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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5,190
추천수 :
140
글자수 :
277,754

작성
21.04.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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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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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호세등등(虎勢騰騰): 범의 기세가 솟구쳐 오르니

DUMMY

불가살이(不可殺伊).


조생원이 이끼부락에 모인 계원들 앞에서 이상한 쇠똥을 꺼내 보이며 증명하려 했던 불가사리였다. 한자 표기인 <불가살이>의 뜻처럼, 전설처럼 흘러온 이야기에선 <죽일 수 없는 존재>로 묘사돼 있었다.


“불가사리? 정말로 그게 존재한단 말이오?”


인간계와 다른 차원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거기에서 요상한 마물들이 흘러들어온다는 비밀을 알고 있는 계원들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전설처럼 들어온 이름인지라 쉽게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불가사리건 빠가사리건 육시랄 것들은, 이 육도(肉刀)로 다 빠개버리면 된다.”

“이 무지한 백정, 아니 백성아. 불가사리는 그대가 잡던 소랑은 다르다니까.”

“조생원, 그러니까, 그놈 몸뚱이에 불을 달고 다닌다 했소? 쇠를 먹어치우고?”


남자 셋이 불가사리에 대해 설왕설래 하는 동안, 박광은 마을 쪽으로 접근해 뇌안을 열고 훑어보았다. 그 옆에는 얌전하게 따라온 두루가 박광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쪽으로 오고 있네요. 자, 어떤 놈인지 만나볼까요?”


하고는 박광이 설렁설렁 마을 쪽으로 걸어가는데, 전혀 두려움 같은 건 없는 표정이었다. 박광 바라기인 두루가 졸졸 따르고 성질 급한 육두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공대는 등에서 활을 꺼내드는데, 그의 활은 탄탄해 보이는 각궁이었다. 관통력이 뛰어난 편전(片箭:짧은 애기화살)을 골라 통아(桶兒:애기화살을 쏠 때 받치는 대나무통)에 매겼다.


조원들이 마을 입구로 향하는데 마을로부터 달려오는 무언가가 포착됐다. 가까이 올수록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집채만한 몸집은 황소보다 배 가까이 커보였다. 머리 양쪽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뿔이 돋았고, 얼굴은 멧돼지처럼 길쭉한데 아래 어금니도 삐쭉 나와 있었다.


한마디로, 소뿔이 돋은 멧돼지 같지만 몸집이 소보다 두 배는 커보였으니 그 달려오는 위세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갑옷처럼 단단해 보이는 몸뚱아리에서 불길이 활활 뿜어져 나오면서 달려오는 길에 나있던 잡목들이 금세 불타올랐다.


-꿀꺽···


조원들 모두 마른 침을 삼키며, 미친 듯 달려오는 괴물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저놈이··· 쇠냄새를 맡았나 보오.”


조생원의 해석이었다. 쇠라는 쇠는 다 씹어 먹는다는데, 정말로 일행이 들고 있는 무기에서 향기로운 쇠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육시럴 짐승 놈아! 시방 어디라고 설쳐대냐?”


역시나 육두가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 육두문자가 평소엔 좀 과한 느낌이더니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딱 어울렸다. 공대가 말리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이거 뭐 작전이고 뭐고 걍 막 들이대네? 무작정 힘으로 될 놈 같지가 않은데···”


쇠맛에 환장해 달려드는 우람한 괴물과 고기맛을 아는 백정칼잡이 육두가 맞달려가며 서로의 거리를 금세 좁혔다. 일행 중 가장 덩치가 좋은 육두였지만 불가사리와 가까이 붙자 엄청난 체급 차이가 나 보였다.


하지만 육두는 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맞부딪히기 직전에 땅을 박차고 사뿐히 날아오르더니 그가 육도(肉刀)라고 부르는 무식한 백정도를 놈의 정수리에 찍어 내렸다.


-튀아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착지한 육두는 짜증이 밀려왔다. 분명 제대로 정수리에 한칼 먹였는데 칼이 전혀 박히지 않고 튕겨 나온 것이다. 선기를 제대로 끌어올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짤퉁한 백정도 날에는 허연 선기가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직진으로 달려가 육두와 부딪혀 나간 불가사리는 몇 걸음 더 달려가다 급정지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거슬린다는 식으로 투레질을 하더니만 다시 육두를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육두는 불에 그슬려 앞섶에 구멍이 난 윗옷을 벗더니 왼손에 둘둘 말고는 불가사리를 향해 도발을 날렸다.


“야, 이 오라질 놈아. 다시 드루와 봐.”


인간의 욕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건만, 희한하게도 불가사리가 성난 것처럼 포효를 터뜨렸다.


-그르릉 히리링 푸르르르


“삼라만상에 통달하신 조생원님, 저 괴물이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공대가 활을 재면서 농을 날렸는데, 고지식한 조생원은 사서삼경 해석하듯 받아들였다.


“아니, 조장. 내가 아무리 해박해도 저 야만적인 미물의 말을 어찌 알아듣겠소···만, 오행의 기운 중에 화기가 급히 치미는 걸로 봐서··· 열이 많이 받은 거 같소.”


농담을 던졌던 공대가 외려 무안해지는 대답이었다.


두 사람이 시시껄렁한 문답을 나누는 사이 불가사리와 육두는 두 번째 충돌을 일으켰다. 조생원의 말대로 단단히 열 받은 건지, 불가사리는 더 빠른 속도로 돌진했고, 육두는 옷을 둘둘 말아 감싼 왼팔을 뻗더니 달려오는 놈의 머릴 짚고 튀어오른 다음 괴물의 등판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티어엉


웬만한 마물은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는 참자결(斬字訣)로 척추 부위를 공격했지만 이번에도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만 진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불가사리의 몸엔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대신에···


불가사리의 옆구리에 짧은 화살이 하나 박혀있었다.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육두 혼자선 도저히 안될 것 같아 공대가 지원사격을 한 것인데, 몸을 뚫기는커녕 간신히 겉가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공대가 실망스런 탄성을 뱉었다.


‘아니? 이 정도 거리에서 대상이 사람이라면 몸을 꿰뚫었을텐데···’


편전이라는 화살은 아주 강력한 살상무기였다. 특히 관통력이 뛰어나 웬만한 송판도 꿰뚫을 정도인데, 저 괴물의 가죽을 뚫지도 못한 것이다.


육두는 자존심이 상해 약이 올랐다. 이번엔 기필코 괴물의 피를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또다시 놈을 도발했고, 불가사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더 힘차게 달려들었다.


-끼이이앙


쇠가 쇠를 긁을 때 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박광이 인상을 팍 구겼다.


“처음부터 강적을 만났네요.”


선기를 끌어올린 무기에도 끄떡없는 불가사리와 그에 당당히 맞짱을 뜨는 인간, 둘 다 굉장한 괴물이었고 강적이었다. 육두의 옷과 머리칼은 불길에 그슬렸지만 딱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씩씩거릴 뿐이었다.


조생원은 육두가 괴물을 도발하며 맞짱뜨는 모습을 보면서, 어디선가 들었던 외국의 풍물을 떠올렸다.


‘투우라고 했던가? 서반아라는 나라에서 저런 놀이를 한다고 들었는데···’


이래서는 밤을 새겠다고 생각했는지 공대가 조원들을 다그쳤다.


“넋재비 두 분, 저 괴물···, 봉인 좀 안됩니까?”

“흥! 왜 안 해봤겠어요? 제 술법은 안 먹히는 놈이에요.”


두루가 먼저 냉랭히 대꾸했고,


“흠···, 오행의 기운을 역행하는 놈이라 내 오행 봉인술도 소용없소이다.”


조생원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봉인하기도 어렵고 베기도 힘든 저 괴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공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저놈의 발을 좀 묶어봅시다.”


공대가 두루와 조생원에게 무언가 부탁을 하고는 자기 봇짐에서 그물을 하나 꺼내는데, 환단계의 신물(神物) 중 하나인 포령삭(捕靈索)이었다. 이름 그대로 영물을 포획하는 신령이 깃든 그물이었다. 출정할 때 마루한에게 받아뒀던 포령삭을 꺼내들었지만 저 큰 놈을 가둘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공대는 애써 자신있게 외쳤다.


“자, 자 손발을 맞춰봅시다.”


두루가 몸속에 깃든 산신령을 불러낸다.


“영감, 그만 놀고 일 좀 하시지?”


박광의 기에 눌려 찌그러져있던 지리산 신령이 오랜만의 부름에 신이 났는지, 기지개를 켜면서 냉큼 두루의 몸을 지배해갔다. 그러자 곧 두루의 눈동자가 사라지고 입에선 칙칙한 노인네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흘(屹: 우뚝 솟아라)!”


순간, 육두를 향해 또한번 질주해가는 불가사리의 사방에서 땅거죽이 말려 올라가며 높은 벽을 만들더니 괴물을 가둬버렸다.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던 불가사리는 지축이 흔들거리자 균형을 잃더니 쿵 하고 쓰러졌다.


손바닥에 물을 받은 조생원이 쓰러진 불가사리를 향해 물을 뿌리며 외쳤다.


“수극화(水克火)!”


손에서 뿌려진 물방울이 주문과 함께 큰 물줄기로 변하더니 불가사리를 덮쳤다. 놈의 몸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꺼져버리자 마지막으로 공대가 포령삭을 던졌다. 포령삭은 대상의 크기에 맞춰 변하는 건지 순식간에 늘어나더니 불가사리의 전신을 옭아매버렸다.


이 일련의 과정은 숨 한번 쉴 사이에 이뤄졌는데, 조원끼리 처음 시도한 연수합격(聯手合擊)이 매끄럽게 성공한 것이다.


-휴우···


공대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마무리가 남아 있었다. 괴물을 묶어놓긴 했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선기를 주입한 칼로도 상처조차 낼 수 없는 놈이었다. 쓰러진 불가사리가 몸부림을 치니 포령삭이 금방이라도 찢겨져 나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하나··· 하고 모두 공대를 쳐다보고 있는데···


“저도 한손 거들어야겠죠?”


하더니 박광이 앞으로 나섰다. 조원들은 궁금해졌다. 이번 출정에 가장 나이 어린 싸우라비지만, 계주의 직전제자(直傳弟子)였다. 게다가 두루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지리산 산신령을 기세로 압도한 전력이 있었으니 그 실력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법도 했다.


조생원이 공대에게 아는 척을 했다.


“삼라만상의 이치로 볼 때, 분명 계주가 특별한 검술을 전수해줬을 것이오. 단칼에 저 괴물을 도륙해버릴 기세가 느껴지외다.”


하지만 박광은 환도(環刀)를 칼집에 집어넣어 조생원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박광이 뇌안을 최대한 열더니 선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박광의 이마로부터 백색 광채가 뿜어져 나오자 조원들도 깜짝 놀라 숨을 죽였는데, 난폭하게 발버둥치던 불가사리가 갑자기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한술 더 떠서 이 괴물이 벌벌 떨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한 마리 착한 소가 된 것 마냥 눈망울을 끔벅거렸다.


뒤에서 보고 있던 조원들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경악해 버렸다. 야차(夜叉)같던 불가사리를 순식간에 온순한 소처럼 만들다니···, 이 녀석은 대체 무슨 괴물인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두루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산신령도 다시 꽁무니를 빼고 사라지면서 두루의 눈동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의식이 돌아온 두루가 달라진 상황을 보더니 말했다.


“어머, 얘가 갑자기 얌전해졌네?”


이어 백색 광채를 거둔 박광이 공대에게 태연스럽게 말했다.


“죽일 수 없다면 길들여야죠. 이제 그물 거두셔도 될 거에요.”


당황한 공대가 조심스럽게 포령삭을 거둬들이니, 불가사리가 일어나 박광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박광에 몸에 코를 부비면서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한다.


불가사리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공포스러운 백호(白虎)의 잔상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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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귀빈환대(貴賓歡待): 귀빈 대접을 받다 21.04.20 111 2 14쪽
25 망포화향(蟒抱花香): 이무기는 꽃향기를 품고 21.04.19 102 2 11쪽
» 호세등등(虎勢騰騰): 범의 기세가 솟구쳐 오르니 21.04.18 73 2 11쪽
23 불가살이(不可殺伊): 죽일 수 없는 짐승이로다 21.04.17 130 2 11쪽
22 일령이체(一靈二體): 하나의 영에 두 몸이라니 21.04.16 135 2 11쪽
21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모이게 될 것이다 21.04.15 86 2 11쪽
20 삼령일체(三靈一體): 세 영이 한 몸에 담기다 21.04.14 176 2 11쪽
19 몽상합령(夢想合靈): 합령의 술을 꿈꾸다 21.04.13 183 2 12쪽
18 혼탈남녀(魂奪男女): 사내와 계집의 혼을 빼놓으니 21.04.12 191 3 11쪽
17 은곡집회(隱谷集會): 은자의 계곡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1.04.11 208 2 11쪽
16 흑망조판(黑蟒組版): 검은 이무기가 판을 짜다 21.04.10 277 2 11쪽
15 갑호발령(甲號發令): 갑호소집령을 발동하였다 21.04.09 85 2 12쪽
14 영육분리(靈肉分離): 영과 육이 떼어지다 21.04.08 123 2 12쪽
13 목령흡생(木靈吸生): 목령이 생기를 빨아 먹다니 21.04.07 100 2 11쪽
12 지입마경(至入魔境): 입마의 지경에 이르다 21.04.06 78 3 11쪽
11 호추삼오(虎追三烏): 범이 세 마리 까마귀를 쫓누나 21.04.05 68 3 11쪽
10 암종탐세(暗宗眈世): 암종이 세상을 노려보다 2 21.04.04 94 3 11쪽
9 암종탐세(暗宗眈世): 암종이 세상을 노려보다 1 21.04.03 93 3 11쪽
8 실부지애(失父之哀): 아비를 잃은 슬픔에 빠지다 21.04.02 78 3 12쪽
7 호견비학(虎見飛鶴): 날아가는 학을 범이 바라보았다 21.04.01 99 3 11쪽
6 교우약조(交友約條): 벗이 되기로 약속하다 21.03.31 122 3 11쪽
5 이인동심(二人同心): 둘이 한 마음이더라 2 21.03.30 107 3 11쪽
4 이인동심(二人同心): 둘이 한 마음이더라 1 21.03.29 168 7 11쪽
3 사불아심(事不我心): 일이 내 마음 같지 않구나 21.03.29 180 7 12쪽
2 호자하산(虎子下山): 새끼 범이 내려오다 21.03.29 283 7 11쪽
1 서장(序章) 21.03.29 399 9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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