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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아키로스-라쿠이 노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Juyep
작품등록일 :
2016.01.03 14:01
최근연재일 :
2017.08.07 18:17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46,277
추천수 :
73
글자수 :
803,544

작성
17.07.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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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3.

DUMMY

데이나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 간단했다. 하지만 떨어진 후의 뒤처리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경석은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물론 묶여 있는 상태답게 금방 코를 바닥에 박고 말았다.


“으, 이거 진짜!”


윤구철은 그를 도로 앉히려 했지만, 데이나의 풀어 주라는 말에 결국 밧줄 대용의 노끈을 풀어야 했다. 윤구철은 사장이 석방되었다는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자신이 사람을 포박해 놓은 것을 들켰다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아니, 왜 그 인간을 풀어줘? 뒤로 뭐라도 받은 거 있어!”


“모르죠. 무죄니까 그렇겠죠?”


“뭐야! 이거···.”


자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깨를 으쓱대는 데이나에게 정경석이 달려들었으나 윤구철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 재차 넘어뜨렸다. 코를 또 박은 건지 그는 한동안 얼굴만 감싸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 사장님. 이거 어떻게 그렇게 극단적인 말을 할···.”


윤구철은 차마 대놓고 뭐라는 못하고 쩔쩔매며 말했다. 50대의 노동자가 젊기 그지없는 사장을 힘들어했다.


“극단적이기는요. 다들 알고 있잖아. 그렇지?”


데이나가 뒤에 서 있는 이들을 돌아보며 묻자 모두들 그렇게 답했다. 카메라를 든 사람도, 뭔가 잔뜩 적힌 걸 든 스태프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네.”


“모두가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럼, 이 사건을 처음 기사화해서 내보낸 곳인데 알고 있어야죠. 뭐, 한국 방송들은 관심없는 것 같지만. 어째 행동이 하나같이 그리 단순한지.”


윤구철은 다른 말 못하고 음, 하고 앓는 소리만 내야 했다. 이 기쁜 일을 당장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자기 앞의 여사장에게 이 사태를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저기,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이 이런 사실을 숨겼다는 것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말을 꺼냈는데, 어째선지 데이나는 그런 것에 대해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아, 상관없어요. 편집하면 되니까.”


“안 나간다는 말입니까?”


“맞아요.”


그러더니 데이나는 정경석을 그냥 방치한 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윤구철은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정경석이 다시 일어나려 들자 부리나케 창고 밖을 나가 문을 잠궜다. 이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무시했다.


“빠르네요.”


“이제 못 나올 겁니다.”


“뭐 됐고, 아까 한 말이 거슬리세요?”


“방금 전 찍은 분량을 삭제해 버리면 된다는 말을 가리키는 겁니까?”


“그거, 그대로 내보내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사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세요? 아니면 어쩔 수 없고요.”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윤구철은 데이나가 이전에 했던 말을 다시 꺼냈지만, 그녀는 그의 입을 검지로 막았다.

“아, 참. 그건 립 서비스고요. 설마 정말로 날것 그대로 내보낼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런 건 생물이나 자연 다큐에서나 하는 거고.”


그녀는 그에게 너무 순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구철은 아까보다도 더 거슬려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뭔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을 내보냈다가는 정말로 그녀의 말대로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어야 했다.


물론 이렇게 할 말을 못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빴다. 하지만 어쨌든 매체의 주도권을 쥔 쪽은 데이나였다.


"저기요. 무슨 생각 하세요?"


"아닙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죠."


윤구철은 데이나와 스태프들을 데리고 숙소에 다시 들어왔다. 그곳에서 3번대 구성원들을 다시 만난 그녀는 앞으로의 일정을 공개했다.


"일단 이 일 자체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지만, 찍는 것 자체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에요. 오늘과 내일 분량으로 찍고, 그것과 각종 인터뷰를 토대로 두 편, 총 2시간 분량으로 만들 겁니다."


"2시간이라. 이것 참 우리가 TV가 없어 곤란하네요."


그녀의 일정계획을 듣고 있던 주엽이 전자기기 하나 없는 처지를 한탄하자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요. 곧 TV가 들어오기로 약속되어 있으니까요."


"예?"


"곧 누군가가 돌아올 건데."


다행히도 주엽은 윤구철보단 눈치가 빨랐다. 주엽은 그 이야기만 듣고도 문정유가 재판에서 이겨 석방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도 너는 나보다 빨리 판단했구나."


"TV를 방방마다 놓아 준다는 게 사장님 공약이었으니까요."


주엽이 씩 웃으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 역시 모두 놀랐다. 그나마 정경석처럼 폭력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사장님이 돌아온단 말인가?”


“정말이죠. 출소하자마자 연락이 왔다네요. 오빠, 그러니까 발타자르에게 먼저 오고, 그 사람이 저한테 전화 줬어요.”


데이나는 문정유가 확실히 나왔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2심, 3심까지 갈 수 있지 않습니까? 항소를 할 것 같습니다만.”


“항소는 안 하기로 했답니다. 어차피 갈 곳이 없다나요. 뭐 마피아에게 단단히 찍혔으니 감옥에서 그냥 잘 지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무죄 받고 나와도 자기들 이미지 나쁘게 했다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으니까.”


“마피아라...정말로 그런 게 있긴 있었군. 여튼, 이걸로 정말 모든 게 끝난 것 맞소?”


“아니오. 이게 추가로 나가야 하니까요. 원래 문정유 씨가 재판에서 이겼다는 것에서부터 계약은 끝이지만, 특별히 신경 써주는 거죠.”


“고맙구만요. 이런 데까지 찾아와서.”


“아니오~”


목소리를 가늘게 흘린 데이나는 주엽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는 시선을 딴 데로 휙 돌려 버렸고, 곧이어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일정은 내일까지니까, 내일까지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양해를 해 주세요.”


“그러죠.”


윤구철은 발 빠르게 데이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지만, 주엽은 그녀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저 여자아이 때문에 그래요?”


“네?”


윤구철이 촬영진들을 숙소로 안내하려 하자 데이나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말투도 어느 새 가벼운 경어로 바뀌어 있었다.


“음. 제가 그에게 불편하게 군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 대놓고 나오지는 않는데, 아직도 뭔가 들이대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그럴 겁니다. 주엽이가 돌아와서 그 점에 관한 불편함을 토로했으니까 확실하겠죠. 설희는 아직도 분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가···.”


데이나는 자못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윤구철은 이 사람이 이러는 것을 상당히 못마땅해했다. 어차피 거대한 언론사 하나를 통째로 쥐고 있는 인간이 뭐가 아쉬워서 몇 번 보지 않은 남자에게 고민한단 말인가. 아무리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이 있다고 해도 저 수준의 인간의 재력에 맞먹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뭐, 그럼 건드리지 않을게요. 일에 관련된, 그러니까 인터뷰 같은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사적인 건 존중해 주죠.”


“그게 낫다고 봅니다.”


사실상 거절이나 다름없는 말에도 웃음을 유지하는 데이나의 태도를 봐선 애초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건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재벌가 아가씨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럼 대본 좀 가지러 갈게요. 배경은 오전, 오후 내내 얼추 찍었으니까 이제 멘트 위주로 찍어야 돼서요.”

“그렇게 하십시오, 인터뷰는 몇 명으로 할 겁니까?”



“여기 현장노동자들 22명, 그리고 나중에 내려가서 따로 진행할 전문가 세 사람까지 총 25명이죠.”


그러고는 본관의 구조는 알고 있다며 다른 직원들과 함께 훌훌 떠나 버렸다. 윤구철은 그녀의 뒤통수만을 바라보며, 도대체 저 사람의 머릿속에 든 진심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뭔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뭘 만들고 싶은 거지?"


"뭘요?"


뒤통수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엽이었다.


"깜짝이야. 그렇게 계속 훔쳐보고 있었던 거냐?"


"얼굴은 못 봤으니 훔쳐 들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맘대로 해라. 어쨌든, 이야기를 들은 건 맞지?"


"네. 에리히 사장님이 뭘 하려고 여기까지 굳이 발걸음을 했느냐고 묻고 싶은 거죠? 하지만 지금은 눈치를 봐야 하니 뭐라 할 수는 없고."


"거 정곡을 찌르는 말이구만. 그래. 뭐라고 하고 싶은데?"


윤구철은 이 아이가 데이나와 잠깐이나마 지내 봤으니 뭘 알고 있나 싶어 찔러보았다.


"에리히 사장님은, 지금 자신을 위한 영상을 만드는 거에요. 우리 같은 현장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와 자기 회사, 조직을 위한 것이죠."


"자기만족용이라는 건가?"


"아니오.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상대를 잔뜩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진 거죠."


"그 상대가 누군데? 저 사람이 이제만 이사와 척이라도 졌나?"


"아니오. 이제만 뒤에 있는 빽이 더 큰 목적이에요. 그 빽이라는 게, 마피아니까요."


"뭐?"


그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피아 이야기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어째서 데이나가 그런 곳을 적으로 두고 있는가?


"뭐, 옛날에 그쪽에 불리한 보도라도 했었나?"


"아니오. 이거는 좀 유감이긴 한데, 사실 저 사람도 마피아 간부 중 하나에요. 더 나아가 언론사 자체가 하나의 마피아 집단이라고도 볼 수 있죠. 언론사 전체가 마피아의 소유고, 그래서 그 조직의 간부가 사장 자리에 낙하산을 타는 곳이니까."


"역시 낙하산이었구만. 그래, 그걸 넌 지구에 내려가 있을 때 안 거야?"


"네. 거기서 생활하면서 안 건데, 그곳의 사람들의 행동이 좀 이상했어요. '노이바우' 라는 조직에 관한 부정적인 언급을 일체 금지했고, 조직원 하나가 범죄를 저질러도 은근히 감싸는 보도를 내놓았거든요. 마치 뭐가 있다는 듯이요."


"거기서 나름 뒷조사를 한 건가. 이렇게 되면 이 일에 상당히 실망하겠어."


"그렇죠. 현재로서 그런 불순한 목적으로나마 접근하는 곳이 거기밖에 없어 곤란하긴 하지만. 그리고, 사실 거기서 건진 게 하나 더 있긴 한데..."


주엽은 여기서 말을 더듬었다.


"뭔데? 중요한 건가?"


"아, 아니오! 생각해 보니 그리 중한 건 아니에요. 그냥 에피소드 하나 정도죠. 그런 건 몰라도 되잖아요?"


"몰라도 되긴. 재미있는 거라면 공유해야 하는 거 아냐? 심각한 거 아니라면 이야기해 봐."


"하하. 비밀로 할랍니다. 당분간 저만 가지고 있는 비밀로요."


"치사하군! 더 할 말 없으면 돌아가라."


"네~"


이렇게 대화 자체는 일견 유쾌해 보였으나, 적어도 윤구철의 속마음만큼은 절대로 유쾌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겼지만, 자신들의 이야기가 그런 불법 조직들의 권력다툼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그는 절대로 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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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4-7. 17.07.17 79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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