP로 뽑힌 것도 당연히 아름이었다.


“오버웰이 역시 게임수준이 가장 높았어요. 덕분에 라인전이 즐거웠고 한타 구도 잡는 게 즐거웠죠. 좀 티키타카가 됐었다고나 할까요?”

“제가 MVP로 뽑힌 건 제가 아는 정보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것들이 이제 많은 분들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다면 저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얼마든지 나올 거예요.”

“당연하지만 제가 여기 서있을 수 있는 것은 세상 모든 게임 팬 분들 덕분이에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MVP 인터뷰 때 아름의 말에 몇몇 오버웰 쪽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고, 많은 관중들에게는 감동을,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겐 굴욕감을 가져다주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우승이 확정되어 롤드컵을 들어 올린 것은 한국의 LAC게임즈였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마친 팀원들이 단상 위로 올라갔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 우승컵을 둘러싼 채 잡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화려한 조명.

무대에서 피어오르는 폭죽과 불꽃.

귀가 먹을 것 같은 환호성.

동료들의 상기된 얼굴.

모든 것을 보상받은 듯한 묵직한 우승컵의 무게.


LAC게임즈가 롤드컵을 들어 올린 그 사진은 전 세계 여러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아름을 잘 아는 이들이 생각하기엔 당연한 일이었고, 그녀를 잘 모르는 게이머들이 생각하기엔 천지개벽할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당시에 롤드컵을 직관하러 왔던 많은 게임 팬들은 LAC게임즈, 그 중에서도 특히 아름의 차원이 다른 플레이에 완전히 홀려버렸는데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이름도 처음 들어본 자그마한 동양인 여자애를 직접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었다.


아무 스태프를 붙잡고 어딜 가야 그녀를 만나볼 수 있냐고 물어보거나,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인 선수들 대기실에 난입하거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출구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기다리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이 일은 뉴스에까지 나갔고, 아름의 이름이 팔리는데 일조하는 셈이 되었다.


“다들 고마운 팬 분들이잖아요. 그냥 만나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하면 안 되나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름이 그렇게 물었고, 이기문 감독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 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면 돼. 무질서한 곳에서 괜히 나서는 건 거기 스태프들한테 민폐 끼치는 꼴밖에 안 되니까. 그리고, 무슨 사고가 날 줄 알고 너를 그런데 보내겠냐?! 세상에 얼마나 미친놈들이 많은 줄 알긴 하는 거냐?”

“알겠어요.”

“미친놈들이 많다고 해봤자, 얘만큼 미친 사람은 없을걸요.”


같은 팀원인 진수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

모두가 웃었지만, 진수는 웃는 척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뒤, 한 남자가 LAC게임즈를 찾아왔다.


처음엔 직원이 관계자가 아닌 분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았지만, 손님을 알아본 LAC게임즈의 메인코치가 그를 숙소로 들였다.


손님의 정체는 북미 팀 오버웰의 탑 라이너인 라일 선수였는데, 그는 메인코치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 라일 선수와 메인코치 그리고 아름은 숙소 1층의 테이블에 마주앉게 되었다.


아름은 갑자기 찾아온 다른 팀 선수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면서 코치에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대. 꼭 직접 만나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무리해서 찾아왔대.”

“······?”


코치의 통역을 들은 아름은 팔짱을 끼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제스처였다.


라일이 다시 말했고, 코치는 통역했다.


“오늘 경기 너무 완벽하고 훌륭했다네.”

“예······. 고마워요.”

“당신에게 완벽하게 졌다고, 이렇게 철저하게 간파당하고, 압도당하는 기분은 굴욕을 넘어 황홀할 정도였대.”


아름은 이번엔 눈살을 조금 찌푸린다.


“······그래서요?”


라일 선수는 상기된 얼굴로 마지막 말을 꺼냈고, 코치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말을 전달했다.


“네 플레이에 반했대. 자기 생각엔 둘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다고, 연락처를 받을 수 있겠냐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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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23. 소녀 한아름(6) 23.01.10 192 9 10쪽
112 23. 소녀 한아름(5) 23.01.09 194 9 10쪽
111 23. 소녀 한아름(4) 22.12.22 200 6 10쪽
110 23. 소녀 한아름(3) 22.12.22 208 8 9쪽
109 23. 소녀 한아름(2) 22.12.21 214 7 10쪽
108 23. 소녀 한아름(1) 22.12.21 208 9 10쪽
» 22. 롤드컵 결승전(3) 22.12.20 211 7 10쪽
106 22. 롤드컵 결승전(2) 22.12.20 203 9 9쪽
105 22. 롤드컵 결승전(1) +1 22.12.05 222 10 10쪽
104 21. 롤드컵 4강전(2) +1 22.12.02 227 10 9쪽
103 21. 롤드컵 4강전(1) 22.12.01 220 6 9쪽
102 20. 롤드컵 8강전(3) 22.11.25 221 8 12쪽
101 20. 롤드컵 8강전(2) +1 22.11.24 217 8 12쪽
100 20. 롤드컵 8강전(1) 22.11.23 226 8 15쪽
99 19. 롤드컵(5) +1 22.11.22 218 8 10쪽
98 19. 롤드컵(4) 22.11.21 224 9 11쪽
97 19. 롤드컵(3) +1 22.11.10 253 8 12쪽
96 19. 롤드컵(2) 22.11.09 235 8 16쪽
95 19. 롤드컵(1) +1 22.11.08 245 9 10쪽
94 18. 세가지일(7) +1 22.11.07 236 9 10쪽
93 18. 세가지일(6) 22.11.05 236 6 10쪽
92 18. 세가지일(5) 22.11.04 236 9 12쪽
91 18. 세가지일(4) 22.11.03 235 8 10쪽
90 18. 세가지일(3) 22.11.03 237 7 9쪽
89 18. 세가지일(2) +2 22.11.02 237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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