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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에서 헌터로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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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다땅
작품등록일 :
2024.06.27 16:17
최근연재일 :
2024.07.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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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59

작성
24.06.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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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되돌아오다(1)

DUMMY

1화-되돌아오다(1)


주제 모르고 까불다 죽는 흔하고 흔한 악역. 가진 건 혈통뿐이었던 건방진 망나니. 비참하게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던 그런 인간말종.


아무 잘못도 안 한 내가 그런 캐릭터의 몸으로 빙의했는데, 미쳤다고 비참한 최후가 정해진 그 길을 그대로 걷겠는가.


“황자님께서 달라지셨다지? 난동도 부리지 않으시고 술도 끊으시고.”


“그렇습니다. 얌전히 별궁에서 공부만 하신다고 합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평판을 바꿔야 했다.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폭풍의 눈 그 자체인 여주인공에게는 집적대기는커녕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왕실 내부의 권력 암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고, 원작대로 흘러갈 경우 최후의 승자가 될 황태자 옆에 찰싹 붙어서 목숨을 건졌다.


‘됐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은 안정적이고 편안한 인생이다. 경국지색 절세미인이라는 여주인공 따위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다.


그녀 말고도 미인은 많았고, 평판을 끌어올린 내 옆에는 알아서 그런 미인들이 찾아왔으니까.


내가 알고 있던 원작이 마무리 될 시점에선 제국의 황위에 오른 친형의 동생이자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재산으로 이 특별한 이세계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 하늘에 이변이!”


“폐하 어서 피하십시오!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빙의한 작품은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아무 의심 없이 로맨스 판타지라고 믿었던 작품 속에는 끔찍한 괴물들을 몰고 온 헌터물도 함께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또 다른 작품은 기존의 작품이 무난히 완결을 맞이했을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스템 가동]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괴물들에 제국 수도가 아비규환이 되었을 때, 나는 내 눈앞에 아른거리던 푸르스름한 창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



“황자님, 혹시...”


“아니, 괜찮으니까 나가봐도 돼.”


“예, 그럼.”


내 전담 집사 헤르만, 이 시점에서 아직 젊은 집사인 그는 눈치를 보더니 재빨리 방을 나갔다.


저런 반응은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면서도 익숙했다. 이 시절의 나는 아직 제대로 바뀌기 전이었으니까.


좀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더 빨리 마음 놓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무슨 번아웃이라도 온 건지 막상 이 시절로 돌아왔는데도 나는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소식도 듣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어쨌든 거의 5년 만에 겪어 보는 평화롭고 포근한 황궁에서의 일상이었다.


‘이제 충분해.’


하지만 이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지 않고 시간을 돌려 이 시점으로 돌아온 이상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면 결국 또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 아닌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덮친 재앙, 그 이후 펼쳐지는 지옥도.


이제 다 끝났겠구나 생각하고 편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던 내 계획은 그날 이후 다 박살났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었다. 제국도 황실도 모두 무너져 내리는데 황자고 뭐고 없었다.


그런 신분은 그저 과거의 잔재일 뿐. 새롭게 재편된 새로운 질서 아래 나는 일개 헌터로 전선에서 구르고 굴러야 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내가 그때 죽어서 지금 시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더 많이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명백히, 갑자기 찾아 온 새로운 세상에 제대로 대응하는데 실패했으니까.


“황자님...”


“내가 혼자 있겠다고 말 하지 않았나?”


그때 헤르만이 다시 문을 열고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있던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조금 날카로운 것은 몸에 스며든 습관 때문인 것 같았다.


이것도 꽤 오랜만이다. 이 몸에 남겨진 기억이 빙의한 나보다 더 강해서 나오는 반응 말이다.


문득 내가 지난 생에서 이 망가진 평판을 어떻게 복구했는지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지시했다. 문을 열라고 말이다.”


“혀, 형님.”


그러나 헤르만을 지나쳐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온 사람은 그 ‘불량한 상태’에서도 쉽게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아실리아 제국 황태자, 그리고 내가 빙의했던 첫 번째 작품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던 레온 단데르크.


로판 속 남주인공이 그대로 현실에 나온 완벽한 사람이다.


지금 시점에서도 다 커서 훤칠한 키를 가진 그와 마주한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되돌아 온 지난 일주일간 나는 내 방에 박혀 두문불출했기 때문에 그를 만나지 못했다.


따라서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그의 모습은 그가 죽기 전 모습이었다. 몰려 온 반역자들에게 맞서 황실의 마지막을 지키던, 마지막 황제로서의 모습을.




“사흘 전 내가 보낸 연락을 무시하고 답도 하지 않았더군. 그렇다면 지난달 네가 황궁 밖으로 나가 소란을 일으킨 건 네 잘못이라고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냐.”


“그건...”


그는 자기 앞에 서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눈으로 압박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굉장히 낯선 모습이었다.


처음 빙의했을 때 서둘러 평판을 끌어올리기 위해 태도를 바꾼 이후 그는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는 진짜 형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죽는 순간에도 나를 밖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애썼다. 덕분에 내 목숨이 1년 넘게 연장되었고.


“아닙니다. 제가 일주일간 몸이 좀 좋지 않아서...죄송합니다.”


뭐 처음 하는 일도 아니니 나는 그냥 순순히 사과하고 머리를 숙였다. 레온은 내가 자존심 세운다고 뺀질거리고 핑계 대는 걸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엔 충분했다.


“분명 지난 일주일, 내 말을 무시한 것뿐만 아니라 아예 궁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지. 몸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인 것 같군. 그럼 지금은 괜찮으냐.”


“예, 푹 쉬고 다 나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내가 순순히 고개를 숙이자 목소리가 조금 풀어졌다.


아직까지는 나이차이 나는 막내 동생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라, 노력하면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다음 주에 있을 사냥에는 나오도록 해라. 폐하께서 꼭 하셔야겠다고 하신다. 황실의 모든 식구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는 찾아온 김에 다음 주에 잡힌 일정에 대해 직접 전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기억나기 시작한다.


이번에 진행하는 황실 가족끼리의 사냥도 그렇고 이맘때쯤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은 역시나 이번에도 그대로 일어날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번 사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버지, 즉 현황제가 참여한 마지막 사냥이라는 것만 기억나는 걸로 봐서는 별 일 없이 넘어간 것 같다.


‘지난번엔 얌전히 쥐 죽은 듯 있었지. 흘러갈 사건들을 절대 건드리지 않으려고.’


작품을 통한 미래 지식은 그 당시, 낯선 세상에 빙의 당한 내 모든 밑천이었다.


어차피 나는 있든 없든 이야기 흐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삼류 악역이었기에, 내가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으면 내가 아는 대로 모든 사건이 흘렀다.


나는 그걸 지키려고 애썼다. 그걸 지켜야만 내가 필요한 순간마다 옳은 선택을 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멍청한 짓이었다.’


또 다른 미래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나마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만 알았다면, 그렇게 무력하게 쓸려나갔을 리가.


지금 시점은 내가 빙의한 직후. 즉 빙의한 첫 번째 작품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점이었다.


앞으로 5년 내에 첫 번째 작품이 마무리 된다. 여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사건사고들, 권력암투, 가벼운 내전 등이 전부 마무리 되고 황태자 레온이 정식으로 황제가 된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후 벌어진 5년의 시간은 이 세상이 단 한 번도 마주해보지 못한, 장르 자체가 다른 끔찍한 시간이다.


“혹시 지시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 나가봐. 오늘까진 깔끔하게 쉬겠다.”


나는 내 손등을 흘끔거리며 헤르만을 밖으로 내보냈다.


지금 내 오른손의 손등에 남은 희미한 흔적은 전생의 나는 이 시점에서 가지지 못한 것.


회귀의 각인, 확실히 내가 획득한 유일한 S급 각인의 값어치를 하는 물건이었다.




‘헌터물의 시스템은 이미 이 세상에 깃들어 있다.’


내가 멍하니 바라보는 이 회귀의 각인이 그 증거였다. 그 누구도 모르는, 오직 두 가지 세상에 대해 모두 알고 있던 나만이 알고 있던 아이템.


로판에 떨어진 빙의는 내 의사가 아니었지만 시간을 10년이나 되돌린 회귀는 순전히 내 능력으로 쟁취한 보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계획이 필요하겠는데.”


멍하니 중얼거린 나는 마침 책상 위에 있던 펜을 집어 들었다.


전생과 달리 이번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


사람들이 껄끄러워 하는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여차하면 무력충돌까지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일들을 아무런 보험과 장치 없이 대놓고 하다간 먼저 숙청당해 죽어버릴 수 있다.


안 그래도 이 몸은 태생이 악역이라 적이 많다. 내가 빙의한 지금 시점에도 이미 사람들 사이에선 여색을 밝히는 폭력적인 망나니로 소문이 나있는 게 나였다.


게다가 여차하면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기 딱 좋은, 계승권이 있는 황제의 차자라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 놈들을 다 묻어버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적지 않았다.


‘역시 헌터 각성이 먼저인가.’


검성이니, 권왕이니 대마법사니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상이지만 나는 아무런 힘도 없는 무능력자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허락된 힘이 있다. 본디 이 로맨스 판타지 세상에서는 일부에게만 허락된 마나라는 힘을 대체하는 새로운 힘.


주제도 모르고 이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반역자들을 양성한 그 힘은 분명 무궁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마저도 별 재능이 없어 나는 헌터가 된 이후로도 하급을 전전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직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것들을 선점할 권리가 생긴 것이다.


“이게 다 얼마야.”


상상만 해도 히죽 히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일단 종이에 내가 기억하는 정보들을 적어 내렸다.


재능 없는 하급 헌터였지만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주워듣고 직접 본 게 적지 않았다. 그것들 중 하나만 내 손에 있었으면 어떨까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그런 힘들이 들어가선 안 되는 놈들, 나처럼 힘이 부족해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이들, 그들 모두 내가 재조정 해줄 수 있다.


상당히 오랜만에 한글을 꺼내 적었다. 이제 이건 오직 나만이 읽을 수 있는 암호문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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