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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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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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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6
글자수 :
964,671

작성
20.08.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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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추천
36
글자
13쪽

88. 지저인 3

DUMMY




01.

세이마르 민병대의 수색 대장, 비골라 아이작이 발치를 적시는 죽음으로부터 잠시 물러서는 동안 사자와 지저인의 리더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대치 중이었다.


사자는 지하 세계의 원주민을, 지저인은 지상에서 굴러떨어진 이방인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사자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힐 뜻이 없고 그저 처분에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다가 관두었다. 지금 그의 손에 달라붙어 손가락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있는 아이가 놀랄 것 같았다.


아이는 그들의 손과 달리 건조하고 억센 사자의 손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만일 사자의 손을 바깥세상 남자들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크게 오산이었지만.


불쑥 지저인의 리더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왜 여기에 있나?"


어긋난 어순과 고색창연한 단어 사용은 여전했지만 뜻은 확실했다.


너희는 뭔데 우리 세계에 뻔뻔히 발을 들이밀었나.


"우리는 이 세계에 오고자 해서 온 것이 아니오. 사막 땅에 우리를 해치려는 자들이 있어 그들을 피해 도망쳤을 뿐이오. 우리는 지금 도망치고 있소."


'도망'이라는 단어에 지저인 리더가 잠시 움찔거렸다.


"왜 쫓기고 있나?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길래?"


사자와 리더의 문답에 마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내를 바라보자 지저인 여인이 자못 다정한 눈빛으로 마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다 안다는 듯, 여자로서의 숙명과 어려움은 이곳과 바깥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마드를 쳐다보았다.


여인의 곁에 꼭 달라붙어 있던 소녀는 이제는 정말 숨을 편하게 내쉬고 있는 비골라의 턱수염을 하나씩 잡아당겨보고 있었다. 그때마다 비골라의 콧김이 킁 하고 내쉬어졌고 소녀는 그게 참 재밌는 모양이었다.


사자는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 리더에게 대답했다.


"아니. 우리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 단지...... 우리가 되찾고자 하는 것을 그들이 막고 있을 뿐."


"너희가 무얼 찾길래?"


사자가 도리 없이 오른손을 들어 동굴 천정을 향해, 그리고 그 너머를 향해 뻗었다.


사자의 손에 달라붙어 있던 아이는 별안간 멀어진 사자의 손을 애타게 쳐다보며 제 손을 뻗었다. 사자의 손과 지저인 아이의 손이 똑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달. 우리는 사막의 달을 되찾을 거요."



02.

네 명으로 시작했던 비골라 구출조는 이제 열 명으로 늘어났다.


제국군의 편제로 보자면 소명대(小明袋)가 되기까지 아직 두 명이 더 필요했지만 이만해도 상당한 숫자였다. 탁 트인 사막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꽝꽝 막힌 동굴 안을 걸어가기에는 말이다.


달을 되찾을 거요.


마치 달을 누구에게 저당잡힌 것처럼 얘기한 사자의 말은 솔직히 사자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계면쩍은 (그리고 오글거리는) 멘트였지만 지저인들에게는 꽤 울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자가 달을 가리켰던 손을 내리고 지저인 아이가 좋아라 다시 사자의 손에 달려드는 동안 (그나저나 이 아이는 왜 내 손에 환장하고 있는 건가) 지저인 리더는 사자의 말을 곱씹는 듯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럼 가자." 리더가 입을 열었다.


"이 세계에 들어온 이상 너희 역시 <위대한 천정>의 보호 아래 있다. 우리와 함께 가자"


위대한 천정.


사자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리더의 뜻은 확실했다. 지저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사자와 일행들을 정식으로 초대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열 명의 꽤 큰 행렬이 되어 동굴 안을 걷고 있다. 리더와 그의 곁을 호위하는 두 사내가 제일 앞에 섰고 그 뒤를 사자가 따랐다. 사자의 바로 옆에는 지저인 아이가 그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었다. 마치 자기와 함께 있으면 별 문제 없을 거라는 듯이.


행렬의 가운데에는 마드와 비골라가 함께 걸었다. 비골라는 이제 누군가에게 온몸을 맡기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웬만큼 기운을 회복했고 머리는 미열에 들떴지만 위험한 순간은 이제 완전히 지나갔다.


지저인 소녀가 곁에서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그는 소녀에게 무언가를 나지막이 속삭였고 소녀 역시 들뜬 듯 재잘재잘 떠들었다. 모르는 이들이 보았다면 그들은 영락없이 할아버지와 손녀였다.


마드는 그 모습을 뒤에서 보며 사막의 신비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걸음을 맞춰 걷고 있는 여인에게도 감사했다. 마드가 바라보자 여인이 함께 눈을 맞추며 빙긋이 웃었다. 여자가 보기에도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녀의 손에서 나왔던 따뜻한 노란색의 힘이 그녀 눈에도 숨어 있었다.


맨 뒤에는 유마가 섰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법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젊은 무법자 대장은 지저인들에게는 영 인기가 없었다. 물론 유마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동굴 내벽의 푸른빛과 어슴푸레하게 드러나는 무늬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의 눈에 새겼다. 그리고 이미 그의 눈에 새겨졌던 지저인 여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03.

비골라 아이작은 확실하게 느껴지는 몸의 회복에 경탄하며 걸었다.


아무래도 그는 저승으로 넘어갈 티켓을 환불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낫을 든 사신이 편도행 티켓을 걷어가기 직전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들이 걷고 있는 아슬아슬한 여정에 비추었을 때 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랐지만 지금 당장 죽지 않은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세상에 이토록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골라는 자신이 생과 죽음에 대해 대체로 초연한 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천만의 말씀! 생(生)은 곧 기쁨이었다. 똥물 속에서 프리 다이빙을 하더라도 이승이 훨씬 나았다. 아무렴, 낫고 말고.


게다가 그는 지금 언더그라운드를 걷고 있다. 그의 발이 언더그라운드의 땅을 디디고 있었다. 모두가 알았지만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그곳은 푸른빛을 내는 석회암 동굴이었다.


'동굴. 왜 그걸 몰랐을까! 오아시스의 밝혀지지 않은 수원과 언더그라운드를 왜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했을까!'


속으로 연신 탄복하고 있는 비골라를 지저인 소녀가 올려다보았다. 소녀의 시선에 비골라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소녀는 비골라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아이의 손은 (일찍이 사자가 느꼈던 대로) 미끄럽고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갈퀴라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보다는 도롱뇽이나 개구리의 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아이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발랄한 미소는 개구리 따위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사람이었다.


"할아부지는 얼마나 살았어?"


소녀가 물었다.


마드는 비골라와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학문적 탐구심을 소녀를 통해 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질문하는 쪽은 소녀였다. 소녀야말로 왕성한 연구자였다. 비골라는 아이가 크면 훌륭한 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꼭 가르치고 싶다는 선생으로서의 열정이 슬며시 싹텄다.


"할무니는 어디에 있어? 누구와 있어? 나도 할무니가 있었는데. 할아부지 엄마는 어디에 있어?"


아이는 끊임없이 물었다.


비골라는 전혀 귀찮은 기색 없이 아이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어순이 특이한 아이의 언어에 집중했다. 언어는 문화 발전의 거울이다. 말은 지하 세계의 삶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리라.


한편, 사자가 앞서가는 리더에게 넌지시 물었다.


"우릴 당신들의 보금자리로 데려가는 것이오? 그곳에 우리가 가도 되는 것이오?"


리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본 채로 말했다.


"될 거다. 너희가 내가 말하는 것을 지켜야겠지만. 너는 약속하나? 위험한 일이 없을 거라고?"


사자가 옆에서 걷고 있는 아이를 힐끗 본 후에 말했다.


"믿어도 좋소."


"그 말 믿겠다. ...... 자, 다 왔다."


지저인 리더가 한쪽 손을 치켜들었다. 그가 손을 들자 아까까지만 해도 계속 끝없이 이어지던 길이 탁 트인 공간으로 변했다. 이제 앞은 벼랑이었다.


그리고 도시가 있었다.



04.

지저인 리더가 손을 들어 만들어낸 벼랑 밑으로 도시가 보였다.


안개에 잠긴 묘지처럼 어둠 속에 잠긴 도시는 그러나 안에 든 사람들을 암시하듯 드문드문 빛을 밝히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익숙해진 석회암의 푸른빛이 아닌 사람이 직접 밝힌 인위적인 빛이었다. 등잔이나 호롱에 밝혔을 조그마한 불들이 어둠 속에서 제각기 떨어져 일렁거렸다.


유마는 숨을 깊이 들이키며 도시 전체를 눈에 담았다. 맙소사, 그가 알았던 세계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었나.


지저인 리더는 옆으로 물러서 바깥세상의 인간들이 지하 세계의 도시를 보며 감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잠시 뒤 그가 다시 손을 들자 이번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생겼다.


길은 세 명이 나란히 붙어 설 수 있을 정도의 너비였다. 단단한 암석으로 좌우를 틀어막은 길이 갈지자로 휘어졌다.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없게 되자 여태 사자에게 붙어 있던 아이가 아쉽다는 듯 사자의 손을 한 번 더 쳐다본 후 앞서 달려나갔다. 아이는 미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비골라가 소녀의 손을 꽉 쥐었다. 길이 아무래도 미끄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소녀는 별 걱정도 다 한다는 듯 비골라를 올려다보더니 씩 웃었다.


유마는 대열의 가장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그의 눈이 도시를 훑고 또 훑었다. 도시의 중앙에서 약간 치우쳐 둥근 돔이 지붕으로 얹힌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정확히 반대편 도시의 끝자락에 거대한 그림자가 높다랗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건 아마 탑이었는데, 유마가 보기에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무엇이 이상했는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길이 워낙 가팔라서 내려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시가 펼쳐진 벼랑 아래 땅에 다다랐을 때에는 계단이 있었다. 사자의 주름진 부츠가 계단을 한단 한단 세어가며 내려갔다. 모두 마흔아홉 개의 계단이었다.


먼저 달려나간 소녀와 지저인 리더를 호위하는 사내 둘이 먼저 땅에 닿았다. 그리고 지저인 리더가 도시 정면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사자의 차례였는데 그는 계단을 모두 내려오기 전에 문득 멈춰 섰다.


사자의 눈이 보이지 않는 도시 안쪽 깊숙한 곳부터 가장 가까운 곳까지 한 번에 훑었다. 도시에 성벽은 없었다. 그저 크고 널찍한 대로가 도시를 가로지르며 길게 뻗었을 뿐이었다.


"믿어도 좋다고 했을 텐데." 사자가 말했다.


마드는 왜 사자가 멈춰 섰는지 의아했다가 그의 목소리에 가득한 경계심과 투쟁의 기운을 느꼈다.


"너희가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건 이제 안다." 지저인 리더가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아직 모르지 않겠느냐. 하지만 걱정 마라. 섣불리 덤벼들지는 않을 테니."


이윽고 도시의 어둠 속에서 한 무리의 지저인들이 나타났다. 안개와 같은 어둠에 가려 윤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군대였다. 지하 세계의 병사들.


지저인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대열을 갖춘 채 다가왔다. 대열은 그들이 들고 있는 날붙이들의 색깔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두 갈래로 갈라졌다. 그들이 든 병장기의 색깔은 하나같이 새까맸다.


사자의 뒤로 마드가 다가왔다.


"설마 또 함정인 건 아니겠지? 이래선 마치 사막의 덫만 골라서 다니는 것 같잖아."


"글쎄, 아직은 알 수 없소. 그보다 항상 이야기한 것이 있잖소."


"그래. 지휘관은 언제나 만반에 대비해야 한단 말이지? 준비하고 있어."


병사들이 리더의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는 듯한 병사가 대열에서 이탈해 지저인들의 리더에게 왔다. 병사가 무릎을 꿇었다.


"돌아오셨습니까, 왕자님."


리더는 돌아보지도 않고 사자만을 바라보다 이윽고 입을 뗐다.


"환영한다, 우리의 도시. 마할란트라에."


지저인들의 왕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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