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210,510
추천수 :
7,136
글자수 :
964,671

작성
20.06.01 19:15
조회
2,274
추천
74
글자
12쪽

Re 19. 괴수 토벌 1

DUMMY

01.

집무실 문이 열리며 처음 보는 사내가 등장했을 때 사자는 직감했다.


저 자가 마크구나. 마크 에반스, 아우바의 시장.


'좀 크고 무서운 남자라더니, 조금 정도가 아닌데?' 사자가 생각했다.


앞에 선 것은 어깨가 떡 벌어진 거한이었다. 부풀어 오른 가슴 근육이 당장이라도 셔츠를 찢고 나올 것 같았다. 주인을 잘못 만난 셔츠의 단추들이 안쓰러울 만큼 간신히 서로를 붙들었다.


바지는 더욱 문제였다. 남자는 비를 가득 머금은 먹구름 같은 진회색 양복바지를 입었는데 허벅지가 괴이할 정도로 굵었다. 저 정도의 굵기는 엄청난 단련을 통해서도 만들기 힘든 크기였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장사라고, 온몸이 외치는 것만 같았다.


만약 이곳이 시청이 아니었다면 소인족들의 일을 마무리하는 또 다른 백정의 등장이라고 생각할 법 했다. 그럼에도 사자가 눈앞의 남자를 이 도시의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수치를 잘못 잰 것 같은 양복을 입어서도 왠지 모르게 인텔리 한 분위기가 풍겨서도 아니었다. 그저 왼쪽 가슴팍에 또다시 금으로 된 명찰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우바 시장, 마크 에반스'.


진절머리 날 만큼 자기애로 똘똘 뭉친 사내였다. 집무실의 소탈한 인테리어를 보면서 가졌던 조금의 호감이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렸다.


남자는 사자의 존재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표정을 보니 지금 어마어마한 짜증과 분노가 그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듯 했다. 사자는 그의 여정에서 수많은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을 만나왔지만 (물론 그중에 특별히 교우 관계를 맺고 싶었던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렇게 표정관리가 안 되는 인물은 또 처음이라고 느꼈다.


남자가 토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다가왔다. 그의 눈에서 넘실대는 살기를 바라보며 사자는 자기도 모르게 토드에게로 오는 남자를 막아섰다. 이런, 그 역시 알아차리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 사이 토드라는 소인족에게 정이 붙은 모양이었다.


살기를 뿜으며 토드에게 다가가던 남자가 우뚝 섰다. 그제서야 사자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사내가 황당하고 의아한 눈으로 사자를 쳐다보았다. 사자가 그에게 짐짓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마크라는 자로군."


남자의 눈에서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02.

"이게 무슨 일인지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할 거다, 이 난쟁이 놈들아." 남자가 말했다.


사자는 소인족을 향한 그의 말이 언짢았다. 대체 이 도시는 타종족에 대한 대우가 왜 이리 개판인가.


그중에서도 시장이라는 작자의 인식이 최악이었다. 이 사내는 소인족들을 동료나 부하는커녕 말할 수 있는 가축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정치인들에게 종종 보이곤 하는 선민의식이 이 남자에게는 훨씬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까 사자를 고기로 지칭한 두 사내들이 그랬듯이.


"친구?"


친구를 데려왔다는 토드의 말에 남자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니까 놀랄 만도 하긴 했는데,


"친구라고 했단 말이냐? 이 고기가? 너희 뭔가를 잘못 쳐 알아먹은 게 아니고?"


아아, 사자는 다시 한번 더할 나위 없는 짜증을 느꼈다. 조끼를 입은 두 신사를 만나 겨우 풀었던 스트레스가 다시 시커먼 구름처럼 올라왔다. 고기라니. 네놈들의 절대 지존을 만나러 가는 내게, 수많은 전투와 전쟁터를 공원에 마실 나가듯 누볐던 <공화국의 검>에게 고기라니.


사자가 마크를 쳐다보았다. 마크 역시 분노로 뒤죽박죽인 눈으로 사자를 쳐다보았다. 사자의 태도가 그의 분노를 돋우고 있음은 명확해 보였다. 자세만 보자면 당장이라도 뛰어들 기세였다. 사자는 마크의 어마무시한 덩치를 한눈에 담으며 다음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지금 계단 옆 탕비실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두 친구의 뒤를 따르게 해주어야 할까.


그때 사막의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상상 속에서조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운 얼굴이었다. 뱀처럼 찢어진 입과 소름 끼치게 하얗고 긴 손가락이 생각났다. 남자가 말했다.


'자네, 잃어버린 검을 찾고 싶지 않은가?'


사자는 겨우 자신의 목적을 기억해냈다. 지금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씩씩대고 있는 저 황소 같은 남자에게 주어야 할 것은 벌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아까의 친구들과는 달리 이 남자에게는 물어볼 것이 아주 많았다.


목뒤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한숨을 얕게 내쉬고는 (그것 역시 마크의 화를 더욱 키우는 것이었는데) 몸 전체에 퍼져있던 경계도 어느 정도 풀었다. 경계를 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짜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자가 마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난......"


마크가 사자에게 달려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03.

사자는 남자가 황소 같아 보였다는 감상을 수정했다. 마크의 태클에 치이는 순간 말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치받는 바람에 경계를 잠시나마 풀었던 사자는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다. 어깨를 부서뜨릴 것 같은 강력한 태클에 사자의 몸이 붕 떠서 내동댕이쳐졌다.


마치 먼 과거에 존재했다는 코뿔소와 같았다. 하마와 같은 덩치를 가지고 유니콘의 뿔을 가졌다는 전설 속의 동물 말이다. 코뿔소는 한번 대지를 박찰 때 수십 리를 한 번에 달려나갈 수 있었다던데. 황소의 뿔에 받친 것 이상의 충격으로 날아가는 것치고는 꽤 여유로운 생각이었다.


생각의 마침표까지 찍을 때쯤 사자의 몸이 마크의 집무실 책상을 부수고 떨어졌다. 하필 단단한 원목이라 이중으로 충격이 왔다. 사실 마크의 집무실 가구들이 원목으로 심플한 모양을 띄고 있었던 것은 '툭하면' 부서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소인족들에게 교육을 해줄 요량으로 부하 하나를 들어 던졌을 때도 집무실 의자 하나가 박살이 났었다. 누가 더 많이 부서지나, 의자와 경쟁했던 불쌍한 사내는 부목을 짚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사자는 눈앞이 뱅글뱅글 도는 것만 같았다. 세계는 사실 스스로 돌아간다던데 이렇게 증명하는군.


사슬에 묶여 있을 때 이상으로 숨이 턱 막혔다. 그렇다고 계속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는 없었다. 분명 마크가 두 번째 돌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태클을 피하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날아가긴 했지만 가슴을 그대로 받히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마크의 공격이 몸에 닿기 전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어깨로 받을 수 있었다. 만약 가슴팍을 무방비하게 받혔다면 아마 갈비뼈가 으스러진 채 그대로 기절했을 것이다.


사자가 몸을 겨우 반쯤 일으켰을 때 마크가 재차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붉게 충혈된 사내의 눈이 보였다.


'물을 무서워하는 병에 걸린 개들이 저런 눈을 하고는 하지.'


사자는 생각과 동시에 몸을 날려 옆으로 굴렀다. 마크의 억센 몸이 아슬아슬하게 사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달려든 속도를 제어할 수 없었던지 이번엔 뜻 모를 책들이 잔뜩 꽂힌 책장을 박살 내버렸다. 포격이 산등성이를 날려버리듯 엄청난 소리가 났다.


"이 고기 새끼가...... 감히 날 그런 눈으로 쳐다봐?"


몸을 미처 다 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크가 말했다. 분노로 흐트러진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사자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으나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사자가 빠르게 숨을 골랐다. 마크가 세 번째 돌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자 역시 반격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죽여서는 안 된다.'


자주 생각하지만 잘 지켜지진 않았던 다짐을 또 한 번 했다.



04.

소인족들은 갑자기 벌어진 난장판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마크가 화를 내는 장면은 지금껏 수차례 목격해왔지만 저 정도의 분노는 처음이었다. 부하들이 제대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도, 시정에 대한 시위가 시청 앞에서 소소하게 일어났을 때도 (그 시위를 주도했던 남자는 지금 도시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이 정도로 폭발하진 않았다.


금이빨은 소인족의 정강이뼈만큼이나 단단하게 만들어진 원목 가구들을 마치 이쑤시개처럼 부숴버리는 광경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저런 사람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구나, 저들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마크의 친구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순순히 사자를 데려온 것을 한없이 후회했다. 선뜻 결정을 내렸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시티는 화로에 올려놓은 숯처럼 시뻘겋게 타오르는 마크의 눈을 보며 오금이 저렸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마크의 눈빛이 절대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저만치 분노하는 눈은 처음 보았다.


문득 어릴 적 광산의 갱도에서 보았던 곰이 생각났다. 그 곰은 일반적인 곰보다 몇 배는 크고 흉포해서 마을 사람들을 몇이나 잡아먹고도 잡히지 않은 흉측한 놈이었다. 나시티는 그 곰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소인족이었는데 놈의 눈을 평생 잊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의 눈에서 그 흉포한 안광을 다시 보게 되리라는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토드, 우리의 토드는 아주 다른 점에 경악하고 있었다.


토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듯 막아준 사자에게 무한한 감사와 애정을 느꼈다. 그래서 마크가 폭발하고 사자의 몸이 내동댕이 쳐질 때 토드는 감히 저 둘 사이로 뛰어들어 이번엔 자신이 사자를 구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하고도 발을 박차고 뛰어드는 영웅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몸을 반쯤 일으킨 사자의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 무서운 마크의 공격을 무방비하게 받은 상태였는데, 집무실 책상의 단단함을 몸으로 실컷 확인한 후였는데도,


사자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없다. 그저 본인이 가장 잘하는 일을 이제부터 펼쳐 보이려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토드는 마크의 폭발보다 사자의 평온이 훨씬 무서웠다.



05.

마크는 과연 힘만 세고 달려들 줄만 아는 우둔한 인물이었을까?


그럴 리가. 전혀 아니었다. 물론 마크는 도시의 그 누구보다 힘이 세고 싸움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영악하고 교활한 인물이었다. 마크는 사람의 뼈를 부수고 살을 찢는 데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동시에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이면서 책략가였다. 단지, 종종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분노가 문제였을 뿐이다.


두 번째 돌격으로 책장을 부숴버리고 난 뒤 마크는 어느 정도 냉정함을 되찾았다. 눈앞을 가렸던 불길이 가시고 서늘한 한기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것은 첫 번째 돌진에서부터였다. 전심과 전력을 다했다. 반드시 죽었어야 하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죽지 않았다. 들이박았을 때 직감했다. 돌풍에 날아가는 짚단처럼 과장되게 훨훨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짜증이 나는 건 바로 그 '훨훨' 날아갔다는 점이다.


'저 자식, 부딪히는 순간 스스로 날아갔어.' 그 짧은 순간에 곧장 뒤로 튀어 오른 것이 믿기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저 비쩍 마른 몸이 비상식적으로 튼튼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 단단한 집무실 책상이 부딪혀 박살이 났는데 사내는 곧장 일어났다. 심지어 두 번째 돌진까지 쉽게 피해버렸다. 마크야 물론 집무실의 가구들을 큰 힘 들이지 않고 (멍청한 놈들의 육신과 함께) 부술 수 있다. 그건 오직 그만이 가능한 일이다. 아니 그만이 가능해야 했다.


마크는 정신이 어느 정도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나니 사자의 평온한 표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맙소사, 저 난쟁이들은 대체 어떤 인물을 데리고 온 것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막의 소드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Re 21. 괴수 토벌 3 +4 20.06.03 2,192 75 12쪽
20 Re 20. 괴수 토벌 2 +2 20.06.02 2,175 76 12쪽
» Re 19. 괴수 토벌 1 +4 20.06.01 2,275 74 12쪽
18 Re 18. 마크를 찾아서 3 +2 20.05.30 2,214 83 12쪽
17 Re 17. 마크를 찾아서 2 +8 20.05.29 2,242 72 12쪽
16 Re 16. 마크를 찾아서 1 +6 20.05.28 2,425 79 13쪽
15 Re 15. 고기가 된 검사 3 +7 20.05.27 2,544 86 12쪽
14 Re 14. 고기가 된 검사 2 +8 20.05.26 2,636 83 12쪽
13 Re 13. 고기가 된 검사 1 +2 20.05.25 3,251 88 13쪽
12 Re 12. 세 가지 질문 2 +25 20.05.22 3,474 119 13쪽
11 Re 11. 세 가지 질문 1 +2 20.05.21 3,645 95 12쪽
10 Re 10. 달빛을 먹고 사는 자 2 +4 20.05.20 4,081 110 12쪽
9 Re 09. 달빛을 먹고 사는 자 1 +6 20.05.19 4,346 119 14쪽
8 Re 08. 죄와 벌 3 +2 20.05.18 4,693 120 13쪽
7 Re 07. 죄와 벌 2 +10 20.05.15 4,868 130 13쪽
6 Re 06. 죄와 벌 1 +10 20.05.14 5,107 138 13쪽
5 Re 05. 참극 2 +9 20.05.13 5,380 145 13쪽
4 Re 04. 참극 1 +17 20.05.12 6,129 137 13쪽
3 Re 03. 사막을 건너는 검사 3 +12 20.05.11 6,825 163 12쪽
2 Re 02. 사막을 건너는 검사 2 +20 20.05.11 7,733 196 12쪽
1 Re 01. 사막을 건너는 검사 1 +24 20.05.11 14,642 187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