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210,534
추천수 :
7,136
글자수 :
964,671

작성
20.09.02 19:15
조회
655
추천
33
글자
12쪽

90. 마할란트라 2

DUMMY




01.

"너희가 이곳에 들어온 진짜 이유에 대해 들어야겠다."


왕자가 말했다. 내빈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촛대의 외로운 불빛이 왕자의 얼굴 위에서 일렁였다.


그의 창백한 피부가 불빛을 받아 붉게 보였다. 그러고 나니 그는 정말 바깥세상의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지하 세계, 언더그라운드의 왕자. 지저인들의 왕자.


그러고 보니 우린 이 사람 이름도 모르네?


마드가 감상에 잠겨 있을 때 유마가 불쑥 대답했다.


"그 눈물 나는 이야기를 다 하려면 이 밤이 다 가도 모자랄 텐데."


유마가 차를 호록거리며 말했다. 지저인들의 왕자가 유마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마드를 바라봤다.


음, 유마는 탈락이었다. 대화 상대로서. 유마가 쓴웃음 지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쩝.


"그저 짧게나마 말해다오.너희는 달을 되찾겠다고 했지 않느냐.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고. 너희는 내게 위험하지 않을 것을 힘껏 약속했으니 이를 굳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면 된다."


왕자가 선택한 대화 상대는 마드였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자가 선택한 리더도 그녀였다. 마드는 왕자의 시선에 고개를 돌려 사자를 보았다. 사자가 대답을 재촉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짜. 말재주는 없는데.


마드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02.

"저희는 본디 서로를 아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나의 끈으로 묶이게 되었는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민병대를 만들게 된 날이 시작이었다. 제물과 제단에 대해서. 그리고 민병대와 세이마르가 결국 제국군에 의해 무너진 이야기를 했다.


그 사이 사리안을 (그 까만 밤의 시장에서)만난 순간과 그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말했다. 사자의 일화가 나오자 왕자가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봤다. 사자는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마드의 말을 들었다.


마드는 외딴 성의 주인 (무법자라는 이야기는 뺐다) 유마를 만나고 비골라 아이작을 구하기 위해 세이마르로 다시 잠입한 이야기를 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척후 대장의 배신을 말할 때 그녀는 새삼 비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배신감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깊은 잔향으로 남아 그녀의 몸속 깊이 고통을 주었다


이야기는 마스칼이 민병대의 사령소에 불화살을 쏘아댄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이했다. 그리고 파란색의 마나를 따라 언더그라운드에 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마드는 파란색의 마나 띠를 이야기할 때 은발의 머리를 한 노인을 말하려 했으나 머릿속에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관두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이 그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든 함구하라고. 그래서 마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유마의 눈치를 보니 그 역시 노인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안도하는 것 같았다.


"결국 저희가 언더그라운드로 오게 된 것은 사막의 변질 때문입니다. 사막과 제국은 오늘날 완전히 변질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이유가 '달의 타락'에 있다고 여기고 있구요."


"달의 타락이라고."


내내 귀를 기울이고 있던 왕자가 입을 열었다.


"네, 왕자님. 지금 사막의 밤은 완전히 오염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달 아래서 광기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밤은 이제 더 이상 따뜻하고 온유한 시간이 아닙니다. 타락한 달 아래서 천천히 질식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언제부터이고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단지 사람을 비롯해 생명을 공양하는 제단이 어떻게든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왕자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내리깐 그의 눈은 지금 이곳에 있지 않고 지난 시간의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이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으십니까? 부디 편린이라도 가지고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 지금은 생각나는 것이 없다. ......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 이만 쉬어라. 너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힘들고 고된 하루를 보낸 것일 테니."


왕자는 방을 나서기 전 덧붙였다.


"낮이 될 때까지 푹 쉬어라. 곧 사람이 와서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마할란트라에는 해도 달도 뜨지 않지만 낮과 밤은 있다. 그건 온도로 알 수 있지.


태양이 대지를 데우면 이곳 역시 영향을 받는다. 일하는 아낙의 목덜미가 젖고 아기의 볼이 빨갛게 달궈지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태양이 대지 너머로 모습을 감추면 사내들이 걷어올렸던 소매를 하나 둘 내린다. 그것이 밤이다. 너희 눈에 내려앉은 피곤도 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니 이만 쉬어라. 이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느끼기에 낮이 멀지 않았으니."


할 말을 마친 왕자는 들고 온 쟁반을 그대로 두고 방을 나갔다. 어딘가 서두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자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기다리기로 했다. 무엇이 됐든 왕국을 다스리는 이가 입을 다물기로 결심했다면 그때는 그저 기다려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들은 곧장 잠들 수 없었다. 왕자가 방을 빠져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렸다.



03.

내빈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나타난 것은 여인이었다.


마드와 비골라가 그녀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비골라의 목숨을 좀 더 땅에 붙들어준 그 여인이었다.


손바닥에서 노란색 빛을 뿜어내던 여인. 이제는 보라색의 말랑말랑거리는 과자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사자가 보기에 그건 양갱 같았다. 마드와 유마는 푸딩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고마우신 분. 어서 오시오. 평생을 다해도 못 갚을 은혜로운 분이여. 당신을 찾았다오."


비골라가 덥석 여인의 손을 잡았다. 제국 대학의 교수치고는 성급하고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불쑥 나가는 손을 비골라도 어쩌지 못했다. 그만큼 그가 견뎌야 했던 고통은 컸고 이를 벗겨내준 그녀는 고마운 은인이었다. 지저인 여인은 다행히 불쾌해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알기로 이 사람은 벙어리였던 것 같은데......' 유마가 속으로 생각한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휴식을 방해한 것이 아닌지요."


유마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가슴에 느꼈던 통증이 다시 도진 것을 느꼈다. 그녀를 벙어리로 여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굳이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곱게 연마한 옥구슬을 금으로 만든 쟁반 위에 굴리는 것 같았다.


"야심한 시각이라도 당신 같은 미인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오. 개의치 말고 들어오시오."


유마가 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쟁반을 받아들었다. 마드와 사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유마를 바라보았다.


저거, 왜 저러지?


"고맙습니다. 바깥세상의 분. 제가 이름을 뭐라......"


"유마 올리오요. 유마라고 불러주시오. 나는 에...... 사막에 성 한 채를 가지고 있는 주인이오. 그렇게 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꽤 아늑하고 그러니까......."


"고맙습니다. 유마님."


그녀가 유마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녀의 말과 미소가 유마의 귀와 얼굴을 샅샅이 핥고 지나갔다. 그러자 그만,


젊은 무법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얼씨구?' 사자와 마드가 동시에 생각했다.


유마가 그녀에게서 받은 쟁반을 이 밤이 지나도록 들고 있을 것 같아 마드가 슬그머니 다가가 그의 손에서 쟁반을 받아들었다.


'뭘까, 얼굴에 불이 나는 것 같은데.'


유마는 그저 멀뚱히 활활 타오르는 낯을 느끼며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자가 그런 그의 얼굴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마드가 쟁반을 들고서 어깨로 살짝 유마를 밀었다.


"...... 정신 차려요. 여성분이 당황스러워하잖아요. 어서 자리라도 내 오시라고요."


마드가 입술만 달싹거리며 복화술처럼 속삭였다. 그제서야 유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앉았던 돌의자를 드르륵 끌어서 그녀 앞에 가져왔다. 여인이 살포시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 의자 위에 앉았다. 유마는 다시 멀뚱히 그 앞에 서 있었는데 마드가 다시 무릎으로 그를 툭 쳤다.


유마가 바라보자 마드가 턱을 까딱거렸다.


가라, 저리.


유마가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천천히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얼굴은 여전히 빨갰다. 이제서야 상황 파악이 좀 되는지 고개를 숙이고 자기 머리를 정신없이 흐트러트렸다. 마드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꾹 참았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신가요? 방금 왕자님께서도 왔다 가셨습니다." 마드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왕자님의 용무가 끝나시기를 밖에서 기다린 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이곳에 온 것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탁?" 사자가 물었다.


사자가 입을 열자 지저인 여인이 그제서야 사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방에 들어서면서부터 오직 사자만을 염두에 둔 느낌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깥 세계에서 오신 이방인분들께만 드릴 수 있는 부탁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당신께 드리는 부탁입니다. 마나에 구애받지 않는 분이여."


지저인 여인이 사자에게 말했다.



04.

신비한 힘과 보기 드문 매력을 가진 지저인 여인이 이방인들의 방에 들어섰을 때, 왕궁의 정반대에 위치한 탑에서는 잿빛 머리를 틀어 올린 노인이 어떤 사내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탑은 왕궁의 맞은편, 도시의 끝에 있었다. 시커먼 탑이 불쑥 튀어나와 언더그라운드의 땅과 위대한 천정을 수직으로 이었다.


"왕자께서 도시로 이방인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들'이 말한 바깥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흥. 지하의 일은 지하에서 해결하자고 하던 양반이 대체 웬일인 거냐. 무슨 바람이 들은 거지?"


남자가 이리와 같은 눈을 번뜩였다. 그의 붉은 입술과 찢어진 입가는 마치 누군가를 연상케했으나 목소리엔 위엄 대신 잔혹함이 잔뜩 묻어났다. 사내가 계속 말했다.


"'그들'이 내게 연락을 해온 이유가 그 자들 때문이란 말이지...... 곧 그들 중 하나가 지하로 내려올 거다. 나는 계획을 그들에게 보이고 손을 빌려달라 작정인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왕자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노인이 입을 떼자마자 인위적인 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어둠 속을 붉은 기운이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사내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빨간색 빛이 마치 불붙은 석탄처럼 탑의 내벽과 천정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잿빛 머리를 한 노인이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쩌겠느냐, 시진. 너는 지금 나를 걱정하는 것이냐, 아니면 너 자신을 걱정하는 거냐."


"당연히 주인님의 안위를 걱정하나이다. 저의 하잘것없는 목숨 따위를 감히 어디에 저울질하겠나이까."


사내는 물끄러미 고개 숙인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을 감돌던 빛이 천천히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사내가 방에 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왕궁이 보였다.


"저곳은 그의 것이 아니다. 이 도시 역시 그의 것이 아니며 위대한 천정 아래 펼쳐진 성스러운 땅 또한 그의 것이 아니다. 이는 마땅히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제 곧 모든 것이 제 주인을 찾아 마땅한 자리로 돌아가게 될 터."


탑의 사내가 말했다.


"형제들이 돌아온다. 채비를 하라."


그의 눈이 붉게 빛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막의 소드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1 111. 침입자 3 +5 20.10.17 545 24 12쪽
110 110. 침입자 2 +4 20.10.16 563 26 12쪽
109 109. 침입자 1 +6 20.10.15 584 24 13쪽
108 108. 그라운드 제로 4 +8 20.10.11 585 26 12쪽
107 107. 그라운드 제로 3 +7 20.10.10 569 29 12쪽
106 106. 그라운드 제로 2 +4 20.10.09 566 24 13쪽
105 105. 그라운드 제로 1 +8 20.10.08 596 27 12쪽
104 104. 테러 04 +8 20.10.04 561 26 12쪽
103 103. 테러 3 +6 20.10.03 570 22 12쪽
102 102. 테러 2 +8 20.10.02 561 29 12쪽
101 101. 테러 1 +9 20.10.01 574 28 13쪽
100 100. 개막 +14 20.09.13 602 31 12쪽
99 99. 시알라 +5 20.09.12 577 26 13쪽
98 98. 언더그라운드의 도시에서 02 +3 20.09.11 584 31 13쪽
97 97. 언더그라운드의 도시에서 01 +7 20.09.10 625 31 13쪽
96 96. 암살의 역사 2 +6 20.09.09 624 28 12쪽
95 95. 암살의 역사 1 +8 20.09.08 621 33 13쪽
94 94. 검은 탑의 왕자 3 +10 20.09.06 623 33 13쪽
93 93. 검은 탑의 왕자 2 +6 20.09.05 623 30 12쪽
92 92. 검은 탑의 왕자 1 +4 20.09.04 654 30 12쪽
91 91. 마할란트라 3 +8 20.09.03 651 32 12쪽
» 90. 마할란트라 2 +14 20.09.02 656 33 12쪽
89 89. 마할란트라 1 +6 20.08.30 690 32 12쪽
88 88. 지저인 3 +8 20.08.29 654 36 13쪽
87 Re 87. 지저인 2 +10 20.08.28 662 35 12쪽
86 Re 86. 지저인 1 +6 20.08.27 679 37 12쪽
85 Re 85. 언더그라운드 2 +7 20.08.26 702 37 13쪽
84 Re 84. 언더그라운드 1 +9 20.08.23 727 40 12쪽
83 Re 83. 그날 밤 +4 20.08.22 687 33 12쪽
82 Re 82. 다시 지하로 +10 20.08.21 703 3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