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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에서 헌터로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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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다땅
작품등록일 :
2024.06.27 16:17
최근연재일 :
2024.07.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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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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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704

작성
24.07.0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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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8화-숨겨진 비밀(3)

DUMMY

8화-숨겨진 비밀(3)


‘아 개꿈.’


처음부터 꿈이란 걸 눈치 챘다. 그야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들은 내가 다시는 보기 싫은, 이제는 없어야만 할 광경들이었으니까.


로판의 배경이 되었던 찬란한 제국은 헌터들을 앞세운 신진 세력의 반란으로 무너져 내린다.


광기에 휩싸인 폭동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는다. 모든 것이 불타고 그 반역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가 그 자리에 들어선다.


하지만 그 질서는 근본 없는 질서다. 시스템에 의해 끌려 다니기나 하는 줏대 없는 이들이 거대한 땅과 그 안에 살아가는 수많은 주민들을 제대로 다스릴 리가 있나.


최대한 간략하게 기억하려 애써도 이 정도였다. 신분을 숨긴 하급 헌터로 밑바닥에서 구르던 기억보다도, 내게 더 끔찍하게 남은 기억들은 바로 이것들이었다.


“아침이군.”


“그렇습니다. 이제 곧 정오가 됩니다 황자님.”


굳이 기분 나쁜 꿈을 계속 꿀 이유가 없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푹신한 침대와 함께 낯선 호텔방 천장이 보였다.


다행히 간밤에 엘레나와 헤르만이 나를 고발해서 팔아넘기진 않은 모양이다. 그 대신 헤르만은 옆에 있던 탁자 앞에 앉아 내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결국 황자님께선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십니다.”


“너희를 그곳으로 끌고 간 사람도 나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헤르만은 부스스한 머리를 문지르던 내 농담에 기겁하며 서둘러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나도 이 몸으로는 실전이 처음인 주제에 그들에게 현실을 보여주겠답시고 너무 위험한 계획을 짰다.


만약 운이 조금만 나빴다면 누구 하나 크게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황자님이 직접 몸을 날려 그 끔찍한 괴물들에게서 저희를 구해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이 은혜, 제가 감히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헤르만의 눈빛은 나를 보며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이 유능하지만 겁 많은 신참 황실집사는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있던 ‘나’ 따위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서 싸웠다는 것 자체에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바닥에 있던 기대치 덕분에 조금 더 이득을 본 셈이다.


“그렇다면 넌 나를 믿어준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분명 믿기 힘든 큰일임은 사실이나, 이미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럼 어제 있었던 일을 알베르에게 보고하지 않겠군.”


“!”


알베르를 언급하자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으며 눈이 커졌다.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벙긋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모르고 있을 줄 알았나? 네가 나에 대해 형님의 집사이자 황실 집사장인 알베르에게 전부 보고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화, 황자님! 저는 단지 집사부의 절차에 따라 집사장께 업무 보고를...!”


얼굴이 창백해진 헤르만은 서둘러 바닥에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사실 이전 회차에서도 이 사실을 알았지만 딱히 문제 삼진 않았다.


난 쥐죽은 듯 조용히 사는 게 목적이었고, 그걸 목적으로 삼은 이상 내 행동을 알베르에게 보고해도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하는 행동은 제멋대로 싸돌아다니고 사람을 모으며 나랏일에 개입하는 등 어쩌면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버릴지도 모르는 행동이다.


오직 레온을 황제로 만들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알베르가 알면 나 역시 제거 대상이 될 것이다.


“맹세할 수 있나? 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의 사람이라는 걸.”


“물론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이제 그 무엇보다 황자님의 명령을 우선하겠습니다!”


오전의 따스한 햇살에 대한 반동으로 드리워진 내 그림자가 꾸물텅거리기 시작하자 기겁한 헤르만이 몸을 덜덜 떨었다.


어제 밤, 던전에서 내 그림자가 적들을 꿰뚫고 베어버리는 모습이 떠오른 게 분명했다.


“한 번만 믿어주도록 하지.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이제 세상의 진실을 함께 엿본 동지니까.”


위협은 적당히 하고 웃으며 그를 바닥에서 일으켜 주었다. 헤르만의 충성도는 이전 회차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지금은 그냥 까마득한 고참 상사에게 짓눌려 있는 신입이라 그렇지 죽는 순간까지 내 옆을 지켜준 충신이란 말이다.




“황자님이 어제 보여주신 것과 해주신 말에는 더 많은 계획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약속대로 그때가 되면 해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그래. 말한 대로, 그저 내 말에 대한 증거로 보여주었을 뿐이지. 약속도 반드시 지킨다. 일단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도록. 조만간 다시 보자.”


엘레나는 헤르만보다 더 쉬웠다. 하룻밤동안 생각을 다 정리한 것인지, 일어난 나를 보자마자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나를 믿으며 나를 따르겠다고 한쪽 무릎을 꿇은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한 번 정한 건 끝까지 가는 대쪽 같은 여자다. 한 번 내 편으로 만든 이상 그녀에 대해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럼 이대로 궁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좀 놀다 들어가자. 어차피 조만간 또 나올 거지만 그때도 놀러 나오는 건 아니거든.”


엘레나는 먼저 돌아갔지만 나는 아직 해가 중천이라는 핑계로 도시에 남기로 결정했다.


평판에는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오히려 평판이 낮은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전 회차와는 목표 자체가 다른 만큼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적당히 선을 타는 게 오히려 다른 이들의 눈을 가리는 데 효과적일 것 같았다. 마치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기 전 위장하고 놀아나던 것처럼.


“알베르에게 보고할 때도 그렇게 보고해. 엘레나 이야기는 적당히 거르고, 그냥 내가 평소처럼 도시에서 노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다고. 여자 이야기도 그냥 넣어. 집사부가 뒤처리 하고 다니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헤르만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런 위장이 오래 못 간다는 건 나도 안다. 어차피 그리 멀지 않아 나는 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오직 그 순간을 위해서 지금부터 바쁘게 달려야 하는 것이다.


[최초 던전 클리어 보상]


[최고 등급 특성 보유 확인, 보상이 아티팩트 선택권(S)으로 변경됩니다]


그 일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헤르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흔들의자에 편하게 앉아 눈앞에 아른거리는 글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아트팩트 모글레이(S) 획득]


랜덤 따위가 아니라, 내가 선택지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는 아주 만족스러운 보상이다. 세 가지 아이템 중 내가 고른 것은 무기로 쓸 검은 단검이었다.


날 끝부터 손잡이 끝까지 하나의 새까만 통짜 금속으로 이루어진 이 단검은 내 손 끝에서 팔꿈치 끝까지의 길이를 가진 특별한 무기다.


내가 가진 특성과 조합하면, 분명 전성기의 카사스조차 이루지 못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벌써 써먹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참아야 한다. 아직 내가 마음껏 힘을 써먹을 수 있는 곳은 던전들 뿐이다.


“황, 아니 공자님.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가자, 지금은 휴식 시간이니까 마음 편히 쉬자고. 고생은 어제 할 만큼 했다.”


헤르만의 발소리가 들릴 때 단검은 S급답게 각인의 형태로 변해 내 오른쪽 어깨로 이동했다.


이래서 고위 헌터들의 몸은 온통 그림 투성이었다.


제국의 황자가 몸에 타투라니...이것도 들키면 큰일이라, 목욕 시중 없이 혼자서 씻기 시작한지 꽤 되었다.



***



“헤르만은 아직 복귀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아마 다른 때처럼...해가 지기 직전 들어오실 것 같습니다.”


황실 집사부는 황실의 허리나 마찬가지다. 정치와 공무를 비롯한 외적인 일을 제외한 모든 일에 개입하여 황실 내부의 ‘집안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알베르는 그런 집사부의 장이었다. 명목상 서열은 황제을 모시는 집사가 제일 높지만, 황태자를 모시게 된 알베르가 황제의 명으로 보직을 이동했기 때문이다.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어지간한 일들은 후임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두는 편이지만 알베르는 단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선 철저하게 처리했다.


바로 황태자 레온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순분자들을 색출하고 감시하는 일이었다.


황실, 특히 황제 직속의 정보부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황실 집사부는 20여 년 전 집사장이 된 알베르의 주도하에 이미 제국 전역에 정보원을 심어두는 중이었다.


같은 황실 식구라 해도 예외가 없었다. 황제와 황태자를 제외, 모든 황족들이 알베르의 감시 하에 있어야만 했다.


3황자 미하일도 마찬가지였다. 평판도 별로고 나이도 어린 미하일은 다른 이들에 비해 중요도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어쨌든 옆에 붙여놓은 시녀와 집사는 모두 알베르의 수족이었다.


“제국 아카데미 고위층에 사람을 심는 건 여전히 불가능한가?”


“그, 그렇습니다. 학생이나 말단에 있는 하인, 고용인들이라면 모를까 아직 교수들이나 운영진은 포섭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하일에 대한 관심을 꺼버린 알베르가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제국에 단 하나 뿐인 국립 아카데미 역시 알베르가 노리는 곳 중 하나였다. 문제는 제국의 고위층 자녀들과 인재들이 모두 모이는 곳인 제국 아카데미는 90살 먹은 노인이자 대마법사라 불리는 레인즈가 관리하는 곳이다.


그 어떤 외부 간섭도 혐오하는 레인즈는 특유의 마법 실력까지 아낌없이 동원해서 집사부의 첩보 활동을 매번 사전에 차단했다.


“아카데미는 반드시 우리 수중에 넣어야 한다. 명목상이나마 황태자께서 그곳의 간부로 계시고, 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후계자들이 모두 모이는 곳 아닌가.”


황태자 레온도 그곳 졸업생이다. 애초에 법도상 황태자는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했다.


차후, 황태자가 신하로 부릴 미래의 인재들이 그곳에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알베르는 어떻게든 아카데미 상층부에 정보원을 심으려고 안달이었다.


꼭 불순분자들만 찾는 게 아니었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뭐든 약점으로 잡을만한 것을 확보해 놓으면 미래에 그들이 사회 요직에 진출했을 때 써먹을 자료가 될 수 있으니까. 새롭게 보위에 오른 황제를 위해서.


“집사장님. 헤르만이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업무를 이어가던 집사부에 미하일과 함께 나갔던 헤르만이 돌아온 건 해가 진 이후였다.


알베르는 곧바로 그를 호출했다. 이미 보여줄 것 다 보여준 미하일에 대해 별 생각 없는 건 없는 거고, 할 일은 해야 했으니까.


“읊어 봐라. 우리 철부지 3황자님이 오랜만에 외출해서 뭘 하고 다녔는지. 또 누군지도 모를 여자를 데려가 귀한 황실의 씨를 뿌리고 다녔느냐.”


헤르만은 파이프에 불을 붙이는 늙은 상사를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알베르는 나름 숨기려고 티를 내는 그 긴장이, 신참인 헤르만이 평소에 보여주던 것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넘어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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