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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형사刑事 이야기, 윤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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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6.12 09:43
최근연재일 :
2024.02.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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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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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03. 시상施賞. 형사 이야기. 윤계식. (完)

DUMMY

*


“아, 선배님. 언제 오십니까?”


선배님, 이라고 묻는 말의 투가 조금 늙수구레했다.


선배님, 이라는 말도 누구에게 듣느냐에 따라서 기분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젊은 것들한테 들어야 그럴싸한 기분이지.

자신과 비슷한 연배로도 보이는 이에게 들어보았자, 내가 저 작자보다 더 늙었구나, 하는 실감만 더 들뿐이다.


늙는다는 건 비참한 일이었다.

아니,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러나,

생이라는 건 그 자체로 살아볼만한 의미가 있는 신비였다.


뚱딴지같은 말은 아니고.

젊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저 꾹참고 견뎌볼만한, 어딘가에 또 행복이 있을지 모르는.

그런 즐거운 여정이라는 말이다.


대강 괴로움도 있으나 즐거움도 그것을 넘을만큼 있어서, ‘삶’이라는 것이 결론적으로 기꺼이 살만한 무엇이다, 라고 이해하면 되리라.


지금도 그렇다.


윤계식의 날들은 괴로움으로 대부분 차 있었다.


그가 괴로움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알겠는가.


누가, 미친 사람처럼 존재조차 묘연한 살인범의 뒤를 쫓아온 그의 삶의 고독을 알겠는가. 그리고, 그 고독을 이길만한 더 큰 즐거움이 있음을 알 수 있겠는가.

그건 그 삶을 사는, 윤계식 본인만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즐길만한 것이다.


사명감.

정의.

사랑.

희망.

소망.

인류애.

당연히,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어떤 ‘자연스러운’ 상식적 양태.


그런 흔한 말들은, 너무 흔해 빠져서, 쉽게 입에 담으면 사람들이 믿지를 않는다.


윤계식 씨, 왜 그렇게 힘들고 거친 세월을 견디셨습니까.

아무도 시킨 적이 없고 알아주지 않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살인마의 뒤를 가장 앞장 서서 쫓으셨고, 은퇴를 한 뒤에도 다시 벌떡 일어나서 사건 현장에 돌아오셨습니까.


라고 누군가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이 늙고 오래된 사내가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게 응당 사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당연한 평안을 지키는 것이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의 가장 큰 행복이었기에’


라고 대답을 한다면.


곧이는 믿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지 모른다.


늘 진리라는 건 단순한 법이었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그 하고 또 하는 평범하고, 이미 알던 말들 속에 진리가 담겨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런 말들이 계속 되풀이됨에도 지겨워지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법이었다.


그게 정의라서 그렇게 했다.

누가 돈 안 줘도,

그게 형사刑事라서 그렇게 했다.

라는 게 윤계식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사는 게 무엇보다도 더 행복하니까. 바닥을 구르고, 어두운 진창 속을 들여다보며 걷다가 칼을 좀 맞고, 뒹굴고, 뼈가 나가도 더 행복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윤계식은 지켜야 할 걸 지킨 기분이었다.


잘 한 건 없었다.


할만치 했을 뿐이다. 아니 조금 더 자신에게 박하게 굴자면, 보통에서 조금 미달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배워왔던 ‘형사’라는 모습 속에는 그런 게 들어 있었다.


그 앞에서 감히 누가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형사 앞에서 감히, 정의를 어기고 타인을 함부로 해害해서는 안된다.


그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런다면, 그는 쫓아가 반드시 놈을 잡을 테였다. 몸이 하나이면, 후배를 양성해서라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면, 강렬한 의지를 불태워서라도. 언제까지고 꼭.


응당 배웠던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조국 광복과 함께 태어나,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며 오늘의 자유 민주 사회를 지켜온 대한민국 경찰이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진실을 추구하며, 어떠한 불의나 불법과도 타협하지 않는 의로운 경찰이다.’


경찰 헌장에도 나와 있는, 선서문의 내용들이다.


윤계식은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 토씨는 울퉁불퉁하게 틀려먹었지만, 골자는 기억하는 그것들을 여전히 읊는다. 처음 배웠던 그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었고, 배워서 한 번 더 확신한 내용이다. 조사나 어구, 토씨가 틀려져도 그 ‘내용’은 더욱 진하게 배어서, 마음 속에 새겨진 글귀들이고.


형사 생활을 하면서 그랬고,


은퇴를 하고서도 그랬다.


오늘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던 그를 배려해주는, 동료들을 만나는 날이었고.


“날도 추운데 빨리빨리 다니시지 그러십니까.”


볼멘소리를, 어처구니 없게 하는 놈은 박주영이었다.


처음에 ‘선배’라고 불렀던, 늙수구레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용수 과장이었고 말이다.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떠올렸다. 그가 연쇄살인범들의 현장을 쫓아 다니며 정신없이 일할 때, 그의 부사수로 있었던 후배였었다고.


그가 수사본 내의 중책을 맡고 있었고, 결국 윤계식을 다시 불렀다.


한없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게 윤계식의 목적이었으니까. 그의 목적을 도와준 공은 크다. 마음속에서 고마움이 그만큼 커지는 게 당연하다.


‘김연수’ 건은 결국 대개 마무리가 되었다.


박상혁, 아니 천산혁이라는 이름으로 밝혀진 어느 노인.

그 괴인은 의외로, 자신의 과업을 토해내기까지 했다.


과업課業인지, 과過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천산혁 스스로가 자신의 일을 돌이켜 보며 여기기로는.

객관적인 시선으로는 분명히, 쓰레기 짓거리였지만.


천산혁은 돌아버린 인간이기에 스스로 벌인 일들이 나름대로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길 지 모른다.


천산혁으로서, ‘게임이 끝났다’라고 여겨진 게 주효한 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는 김연수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고, 평생 어떤 게임에 목을 매며 살아온 인간이었다. 그 게임에서 높은 성적을 내는 것만이 김연수의 삶의 목적이었으리라.

살인이라는, 죄로서 이루어진 과정이었기에 그건 정상적인 목적도, 계획도, 무엇도 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미쳐버린 작자는 평생 게임의 끝을 추구하며 달렸고, 넘어지고 실패했다.

김재영이 잡힌 순간부터 어그러진 게임의 모습이었다.

천산혁은 마지막 때,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그마저 패배했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결국 경찰들이 조사로 알아낼 수 있는 사건 증거만으로 자신을 오랜 기간 구속할 수 있다는 걸 미리 이해해버린 것이다.


지금 그의 나이가, 56세였다. 신체적으로 노화에 접어든지 꽤 된 때이다.


여기서 다시 십 수년, 혹은 수십년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게임의 플레이어로는 놀 수가 없다.

천산혁의 게임은 끝났고, 도전은 실패했다.


고로,


천산혁은 자신의 게임 이력을 정산받기로 한 셈이었다. 그 과정이었다.


‘김연수’로서 자신이 저질렀던 사건들에 대해서 토해낸 것은.


길고 긴 과정이었다.


천산혁은 범죄의 기록으로라도 어딘가에 남기를 바랐다. 사이코패스이고, 망가진 작자였으므로.


그는 점수표를 출력받는 심정이었고,


그가 저질렀던 모든 죄를 아직 다 파헤치지 못했음에도 비교하기 어려운 형량을 받았다. 미국도 아닌데, 한국에서 그 정도의 형량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높은 확률로, 그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테였다.


천산혁은 자신의 존재 증명을 마지막 순간에 거하게 해냈고, 자신의 불만족과는 별개로 게임의 종료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

위압에 의한 것이었다.

머리가 너무 좋아도, 포기가 빠르다. 천산혁이 그런 꼴이었다.


“오셨습니까.”


윤계식은 코트의 깃을 여미던 것을, 풀었다. 바람이 찼는데, 수사본 건물의 실내 안쪽으로 들어오자 온풍이 불었다.


오셨냐고, 물어본 건 안쪽에 로비에 있던 심민아 경위였다. 윤계식은 슬쩍 손을 들어서 인사를 했다.


조용수 과장과, 박주영에게도 마찬가지로 건넸던 인사였다.


사람들이 아주 바쁘게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주 보던 인물들이었다. 윤계식이 대놓고, 경찰 조직 내에서 활보를 한 건 아니었지만. 지난 수 개월, 조금 길게 잡아 1년 여간 들렀던 장소이고 보았던 사람들이니. 나름대로 안면은 익힌 상태였다.


특별히 관계성을 형성하지는 않았다. 수사 작전 상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인맥을 쌓는 건 곧 힘을 쌓는 것과도 같다.

그는 외인外人이었으므로. 수사본 내에서 지나치게 세력을 형성하는 건, 내부에 있는 기존 실무자들에게 불편함이 될 수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임시였고, 도움을 위해서 잠깐 다시 발을 들였던 것뿐이다.

그가 평생의 형사 생활의 목표였던 살인범이 활개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서 말이다.


이제 오랜 수사가 끝났고, 그는 은퇴를 했음에도 놓지 못하던 짐 하나를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즐거운 날이었다.


그래도, 그가 다른 것들을 포기한 채 범인을 쫓았던 고독했던 시간들이. ‘있었다고’, 동료들이 박수를 쳐주는 날이었으니까.



굳이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던 경찰복 따위를 꺼내오지도 않았다. 오늘 받는 것은 은퇴한 외인으로서의 무엇이었으니까.


수사본 사람들의 얼굴이 밝았다.


수사본,


김연수 사건 수사 대책 본부도 이제 사라질 테였다. 효용을 다한 기구이니까. 아쉬워할 일은 아니고, 도리어 기뻐해야 할 일이리라.

형사가 없는 세상이라, 얼마나 즐거운 세상일까. ‘형사’가 없다는 건, ‘범인’이 없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물론 그런 세상이, 현실에 오기까지는 아마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올 수는 없으리라. 그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건 가능하더라도.


형사가 없는 건 불가능해도,

김연수 수사본이 없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김연수 건의 종결은 결국 그로 인해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비상 기구였던 조직의 해체였고, 결국 차출되었던 인원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리라.


모였던 이들끼리의 정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를 했던 이들은 윤계식을 보고 소박한 인사를 하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늙은이 하나를 치켜세워주는 것이, 민망스럽다. 윤계식은 그리 느끼면서도, 한 켠으로는 기쁘게 걸었다.


실내의 조명은 밝았다. 그러나 그가 로비를 지나 들어간, 1층의 대형 홀은 주광색 조명도 섞었는지 약간 붉은 기도 감돌았다.


경찰복을 입지는 않았고. 그저 평시에 입고 다니던 옷 중 가장 점잖은 것을 가져왔다. 낡은 양복에 코트다. 구두 정도는 새 것처럼 닦기는 했다만. 낡은 태가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닦는다고 사라질 흔적은 아니긴 했다.


윤계식은 수사본 건물에서 꾸민, 메인 홀로 들어가 걸었다. 아직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깔아둔 의자만 아주 여럿이었다. 저 멀리 앞에 있는 단상에는, 행사의 스태프들이 아직도 분주히 움직인다.


단상의 위, 먼저 올라가 있는 늙은이가 하나 있었다. 그 자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손을 슬쩍 든다. 윤계식도 마주 제스쳐를 취하며 걸어갔다.


오랜 동료였다.

이름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근무지가 떨어진 이후에는 달리 본 일이 없었지만. 윤계식은 고된 세월을 보냈고, 후회나 비통함에 잠겨 간신히 살아낸 나날들 역시 있었다. 그럼에도 타오르던 열정의 불길은, 그의 삶을 삶답게 장식해주고 있다.

그럴 때, 함께 애를 쓰던 동료였다.

이름을 잊었다는 건 거짓이다. 잊을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다시 볼 일이 없으리라고 여겼는데. 이런 자리에서 또 만나게 되는가.


계식은 예전의 동료가 시상의 수여자가 되어 나타난 것에 반색했다.


늙은이가 쉬지도 않고,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단상에까지 걸어 올라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단상 위에서 친구가 그를 반겼다.


손유민, 이라고. 아주 특이하지도 않은 이름의 경찰이었다.


윤계식은 경감에서 멈추었지만 친구는 엘리트로서 가도를 달렸다. 각자가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렇게 만난다.

윤계식은 책상물림의 자리로 들어가는 걸 아주 싫어했다.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 현장에 있다고 여겼고, 은퇴하기 직전까지 수사관으로서 뛰다가 마지막을 맞았다.


오랜만에 만나, 신수가 훤한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단상 위의 조명이 늙은이의 주름진 표정을 비추었다. 손유민이 밝게 웃고 있었고, 윤계식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손을 내밀어 맞잡았고, 악수를 했다.


“고생했네.”


손유민 경무관, 이번 사태의 윗선 중에서 가장 열심히 애를 쓴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윤계식과 동갑이었고, 그는 경감에서 마무리를 했으나 손유민은 멈추지 않고 서울권 지역 경찰청의 부장급까지 올랐다.

경찰 조직은 위로 올라갈수록 수가 줄어드는 폭이 크다. 윤계식과 함께 비간부, 형사직으로 시작해서 갈만큼 올라갔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상 진급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손유민 자신은 그다지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경기 북부 경찰청에서 재직하고 있었고, 급하게 대형 사건의 공로자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수사본에 들른 상태였다.


수상자가 자신이 아주 잘 알던 그 때의 그, 또라이 새끼라는 게 손유민으로서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정말 하나밖에 모르던 놈이었는데.

그리고 당시, 이십 여 년 전 김연수 사건이 있은 후 그것만을 집요하게 쫓던 윤계식을 보고 멀쩡하다고 하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놈의 뒤꽁무니를 치열하게 쫓던 인간이었으니까. 차라리 유령을 잡는 게 나을법한 일을, 가장 앞서서 하던 인간이었다.


당시에는 손유민 역시 그의 근처에서 함께 뛰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멀어졌다. 아마 손유민이 모르는 기나긴 세월이 윤계식에게 있을 테였다. 오랜만에 보니, 그 인상과 성격은 여전해 보였다.


‘김연수’를 잡은 것이, 결국 은퇴를 하고 난 이후의 윤계식 전 경감과, 그와 공조한 현직 형사들이라는 걸 듣고 어찌나 크게 웃었던지.


이 미친 놈은, 은퇴를 해서도 기어코 바라던 목표를 잡아챈 것이다. 이런 일이 달리 있을 수 있을까. 기가막힌 우연이라고 해도 잘 믿기지 않고, 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리 와닿지 않을 테였다. 손유민은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그것이,


명징하게 바라보았던 현실이기에.


오래도록 닳고 닳았던 그의 심장에도 어떤 열기같은 것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다 버린 줄 알았고, 이제는 예전처럼 뛰지 못할 것 같았던 심장의 열기다. 젊은 날의 방식으로는 다시는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여긴 적이, 지난 세월간 여러 번이었는데.


아직도 대가리부터 처박고 보는 이 대책없는 형사의 소식을 듣고 나니, 자신 역시 그리 늙지는 않았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친구가 하는데, 자신 역시 그러지 못하겠는가.


지금은 정식으로 시상식을 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김연수 건은 대한민국을 전에 한 번 뒤집어놓았던 사건들이고. 작년부터 올해까지 벌어졌던 사건들은, 연쇄 살인임을 공표하지 않고 최대한 비밀리에 수사를 했으나 치안 당국 내부적으로, 또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아주 큰 골칫거리였다.


이제야 간신히 실마리가 잡혔고, 또 범인까지 검거를 했으니 자세한 수사와 해결의 과정을 만들어낸 뒤 미디어에 뿌리면 된다.


그 과정에서 시내에서의 발포라는 무지막지한 짓거리가 있기는 했다만.

범인이 잡혔으니 큰 흠으로는 삼지 않았다.

도리어 윗자리에 앉아 있는 중역들의 무거운 궁둥이가 빠르게 자리에서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전면에 내세울 영웅 만들기의 자리 역시 순식간에 마련이 되지 않았는가.


크나큰 사건의 해결 이후에는, 앞에 보일만한 큰 상의 수여자가 필요한 법이었다.


현장에서 몸이 축났던 여러 인물들, 개중에서도 부상을 입어가며 고생을 한 수색팀의 박 경사와 김 경장을 비롯해서. 심민아 경위 등, 김연수 체포에 공헌을 한 모든 이들이 알맞은 상을 받을 테였다.


직접적인 관련자들은 대개 특진의 대상자들이었다. 거기에 무시 못 할 양의 금일봉 역시 덤이었고.


윤계식은 마땅히 받을만한 것이 없었으나, 전직 형사이며 오래도록 수사본 인원들과 공조를 하며 협력을 한 공을 인정해 경찰 조직에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상과 훈장 따위를 줄 셈이었다.


윤계식이 아직도 조직 내에 있는 인물이었다면, 이만한 사건의 해결자로서 줄만한 것이 마땅치 않았을 테였다. 훈장만을 주고 퉁치기에도 적잖은 위업이었으니. 그러나 조직도의 맨 윗쪽은 아무래도 급격하게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상부였기에. 인원이 한정적이었다. 그 정도 되는 연차와 나잇대의 인물을 수뇌부에 올리기에는,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조금 부담스러웠으리라.


조직 내의 인물들에게는 여러모로 다행스럽게도. 일반 시민의 신분으로서, 공헌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주고 또 받게 될 테였다.


윤계식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김연수를 잡은 것이 좋았고.

박시윤을 살린 게 좋았고.

소녀의 가족들이 더 심하게 울지 않아도 되는게 좋았고.


이제 집에 돌아가서, 다시금 평안하게 소파에 누워 좀 휴식을 취해 볼 생각에 즐거웠다.


쓸만한 놈이 없다고 여긴 요즘 세태였는데. 개중에서도 나름대로 심지가 있는 젊은 후배들을 만나서 같이 노닥거린 것이 좋았고.

시상자로 나온 게, 또 아주 오래간만에 생각이 난 오래 전의 친구인 게 흡족했다.


위로 올라가기로 했고, 길이 갈라져서 아주 긴 시간 볼 일이 없었다.


먼저 웃어보이는 손유민의 표정을 보니, 예전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예전’같은 건 없는 법이었다.


그 당시의 마음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고, 그게 있으면 죽을 때까지 가장 찬란한 순간일 테니까.


예전도, 나중도, 지금도 중요하지 않다. 형형하게 타는 그 형사로서의 열정이 어떠느냐, 가 결국 중요한 법이다.


손유민의 표정은 제법 쓸만했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짖궂게 먼저 웃어 보이는 꼴이 그럭저럭 봐줄만했다.


“욕봤지.”


윤계식의 격의없는 대답에, 손유민은 피식, 하고 소리를 내고 웃어버렸다.


3시간 뒤에 공로자 수여식이 시작한다. 넉넉하게 일찍 온 친구에게 표창장을 미리 수여하는 시늉을 하면서, 손유민이 또 이야기했다.


“아직 안 죽었구먼, 윤 경감.”

“너는 다 죽은 것 같고. 손 부장님.”

“이 새끼가.”

“크하.”


한 번 웃었고, 손유민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김연수를.”

“아.”


윤계식이 악수한 손을 빼고, 깔끔하게 다듬은 턱매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잔잔한 웃음기가 서려 있는 표정이었다.


“뭐······.”


그가 혼자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예전부터의 버릇이었다. 홀로 생각하고, 깊어지면 제스쳐를 취하곤 했다.


“운이 좋았지.”


윤계식이 씨익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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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 차량, 시내 속(2) 24.02.27 15 0 15쪽
98 98. 차량 속, 시내 속 24.02.27 19 0 21쪽
97 97. 비명 24.02.26 21 0 12쪽
96 96. 김 경위 24.02.26 15 0 11쪽
95 95. 확신 24.02.26 17 0 15쪽
94 94. 선잠 24.02.26 20 0 14쪽
93 93. "부담스럽네." 24.02.25 22 1 14쪽
92 92. 뉴스 속보 24.02.25 20 1 17쪽
91 91. 수요일(3) 24.02.25 18 0 13쪽
90 90. 기어가자 24.02.24 15 0 15쪽
89 89. 수요일(2) 24.02.24 14 1 11쪽
88 88. 수요일(1) 24.02.24 14 1 12쪽
87 87. 대담한 대담 24.02.23 23 0 19쪽
86 86. 재미있는 이야기(2) 24.02.23 18 0 14쪽
85 85. 재미있는 이야기 24.02.22 20 0 15쪽
84 84. 창고 24.02.21 16 0 18쪽
83 83. 있지도 않은 24.02.21 16 0 26쪽
82 82. 화요일, 결론 24.02.20 18 0 11쪽
81 81. 화요일(3) 24.02.20 16 0 18쪽
80 80. 화요일(2) 24.02.20 1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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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8. 일요일 24.02.19 18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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