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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아키로스-라쿠이 노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Juyep
작품등록일 :
2016.01.03 14:01
최근연재일 :
2017.08.07 18:17
연재수 :
1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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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글자수 :
80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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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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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재판-3.

DUMMY

문정유가 들은 그의 대답은 더욱 복잡했다.


“그건 자신과 손잡은 마피아인 마우저 때문이죠. 마우저는 이미 사장님과 협력한 노이바우의 언론 공세에 지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언론사까지 자회사로 삼아 양지로 나오려 하는 노이바우와 달리 마우저는 건설과 조선업계에 진출하긴 했지만 여전히 음지에 가깝습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미화시킬 회사를 가지지 못했으니 언론 공세에 무척 취약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일을 미연에 막지 못한 이제만에게 큰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와 봤자 보복당할 것이기 때문에 그냥 감옥행을 택하겠단 거야?”


그는 어이가 없었다. 마피아들의 특성상 이런 이들을 가만두지 않고 우주 공간에 처박아 버리거나 수장시키는 행위는 빈번했지만, 이미 마피아에 물들지 않은 다른 기업 회장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이 조직이 아주 만만해 보일 정도로 작다면 그럴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음지에서 노이바우와 함께 양대 파벌을 이루고 있는 조직이 마우저입니다. 보호를 해 주겠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보호를 뚫고 교묘하게 그를 잡아갈지도 모릅니다. 그 조직의 힘을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마피아들은 감옥 내에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사람을 시키면 될 텐데?”


“마우저의 수감자 중 하나가 자기 조직에 대한 비밀을 아는 대로 떠벌린 이후 수감자는 무조건 파문시키는 룰이 생겨서 괜찮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조직원이 아니에요.”


이미 조직 내 돌아가는 일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텐데 꼬리 잘라 봐야 뭐하나 하는 점이 걸렸지만, 이제만 입장에서는 감옥살이 중 피를 볼 일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테니 나쁘지는 않겠다는 판단을 했으리라고 문정유는 생각했다.


“게다가 일단 돈 좀 있고 경찰 고위층과도 아니까 편하게는 살겠군.”


“또 한 가지가 있는데, 하숨에서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하숨에 지어 놓은 감옥에 들어갑니다. 워낙 커서 수감자가 가능 수감인원의 5분의 1밖에 안 되니 바로 들어가겠죠. 게다가 여긴 경찰들과 법조인이 우글대니 마피아라도 침투할 생각을 못합니다.”


“감옥생활이 차라리 낫다니···마피아는 그런 인간들이군.”


“맞습니다. 겪어본 인간만이 압니다. 그러니 웬만하면 이익을 위해서라도 손잡으면 안 됩니다.”


문정유는 점점 낮아지는 그 목소리를 듣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이틀 전 마지막 모습처럼 모자를 써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모자 챙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것은 처음의 씩 웃는 얼굴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뭐, 좋아. 많은 정보를 가져와서 고맙군. 7만 마의 보수라면 만족하겠나?”


“오. 2만 더 얹어 주시는 겁니까? 저야 고맙죠!”


문정유의 팁에 언제 그랬냐는 듯, 청년은 진지한 눈빛을 거두고 환호했다. 문정유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벽에 기대 앉아 그가 대화 장소인 뒷골목을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이제만의 의중을 파악한 문정유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우선 이제만이 자기 자신의 방어에 대한 큰 의지라 없다는 걸 알았으니 그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은 필요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신 그가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방어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우린 법정에서 방어 측에 서야 할 겁니다. 이럴 때 뭐가 가장 필요하죠?”


접견 온 스기하라는 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상대방이 내놓은 증거에 답하는 것입니다. 공격할 때는 선제가 좋지만 방어할 때는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해야 하니 후공이 유리하죠.”


“일단 증거를 내어 반박당하는 것보단 증거를 낸 쪽을 반박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란 말이지.”


“그렇죠. 멋모르고 내지르는 주먹은 맞지도 않을 뿐더러 상대방에게 역공당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문정유는 스기하라와 함께 '증거를 반박하는 연습' 이란 제목의 훈련을 시작해야 했다. 스기하라가 검사가 되어 물으면 문정유가 답하는 방식이었다.


“피고인은 지금 사내의 정치 투쟁을 위해 마피아를 끌어들인 사실이 있죠?”


“아닙니다. 이는 이제만 이사의 횡포를 알리기 위해 언론사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생긴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언론사와 마피아는 한패였습니다.”


“그럼, 피고인은 대체 왜 이제만의 횡포를 알고도 방치한 겁니까? 사장으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제만은 서류상으로 행성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저를 속였고, 여러 핑계를 대어 제가 행성에 오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저는 사기극의 피해자입니다.”


실제 법정에서의 대화보다 조금 조잡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당장 이 좁은 방 안에서 동원 가능한 방법을 모두 써서 법정을 흉내내려 했다. 도중에 담당자가 미처 닫아두지 못한 창문 너머로 살짝 보고 비웃음인지 한심하다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짓긴 했지만 문정유는 그것도 곧 잊고 연습에 몰두했다.


그렇게 30분 넘게 온갖 질문과 유도신문까지 받아낸 문정유는 이내 접견 시간이 다 된 스기하라를 배웅해 주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물론 그래봤자 할 일도 없었기에 별 의미도 없이 법의 사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다음 외출 시간이 될 때까지 문정유는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를 반복적인 패턴 생활을 해야 했다. 잠, 씻기, 사본 들여다보기,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운동, 그리고 가끔 외출이라는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은 그에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두고 담당자와 말해 보아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쨌든 기소 상태인 지금은 자유를 제한받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문정유는 계속해서 실망했지만, 동시에 이곳에서 반드시 무죄를 받아 빠져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지금 상황도 이렇게 좋지 않은데 유죄 판결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 공포를 느끼고 싶지 않았던 문정유는 더욱 무죄 판결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런 생활을 일주일 가까이 한 결과, 재판까지는 이제 겨우 4일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동안 접견도 여러 번 했고, 첩보원 노릇을 했던 청년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도 입수한 그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만 쪽의 국선 변호사를 지켜봤는데, 이 사람 역시 국선이기도 하고, 또 이게 이 행성의 마지막 재판이라서 의욕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이제만 본인도 그렇고, 때문에 운이 좋다면 1심에서 재판이 멈출 수도 있겠어요.”


“게다가 그 사람은 내가 피고인 재판에는 아예 오지도 않지?”


“그렇죠. 형사재판이니까. 그러다 보니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할 일이 적기도 해요.”


“지금 상황에서 변호사는 변수가 되기 어렵다는 거군. 역시 고맙다.”


“저야 값을 하는 것뿐이죠.”


문정유는 청년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변호사를 (물론 후불하겠다는 조건을 붙여서) 매수해 볼까도 생각했다. 물론 자신이 아무리 무죄에 매달린다고 해도 이런 술수까지 쓸 필요는 없었고, 이제 점점 유죄를 받을 확률도 줄어가고 있으니 의미 있는 짓은 아니었다.


재판까지 3일 남은 날, 마지막 변호사 접견일에 그는 스기하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저 메릴에서 일한다는 친구와 변호사님이 아는 사이죠?”


“네. 물론 이름이나 기타 인적사항은 모릅니다.”


“아는 사이라면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곤란한 것만 아니라면···.”


스기하라가 괜찮다는 듯이 나오자 문정유는 청년이 도대체 무슨 방법을 통해 그런 정보들을 얻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도 알려고 했으나 그 녀석은 언제나 그걸 눈치채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건 알려고 하면 안 됩니다. 범죄와 연관이 있는 겁니다.’ 라고요.”


그는 청년이 한때 마피아의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든 그곳에 들어갔고, 정보통 역할을 맡아 실력이 저렇게 성장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녀석은 자기 일처리 방식을 아주 신뢰하는 듯해서,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 일을 뺏길 게 두려운지 밝혀지기 싫은 비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알겠습니다.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이라면 사과하겠습니다.”


결국 문정유는 그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만을 안은 채 그의 일면에 대해 추리해야 했다. 하루 종일 재판 관련 일에만 매달리는 그에게는 그런 추리도 갇혀 있는 단칸방의 생활에 재미를 더해 주었지만, 풀려고 해도 비밀만 계속 나오는 터라 괴로울 정도로 답이 안 보이기도 했다.


변호사가 더 이상 도울 수 없는 마지막 3일은 그렇게 빠르게 소비되었다.




법 공부 아니면 추리로 3일을 보낸 후, 결국에는 1심의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3일 동안 스기하라 변호사는 물론이고 관서인 역시 찾아오지 않았다. 관서인은 전문가인 변호사가 오지 않는다면 자기도 도움이 별로 될 수 없을 거라며 증인으로서의 자기 일에 충실해지려 했다.


“문정유 씨, 오늘이 무슨 일인지 아시겠죠?”


“압니다. 제가 무죄로 결론이 나고 이 행성에서 나갈 수 있는 날이죠.”


문정유는 자신의 목표를 너무 빨리 발설해 버렸고, 덕분에 담당자는 오랜만에 다시 픽 웃게 되었다.


“무죄 판결이 나온다 할지라도 하루 뒤에 나와야 합니다. 판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지금 가면 저녁때나 나올 테고, 게다가 그 뒤의 각종 서류 작업, 이 사람은 무고하다는 증명서 제출, 그리고 지금 이 숙소 정리까지 하다 보면 금방 밤입니다. 오늘까지만 주무십시오.”


“그래야겠군. 그리고 사실 나도 100% 무죄를 확신할 수는 없지요. 뭐라 해도 변명이 안 될 내 잘못도 있으니.”


“그러십니까. 재판에서 봅시다!”


그러면서 담당자는 그를 1심 법정으로 가는 버스에 태웠다. 하숨 행성의 특성상 1심 지방법원과 2심 고등법원이 모두 붙어 있었기에 그는 설혹 2심에 걸린다 하더라도 똑같은 루트로 법원에 들어갈 운명이었다.


“2심까지 가지는 않기를 바랍니다만, 그 때가 되더라도 제가 당신을 모시게 될 겁니다. 되도록 여기서 끝내십시오.”


자기 일이 많아지는 것이 싫다는 것을 분명히 한 담당자는 그에게 창밖의 법원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정말로 모든 면이 유리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짜 유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건물을 굳이 유리로 덮은 이유가 뭐지? 자신들의 법정 모습을 모두 보여줄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그의 중얼거림대로, 저 유리건물은 정말로 내부가 비쳐 보였다. 심지어 재판을 위한 재판원까지도.


“···그렇게 자신있어 보이지 않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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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재판-5. 17.07.28 368 0 12쪽
147 재판-4. 17.07.25 6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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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재판-1. 17.07.19 6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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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3-44. 17.07.01 7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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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3-38. 17.06.18 48 0 11쪽
128 3-37. 17.06.15 77 0 11쪽
127 3-36. 17.06.13 73 0 12쪽
126 3-35. 17.06.11 8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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