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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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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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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5.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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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글자
12쪽

Re 11. 세 가지 질문 1

DUMMY

사막은 넓고 텅 비었다. 사막은 춥고 공허했다. 사막에 내리쬐는 태양은 아무것도 자라게 하지 못했다. 사막에 내리는 비는 누구의 목도 적셔주지 못했다. 그저 달빛만이 사막에 은은하게 내려 뱀에게 내리쬐었다. 뱀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사막에서 오직 달이 뜨는 것만을 기다리며 자랐다. 뱀은 외로웠다. - 『해는 서쪽에서 뜨고 달은 사막에 진다』 중에서



01.

남쪽의, 고향의 차향이 붉은색 향초가 태우는 과일향을 밀어냈다. 사자는 쉴 새 없이 코가 벌름거리고 온몸이 차를 향해 안달이 났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남자만 바라볼 뿐이었다.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지 않소. 물어보시오. 사막의 밤을 피해 갈 수 있게 해준 대가라기엔 뭐 하지만, 대답에 흔쾌히 응하겠소."


"그래, 그래서 자네를 부른 것이었지. 오랜만의 손님에 너무 들뜬 모양이로군. 이해해 주게. 나는 무척 기대하고 있다네." 남자가 사자를 보며 말했다.


"모처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내를 만났다고 말이지."


"나에 대한 평가가 후하시군. 오늘 처음 본 건데도 말이오."


"하지만 자네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아닌가?"


"그렇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오."


"달빛을 먹는 아무개 말이지?"


"만약 당신이 정말 그런 이름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나는 내 생애 몇 안 되는 두려움으로 당신을 대해야 할 거요."


"하지만," 벽 한편에 내려놓은 사자의 검을 바라보며 남자가 말했다.


"경계가 많이 누그러진 모양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경계가 의미 없어졌기 때문이오. 이 집에 들어온 순간 말이지."


남자가 크게 웃었다. 방 안을 울리는 소리에 천정에 달린 등이 흔들렸다. 남자의 그림자가 불길한 모습으로 벽 한편에 드리워졌다. 그림자가 말했다.


"그래서 자네가 마음에 든다는 거야. 이 얼마나 대담한 사내인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자네에게 놀랄걸세. 내 앞에서 이토록 용감하게 굴 수 있다니."


남자는 찻잔을 들어 사자에게 먼저 권한 후 차를 마셨다. 사자는 잔을 들지 않았다.


찻잔을 내려놓고 남자가 말했다.


"말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대화다운 대화에 목말랐네. 왜냐고? 아주 오랫동안 사내다운 사내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지금의 사막에는 온통 계집애 같은 놈들뿐이야. 덜렁거리는 것을 달고 다니기는 하지만 속은 여염집의 규수보다도 허약하지. 사내는 없고 교활한 협잡꾼, 비겁한 정치인, 지루한 설교가뿐일세.


나는 그런 놈들 사이에서 살아야 했어. 달빛을 먹는다고 했나? 아니!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그 빌어먹을 놈들의 대갈통이야!"


남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에서 아까의 불길하고 흉흉한 황금색 빛이 새어 나왔다.


"이제는 좀 솔직해져 볼까. 나는 자네가 사막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알았네. 어쩌면 자네가 여행을 결심한 순간부터 우리는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거야.


알레르기아의 일을 알고 있네! 그 얼마나 멋진 일이었는지!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어. 비겁한 쥐새끼들이 자네의 검에 목이 달아났지. 사막을 더럽히는 개들을 자네가 처단해 주었어. 이게 얼마 만의 유쾌한 기분인 줄 아는가?"


사자는 그의 말에서 비로소 마을의 이름을 알았다. 알레르기아. 이제는 수십 구의 시체들이 영원한 잠에 빠진 그곳.


남자의 눈이 눈물로 그렁그렁 해져 있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을 들어 과장되게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나는 기다렸네. 자네의 길 위에서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국 만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과부의 사타구니처럼 어찌나 근질거리던지! 처음 보는 듯 자네를 시험했을 때에도 깨지기 쉬운 장난감을 만질 때처럼 걱정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네.


내 기대에 못 미치는 그저 그런 애송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린다면 어쩌지! 나는 또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그런 걱정을 했단 말이야!"


남자가 말을 뚝 그쳤다. 일렁이던 불빛이 일순간에 움직임을 멈췄다. 정적이 거실 안을 가득 채웠다. 사자는 침묵을 두려워하는 사내가 아니었으므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쏟아내던 격정을 틀어막고 있었다.


사자는 남자의 덩치가 수십, 수백 배로 커져 거실 안을 가득 채울 것 같다고 느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위압감, 살갗을 베는 검기를 뿜어내던 이들과 대적할때나 느낄 수 있었던 위압감이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들과 달리 눈앞의 남자는 검 대신 찻잔을 손에 든 채 편안한 소파에 얌전히 앉아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자는 검을 벽에 세워 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면,


당장 저 뱀 같은 대가리를 베어버리려 달려들었을 것이므로.



02.

"하지만." 남자가 얼굴을 감싼 하얀 손을 내리며 말했다.


손을 내리자 그의 얼굴이 집으로 들어설 때로 돌아왔다. 숨 막히던 위압감도 사라졌다.


"자네는 내 기대 이상이었네. 내가 일부러 뿜어낸 기운에 자네가 몇 번이나 일생을 바쳐 닦아온 기술에 몸을 맡기려 한 것을 알았어. 하지만 그때마다 이성으로 억누르는 것 또한 눈치챘지. 공포에 대항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네. 하지만 공포를 마주하고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자네는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공포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온 모양이야. 그 역시 마음에 든다네."


남자의 눈빛을 마주하면서 사자는 얼마나 많은 것을 그에게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동시에 얼마나 중요한 것들을 감출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았다.


남자는 사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막에 발을 디딜 때부터 사자를 알고 있었다는 말은 사실일까, 아닐까.


사자는 이미 많은 마술사들을 경험해 왔다. 삿된 술수로 마법을 가장하는 자들이다. 사자는 그들의 마술이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지 않은 현실을 사실로 만드는지 경험했었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남자는 마술사일까? 그렇다면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달빛을 먹고 사는 자라면.


대답 한 마디 한 마디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03.

"자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고 싶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마치 질문이 세 개 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감사히 여기라는 듯했다.


네게 더 많은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고마워해. 목이 달아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니 말이야. 사자는 남자의 말 뒤에 그러한 뜻이 숨은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남자의 눈은 여전히 흉흉한 황금색으로 빛났지만 자못 온화하고 자애로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자애라니! 그래. 뱀이라면 누구나 개구리 앞에서 자애로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 사자가 생각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시험도 뭣도 아니네. 그저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 위한 소소한 말의 기술이라고 할까? 이 긴 밤을 보내기 위한 것으로 문답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 그러니 부담 따윈 전혀 갖지 말게."


거짓말.


"좋소. 당신이 초대한 이 따뜻한 집에 감사하며 성심껏 대답하겠소. 아까와 마찬가지로 말이지." 사자가 말했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자의 비꼬는 듯한 말투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려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남자는 이내 다시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 아까처럼 진솔하게 대답해 주게. 몹시 기대가 되는군."


남자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켜고는 말했다.


"자, 첫 번째 질문일세."



04.

『해는 서쪽에서 뜨고 달은 사막에 진다』 중에서 발췌.


...... 등을 보여서는 안돼! 마나가 말했다. 마나는 두 눈이 떨어져 텅 비어 있었다. 마나가 입을 벌리자 그 속에서 뱀이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수 십 마리의 실타래 같은 뱀이 마나의 입에서 기어 나와 땅으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뱀들은 곧장 땅속으로 기어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마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런 미소도 지어서는 안 돼.

아무런 대답도 해서는 안 돼.

어떤 것을 먹어서도 안되고 아무것도 마셔서는 안돼.

오오,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서는 안돼.


그들은 아무런 미소도 짓지 않아.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어떤 것도 먹지 않고 아무 것고 마시지 않아.

오오, 그들은 오직 하나의 것만 바랄 뿐.


달빛을 먹는 자들을 조심해!


마나의 배가 빵 터졌다. 배 속에서는 미처 입으로 기어 나오지 못한 수백 마리의 뱀들이 우글우글했다. 그 모습을 본 아라는 땅에 쓰러져 토했다. 그날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 그날 마신 것을 모두 토해냈다. 더 이상 토할 것이 없어졌을 때 실타래 같은 뱀이 한 마리씩 나오기 시작했다. 아라도 달빛을 먹는 자들을 만났던 것이다.



05.

사막의 달이 하늘의 가운데로 높이 떠올랐다. 남자의 집에 난 창으로는 더 이상 달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달빛이 온 사막을 비추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달빛이 대지 위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때때로 바람에 모래가 쓸리며 소리를 냈다. 사막 벌레가 구애를 하며 우는소리도 들렸다. 남자의 집에선 찻주전자를 끓이는 소리가 거실 너머에서 기분 좋게 들려왔다.


사자는 이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네는 좀 전에 남쪽에서 와서 사막을 건너 북쪽으로 간다고 했네."


"그렇소."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일세. 자네는 이 사막의 끝에 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변화요."


사자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사자의 대답에 남자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다리를 꼬았다. 양손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남자의 무릎 앞에서 마주했다. 사자는 답변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기다렸다. 명확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자는 침묵을 두려워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이윽고 남자가 말했다.


"자네가 성도로 간다고 했을 때, 이유는 자명했네. 자네 정도 되는 남자가 성도에서 찾는 것이 무엇일까? 권력? 그래, 지금 성도에는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널려 있지. 조금만 머리를 쓸 줄 알고 약간의 교활함만 갖춘다면 지금 성도에서 권력을 잡기란 그리 어렵지 않네. 아주 하찮은 한 줌의 힘에 불과하겠지만 말이야."


남자가 입가에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부(富) 라면 또 어떨까? 사막의 모든 부는 성도로 모여들지. 손가락에 제 눈깔보다 큰 보석을 낀 장사꾼들이 매일 같이 성도로 모여드네. 바닥에 떨어진 꿀을 찾아 기어드는 개미 떼처럼 말이지.


하지만 이 사막 전역에 굶어죽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나조차도 잘 알고 있네. 먹은 것이 없어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없는 어미는 결국 제 새끼를 잡아먹네. 지금 사막에는 불균형한 부와 힘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생생하게 꿈틀대고 있지."


사자는 가만히 들었다.


"하지만 자네 같은 이에게는 권력도 부도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자네는 진짜 의미 있는 것을 찾을 줄 아는 사내니까. 알레르기아에서 자네가 저지른 일을 생각해도 그래. 어땠나? 그 뜰에 있는 우물 속을 들여다봤을 때 말이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기에 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불쾌한 감정이 되살아나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 우물 속에 있던 것이 자네가 사막을 건너기로 한 이유였는가? 변화라니. 그 변화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야, 이미 답은 알고 있네. 성도에서 자네가 찾는 것. 지금 성도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남자가 사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자 역시 눈길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 보았다.


"그것은 황제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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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Re 21. 괴수 토벌 3 +4 20.06.03 2,192 75 12쪽
20 Re 20. 괴수 토벌 2 +2 20.06.02 2,175 76 12쪽
19 Re 19. 괴수 토벌 1 +4 20.06.01 2,275 74 12쪽
18 Re 18. 마크를 찾아서 3 +2 20.05.30 2,214 83 12쪽
17 Re 17. 마크를 찾아서 2 +8 20.05.29 2,242 72 12쪽
16 Re 16. 마크를 찾아서 1 +6 20.05.28 2,425 79 13쪽
15 Re 15. 고기가 된 검사 3 +7 20.05.27 2,544 86 12쪽
14 Re 14. 고기가 된 검사 2 +8 20.05.26 2,636 83 12쪽
13 Re 13. 고기가 된 검사 1 +2 20.05.25 3,251 88 13쪽
12 Re 12. 세 가지 질문 2 +25 20.05.22 3,474 119 13쪽
» Re 11. 세 가지 질문 1 +2 20.05.21 3,646 95 12쪽
10 Re 10. 달빛을 먹고 사는 자 2 +4 20.05.20 4,081 110 12쪽
9 Re 09. 달빛을 먹고 사는 자 1 +6 20.05.19 4,346 119 14쪽
8 Re 08. 죄와 벌 3 +2 20.05.18 4,693 120 13쪽
7 Re 07. 죄와 벌 2 +10 20.05.15 4,869 130 13쪽
6 Re 06. 죄와 벌 1 +10 20.05.14 5,107 138 13쪽
5 Re 05. 참극 2 +9 20.05.13 5,380 145 13쪽
4 Re 04. 참극 1 +17 20.05.12 6,129 137 13쪽
3 Re 03. 사막을 건너는 검사 3 +12 20.05.11 6,825 163 12쪽
2 Re 02. 사막을 건너는 검사 2 +20 20.05.11 7,733 196 12쪽
1 Re 01. 사막을 건너는 검사 1 +24 20.05.11 14,642 18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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