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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메의 서재입니다.

흑룡이 나르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무협

왕잼
작품등록일 :
2021.03.28 11:18
최근연재일 :
2021.05.18 18: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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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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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글자수 :
277,754

작성
21.04.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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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영육분리(靈肉分離): 영과 육이 떼어지다

DUMMY

이단은 무언가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손안에 잡혀있는 것, 바로 수연에게 받았던 흑단목 장도였다. 수연이 세자빈으로 간택되고 나서,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장도를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얼마 전 마물에 잠식될 뻔한 날 꾸었던 꿈. 어린 시절 수연이 모습도 실제 같았고, 무엇보다···


‘아버지···’


흑학으로 나타난 아버지와의 대화는 실로 생생하기 그지없어서 지금도 혼란스러웠다.


‘그순간 내 영(靈)이 육체를 이탈했던 걸까? 꿈이 아니라 내 영혼이 실제 그들을 만나고 다닌 것일까?’


꿈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된 것은, 깨어난 이후 흑결주 마달이 해준 얘기 때문이었다.


-주군께서 깨어나기 직전, 흑화하신 선대 주군을 뵌 것 같습니다.


‘정말 실제였다면···’


라고 생각하며 이단이 눈을 감고 집중했다.


순간, 마치 매미가 탈각하듯 껍질이 벗겨지면서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레 눈을 떴다. 아래로 자신의 몸이 보였다. 영(靈)과 육(肉)이 분리된 것이다.


‘아! 이거였구나.’


창을 통해 밖으로 날아보았다. 거칠 것 없이 비행할 수 있었다. 감정이 벅차올랐다.


목옥 앞 공터에서 무인들이 수련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스치며 지나가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흑결주와 도방이 뭔가 얘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까이에서 잠깐 들어보았다. 무슨 태백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흑결주가 자신을 돌아보기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자신을 보진 못한 모양이다. 다만 느낀 것인가? 역시 결주의 촉은 다르구나 싶었다.


몸이 걱정돼 서둘러 방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백치 인형처럼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완전한 무방비상태라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영력을 집중해 몸 안을 투영해봤다. 영대혈에 또아리를 틀고 얌전히 있던 이무기가 잠깐 몸을 비운 사이 슬금슬금 돌아다니고 있었다. 분명, 몸의 주인이 자리를 비운걸 알아차린 거다.


‘저놈을 확실히 통제하지 못하면, 함부로 몸을 비울 수가 없겠구나.’


몸안에 깃든 이무기는 확실히 통제가 힘들었다. 이무기의 기운을 경험한 수하들에 따르면, 자신이 분노로 이성을 잃었을 때 외부로 드러난다고 했다.


이놈을 자유자재로 내고들일 수 있어야 완전한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용(龍)이 되어야 한다.


암종이 되고나서야 흑선경의 모든 걸 볼 수 있게 됐다. 암종의 후계만이 전수받는 봉령술, 자신이 배운 게 끝인 줄 알았는데 감춰진 부분이 더 있었다.


[합령(合靈)의 술-

봉령술로 몸 안에 만든 영물과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다.

합령을 이룰 경우 영물을 어디로든 자유자재로 보내고 부릴 수 있다.

시야의 제약도 통제의 한계도 사라진다.

영물과 자아가 다름이 없어지니 진정한 분신이 되는 것이다.

다만 조심하라.

합령의 순간, 너를 잃을 수도 있음을.

열번 생각하고 백번 고민하라. 구결은 다음과 같다···]


이미 봉령술만으로도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합령의 술]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실제 역대 암종 가운데 봉령술을 제대로 완성한 경우도 흔치 않다고 했으니까. 흑선경 전부를 넘겨주면서 흑결주 마달이 당부했었다.


-마지막 장에 있는 합령의 술은···, 아무도 해낸 적이 없는 경지입니다. 시도하다가 광인이 된 사례만 전해지고 있지요. 그저 전설의 일부라고 여기시고 절대 마음 두지 마십시오. 혹여 주군에게 잘못이 생긴다면, 우린···,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이단에게 후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를 대신할 대안도 없다. 암종의 맥이 끊어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모험은 뒤로 미루고 일단 이무기부터 완전히 통제해야 했다.


이단의 영이 이무기가 움직이고 있는 곳으로 불쑥 들어갔다. 그놈이 꿈틀 반응했다. 주인 없는 빈집을 신나게 털다가 들킨 도둑처럼 예민한 반응이었다. 이무기가 이단의 영을 알아차리고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몸에 가둔 탁기를 영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영물은 주인의 성격까지 닮아간다. 그래서 과거 역대 암종들의 영물을 보면, 그들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무기는 용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존재. 어쩌면 부친은 아들의 열망을 진작부터 읽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자신의 기운과 성격을 흡수했으리라. 하지만,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역심(逆心)까지 저놈이 가졌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이무기는 호시탐탐 주인을 먹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 탓을 할 것이냐.’


이무기 녀석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뿌리고 키운 놈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영물을 진정시키는 구결을 외웠다. 덤벼들던 이무기가 괴롭게 몸부림치더니 영대혈 쪽으로 도망치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끝장을 보리라.’


이단의 영이 영대혈로 따라갔다. 숙주의 주인이 자기 둥지까지 따라오자 녀석이 쉬익거리며 위협을 했다. 이단은 더 다가가 이무기와 눈을 맞췄다.


몸 안에 놈이 깃들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다.


검은 윤기가 흐르는 피부에 촘촘한 비늘이 달렸는데, 촉감을 알 수는 없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아서인지 그리 날카로워보이진 않았다. 생김새는 뱀과 용을 섞은 모습인데, 길쭉한 주둥이에 두상은 동그랗고 이마에 뾰족한 뿔이 하나 돋아 있었다.


놈은 차차 위협을 거두었지만, 경계하는 몸짓을 풀진 않았다.


딱히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주저앉았다. 같이 있다 보면 놈의 경계심이 누그러질까 싶었다.


신기한 건, 영의 상태로 있으니 육체의 상태가 훤히 잘 보인다는 거였다. 핏줄과 골격, 힘줄과 신경이 촘촘히 얽혀서 심장과 간장, 위장 등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디가 힘차게 움직이고 어느 곳이 둔한지 세세하게 느껴졌다.


‘내 몸이 이렇게 생겨먹었구나···’


몸 안을 둘러보니 그동안 흡수했던 탁기의 찌꺼기들이 군데군데 끼어있는 게 보였다. 대부분의 탁기는 영물이 성장하는 먹이가 된다. 당연히 이무기의 성장에 녹아들어 정화되었겠지만 그게 말끔히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부친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단아. 탁기를 흡수했으면, 운기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입안을 깨끗이 헹궈내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그걸 소홀히 했을 때 어찌 되었더냐? 네 이가 썩어서 심하게 아프지 않았더냐. 입안에 찌꺼기가 남아있으면 충치도 생기고 잇몸도 부어오르고 냄새가 역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지. 이를 꼭 명심하거라.


선술을 익힌 역대 암종들이 장수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이유였던가? 탁기를 깨끗이 정화하지 않으면, 결국 몸속에 노폐물로 쌓여 건강을 해치게 됐을 것이다.


바로 흑선결을 운용하며 눈에 보이는 탁기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역대 암종들이나 흑선이 목격했더라면 까무러치게 놀랐을 것이다. 영을 분리해 몸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청소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단은 그런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몸속에 끼어있는 탁기를 제거했다. 긁어모은 탁기를 어찌할까 하다가 동그랗게 말아 봤더니 수십 개의 환(丸)이 만들어졌다.


‘재미있군. 마치 환약처럼 보이니···, 탁기환(濁氣丸)이라고 부를까?’


순간 이단에게 흥미로운 생각이 스쳐갔다. 어쩌면, 이걸 다른 용도로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이무기에게 갔다. 녀석은 여전히 눈치를 보면서 똬리를 풀지 않고 있었다.


녀석에게 탁기환 하나를 던져줬다. 혹시나 했는데, 탁기로 빚어진 영물이니 당연히 반응했다. 자존심도 없는지 낼름 받아먹었다. 오히려 더 달라는 눈치였다. 하나, 둘, 셋~ 여기 저기 골고루 던져줬다. 녀석이 신난 듯이 날아다니며 받아먹는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이건··· 뭐, 명류장 삽살이와 똑같지 않은가?’


어린 시절 명류장에서 키우던 삽살개와 놀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쇠가죽으로 둥글게 말아 만든 공을 던져주면 질풍처럼 달려가서 물고 왔던 삽살이가 이무기의 모습에 겹쳐 보였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영육을 합일시키고, 만들어놓은 탁기환을 몸 밖으로 꺼냈다. 그러자 꿈틀~ 하면서, 이무기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단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자신이 이성을 잃었을 때, 금제가 풀리듯 이무기가 튀어나온 적은 있었지만, 정신이 또렷한 상황에서 자신의 영물을 밖에서 대면하는 건 처음이었다. 밖으로 나온 이무기 놈은, 몸 안에 있을 때보다 수십배는 커진 것 같았다.


탁기환을 던져주자, 녀석이 신나게 받아먹었다. 정말 기분이 좋은지 이단의 주위를 돌며 공중곡예를 부리고 날아다녔다. 이단이 손을 내밀자 녀석이 제 머리를 부벼대기까지 했다.


‘이건 완전히 삽살이와 판박이 아닌가?’


이단은 순간, 이무기가 삽살이의 환생 같아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명색이 용을 꿈꾸는 이무기가 개처럼 살살거릴 수가 있겠는가? 어린 시절 삽살이를 부르면 열심히 달려오던 게 생각나 무심코 영성(靈聲)으로 불러봤다.


-삽살아! 이리 와


그러자 이무기가 옆으로 날아와 자신을 바라보더니···


=삽살이가 내 이름인가? 멋진 이름이야. 그 맛있는 거 또 있으면 어서 줘. 주인


이단은 깜짝 놀랐다. 삽살이의 영성이었다. 영물과의 대화도 가능했던 것인가? 이단은 곧 흥미를 느꼈다.


-맛있는거? 탁기환 말이군. 딱 하나 남았는데, 공중곡예를 멋지게 보여주면 던져주마.

=아 알았어, 주인.


삽살이가 간식 얘기에 신났는지, 화려한 공중곡예를 수놓으며 좁은 방안을 날아다녔다.


그때 뒤에서 마달의 감격에 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드디어 성취하셨군요. 벌써 선왕의 경지에 도달하셨습니다. 감축드립니다.”


흑결주 마달은 암종의 방에 손기척을 했으나 아무 대답이 없기에 걱정돼 들어왔는데, 이단이 이무기와 노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아, 아저씨.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 라니요? 실로 대단한 성취이옵니다.”


암종이 영물을 외부로 발현시키는 것은 결코 <어쩌다보니>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역대 암종 가운데 세명 중 한명 꼴로만 성취했던 일 아니었는가?


암종의 후계자는 일찍부터 흑선경을 익히며 결계의 탁기를 흡수했다. 그리고 운기를 통해 탁기를 정화하고 나면 그 기운이 자신의 공력(功力)으로 축적된다. 이 공력이 충만해지면 몸 안에 영물이 형상화되고, 이것이 완성되면 그 영물을 외부로 발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암종이 결계의 탁기를 흡수하는 것은, 결계를 단단히 다지는 동시에 자신의 공력을 키우는 일거양득의 수단이었다.


감격에 젖어있던 흑결주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먼저 가신 선대 주군께서도 이제 마음을 놓으실 겁니다.”


이단은 마달의 벅찬 표정을 보며, 잠깐 부친에 대한 고마움을 떠올렸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아직은 부족합니다. 언젠가···, 꼭 흑룡(黑龍)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단의 주위를 맴돌던 이무기가 마치 용이라도 된 것 마냥 울부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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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귀빈환대(貴賓歡待): 귀빈 대접을 받다 21.04.20 112 2 14쪽
25 망포화향(蟒抱花香): 이무기는 꽃향기를 품고 21.04.19 102 2 11쪽
24 호세등등(虎勢騰騰): 범의 기세가 솟구쳐 오르니 21.04.18 73 2 11쪽
23 불가살이(不可殺伊): 죽일 수 없는 짐승이로다 21.04.17 130 2 11쪽
22 일령이체(一靈二體): 하나의 영에 두 몸이라니 21.04.16 135 2 11쪽
21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모이게 될 것이다 21.04.15 86 2 11쪽
20 삼령일체(三靈一體): 세 영이 한 몸에 담기다 21.04.14 176 2 11쪽
19 몽상합령(夢想合靈): 합령의 술을 꿈꾸다 21.04.13 183 2 12쪽
18 혼탈남녀(魂奪男女): 사내와 계집의 혼을 빼놓으니 21.04.12 191 3 11쪽
17 은곡집회(隱谷集會): 은자의 계곡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1.04.11 209 2 11쪽
16 흑망조판(黑蟒組版): 검은 이무기가 판을 짜다 21.04.10 277 2 11쪽
15 갑호발령(甲號發令): 갑호소집령을 발동하였다 21.04.09 85 2 12쪽
» 영육분리(靈肉分離): 영과 육이 떼어지다 21.04.08 124 2 12쪽
13 목령흡생(木靈吸生): 목령이 생기를 빨아 먹다니 21.04.07 100 2 11쪽
12 지입마경(至入魔境): 입마의 지경에 이르다 21.04.06 78 3 11쪽
11 호추삼오(虎追三烏): 범이 세 마리 까마귀를 쫓누나 21.04.05 68 3 11쪽
10 암종탐세(暗宗眈世): 암종이 세상을 노려보다 2 21.04.04 94 3 11쪽
9 암종탐세(暗宗眈世): 암종이 세상을 노려보다 1 21.04.03 93 3 11쪽
8 실부지애(失父之哀): 아비를 잃은 슬픔에 빠지다 21.04.02 80 3 12쪽
7 호견비학(虎見飛鶴): 날아가는 학을 범이 바라보았다 21.04.01 99 3 11쪽
6 교우약조(交友約條): 벗이 되기로 약속하다 21.03.31 122 3 11쪽
5 이인동심(二人同心): 둘이 한 마음이더라 2 21.03.30 107 3 11쪽
4 이인동심(二人同心): 둘이 한 마음이더라 1 21.03.29 168 7 11쪽
3 사불아심(事不我心): 일이 내 마음 같지 않구나 21.03.29 180 7 12쪽
2 호자하산(虎子下山): 새끼 범이 내려오다 21.03.29 283 7 11쪽
1 서장(序章) 21.03.29 399 9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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