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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에서 헌터로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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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다땅
작품등록일 :
2024.06.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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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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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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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되돌아오다(4)

DUMMY

4화-되돌아오다(4)


“...?”


문득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일단 그대로 뒤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성공을 확신했다.


빠르게 돌아오는 감각을 보니 바닥에 추하게 엎어져 있는 것 같았다. 몸에 힘을 주고 꿈틀거리자 천천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시간이 얼마나 지났냐는 것이었다. 밖은 내가 처음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어두컴컴하다.


체감 상 정신을 잃고 오래 뻗어 있었던 것 같지만, 실상 내가 뻗어 있던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스스로 찔렀던 목을 더듬었다. 피로 범벅이지만 상처는 깔끔하게 나았다.


내 모든 계획이 제대로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칭호 획득 조건 달성]


눈앞에 아른거리는 글자를 보았다. 성스럽지 않냐는 듯 푸르스름하면서도 새하얀 글자는 허공에 둥둥 떠서 현실과 동떨어진 괴리감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좆태창.’


빌어먹을 것, 사골처럼 우려먹어 질리지만 그래도 빠지면 섭섭한 게 결국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솔직히 난 이런 거 바라지도 않았다. 이왕 빙의한 것, 그저 조용히 평범하게 살면서 누릴 거 누리고 꿀 빨 거 꿀 빨면서 살고 싶었을 뿐이다.


[칭호 ‘불멸(S)’ 획득]


결국, 기어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일개 용병놈을 거대 세력의 수장이자 제국을 멸망시키고 날 황자에서 일개 하급 헌터로 살게 만든 바로 그 힘이다.


[최초 각성자 탄생(S)달성, 보상 지급]


그리고 그보다 더 원했던 것 역시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원작으로 봐서 알고 있던 대로, 실제로 일어나서 들었던 대로다. 내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S급 특성 선택]


[랜덤 아티팩트 선택]


특성을 하나 고를 수 있는 것과, 원작 작가놈의 전개 편의성을 위해 랜덤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운빨 확인 요소였다.


어차피 메인은 S급 특성이지만 뽑기에서 저등급이 나오면 혈압 오를 건 뻔하다. 괜히 나중에 까서 혈압 오르기 전에 랜덤권부터 소모하기로 결정했다.


“아파 죽겠네 진짜...”


상처는 나았지만 욱신거리는 몸뚱이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흘린 피웅덩이에서 버둥거리는 내 몸은 이미 피범벅이고, 화장실도 난장판이었다.


분명 획득한 S급 칭호는 위기의 순간마다 발동하는 권능으로 지금 내 등에 희미한 각인의 형태로 깃들어 있겠지만 발동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해한 건 구해주지 않는 건지, 이건 일종의 대가라서 그런 건지.


“상자, 까.”


[봉인의 반지(E) 획득]


“씹...”


역시나. 나는 별로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돌아오기 전에도 랜덤이란 이름만 붙으면 망했던 기억뿐이었다.


바닥에 툭 떨어진 은반지를 주워 든 나는 그 효능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일정 크기 이하의 물건을 반지 안에 봉인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특성이나 내놔라.’


이번 생에서 계획을 짜면서 되도록 모든 랜덤요소는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망할 거 뻔하니까. 다만 뽑기와는 다른 선택권은 내게 직접 선택할 권리를 준다.


눈앞에 떠오른 세 가지 선택지. 피범벅인 상태로 화장실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 본 나는 피식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심연의 그림자(S)]


이것은 본래 일개 변방 기사였던 자가 손에 넣었던 강력한 특성.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림자는 공격, 방어, 서포트 모든 것을 책임지는 만능이었다.


레온과 함께 원작의 남주인공 중 하나이자 북부대공, 권왕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가지고 있던 크리스 바스티안이 그놈에게 패배해 죽었다.


[창공의 서약(S)]


이건 반대로 여주인공인 마리아 류드밀라가 소유했던 특성. 창공에서 불러내는 리빙 아머 수백, 수천, 수만 기가 그녀의 군단이 되어 남주인공들에게 보호만 받던 여주인공을 전장의 사령관으로 만들었다.


[전처녀 각성(S)]


나머지 하나는 현대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헌터물인 두 번째 작품에서만 등장했던 특성...기억에 따르면 아마 날개 달린 발키리의 힘을 가지게 해주는 자기 강화형 특성이다. 원작에선 히로인중 하나가 먹어서 무쌍을 찍었던가?


어쨌든 내 눈앞에 각기 다른 세상을 뒤흔든 사기 특성 세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그 역사에 없었을 내가 이것들 중 하나를 가지는 순간 그 즉시 미래는 뒤틀린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나조차 알 수 없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게 내 알 바 인가. 하...”


그러나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가만히 나둬도 망할 건데, 뭐라도 하는 게 맞으니까. 되돌아오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다. 결국 꼬인 운명을 다시 굴려보는 셈이다.


[심연의 그림자(S) 선택]


내가 선택한 건 심연의 그림자. 발키리는 성별 제한에 걸리고, 군단형 특성은 은밀한 활동에 방해된다.


원래 이걸 먹었던 카자스는 딱히 도움 되는 놈도 방해되는 놈도 아닌 인물이었지만 통제하기 까다로운 놈이다. 내가 구상하는 미래에선 지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불멸 칭호를 가진 나는 무조건 전장에 난입해서 무쌍 찍어야 특성과 그 시너지를 제대로 낼 수 있었다.


“이건 또 언제 다 치워.”


한탄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상태창이 스르륵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내 몸에 기묘한 힘이 느껴졌지만 아직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지금은 고개 돌리는 것도 힘들다.


그러나 사방에 널브러진 핏물과 피투성이인 내 몸은 무조건 치워야 했다.


혹시라도 누구에게 걸리기라도 했다간 그걸로 모든 게 끝이다.



***



“황자님, 몸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그래. 이제 다 나았다.”


결국 여명이 밝아올 시간까지 피곤하고 무거운 몸으로 혼자서 화장실 청소하느라 개고생을 해야 했다.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이들은 내가 아파서 오전 내내 늦잠을 잔 걸로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지금에서야 십 수 명의 사람들이 내 방에 들어와서 청소와 정돈을 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내가 심혈을 기울여 청소한 화장실은 들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해진 일정을 진행해도 되는지요? 황자님의 몸이 편치 않아 밀린 일정이 적지 않습니다.”


헤르만은 어수선한 주변을 흘끔거리며 초조한 얼굴로 내 의사를 물었다. 다만 그 정해진 일정이란 별 것 없었다.


내가 이미 다 해봤던, 지식과 교양과 인성을 갖춘 황자로서 자라기 위한 각종 교육과 행사들이다.


처음이야 바닥이었던 내 평판을 되돌리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이 로판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내 미래를 위해 참 열심히 참여하고 그랬지만.


“...알아서 진행해.”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남은 시간이 몇 년 되지 않는데 무의미한 예법 공부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수업을 땡땡이치거나 보이콧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내 실력을 보여주고 적당히 월반하는 것뿐이었다.


‘아카데미까지 무시할 수는 없겠지.’


지금 내 상태에서 월반하면 정식으로 아카데미로 갈 수 있다.


첫 번째 작품, 로맨스 판타지의 주된 배경이 되는 그 아카데미는 일종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제국의 상류층과 재능 있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여주인공 마리아도 곧 그곳으로 온다. 그러면서 시한부 5년짜리인 이 로맨스 판타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사건 사고의 중심이 되는 마리아 그 여자를 포함, 내가 견제하거나 영입해야 할 사람들 다수도 그곳에 있으니 최대한 몸을 사리며 없는 듯 살았던 전과 달리 나는 더 적극적으로 그곳에 가서 사람들과 접촉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게 꼬이겠지만 감수할 작정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니까.


아무런 리스크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수업하는 사이 헤르만 너는 이 편지를 전달하도록 해.”


“어, 어떤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까?”


“거기 적혀 있잖아. 편지 내용은 별거 없어. 그냥 조만간 날을 잡고 가볍게 만나자는 거니까.”


헤르만에게 미리 써둔 두 장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하나는 지난 번 사냥 대회에서 우연히 보았던 미래의 S급 유망주 엘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또 하나는 헤르만은 누군지 전혀 모를, 마르코 베르너라는 이름을 가진 상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네가 직접 움직여서 되도록 은밀하게 전하도록 해. 괜히 시끄러워지는 것은 피하고 싶으니까. 알겠지?”


“알겠습니다.”


헤르만은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고작 편지 전하는 정도는 내가 지금까지 시킨 다른 막장스러운 일들에 비하면 양반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헤르만도 완전히 내 사람으로 편입해야 한다.


지금 헤르만은 보나마나 레온의 집사인 알베르에게 포섭되어 있는 상태일 텐데, 내 일거수일투족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눈치 보지 말고 할 일들이나 해.”


헤르만이 떠나자 주변에 있던 사용인들의 눈치가 더 심해졌다. 헛웃음을 흘린 나는 푹신한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약한 사람들 괴롭히면서 갑질 하는 거, 생각보다 딱히 즐겁지도 않고 손해 볼 일만 늘어나는 귀찮은 일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자님.”


그리고 수염을 단정히 정돈한 중후한 인상의 귀족이 찾아 온 건 그날 점심 식사 이후였다.


내 스승 중 한명, 로델 백작이었다.




[생활 퀘스트: 스승의 칭찬(1)]


[목표: 스승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기]


내가 접하게 된 헌터물의 시스템은 분명 단순한 싸움만으로 경험치를 얻게 하지는 않았다.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 헌터들 한정, 생활 퀘스트라 부르는 퀘스트를 주고 그 퀘스트를 달성할 경우 능력치를 보상으로 주었으니까.


그 생활 퀘스트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서 말 그대로 백인백색이라 부를 정도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존재했다.


바로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달성할 수 있는 사소한 업적을 달성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병사 출신인 자는 병장기를 100번 휘둘러야 한다던가, 상인 출신인 자는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던가.


‘애송이에게 어울리는 퀘스트로군.’


때문에 나는 지난 밤 있었던 각성의 여파로 내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창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삼켰다.


좋은 성적 받아서 선생에게 칭찬을 들으라니,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우면서도 딱 지금의 내 상황에 알맞은 퀘스트다.


“기분이 좋아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지난 3년간 황자님이 절 보고 웃으시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지금 기분이 좋기는 합니다.”


로델은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나를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긴 내가 빙의하기 전에는 이 수업에 제대로 임한 적이 전혀 없으니까.


공부하기 싫어하는 철부지에게 선생은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전의 내가 태도를 고치고 수업에 열심히 임하자 그가 얼마나 좋아했던가.


내용물은 대학까지 나온 어른이라 해도 생전 처음 보는 이세계의 학문을 익혀야 하는 내 배움이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기대치 0의 망나니 황자는 그냥 얌전히 앉아만 있어도 칭찬을 들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황자님의 기분이 좋으시다면 분명 오늘 배우실 내용도 쉽게 익히실 수 있을 겁니다.”


로델은 한층 부드러워진 말투와 인자해진 얼굴로 책들을 꺼내 책상 위에 늘여놓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야 지금 당장 저 책들의 내용을 줄줄 외우고 싶었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차분하게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굳이 내가 먼저 나서서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짧으면 이틀 길어도 사흘. 그 안에 로델이 먼저 내 실력을 알아보고 시험을 제안할 테니까.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퀘스트 보상이나 받아먹으면 그만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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