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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형사刑事 이야기, 윤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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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6.12 09:43
최근연재일 :
2024.02.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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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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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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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1. 수요일(3)

DUMMY

*


쿵.


“······.”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건 이 집안에서 날 일이 없는 소리였다.


기이한 일이기도 했다.


소리가 났는데, 분명 멀리서 들린 것 같았으니까.


차고 쪽인가?


분명히, 바깥 어딘가에서 들리는 ‘멀리’는 아니었다. 윤계식은 감각에 있어서 정확한 편이다. 시각으로 재는 거리감도 그렇고, 청각으로 재는 것도 말이다.


박주영도 김민식도 직업 상 그런 것인지. 예리한 면들이 있었고. 난데없이 집 안에 있는데 들린 기이한 소리는 사내들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충분했다.


윤계식은 소리에 집중하며 인상을 찡그리다가, 박상혁의 표정을 보았다. 노인의 눈 역시 윤계식처럼 찡그린 채였다. 계식은 기이한 소리의 근원지가 무얼까 고민하다가 나온 표정이었고. 노인의 눈빛에 담긴 건 계식처럼 의문스러움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짜증섞인 표정이다. 일순 그의 눈빛이 아주 시리고 차가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윤계식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그저 마음에만 담아두었다.


쿵, 하는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났다.


“······.”


김민식이 노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가장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사내들은 각기 소리가 어디에서 났는가 알기 위해 반사적으로 두리번거렸고, 결국 진원지를 찾지 못했다. 김민식이 입을 열었다.


“···뭡니까, 갑자기?”

“···나도 잘 모르겠네.”


박상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집 안 창고나, 정리하지 않은 무슨 물건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웃차.”


김민식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나’하고 박상혁이 느지막히 물었다. 김민식은 뭐라도 떨어진 것 같아서 좀 보겠습니다, 라고 답한다.


김민식이 아까 스스로 정리하던 창고방 쪽으로 향했다.


“흐음.”


청년은 자신의 솜씨를 믿고 있었다. 김민식 말이다. 물건을 정리하는 건 그가 자신있어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올려놓은 물건들 중에서 무게중심이 맞지 않던 게 있었던가. 애초에 위험스러워 보이는 탑이 생기면 더 이상 쌓지 않았고, 거기서 물건을 빼다가 바깥에 두기도 했는데.


박상혁은 김민식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윤계식은 박상혁을 보았고.


박주영이 이야기를 꺼냈다.


“···차가 참 맛있었는데. 혹시 한 잔 더 마실 수 있겠습니까?”


박주영은 눈치가 없는 편이기는 했다. 박상혁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 고민하는 듯했지만 대답은 흔쾌히 뱉는다.


“얼마든지.”


노인이 제 무릎에 손을 얹으면서, 다시금 일어섰다.


*


“으으으으으···.”


지루한 고통이다.


아니, 고통 앞에 지루한이라는 단어가 붙는 게 맞는가.


참신한 고통이었다.


박시윤은 몸에 아무런 힘이 없었다.


조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버클을 풀어냈다. 한 팔이 완벽하게 자유를 얻은 이후부터는 일이 더 쉬웠다.

줄이 풀릴수록 몸을 꼼지락거릴 수 있는 범위가 늘어갔다.


침대 위에서 위치를 옮겨가면서, 철제 기구의 아랫면을 열심히 더듬거렸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손의 감각에 의지해서 하나하나, 잠긴 기구들을 풀어냈다.


툭, 툭.


벨트의 한쪽 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점점 헐거워졌고, 한 시간 여 정도 걸린 작업의 마지막은 금방 끝났다.


생각보다 조금 더 간단했다. 움직일 수 있고, 의지가 있다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시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을 묶고 있던 구속구보다도. 바깥에서 언제 들어올 지 모르는 남자의 존재이다.


시윤은, 모든 구속구를 풀어헤친 뒤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었다.


쿵, 하고 말이다.


지하실에 울릴 정도의 소리가 났다.


고통이 찌르르, 관절과 뼈마디에 울렸다. 상처가 난 것도 같았다. 후드를 입고 있었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밤거리를 지날 때는 바람이 추울 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납치당한 날도 그런 날이었고. 지금의 옷차림은 정확히 그때와 같다.


철제 침대의 높이는 제법 높았다.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떨어진 시윤은 한동안, 몇 분 정도는 가만히 있어야 했다.


이 소리가 분명히 바깥에 들릴 정도이고. 혹시 남자가 들었다면 곧바로 그녀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도저히 움직일만한 기력이 나지 않았고. 시큰한 고통은 오래 갔다.


지루한 고통, 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그녀는 이 방 안에 영문도 모르게 갇힌 뒤에, 계속해서 어둠 속에 있다. 스트레스를 물리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다면, 분명 이 방의 크기보다는 크다. 그건 시윤의 목숨을 몇 번이나 앗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고통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은 참신한 것이었지만. 절망감은 친숙했다. 그건 너무도 커서, 그냥 없는 셈 치자고 아까 결론을 내렸던 것이었다.


순전히 물리적인 이유만으로, 시윤이 한동안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몸을 추슬러 간신히 일으킨 건 수 분 뒤다.


“흑.”


시윤은 저도 모르게 울음같은 소리를 뱉었다. 울려고 하는 건 아니었고. 눈물도 나지도 않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력이 많지도 않았다. 몸에 수분이 부족했다.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있는 느낌이다.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치마는 제법 길다. 무릎을 감쌌으니까. 덕분에 맨 무릎이 콘크리트에 쓸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상처가 아예 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앞 쪽으로 떨어졌다. ‘다행’인 이유는, 엎드린 자세로 떨어지며 팔을 앞으로 세워 상체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팔 다리가 까지고 아프고, 골이 찌르르 울려댔지만 얼굴은 멀쩡하다.


시윤은 숨을 삼키면서 천천히 일어나, 방에서 움직였다. 비척거리는 걸음이었다.


며칠동안 정신이 들 때는, 여유가 있을 때는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댔다고는 하지만. 근육이 이상한 느낌이었다. 마치 오래 병실에 누워 있다가 걷기 시작한 환자처럼 절었다. 천천히 발을 끌면서 움직였고, 시윤은 가장 먼저 검은 방 내부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스윽, 스윽.


그녀의 발은 맨발이었다. ‘남자’가 자신을 납치할 때, 빼놓은 모양이었다. 무언가 부스러기가 떨어질 수 있는 소지품 류는 아무것도 없다. 시윤은 정신이 들고, 감각이 돌아오고.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된 이후에 무엇을 입고 있나, 무엇을 가지고 있나 계속해서 확인했었다.


신발도, 양말도 없다. 입고 있던 외투나 교복은 그대로다. 핸드폰, 지갑, 열쇠,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머니는 텅텅 비어 있다. 원래는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어디갔는지 알 수 없다.

지금, 찾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남자’가 소리가 들릴만한 곳에 있었다면 이걸로 바로 게임 오버일 테였다. 그녀, 박시윤은 게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나 긴장감이 드는 종류라면 모두 질색이다. FPS게임 같은 걸 몇 번 해본 적은 있긴 한데.


‘공포’같은 게 조금이라도 섞인다면 학을 떼고 멀리했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의 긴장감은 시윤이 가장 싫어하는 거다.

그 어둔 골목길, 가로등이 없을 때도 그랬다. 송민지에게 전화했던 이유도 무서워서이다.

그러나 싫은 것과는 별개로, 현실이라면 견뎌내야 했다. 뚫고 나가야지 않겠는가. 지나친 공포감은, 역치閾値를 훨씬 넘어서 이미 마비되었다.


몸은 덜그덕거리고,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천천히 발을 끌며 움직인다. 스윽, 스윽.


콘크리트의 감촉은 거칠었다. 감각이 둔해지지는 않았다. 공복과 머리가 어질거리는 것만 빼면. 감각 자체는 살아 있었다.

최초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각을 제외하고는 달리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용물은 알 수 없지만 어지간히 강력한 약물임이 틀림 없다. 자신은 어떤 종류의 약물에 당한 게 분명하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을 지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될 운명일 지도. 그러나 기술했듯 박시윤은 미리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목숨 걸고 가는 것 아니겠는가.

여자 아이였지만, 나름대로 터프한 부분들이 있었다.


방의 끝에 다다랐다. “후.”


아주 작게, 조금 숨을 내쉰다. 힘들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바깥에서 무언가 소리를 들었을까?


듣지 못했다면 참 좋겠는데.


박시윤은 손으로, 벽면을 만져보았다. 벽에 등을 딱 붙이고 기댄다. 바르다. 정사각형 느낌이다. 이상한 동굴같은 곳은 아니었다. 바닥이나, 자신이 누워 있던 기구에서 이미 짐작은 했지만.


방의 넓이는 어떨까. 시윤은 그대로 벽면을 따라 걸었다. 스윽, 스윽.


쿵.


하고,


그녀가 떨어졌을 때보다는 훨씬 작은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의 소음이라면 아마 철제 문을 뚫고 나가지는 않을 테였다.


발치에 무언가가 걸린 탓이었다. 시윤은 발가락을 매만졌다. 인상을 찡그리고 몇 초 정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기력도 없고, 질러서도 안된다는 걸 알았다. 비명을 지르면 확실하게 게임 끝이다.


‘남자’가 근처에 있다면 확실히 그녀를 죽이러 올 테다.


시윤은 제한된 시간 내에, 방의 구조와 무엇이 있는가를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상대인 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방 안에 들어왔을 때를 노려야 했다. 기회는 한 번 뿐이었고, 사각을 이용한 기습이 전략의 전부였다.


철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고, 시윤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남자는 감각이 아주 예민한 사람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바로 알아챌 지 모른다. 시윤이 그동안 기절한 척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할 뻔했을 때는 남자가 모두 반응을 했으니까.


이전에 있었던 자세 그대로 누워 있다면 남자는 아무런 기색도 없이, 식수만 입에 넣어 먹이고는 떠났지만. 자세가 조금 흐트러져 있다던가. 움직인 낌새가 보이면 조금 의아해했다. 정신을 차렸는가, 아닌가 고민을 하는 듯도 보였고.


이 어둠 속에서 불도 켜지 않고 아주 미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눈치채는 인간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면 끝이다, 이미. 다가오기 전에, 먼저 뒤를 노려야만 했다. 방의 넓이, 구조. 무기로 쓸만한 물건을 찾고.


문이 열렸을 때, 남자의 사각에 있다가 뒤통수를 때려야만 했다.


그것만만 하더라도 아주 어려운 일이다. 가능성이 적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면, 시윤은 망설이지 않는다. 그건 타고난 성격의 문제이기도 했다. 시윤은 나름대로 당찬 면이 있었다.


쿵, 하고 그녀의 발가락이 찧인 곳은 목제 상자같은 물건이었다. 제법 묵직해서, 별로 밀려나지도 않고 시윤의 발에 고통만을 주었다. 시윤은 고통을 참고, 물건을 더듬어 보았다.


잘 닫혀있는 상자다.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열 수 있을까? 나무 상자의 위에 무언가 더 올려져 있었다.

봉투 같았다. 봉투 안에 자그마한 박스가 들어 있었다. 시윤은 조심스레 그것을 꺼내어, 흔들어본다. 한 손으로 들고 흔들 수 있을만한 크기와 무게감이었다. 시윤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근력의 부재였다. 원래는 있었으나, 십 일 정도 갇힌 뒤에 굶기만 하면 이렇게 된다. 정말로, 조금만 더 혹독한 환경이었으면 기절하거나 죽었을 지도 모른다.


덜걱, 하고 안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작은 부품들, 파편들처럼 느껴졌다. 시윤은 플라스틱 박스를 흔들어보다가, 흔하게 열 수 있을만한 간단한 구조인 걸 알고 열었다. 바스락거리는 느낌의 무언가가 있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붙들려서, 이렇게 있다. 상자 속의 내용물이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게 있을 수도 있었지만. 시윤은 거침이 없었다. 이미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제일 끔찍했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이상한 물건은 아니었다.


플라스틱, 혹은 금속의 파편들.


시윤은 조금 그것들을 살피다가, 이내 전자기기의 잔해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자신의 핸드폰이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다. 달리 이 곳에 있을만한 물건이 있겠는가. 시윤과 관계된 물건들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신발이나 양말, 뭐 그런 것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 시윤은 방의 구석구석에 놓인 상자나 봉투 따위들을 더듬어 물건들을 구분해냈다.


*

laura-rivera-3a7SyW0h8vQ-unsplash.jpg


작가의말

음.

5권에서는 끝이 나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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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8. 차량 속, 시내 속 24.02.27 19 0 21쪽
97 97. 비명 24.02.26 21 0 12쪽
96 96. 김 경위 24.02.26 15 0 11쪽
95 95. 확신 24.02.26 17 0 15쪽
94 94. 선잠 24.02.26 2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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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2. 뉴스 속보 24.02.25 19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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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 수요일(1) 24.02.24 14 1 12쪽
87 87. 대담한 대담 24.02.23 23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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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 재미있는 이야기 24.02.22 19 0 15쪽
84 84. 창고 24.02.21 16 0 18쪽
83 83. 있지도 않은 24.02.21 16 0 26쪽
82 82. 화요일, 결론 24.02.20 18 0 11쪽
81 81. 화요일(3) 24.02.20 16 0 18쪽
80 80. 화요일(2) 24.02.20 16 0 15쪽
79 79. 화요일 24.02.19 19 0 14쪽
78 78. 일요일 24.02.19 17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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