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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아키로스-라쿠이 노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SF

Juyep
작품등록일 :
2016.01.03 14:01
최근연재일 :
2017.08.07 18:17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46,197
추천수 :
73
글자수 :
803,544

작성
17.06.24 18:19
조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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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2쪽

3-41.

DUMMY

“허허...눈썰미가 좋으십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라고 열어둔 문 아닙니까. 앉으십시오.”


박미관과 달리 유머는 나름 하는 듯한 그 노인은 박미관과 뒤따라온 셋을 모두 앉혔다. 질은 따라가느냐 마느냐의 여부가 애매했지만 박미관이 순순히 허락하여 들어왔다.

“듣는 사람이 많으면 좋지요. 이게 뭐 비밀 이야기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본인이 먼저 말하고 싶을 텐데요. 식량 문제를 협상하러 온 것 아닙니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 차에 대기하고 있는 감독관 역시 직접 왔으면 좋겠습니다.”


“예?!”


주엽도 윤구철도 질도 모두 그 말에 얼어붙었다. 감독관들이 왔다는 이야기는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건물 안에 앉아 있는 그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걸...”


“역시 그랬군요. 감독관들이 고용해서 온 겁니까? 아니지, 그럼 우주선을 타고 올 리가.”


“...1700km를 날아 온 건 맞습니다.”


주엽은 유도신문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노인의 지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운을 입은 노인은 이런 떡밥을 던짐으로서 그가 스스로 그것을 물게 만들었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휘둘릴 수 있겠는데...“


주엽은 초장부터 바짝 긴장했다.


“자, 감독관들과 노동자들이 식량을 얻겠다는 하나의 목표 아래에 뭉쳤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희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습니까?”


“물론 최선의 방법은 저희 쪽에서 지불한 비용만큼 코셔 클럽이 추가분의 식량을 대주는 일입니다.”


“비용은 갖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윤구철이 어음을 꺼내 그들의 앞에 갖다 주었다. 문정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어음은, 비록 발권자가 구속되었다 하더라도 제 기능을 할 수는 있었다.


“흠...하지만 감독관들입니다.”


“감독관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견을 가지는 것은 곤란합니다.”


윤구철 역시 아까 차내에서 들은 진인환의 말에 상당히 감정이 동요된 모양이었다. 한때 정경석 같은 감독관들을 가차 없이 때려눕히던 그가 감독관 측을 옹호하고 있었다.


"정말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문제는 윤구철이나 주엽이 아닌 박미관과 이 가운 입은 노인의 인식이었다. 식량 협상권의 최종 결정은 이들이 하는 만큼, 설령 감독관들이 옳다 해도 이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뭣도 없이 바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감독관 분들과 무슨 갈등으로 인해 파업을 보름이나 벌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독관 분들은 이로 인해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감독관들이 노동자를 관리하는 위치에 있어 사용자라고 불리지만, 그들 역시 회사의 관리를 받는 또 하나의 노동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적대시하지만 마시고 편견 없이 대화를 한 번이라도 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본인들은 그러고 있습니까?"


"네?"


"윤구철 씨를 포함한 본관 구역 노동자들에게도 감독관과 책임관은 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도 식량을 잘 공급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부족한 때가 아니라, 아직은 비교적 식량이 넉넉했을 때 말입니다."


"네. 식량이 넉넉했을 때는 꼬박꼬박 챙겼습니다. 물론 부족해진 이후로는 줄여야 했지만 그건 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단 윤구철이 식량을 무기 삼아 감독관들을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것까진 묻지 않았다. 어쩌면 주엽에게 걸었던 것과 동일한 심리전일 수도 있었기에 주엽은 윤구철에게 살짝 귀띔해 놓았다.


"철저히 묻는 거에만 대답해 주세요. 1차원적으로요."


윤구철은 그럴 것이라고 확답을 주었기에 이제 주엽 자신이 조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운을 입은 노인은 윤구철이 대표여서인지 윤구철에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짧은지 긴지 모를 시간 안에 노인은 윤구철에게 계속해서 감독관이 신뢰받을 수 있는 인간인지 물었다. 당신은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냐, 감독관이나 책임관들에게 당당히 자기주장을 피력할 자신이 있느냐, 감독관들이 식량을 받은 뒤 모른 체를 하면 어쩌느냐 등, 한 번에 의도를 알 수 있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조금 생각해봐야 그 속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질문도 있었다.


"정말 많은 질문을 했는데, 긴장이나 짜증 등의 기색 없이 대답해 주셨군요. 보아하니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상당한 신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식량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자신이 하는 질문을 윤구철이 이리저리 잘 받아내자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윤구철 씨' 라고 하던 것도 주엽이 부르는 호칭과 동일한 '위원장님' 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윤구철 역시 그런다고 해서 뭐라 특별히 반응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 질문을 받아 줬는데 못할 거 뭐 있겠습니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위원장님은 자신의 전 감독관들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했기에 폭력을 동반한 파업을 벌이고 이들과 싸워 내쫓은 것입니까?"


"네? 하지만 내쫓지는..."


"맞습니다. 내쫓지 않고 감금했죠."


'뭐야, 어떻게 저런 말을 남발하지?'


분명 노인은 그 점을 모르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누구 잘못인지를 떠나서 일단 저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주엽의 상식선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뭐, 굳이 돈이나 친목으로 이뤄진 유착관계가 아니더라도, 외딴 행성에 파견을 나간 이들끼리는 정보를 주기적으로 교환하는 편입니다. 그 편이 심심하지도 않아 혼자 있는 것보다 좋죠."


즉, 이 말을 믿는다면 이 사람은 주엽과 동료들이 일했던 구역의 식품 담당인 화야제 식품공학부와 친목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다면 파업이나 이 과정에서 벌어진 싸움 등의 이야기를 대략적으로나마 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말에 의하면, 뭔가 근본적인 이유는 몰라도 일단 한 가지는 알 수 있겠습니다. 뭐 때문에 노사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산산이 부서진 겁니까?"


주엽은 당황했고 윤구철은 말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기서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면 자신들의 신뢰도를 스스로 깎는 일이었고, 감독관들의 잘못이라고 하면 노인에게 '감독관은 역시 믿을 수 없는 존재' 라는 의식을 확고히 해 줄 터였다.


"그건...말하기 복잡합니다만..."


"그럼 요약하세요."


윤구철의 어설픈 말 돌리기는 통하지 않았다. 주엽은 어떻게든 변명할 생각을 하며 할 말을 필사적으로 머리와 혀에서 쥐어짜려고 했다.


그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노인은 기다려 주겠다며 선선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을 준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윤구철은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었으며, 주엽 역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질도 옆에서 그들을 걱정스러워 보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나 이 일에 대해 잘 모르는 그가 뭘 할 수는 없었다.


'제 3의 선택지는 없어? 두 가지 모두 말할 수 없는 대답이잖아!'


주엽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서라도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의 행적을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는 이 앞에서는 어설픈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가 어떻게든 합리적이어 보이는 거짓말을 지어내려고 머리를 굴리던 그때, 윤구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전에 하나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화야제 식품공학부를 알고 계신다고 했죠?"


"맞습니다. 동종업계 종사자 아닙니까."


"그래서 묻는 건데, 화야제 사업부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아니, 왜 저런 말을 해?'


주엽은 그가 대답 대신 새로운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그러나 윤구철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사이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냈을 것이며, 자신에게 뭔가 뾰족한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일단 듣고만 있었다.


"감독관들과 싸우기 위해서 직접 발로 뛰던 이들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의지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듣자하니 거기서도 식량을 내어달라고 요청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노동자 측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해도 어차피 납품 비용은 사측에서 주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땐 협상에 성공할 뻔도 했죠. 결국 들통나 실패했지만."


"그렇군."


윤구철은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한 가지, 어째서 사측이 화야제에게 납품비를 계속 줬겠습니까?"


"그야 유착관계가..."


노인은 말하려다 멈췄다. 자신의 말 속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주엽은 그것이 뭔지 몰랐으나, 노인의 미간이 약간 좁혀진 것을 봐서는 뭔가 책잡히는 것이 있음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유착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측에 도움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곳의 분들은 저희에게 도움을 약속했습니다. 실무 담당자가 아닌 식품 품질 관리와 연구를 맡는 연구원이기 때문에 바로바로 결정하진 못하고 시간을 끌다 결국 들통나 쫓겨나기는 했습니다만. 그건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노인은 더 이상 일관된 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얼굴을 구겼다. 주엽과 윤구철을 자기 발밑에서 조종하던 때완 달리 이번엔 자신이 윤구철의 말에 휘둘렸다는 것을 안 모양이었다.


"그래. 그것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서는 할 수 없는 발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감독관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설령 우리가 감독관에게 당한 입장이라고 해도요. 저희는 그래서 감독관들이 우리 물을 끊고, 밥줄을 끊고, 전기를 끊어도 그 보복을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내부에서 해결하려 애썼습니다. 게다가 본관 쪽 감독관들은 이쪽과 달리 대화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감독관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것은 알지만, 저 감독관들은 충분히 여러분과 대화할 의지가 있습니다. 이 점은 알아주십시오."


"흐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엽과 윤구철은 이것에 사활을 건 상황이었기에 그의 심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렇다면, 그 감독관 쪽도 그런지 봅시다.”


“진인환 책임관을 데리고 오라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마침 아무 일 없던 질이 가겠다고 했지만, 노인은 혹시 모르니 윤구철이 직접 갔다 와 달라고 부탁했다. 윤구철은 선선하게 허락하고는 나갔다.


윤구철이 나가자 노인과 어느새 그의 옆에 앉은 박미관은 차례대로 한숨을 쉬었다.


“누구의 대화의지가 없었다는 말이지?”


“책임관이 오면 알게 되겠지...”


그들은 더 이상 누구의 탓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중에 올, 이젠 사측인지 노측인지도 애매한 사람이 와서 입장 표명을 해주길 바랐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구의 탓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중에 올, 이젠 사측인지 노측인지도 애매한 사람이 와서 입장 표명을 해주길 바랐다.


“위원장님이 사람을 허투루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저희 역시 감독관 출신 노동조합원, 감독관 예정이었던 노동조합원까지 데리고 있어서 나름 감독관들의 고충을 알기는 합니다. 물론 임금을 가짜로 지불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만.”


“역시 사측이라고 해도 무한정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입은 가운을 벗어 자기가 앉은 의자 등받이에 걸어 놓은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주엽이 이 사람과 대면하고 나서 처음으로 감독관에 대한 중립적인 입장이 담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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