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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아키로스-라쿠이 노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Juyep
작품등록일 :
2016.01.03 14:01
최근연재일 :
2017.08.07 18:17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46,193
추천수 :
73
글자수 :
803,544

작성
17.07.11 21:25
조회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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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4.

DUMMY

“도대체 주위에 얼마나 그런 사람들이 많은 거야?”


이미 주엽의 폭로와 문정유의 고백으로 인해 이 일에 마피아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지어 자기와 직접 대화도 하고 영상도 찍은 사람이 마피아였다는 것이 드러났기에 충격이 더 컸다. 게다가 이들은 (자칭이긴 해도) 독일 제일의 언론사였다. 이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범죄조직에 얽혔다는 것은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겠어. 바로 옆의 인간을 믿지 못한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마피아와의 손잡기는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기는 하죠. 그런데 이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대요. 어쩌죠?”


“글쎄, 없지만은 않을 텐데···.”


그러나 대책을 강구하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힘이 없는 존재였다. 노동조합은 자력으로 우주선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통신탑으로 목소리만 전해 줄 수 있을 뿐이었다. 91.3 헤르츠의 KLTV는 특종을 잡았다고 기뻐하기는 했지만 정작 그 이후의 후속 대처가 없었다. 뭔가 압력을 받았든가 한 게 분명했다.


이렇게 노동조합은 행성 내 본관 구역 하나만큼은 꽉 잡고 있는 존재였지만,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상 결국 아키로스 안 노조밖에 되지 못했다. 게다가 확실히 노동조합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곳은 단 두 군데에 불과했다.


“없지만은 않을 테지만, 힘들지.”


“그게 우리의 현실적 한계겠죠.”


주엽은 자신들의 처지를 한껏 한탄했다.


“외부의 도움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우주선을 대령할 수도 없으며, 통신할 수는 있어도 전적으로 상대방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해서 행성을 하나 통째로 점령한 것도 아닌, 정말 힘없는 단체군요.”


다소 과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에는 틀린 것 하나 없었다. 그렇기에 윤구철이 느끼는 감정은 더 착잡해졌다.


“뭔가 우리가 대단한 인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좋았지. 하지만 어린애도 아니고 동심에만 빠져 살 건 아니잖아. 우린 어른이야.”


“맞아요. 아이들은 흔히 어른이 더럽다고들 하는데, 정말이네요. 정말 기분 나쁜 건,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똑같다는 거.”


“어른들이 왜 그걸 보고 버럭하겠냐. 다 찔려서 그러는 거지.”


그렇게 자기혐오에 빠진 그들은 한참 포기조의 말만을 내뱉었다. 윤구철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이러고 있을 바에야 좀 더 현실적인 일을 하자고 했을 때도 주엽은 냉소적이었다.


“현실적이라면, 타협을 이야기한다고 봐도 괜찮겠죠?”


“뭐, 그렇게 생각해라. 나도 이것 이상의 좋은 답을 못 내놓겠다.”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우리 잘못은 아니니까요.”


“우리 잘못이 아니라, 과연 그럴까? 우리야 아니라고 적극 부정하겠지만, 세상에는 힘없는 그 자체를 죄라고 보는 놈들이 많거든.”


“그리고 대개 힘 센 인간들이 그러죠. 그러니까 먹히는 말이 된 거고.”


“이것 참. 이러다가 또 말이 늘어지겠군. 끝내자. 우리, 너무 영웅이 되지는 말자고. 현실적인, 그러니까 하찮은 일에서라도 잘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사장님이 돌아온다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잖아.”


윤구철은 애써 마피아의 이미지를 지우려 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기기만에 가까웠다. 이미 데이나와 그 부하들이 마피아의 심장부라는 것을 알고도 그녀를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그는 책임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일이 실패했을 때만의 책임이었다.


“자, 이제부터 우린 공범이다. 이 뉴스기사 작성에, 다큐 촬영에 최선을 다해라. 거짓 정보가 완연히 퍼지도록! 우리의 프로파간다가 저 멀리 지구에 닿도록!”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윤구철은 아무도 안 들으리라 생각하고 마음껏 외쳤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의 한계지.”


“뭐야, 말이 돼? 언제부터 니가 한계를 알았어? 그걸 알아도 부수고 지나가는 사람 아니었어? 그랬잖아?”


윤구철이 그 자리에서 몇 걸음 안 가 외친 내용을 들은 설희는 그렇게 반응했다. 주엽은 윤구철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듣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먼저 돌아오는 길에 엿듣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아무튼, 이 말은 좀 비밀로 해줘. 예전에 사장님이 마피아와 결탁해 있다는 걸 아니까 공개 사과를 하고도 그 난리가 났잖아. 이번만 숨기자. 이번에 촬영 온 인원들까지 그걸 알게 되었다가는 여기는 끝이야.”


“너, 행동하는 거 마음에 안 드는 거 알아? 언제 이리 현실적인 어른이 됐어?”


“알아. 그런데 언제까지만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지낼 수는 없으니까. 세월이 지나고 여러 한계를 보기 시작하니 이렇게 변하네. 맞아. 이런 걸 숨긴다는 건 한 반년 전의 나도 반대했겠지. 근데 지금은 아냐.”


“많이 닳았구나. 여러 가지로.”


설희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지금의 너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주엽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바위는 풍파에 그렇게 잘 버티는 존재가 아냐.”


그렇게 정리한 주엽은 윤구철이 오는 기척이 들리자 설희에게 먼저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 그리고 비밀은 지켜 줘.”


“알겠어. 현실적인 어른이.”


설희는 여전히 탐탁찮다는 말투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해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역시, 설희도 슬슬 한계를 느낀 것이다.


“먼저 가지 그랬어?”


“그래도 놔두고 가기는 뭣해서요.”


“그렇지?”


설희가 떠나고 조금 뒤 윤구철이 주엽의 뒤에서 말했으나, 이미 설희는 주엽의 시야에서 사라진 때였기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윤구철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여기요. 각자의 이름이 쓰인 거니까 불러 주면 하나씩 받아 가요.”


데이나가 인터뷰 용지를 종이상자 하나에 가득 채워서 들고 온 것은 해가 떨어질락 말락 할 때나 되어서였다. 기다리던 도중 일부 인원들은 내용을 지금부터 만들어 오는 거 아니냐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녀가 들고 온 서류뭉치는 무게가 꽤 나가 보여서 그런 말이 더더욱 많이 오가게 되었다.


“여기 3번대 분들은 전원 한 줄씩이라도 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혹시 문제 있으신 분?”


물론 불만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녀의 비밀을 아는 셋은 슬그머니 웃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순서대로 윤구철 씨, 주엽 씨, 김동오 씨, 주설희 씨, 이치세 타카하시 씨, 황인지 씨입니다. 내용에 문제가 있거나 하면 지금 말씀해 주세요. 지금은 안 되겠지만, 나중에 수정이 들어갈 겁니다. 촬영 재개는 내일이니까 그때까지는 가능해요.”


“이거, 그렇게 빨리 처리가 됩니까?”


“금방 끝나기도 하고, 며칠 걸리기도 하는데, 지금은 사정이 이러니 어쩔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줄여야죠.”


“그럼 불만은 없습니다.”


“저도요. 늑장피울 수도 없으니. 근데 제 성은 어떻게 안 겁니까?”


황인지와 타카하시는 아주 간단하게 내용을 훑더니 그렇게 말했다. 타카하시는 인터뷰 내용 수정보다는 자기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해명을 먼저 요구했으나 그것은 그저 감독관 명부를 찾아보기만 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입을 다물었다.


주엽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 내용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일단 마피아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상 뭘 하더라도 약간의 의심을 해 봐야 했다.


인터뷰 3번.


에르빈 기자 (이하 기자) : 청년으로서 이 일에 많이 힘든 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주엽 : 힘든 점이 있었으나 그래도 잘 해 와서 괜찮다고 한다.


기자 : 중간에 마피아 등의 불법 조직과도 대치했다는데?


주엽 : 그래도 전툴 기지의 직원 분들이 자신을 잘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기자 : 마피아와 정면으로 대치했는데 피해는 없었습니까?


주엽 : 상당했다고 한다. 전툴 기지의 직원들이 죽었고, 총격이 벌어져 건물의 피해도 일어났다고 말한다.


기자 : 상황이 어땠습니까? 두렵지 않았습니까?


주엽 : 그렇다고 하되, 그래도 빠른 대처로 잘 끝났다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1페이지의 내용이었다. 그는 적혀진 글을 읽었으나, 이해하지는 않았다. 인터뷰 한 줄 한 줄에서 그들의 의도가 드러나 있었다.


‘자기 오빠의 활약을 칭찬하고, 상대 조직의 피해를 부각한다라······. 곤란한데. 게다가 내가 말하는 부분은 왜 이렇게 쓰여 있어? 말을 만들어 내서라도 찬양하라는 말이냐?’


주엽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 2페이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지 뻔하다고 판단하여 읽지도 않았다.


“문제 있으신 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러고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주엽 바로 옆의 윤구철조차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조용히 있었다.


“그럼 다음 번대로 가보겠습니다. 뭔가 이상 있다면 최대한 1시간 내로 이야기해 주세요.”


“에르빈 기자님이 나오시는군요.”


“맞아요. 아마 이게 부국장 승진하기 전 마지막 취재일 걸요? 지금은 옆 숙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용지를 돌리고 있겠죠.”


“그렇습니까.”


그것을 끝으로 주엽은 입을 닫았고, 데이나는 더 답해줄 상대가 없음을 확인하고 2번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데이나 일행이 나가고 조금 뒤, 옆방으로 향하는 발소리조차 없어지자 설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떻게 성을 안 거지?”


“주설희? 나랑 똑같았네?”


“맞아. 근데 안 어울려서 이러고 있었지.”


“것 참, 왜 그런 거를 해서.”


그는 겉으로는 성씨 하나 때문에 툴툴거렸지만 속내는 아니었다. 해괴한 인터뷰 내용을 그저 사소한 성씨 문제로 넘겨 버리는 것에 가까웠다.


“뭐 그런 건 됐고, 그것보다 이건 좀 노골적인데?”


윤구철이 본 문제를 지적하자 주엽이 기다렸다며 바로 답했다.


“맞죠. 이거 좀 심한 것 같은데?”


“아냐. 나는 괜찮게 쓰여 있어. 두 사람이 무슨 내용을 받았길래 그런 건데?”


“여기요.”


황인지가 딴지를 걸자 주엽은 서로 인터뷰 용지를 교환했다. 정말로 그의 인터뷰 용지에는 나이가 있는데 힘들지 않느냐, 구체적으로 무엇을 당했느냐, 혹시 이전의 일터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느냐 등의 평범한 질문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네 건 좀 이상하긴 하군. 뭘까?”


“주엽이뿐만 아니라 저도 그렇습니다.”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뭘 받은 거에요?”


결국 용지는 황인지의 손에서 설희의 손까지 옮겨갔다. 그리고 설희의 입에서도 똑같이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정말 우리 둘만 그렇네요. 왤까요?”


주엽은 뭐라 더 말하려다가 순간 흠칫했다. 혹시 데이나가 자기의 비밀을 하는 사람인 둘에게만 이런 속내가 드러나는 것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희는 오늘에야 그것을 엿듣고 알았기 때문에 제외라고 하면 말이 들어맞았다.


‘근데, 의도라면 왜? 경고인가?’


아직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태여서 확신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런 불안한 상황일수록 그의 상상력은 더욱 불안한 방향으로 증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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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재판-7. 17.08.01 68 0 12쪽
149 재판-6. 17.07.31 68 0 12쪽
148 재판-5. 17.07.28 368 0 12쪽
147 재판-4. 17.07.25 63 0 11쪽
146 재판-3. 17.07.23 102 0 11쪽
145 재판-2. 17.07.22 67 0 12쪽
144 재판-1. 17.07.19 65 0 11쪽
143 4-7. 17.07.17 79 0 5쪽
142 4-6. 17.07.16 75 0 12쪽
141 4-5. 17.07.13 77 0 11쪽
» 4-4. 17.07.11 372 0 12쪽
139 4-3. 17.07.09 70 0 11쪽
138 4-2. 17.07.07 587 0 12쪽
137 4-1. 17.07.05 59 0 13쪽
136 3-45. 17.07.03 74 0 12쪽
135 3-44. 17.07.01 73 0 12쪽
134 3-43. 17.06.28 6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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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3-38. 17.06.18 48 0 11쪽
128 3-37. 17.06.15 77 0 11쪽
127 3-36. 17.06.13 73 0 12쪽
126 3-35. 17.06.11 85 0 12쪽
125 3-34. 17.06.09 84 0 11쪽
124 3-33. 17.06.07 2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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