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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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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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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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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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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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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자
13쪽

94. 검은 탑의 왕자 3

DUMMY




01.

알라딘도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바깥세상의 변질에 대해 많은 것을 궁금해했다.


그는 이야기를 듣다 말고 가끔씩 눈을 가늘게 뜨며,


"응응. 그게 그렇단 말이지?", "그래? 그렇게 되는 건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곱씹었다.


마드가 사막의 창백한 달이 떴을 때 겁도 없이 사막에 발을 디딘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했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다 점점 비척거리고 그러다 결국 미치광이처럼 침을 흘리며 달 아래를 방황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때 알라딘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광대의 손장난을 본 어린아이처럼 쾌활한 웃음이었다.


"아, 이런. 웃을 일이 아니지." 알라딘이 문득 실례를 깨달았다는 듯 웃음을 멈췄다. 그의 입과 볼에 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하하하하하. 정말 우스꽝스러운 상상력이 아닌가? 사람들이 달빛을 받고 나면 미쳐버린다니. 걸작인걸?"


알라딘이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스운 이야기라는 듯.


마드는 웃지 않았다. 마드는 지금 눈앞에서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매너도, 예의도, 개념도 통째로 밥 말아 먹은 왕자가 몹시 밥맛이었다. 그녀는 타락한 달 때문에 인생이 통째로 바뀐 사람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몇이나 되는 그녀의 사람을 모래땅 아래에 묻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의연하게 민병대 대장으로서 예의상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아무래도 표정에 드러나고 말았다.


"아, 이런. 내가 민병 대장님께 실례되는 말을 한 모양이군. 미안하오. 하지만 말이야, 바깥세상 사람들의 상상력은 뭐랄까, 우리 사람들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소."


알라딘이 손을 들어 과장되게 흔들었다. 마치 두 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이. 알란은 바깥세상의 여행자들 앞에서 보이는 동생의 과장된 행동을 그저 바라보았다. 마치 계속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동생의 흔적이 어렴풋이 떠오를 것이라는 듯이.


잿빛의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노인, 시진 역시 유쾌하다는 듯 (물론 왕자의 앞이라 감히 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미소를 흘리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뭔가를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 있지 않으십니까, 세라자드님? 바깥세상의 달이 타락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세라자드님의 민병대는 아직 거기에까지 이르진 못하신 것입니까?"


시진이 날카롭게 물었다. 노인답지 않게 정력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주인을 닮아 어딘가 불쾌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건......" 마드가 그의 질문에 답하려던 순간, 알란이 입을 열었다.



02.

"너는 갑자기 불쑥 나타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도 너에 대해서는 한마디를 안 하는구나."


자신의 질문을 싹 무시하는 첫째 왕자의 태도에 노인이 입을 다물었다. 알라딘이 한쪽 눈썹을 씰룩이며 형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건데? 표정에 불쾌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알란이 계속 말했다.


"이 형은 네가 저 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다. 탑이 얼마나 아늑하고 숨기에 좋은 장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한 번을 찾아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숨긴 누가 숨었다고......" 알라딘이 중얼거렸다. 내리깐 눈으로 씁쓸함이 한줄기 흘렀다.


"네가 왕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왕궁에는 여러 불우한 사건들이 매년 일어났다. 하지만 너는 단 한 번을 얼굴을 보이지 않더구나. 너의 시종 뒤에 숨어서 말이다."


시종이라고 불린 노인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유마는 그의 볼이 딴딴하게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얼씨구. 꽤 화가 많이 나시는 모양이네. 어금니가 거의 부서지도록 깨무는걸.'


"시진은 나의 시종이 아닙니다. 나를 돕는 사람이지." 알라딘이 말했다.


"무엇을 위해 너를 돕는다는 말이냐?"


"그것까지 형님께 말씀드려야 합니까? ...... 탑의 생활이 여러모로 녹록지 않습니다. 다양한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그렇다면 다시 왕궁으로 돌아와라.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느냐? 형에게 말 못 할 이야기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런 것."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보아라, 알."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시오!"


알라딘이 돌연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연회장 뒤편에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가드들 사이에 긴장의 기운이 흘렀다. 알라딘이 형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에서 다시 한번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사자는 순간 왕자를 보호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폭발할지도 몰랐다. 공기 중에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인화성 긴장이 맴돌았다. 사자는 하는 수 없이 한 손으로 가만히 거대한 원탁의 모서리를 틀어쥐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03.

대연회장 뒤편에 서 있던 왕실 가드들은 불꽃이 튀고 있는 두 왕자를 중재하고 나서야 할지 말지 결단이 안 서는지 주춤거렸다.


유마는 그들 일행 중 아무래도 가장 위험에 취약한 노학자를 보호하기 위해 비골라를 향해 엉덩이를 반쯤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시알라에게 가 있었다. 위험에 취약하고 무방비한 것은 가녀린 어깨와 길고 하얀 목을 한 그녀도 마찬가지였기에.


마드는 사리안이 곁에 있는 한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녀는 이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을 향해 뛰어들 준비를 했다. 재빠르고 정확한 판단이었다. 단지 당사자가 아무런 미동도 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을 뿐.


알란 리 하사딘은 그의 동생의 몸에서 서서히 흘러나오는 붉은색 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마나는 뱀이 똬리를 틀듯 알라딘의 몸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는 안타까웠다.


'언제 이리 흉흉한 마나를 갖게 된 것이냐. 붉은빛이라니. 붉은 마나라니.'


알란의 눈에 슬픔이 차올랐다. 마드가 일찍이 눈치챘던 우수 어린 눈이었다.


"진정해라, 동생아." 이윽고 알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겁이 난다."


"실수는 형님께서 먼저 하시었소. 그리고 난 겁 따윈 나지 않소." 알라딘이 잔혹한 미소로 비웃었다.


"겁은 내가 난다, 동생아. 폐하께서 돌아가신 지 이미 5년이 되었다. 합심하여 왕가를 지켜도 모자를 아들들이 서로 갈라져 왕실의 끝을 맺게 될까 봐 나는 두렵다. 우리의 모습에 마할란트라 시민들이 왕가를 불신할 것이 나는 두렵다."


"...... 폐하께서 돌아가셨다고 누가 그럽디까? 아버님께서 어떻게 되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알라딘이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폐하의 생사가 눈으로 확인이 될 때까지 누구도 왕위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너의 생각이냐. 그 때문에 왕궁을 버리고 탑으로 들어가 내게 반하고 있는 것이냐."


"......"


참을 수 없이 긴 정적. 하지만 사실은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 지나고 대연회장에 넘치듯 차올랐던 붉은 기운이 점차 가시기 시작했다.


"흥이 다 달아나버렸군. 나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형님."


그리고 사자 일행을 바라보며 한마디 더 던졌다.


"또 봅시다. 곧 다시 보게 될 거요."



04.

왕궁의 평온한 아침을 깨트린 불청객들이 돌아갔다. 알란이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사자를 바라보았다.


"너, 원탁을 들어 던지기라도 할 셈이었나?"


뭐라고? 뭘 던져?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뜨악하며 사자를 바라봤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시알라도 돌아봤다. 가드들도 무슨 소린가 싶어 왕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정작 화제의 대상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급하게 자리를 마무리하지 않았더라면 왕궁이 세워진 날부터 자리를 지켜온 왕실의 유산이 산산조각 날 뻔했다. 그것도 사람에게 던져져 부서진다는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알란이 혀를 찼다.


"정말이야, 사리안? 이걸 던지려고 했어? 둘째 왕자한테?"


마드는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사리안의 힘이 장사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다각적인 위기 속에서 드러나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완력'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세이마르 침공의 클라이맥스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검을 들고 오긴 했었지.


유마가 원탁을 내려다보았다. 대연회장의 자리 대부분을 차지한 원탁은 사람 스무 명이 둘러앉아도 여유가 있을 만큼 컸다. 그리고 두꺼웠다. 웬만한 성인 남자의 손으로는 원탁의 옆모서리를 모두 쥘 수도 없을 만큼 두꺼웠다. 뭣보다 이건 돌로 만든 물건이 아닌가!


"휘유. 둘째 왕자가 뭔가 저지를 것 같아 잔뜩 긴장했었는데 그보다 더 무서운 양반이랑 함께 하고 있다는 걸 깜빡했네." 유마가 사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걸 던져서 대체 뭘 어쩔 셈이었던 거야?"


"글쎄, 그 뒤의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소. 단지 그자의 기질이 너무도 흉흉해서 자칫하면 큰일이 나겠다 싶었을 뿐."


"그런다고 이걸 들어 던진단 말이지. 혹시 지금까지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다면 말해줘, 대장." 유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저나 그자의 마나는 너무도 흉흉하더군요." 사자가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릿한 그 몸짓이 몹시도 힘겨워 보였다.


"너희에게도 보였구나, 내 동생의 마나가. 그토록 기질이 달라져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 알은 내가 알던 동생이 아닌 모양이야."


"왕자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둘째 왕자와의 일 말입니다." 비골라가 왕자에게 물었다.


"사실 어젯밤 시알라님으로부터 대략 듣기는 했습니다만."


알란이 시알라를 나무라듯 쳐다보았다.


"괜한 소리를 했구나, 시. 이세계의 여행자들에게 괜한 위험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이미 우리도 관련자가 된 것 같소. 둘째 왕자의 입장에서 말이오." 사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말을 해주시오. 하사딘 왕가의 두 왕자들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말이오."


알란은 한참을 고개를 숙인 채 원탁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사자를 바라보았다.


왕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동생에 대하여.



05.

알라딘이 탑으로 돌아오는 동안 두 명이었던 일행은 점점 불어났다.


도시 안 곳곳에 잠복해있던 탑의 가드들이 왕자와 시진의 뒤로 하나 둘 따라붙었다. 그들은 모두 병사의 복장을 하지 않았지만 품에는 하나같이 치명적인 날붙이를 숨기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습니다." 시진이 나지막이 그의 옆을 성큼성큼 걷고 있는 왕자에게 말했다.


"그래, 언제나처럼 때가 아니었지. 하지만 이제 멀지 않았다. '그자'에게서는 연락이 있었나?"


"기별은 없었습니다만 아마 지금쯤 마할란트라 안에 들어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시진이 더욱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좀 전의 일은 괜찮으십니까?"


"너도 눈치챘느냐? ...... 그 남자, 내가 만약 시작하려 들었으면 그 순간 달려들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형님께서 대단한 우군을 끌어들인 모양이야."


"알란 왕자께서는 우연히 만났다고 하셨습니다만."


"글쎄. 그게 정말 우연이겠느냐?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마할란트라로 그런 사내가 들어왔다고? 그것도 아라비아(언더그라운드)의 가드들을 모두 피해서?" 알라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조력자가 무대 뒤에 있는 느낌이다."


이제 탑의 정문이 그들의 시선에 들어왔다. 알라딘과 시진의 뒤를 따르는 가드들은 이제 그 수가 100여 명에 육박했다. 그들이 지나는 길의 모든 시민들은 혹시라도 그들의 눈에 들까 봐 잔뜩 움츠러들었다. 시민들의 눈이 하염없이 흔들렸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다. 설마 세상에 그런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알라딘이 헛웃음을 쳤다. 시진은 가만히 왕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대연회장의 원탁을 들어던지려 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알라딘은 그자의 얼굴을 기억했다. 반드시 그의 길에 걸림돌이 될 이름 모를 사내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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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2. 검은 탑의 왕자 1 +4 20.09.04 654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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