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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아키로스-라쿠이 노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Juyep
작품등록일 :
2016.01.03 14:01
최근연재일 :
2017.08.07 18:17
연재수 :
1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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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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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글자수 :
80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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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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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44.

DUMMY

진인환의 감독관측과 박미관의 노동자측이 기적적으로 통합한 것처럼 정경석과 윤구철의 통합도 이루어낸다. 주엽이 하는 생각이 늘 그렇듯이 뼈대만 있는 상상은 점점 살이 붙어 그의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감독관들을 활용하려면, 일단 저쪽에서 하듯이 현장노동자와 감독관이 동등한 노동자라는 것을 인식시켜 줘야겠지? 그런데 저 화물칸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할까?’


그나마 고분고분 짐을 날라다 준 전 감독관 일부는 주엽 뒤쪽의 좌석에 앉기도 했지만, 반항하는 기색이 있거나 애초부터 참여를 하지 않은 경우엔 그냥 하던 대로 화물칸에 싣고 갔다.


‘저렇게 짐짝처럼 취급한다고 나중에 반항적으로 나온다던가 하면 큰일인데. 대우를 조금 좋게 해 주면 달라지려나?’


그가 전 감독관들을 노조에 융화시킬 방법을 궁리하고 있던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윤구철이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아, 왜요?”


“지금의 전 감독관들은 우리와 타협을 할 생각이 없다시피 해. 당신들은 그럴 생각 있소?”


윤구철이 역시 자기 뒤에 있던 그들을 슥 바라보며 묻자 그들은 덤덤하게 말했다. 주엽에게 말할 때만 해도 반말이었던 것이 어느새 공손한 말투로 바뀌어 있었다.


“있긴 합니다. 보복을 이유로 불평등한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타협할 생각이 있다면 차별할 의향은 없고. 정경석 같은 당신들 상사에 대해서는? 당신들은 몰라도 상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참. 지금 그 인간이 어디 상사라고. 상사라는 인간이 그렇게 옹졸하게 행동한답니까?”


“흠. 알겠습니다.”


주엽은 자신에게 욕을 날리던 인간이 저러는 이유는 순전히 윤구철이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윤구철이 대표라 잘 보여야 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의견이 저렇다면 일부를 상대로 협동을 할 수는 있겠지. 근데 가장 중요할 인물인 정경석의 의견은 정 반대야. 뭐 믿고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참, 이제 우리도 상사로 안 보는데 그냥 놔두면 안 됩니까? 알아서 뜯어먹으라고.”


“아니, 자기 상사조차 그렇게 거칠게 뿌리치는데 우리라고 안 그럴까. 특히 비상 상황에서는. 정경석이 나쁜 건 알겠지만, 옛날부터 그런 불만을 가진 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움직이면 안 된는 겁니다. 당신들 바로 앞줄 오른쪽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은 뭐가 되는 겁니까?”


앞줄 오른쪽 세 번째는 곧 타카하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게다가 주엽은 구정현 역시 원래 감독관을 지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타카하시 씨는 어떻게 해서 노측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 겁니까?”


질문을 받은 타카하시는 무성의하게 머리를 검지로 콕콕 두드리다 대답했다.


“음...일단 노측이란 그 말부터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만? 당신의 노측이란 그 단어는 현장의 노동자분들만을 말하는 거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거부감이 드는 겁니다. 우리는 노동자 아닙니까?”


“예?”


“어휴. 잘 생각해 보세요. 그 왜 감독관 휴게실에 보면 컴퓨터 있잖아요. 그걸로 노동자의 정의가 뭔지 검색하라고요. 본관 컴퓨터로 뭐 했어요? 탁탁···”


“그만! 아무리 남자들끼리라도 그런 말은 관둬. 어쨌든 알아보면 되잖아. 아, 아니 알아보면 되지 않습니까.”


예상치도 못한 단어 선정에 두 명의 전 감독관은 당황하고, 윤구철은 표정이 굳었으며, 주엽과 경호대원들은 킬킬거렸다. 그렇게 중요한지 쓸모없는지 모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우주선은 계속해서 그들의 보금자리로 나아가고 있었다.




비행장에 도착한 이후로도 감독관들의 행동은 묵묵한 반항과 묵묵한 협조 두 가지로 나뉘었다. 윤구철은 적극적인 협력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주엽은 적극적인 반항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나마 안 까부는 게 다행인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구슬리는가가 제일 중요하죠. 아무래도 같은 책임관이라고 성격도 같지는 않을 테니.”


“그렇기는 해. 정경석이는 어떻게 됐냐?”


“질 씨의 말로는 결국 창고에 다시 갖다 놨다 하네요.”


“정말로?”


“지금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안 거죠. 언제쯤 협조할지 모르는데 일단 가둬 놓자는 거 아닐까요?”


윤구철은 수염 난 턱에 손을 가져다대며 생각하더니 의외의 말을 꺼냈다.


“음...가두는 것 대신 놓아줘 버리면 어떨까?”


“놓아줘요?”


주엽은 그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윤구철이 이 문제에서 가장 강경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음을 생각하면 그의 입에서 거저 자유를 주겠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당장 주엽이 온건하게 나가자고 해도 그의 머리 상처를 가리키며 널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구냐고 말하던 그였기에 주엽은 갑자기 왜 그러느냐며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냐니. 그렇게 놓아주면 우리가 더 신경쓸 것도 없잖아. 그 인간은 자유를 누리는 거고 우리는 그 인간에게 더 이상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고 말야.”


“하,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어요?”


“그럼 다른 게 나오리?”


윤구철은 정말 액면 그대로 정경석을 ‘놓아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말이 놓아주는 것이지 실상 쫓아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 인간이 야생동물도 아닌데요?”


“야생동물은 민가에 내려와 민폐를 끼치지는 않잖아. 그리고 자기도 그게 정 싫다면 협조하겠지. 주엽아, 진인환 씨에게 했던 기대를 그 인간에게도 하지는 말자.”


“그런가요.”


역시 주엽의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존재했다.


“자자, 힘 빼지 말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다 옮겨 놨으니 이제 이 일도 성공이야. 축배를 들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니 애인에게 자랑할 정도는 되지 않냐.”


“네.”


결국 그의 등쌀에 밀려 주엽은 3번대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3번대의 모든 식구(+타카하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위원장님은 또 성공하셨네요.”


“맞아. 벼랑 끝까지 몰린 채 성공하기는 했지만.”


김동오가 두 사람 몫의 도시락 팩을 뜯어 각 자리에 가져다주었다.


“이거, 다른 사람들은 먼저 먹은 건가.”


“네.”


“서러워서 어쩌나. 내가 식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먼저 먹다니. 이거 그냥 동료고 선배라고 해야 하나?”


윤구철이 웃으며 김동오의 어깨를 팔로 감싸자 그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위원장님 말마따나 벼랑 끝까지, 그러니까 굶기 직전까지 간 사람들이니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실 수 있겠죠?”


그러나 윤구철은 딱 잘라 말했다.


“아니. 나는 가고 오는 동안 아주 조금의 음식밖에 못 먹었어. 그쪽 노동자들이 대접해 준 먹을 것 약간 이외에는 아무것도 입에 못 댔거든.”


“정말요? 뭘 먹은 겁니까?”


“진짜 과일을 갈아 만든 과일주스지!”


“예?! 우리보다 더 호강한 거 아닙니까?”


“근데 그거 이외에는 과자 조금밖에 못 먹었어. ‘밀가루’ 와 ‘천연 버터’를 섞어서 만든!”


“뭡니까!”


그에게 어깨를 잡힌 김동오가 그렇게 소리쳤다. 확실히 주엽이 주스를 처음 보고 느낀 감상처럼, 이곳에서는 그런 진짜 과즙이 듬뿍 섞인 주스나 제대로 반죽한 과자, 빵 등은 입에 대기 불가능했다.


“아니, 위원장 달았다고 그래도 되는가? 나는 그거 20년동안 입에 댄 적이 딱 한 번밖에 없었어! 옛날 매점에도 그런 건 없었잖아!”


둘의 입호강 소식에 제일 연장자인 황인지까지 버럭했다. 그나마 주엽은 그때 얻어온 과자를 어렵사리 주머니에 넣었다가 설희에게 몰래 줘서 입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코셔 클럽에서 주는 음식엔 그런 물품이 있으니까요. 팩 내부를 봤을 텐데?”


“아, 그래서 그렇게 먹을 만한 거였군!”


“앞으로는 보기 힘들기는 해도 가끔 그런 걸 먹을 수 있을 겁니다. 보급형인 만큼 약간 질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좋겠군. 그쪽 노동자들은 호강한 거잖나.”


황인지가 그렇게 말하자 윤구철은 한숨을 쉬었다. 주엽 역시 그 말을 듣고 적응이란 게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2개월 전 윤구철이 정경석에게 주먹을 날려 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서늘한 아키로스의 기후에서도 땀샤워를 해야 할 정도로 상당한 강도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장에서 대충 합성물로 찍어낸 부실한 음식물들이었다. 건조시켰다가 물에 불려 먹는 밥, 마찬가지로 건더기를 대충 물에 넣고 끓이는 국물 등 레토르트 식품들이 주를 이뤘으며 과일이나 생고기는 보지도 못했다.


당연히 그런 중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문제였다. 설령 식사로 지급할 수 없다면 돈을 모아서라도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일터에서 보수랍시고 지급되는 돈은 국제 표준인 마화가 아닌 훨씬 옛날의 원화였다.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측에서 대우를 잘해주지 않아요.”


“그 말도 맞다. 우리가 이런 거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해야지.”


“그렇죠.”


다행히도 황인지는 그런 것에 적응하지는 않은 듯했다.


“앞으로는 이런 걸 당연하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듭시다. 그러자고 노동조합이 있는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못한 것을 당연하게...”


“자자, 들기나 해!”


윤구철이 설교조의 말을 하려 하자 황인지가 급하게 두 사람의 도시락을 안겨주었다. 둘은 웃으며 진짜 고기의 맛과 진짜 저민 과일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주엽이는 뭐 이 뒤에 일정 없나? 없으면 같이 창고 정리하러 가자.”


“아,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요.”


모두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설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것이 아님을 극구 부인하고는, 자기 몫의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하러 갈 거라며 밖으로 나갔다.


3호 내국인 숙소를 나온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했다. 건물 주변을 서성이는 이는 자신뿐이라는 확신이 서자 즉각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일이 있다고 하고 나갔다가 오기에는 본관은 절대 여유롭게 갔다 올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땅에 깔려진 얼마 안 되는 아스팔트 도로변을 따라서 질주하면 되는 일이라 거리에 비해서 복잡하지는 않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주엽이 외길에 가까운 포장도로와 양 옆으로 늘어선 미완성 건물을 지날 때도, 이제 일을 하지 않는 탓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중장비들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갈 때도, 본관 300m 앞의 유일하게 교차로라고 부를 수 있을 곳까지 와서 겨우 숨을 돌리고 있을 때도 아무런 부름이나 제지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키로스의 본관 구역은 이제 돌아가지 않는 작업장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그를 알아봐 준 것은 경호대 3분대장 켈트럽이었다. 그는 주엽이 교차로를 건너 본관으로 뛰어오는 것을 보고 그의 쪽으로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가장 먼저 물었다.


“이렇게 헐레벌떡 뛰어오는 걸 보니 급한 일 같은데, 도와드릴까요?”


“아니오. 도움을 받아야 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급하긴 한데, 중요하지는 않아요.”


물론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정확하게는 급하면서 중요한 일, 하지만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 일단은 들어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서늘한 날씨에도 땀 한 방울을 똑 흘리면서 그는 켈트럽의 허락 하에 건물 내로 입장했다.


본관 내에는 경호대원들이 이따금씩 보안을 지키고자 서 있었기에 마구 내달리지는 못하고, 종종걸음만 쳐야 했다.


“아, 주엽 씨입니까? 무슨 일입니까?”


그가 본관 왼쪽으로 한참을 걸어간 끝에 만난 경호대원 펠릭스가 그의 신분을 확인하고 물었고, 주엽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본인이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을 보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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