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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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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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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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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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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
12쪽

91. 마할란트라 3

DUMMY

타락한 달에 대해 묘한 여운을 남긴 왕자가 나가고 신비한 힘을 가진 여인이 들어왔다. 사자와 마드, 비골라는 여인이 꺼내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광적으로 여인에게 집중한 것은 유마였다.



01.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바깥 세계에서 오신 분들께만 드릴 수 있는...... 특히 마나에 구애받지 않는 분. 당신께 말입니다."


지저인 여인의 말을 듣자마자 마드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마나에 구애받지 않는 분?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뻔했다. 사실 말할 것도 없잖은가?


지저인과의 역사적이고도 평화롭지 못했던 첫 만남. 그 순간 사리안이 펼쳐 보인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일행들은 물론 지저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마나에 구애받지 않는 자>.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왕자의 힘 속을 아무 일 없다는 듯 뚜벅뚜벅 걸었던 사리안에게 딱 맞는 이명(異名)이었다.


"우리 중에 마나에 구애받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마드가 사자를 바라봤다.


"당신이 우리 일행에게 베푼 힘을 잘 알고 있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늦었군." 사자가 말했다.


"하지만 부탁을 하는 입장이라면 본인이 누구인지 정도는 말해줘야 하지 않겠소?"


'과연 마나에 구애받지 않는 자. 분위기에 구애받지 않는구만.' 마드가 생각했다.


"아직 제 이름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저는 시알라라고 합니다. 알란 왕자님과 하사딘 왕가를 모시는 사람이지요."


"하사딘?"


왠지 낯익은 이름. 비골라가 눈썹을 씰룩이며 머릿속을 더듬었지만 바로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이제야 왕자의 이름을 듣는군. 그러고 보니 우린 왕자님의 이름도 듣지 못했단 말이야." 유마가 말했다.


물론 이제서야 왕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유마의 관심은 오직 그녀, 시알라라는 이름의 지저인 여인뿐이었으니까.


"네, 맞습니다. 그분께서는 마할란트라 하사딘 왕가의 적자. 알란 리 하사딘 왕자님이십니다. 우리의 머리 위에서 영원히 빛나는 '위대한 천정'이 내린 분이지요."


시알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노랫말처럼, 색이 바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와 같다고 유마는 생각했다.



02.

"마할란트라는 여러분이 계신 이 도시의 이름입니다. 동시에 위대한 천정이 감싸고 있는 이 세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더그라운드라고 부른다오." 비골라가 덧붙였다. 시알라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 세계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세계의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 세계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왜 위대한 천정이 태양과 이 세계 사이를 가로지르게 되었는지도요."


유마의 얼굴이 이제 첫사랑을 시작한 소녀처럼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열중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마치 비처럼 그의 마음을 적셨다.


"이 세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역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시작이 태양과 달 아래서 였는지, 처음부터 위대한 천정 아래서 였는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천정 아래의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모아 도시를 만든 것이 바로 하사딘 왕가의 시조, 알 리 하사딘입니다.


하사딘 왕가와 도시 마할란트라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왕가의 직계 후손이시고요."


사자는 아까부터 시알라가 강조하는 '적자', '직계'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그는 적자와 직계, 정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겪는 갈등을 잘 알았다. 사실은 신물이 날 정도였다. 어쩌면 그녀의 부탁도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이상한 것이 하나 있소." 사자가 말했다.


"우리는 왕자의 배려로 이 도시에 왔소. 그가 초대했고 이렇게 왕궁에서 편히 쉴 자리도 마련해 주었지. 허나 아무리 왕자라고 해도 바깥 세계의 이방인을 마음대로 왕궁에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이 좀 의아하오."


"네. 무엇을 궁금해하시는지 압니다. 지금 마할란트라에는 왕이 계시지 않습니다. 오직 왕자님께서 자리를 지키실 뿐."


"왕이 잠시 자리를 비우신 거요?" 비골라가 물었다. 몸이 낫자 학자로서의 탐구심이 다시 불붙는 모양이었다.


"왕께서는 자리를 비우신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 그분께서 어떻게 되셨는지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사실 제대로 된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요. 이해해 주십시오."


"좋소. 왕자의 이름도 이 도시를 통치하는 왕가의 이름도 잘 들었소. 왕께서 부재한다는 사실도. 그러니 이제 슬슬 당신의 부탁이 뭔지 이야기해 줄 차례인 듯하오."


"네. 마나에 구애받지 않는 분이여.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바깥 세계에서 찾아주신 분들께도요.


부디...... 왕자님을 지켜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시알라가 말했다.



03.

불이 다 꺼졌다.


민병대 사령소는 까만 골조가 뼈처럼 남아 살을 모두 바른 닭처럼 변해버렸다. 마스칼은 본인이 다 태워버린 사령소를 씁쓸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드 세라자드와 로엘 아가킨, 비골라 아이작이 함께 민병대를 창설했던 2층의 대회의실도 내려앉았다. 민병 대원 모두가 둘러앉았던 원탁의 테이블이 열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개 파편으로 찢어져 버렸다. 마스칼이 숨어서 비골라와 계엄군 사령관의 대화를 들었다고 이야기했던 대회의실의 테라스도 주저앉았다. 테라스의 회색 돌은 회갈색 빵처럼 구워져 산산조각이 났다.


마스칼은 그날 밤 사실 테라스가 아니라 그저 옆방에 앉아 있었다. 혹여나 전(前) 민병대 수색 대장에게 모습이 보일까 그곳에 숨어 쥐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바로 그 배신자 척후 대장은 지금 직접 불이 꺼진 사령소 안에 직접 들어와 있었다. 그를 들여보낸 것은 오사르 알렉사이, 계엄군 사령관이었다.


마스칼은 불이 채 꺼지기 전, 병사들을 지금이라도 집어넣어 시체를 수색해야 한다고 사령관에게 말했다. 그에게 돌아온 건 뜨거운 분노와 역정이었다.


"들어가려면 너 혼자 들어가라고 했다. 이 어리석고 파렴치한...... 나를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마라." 오사르가 으르렁거렸다.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고 다 꺼지면 네가 직접 들어가 수색해라. 그리고 마드 세라자드와 공화국 검사의 시체를 내 앞에 들고 와라."


마스칼은 계엄군 사령관의 적의가 의아했다. 민병 대장의 목을 갖다 바치기 위해 제 식구의 목까지 벤 내게 왜 이리 모질게 구는가? 마스칼은 언짢았다.


'진짜로 제국을 위하는 충신을 저 자는 모르는구나. <사막의 밤>에 대한 나의 충심을 저 자는 몰라!'


마스칼이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섬뜩한 빛으로 물들어가는 그의 눈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스칼은 원래 그런 남자였다. 본인의 믿음에 반한다면 제 아비의 목도 물 남자였다.


아무튼 불이 다 꺼졌고 마스칼은 병사들과 함께 사령소 안을 직접 수색했다. 곳곳이 검댕으로 변해버렸고 타다 남은 목재가 시꺼먼 뼈처럼 사방에 널렸다. 병사들은 새까만 재가 되어버렸거나 반쯤 타다 만 그들의 동료들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사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던 동료들이었다. 지금은 흘러나온 눈알과 반쯤 녹은 잇몸과 그을린 이빨만 남아버렸다.


"시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마스칼은 곧장 지하 유치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도 여러 구의 시체들이 있었다. 그들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은 듯 제자리에 얌전히 불타 죽은 모습이었다. 마스칼은 의아한 눈으로 석연찮은 시체들을 훑어보며 그들을 넘어 더욱 깊이 들어갔다.


유치장의 창살들도 그을렸고 녹아내렸다. 두 번째 유치장에 두 구의 시체가 있어 혹시나 싶었지만 그가 찾는 시체는 아니었다. 두 구의 시체는 몸의 일부만 불에 탔는데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목이 돌아가 있었다.


'공화국 검사 놈이 한 건가?'


마스칼이 마침내 복도 끝 방에 발을 들였다. 조각조각 끊어진 쇠 조각들이 불에 녹아 있었다. 마스칼은 수갑이거나 사슬이라고 유추했다. 그리고 부서진 벽돌들이 있었고, 사자와 마드, 유마와 비골라가 마침내 발을 들였던 공간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건 밖에서 쏟아져들어온 모래들뿐이었다. 뚫린 벽을 통해 모래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왔다. 마스칼은 아무런 수확 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그의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


그들의 시체가 어디에도 없었다.



04.

마스칼이 돌아와 보고했고 오사르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뺨을 올려붙였다. 주름이 잔뜩 팬 그의 얼굴이 사정 없이 돌아갔다.


"이 멍청한 새끼가!" 오사르가 칼을 뽑아 마스칼의 목에 겨눴다.


"네놈이 대체 한 게 무어냐? 제국군의 병사들을 희생시킨 것 외에 네놈이 한 것을 말해봐라!"


마스칼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자칫 살기가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눈을 꼭 감고 감내했다. 참으면 항상 기회가 오기 마련이니까.


병사들과 장교들의 눈이 온통 계엄군 사령관의 분노와 민병대의 스파이라는 배신자 새끼에게 모였다.


그 바람에 그들 중 누구도 보지 못했다. 까만 로브를 두른 남자가 달 아래를 사뿐거리며 뛰어오던 모습을.


그가 민병대 사령소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병사에게 다가가 턱을 살포시 쥐고 흔들자 병사의 눈과 코와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던 모습을. 그리고 쓰러진 병사의 시체를 넘어 모래 속으로 침몰하고 있는 사령소 지하로 내려가는 모습을.


달빛에 잠시 드러난 그의 얼굴엔 송곳니가 길게 반짝였다.



05.

송곳니는 단박에 민병 대장과 공화국에서 왔다는 검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 들어서자 그의 눈의 홍채가 고양잇과의 눈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이미 흔적이 거의 사라진 파란색의 마나를 포착해냈다.


"이거...... 굉장한 조력자가 손을 빌려준 모양이군. 설마하니 '그 자'가 나타났을 줄이야. 마녀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송곳니가 눈썹을 씰룩이며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파란색 마나의 주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자못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송곳니가 여유롭게 파란색의 마나를 쫓아 걸었다. 그의 걸음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건물 안으로 지반의 모래와 흙이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왔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내의 걸음엔 아무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모래에 잠기기 시작한 병사들의 시체 위를 그는 가볍게 넘었다. 형태를 잃어버린 얼굴 밖으로 눈알과 잇몸이 나뒹굴었지만 그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가 무심코 길 위의 돌멩이를 발로 차듯 눈알 하나가 그의 발에 채여 떼구르르 굴러갔다.


"여기로군."


마스칼이 부서진 벽돌과 조각난 사슬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그 방에 송곳니가 발을 들였다.


그의 눈에 마나가 마지막으로 향한 길이 보였다. 부서진 벽 안으로 모래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송곳니가 주저 없이 다가갔다. 그가 조용히 팔을 들어 쏟아지는 모래 속에 손을 담갔다. 이윽고 떨어지는 모래알들이 점점 성기어지더니 마침내 크고 시커먼 심연이 다시 입을 벌렸다.


사내가 씩 웃었다.


"이게 얼마 만의 지하인지. 자, 그럼 들어가 볼까."


송곳니가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지만,


세계와 세계를 잇는 허무의 통로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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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5. 암살의 역사 1 +8 20.09.08 621 3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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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3. 검은 탑의 왕자 2 +6 20.09.05 623 30 12쪽
92 92. 검은 탑의 왕자 1 +4 20.09.04 654 30 12쪽
» 91. 마할란트라 3 +8 20.09.03 651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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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Re 86. 지저인 1 +6 20.08.27 679 37 12쪽
85 Re 85. 언더그라운드 2 +7 20.08.26 702 37 13쪽
84 Re 84. 언더그라운드 1 +9 20.08.23 727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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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Re 82. 다시 지하로 +10 20.08.21 703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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