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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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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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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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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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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330. 착탄

DUMMY

지베르트는 위대한 사업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건 MP를 다루는 고도의, 초상술사이기에 느끼는 것일 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알사드 대공은 대륙을 변화시킬 변혁자가 될 지도 모르는 인물이었고.


지금 그 계획에 참여하여 아티팩트를 다루고 있는 그는. 산슈카 전 국토에 이르는 대업을 이루고 있는 몸이었다.


정육면체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의 로브자락 속으로 여러 개의 아티팩트들이 보였다. 악세사리의 형태로 치렁하게 걸쳐져 있는 물건들이었다.


뛰어난 초상술사도 한 번에 여러 개의 아티팩트를 다루면, 결국 ‘의지력’에 한계가 오게 마련이었다.

다량의 아티팩트를 무리 없이, 동시에 다룬다는 건 그만큼 그가 뛰어난 술사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초상술의 발현 과정은. 스킬의 구조를 짜는 단계와, 짜여진 구조 위에 MP를 흘러가게끔 해서 스킬을 발현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아티팩트를 사용한다는 건 구조를 짜는 전반부의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었지만. 후반부의 과정만큼은 일반적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신의 역량 이상의 일을 순간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아주 뛰어난 아티팩트들을 만난다면. 그러나 일정 부분은, 자신의 컨트롤이 필요했고.

평소에는 사용할 수 없던 수준의 스킬이 발현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도 있었다.


네 가문의 약속을 발동시키고 다루고 있는 지베르트는 자신의 감각이 확장됨을 느낀다.


저 먼 곳에서, 거력이 날아들고 있었다.


MP라는 건 이론상으로는, 빛처럼 빠를 수도 있었고.

초상학적인 논담 속에서 빛보다 빠를 수도 있었다.

지금 그가 다루는 MP들이 그만큼 빠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산슈카의 영토 전역 즈음 되는 범위임에도 불구하고 초 단위로 양극단을 오가는 수준이기는 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국토 내의 물건들이었다. 데슈칸 산맥의, 그리턴 가의 장벽과 관문에서. 세슈칸 시의, 거대한 성벽과 또 그 내부의 성채에서. 사르삿의 성벽 역시 MP를 제공하는 배터리의 역할을 했다.


또 그 외에도 각지에, 사람들의 생활 반경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굳건하게 유지되는 건축물들이 여럿 있었다. 첨탑의 형태로, 혹은 잘 알 수 없는 기하학적 구조물의 형태로.


여러군데 있던 고대의 유물들이 하나같이 떨고, 울었고. 빛을 내기 시작하는데.


지베르트는 고작 알사드슈트의 어느 골방에 처박혀 있을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선연하게 그 광경들을 감각한다.


벅차오르는 심정마저 조금 들기 시작했다.


각지의 성벽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건축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규모를 갖고 있었다.


수백만 단위의 인구가 살아갈만한 도시를 빙 두르고 있는 거대한 장벽이라는 게. 과연 사람의 손으로 다 빚어 올릴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말인가.


고대 제국 때는 지금보다도 초상공학이 더 발전해 있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쓰였다. 다만 초상학, 초상력의 혜택을 보는 인구와 그렇지 않은 인구가 극명하게 나뉘었고.


제국의 부유층, 한정된 계층만을 위해서 그러한 선진 기술들이 쓰였다.


제국 자체는 아주 강대했고, 견고했다. 그렇기에 긴 시간을 버텼고. 또 그 시간동안 다양하고 막대한 자원을 모아 지금도 형체가 남아 있는 여러 유산들을 남긴 것이다.


지금의 건축 기술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저런 성채와 같이 거대한 ‘아티팩트’를 만드는 ‘아티팩트’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것이다. 현대의 건축 기계를 생각하면 정확하리라. 수천 여 년 정도가 지났고. 제국은 멸망했고.

일부만이 누렸던 그런 혜택과 영광은 대부분 사라진 시대였다.


건축 기계들같이. 제국기의 찬란함을 엿볼 수 있는 핵심적인 기기, 아티팩트, 기술들은 모조리 실전이 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비상식적인 규모의 건축물을 통해서. 그리고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서 현대의 학자들이 역추론을 해볼 수는 있었다.


필리아 대륙 전역에서 개발되어 다루어지고 있는 모든 MP의 양보다, 당시 제국기에 쓰였던 MP의 양이 아득하게 많았으리라는 건 확실한 정설로 보여진다.

혹은 더 적은 양의 MP만으로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있었다거나 말이다.


SP와 MP는 측정이 가능한 에너지였고. 그것은 곧 세계를 바꾸어내는 가장 특별하고 강력한 힘이기도 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SP는 무궁무진했고. 그것을 다루어낼 수 있는 사람, 초상공학, 그리고 아티팩트들 따위가 부족하기에 다 담아낼 수 없을 뿐이었다.


산슈카 제국이 멸망을 하고. 영토는 잘게 쪼개져서 지금의 여러 나라들과. 북부의 아릿시안 제국만이 남게 되었으나. 지금 남아있는 이 여러 나라들을 전부 합친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제국과 비교하기 어렵다는게 산슈카 고학자들의 주장이었다.


물론 아릿시안 제국의 저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허점이 있기는 하다만. 그런 고로, 제국 측의 학자들은 이러한 결론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적인 나라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아릿시안 제국조차, 고대에 있었던 산슈카 제국의 기지를 잇노라고 스스로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우스운 표방이기는 했다. 아릿시안 제국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던 나라 중에, 멀쩡히 그 이름을 잇고 있는 산슈카 왕국이 있었으니.


아릿시안 제국의 초창기, 대륙을 휩쓸던 정복 황제의 열망은. 이름과 역사를 갖고 있는 산슈카를 집어삼켜서 고대의 산슈카 제국을 자신들의 의지로 부활시키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야욕은 지금은 멈춰 있었고.

산슈카는 오늘 날까지 잘 살아남았다.

허나 외세의 그것이 아니라 내부의 악성 종자에 의해서 무너질지도 모르는 것이 오늘이었다.


산슈카의 역사는 어찌보면 계속되는 반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예전 제국기 시절의 전쟁 때도. 외적의 공격보다는 내란으로 인한 혼란이 더욱 큰 어려움이었으니.


“하···.”


숨죽인채 그를 지켜보고 있는 뒤켠의 단원들은, 이미 의식 바깥이었다. 지베르트는 달뜬 신음처럼 웃음을 뱉었다.


그만큼 강렬한 충족감이 그의 뇌리를 채우고 있는 탓이다.


MP라는 건 에너지였고. 신비의, 혹은 기적의 힘이기도 했다. 신이 이 땅에 허락한 축복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불가사의였다.

그건 인간의 의지를 따라서 무수한 형태로 변화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듯 다양한 결과를 현실 세계에 이끌어낸다.


막대한 MP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그 통로가 되는 인간의 각 기관들은 더욱 강화되기도 했다. 그런 강화술의 원리만을 깊숙하게 파고들어 따로 만들어진 유파를, 지금에 와서 ‘기력술사’라고 부르는 게 아니겠는가.


초상술사들 역시, 기력술사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신체의 단련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능력자, 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분명 더 강한 면이 있게 되는 법이다.


지베르트는 막대한 MP를 느끼고 다루면서 기쁜 감정마저 들고 있다. 자신이 평생을 수련해도 도저히 닿지 못할 것같은 경지의 근처를 엿보는 기분이기도 했다.


타인의 공으로 산의 정상에 오르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밖에’ 누릴 수 없다는 생각. 올바른 방법으로 오른 게 아니라는 점에서 오는 어느 정도의 배덕감. 뭐 그런 것들이 부자연스런 기쁨을 더욱 배가시키기도 한다.


MP는 곧 감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감각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리라. 사람의 신체에 여러가지 감각 기관들이 있는 것처럼. 스킬의 구조를 잘 짜서 발현한다면 술자가 다루는 MP는 충분히 그런 감각 기관들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감지술사들이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일을 눈앞에서 보듯 보고. 어마어마한 범위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자신의 MP를 퍼뜨린다는 게 가장 기본적인 원리였고.


지베르트가 움직이고 있는 건 그의 MP는 아니었지만. 산슈카 전역을 휘돌고 있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와 일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가적인 효과로, 그는 인간의 감각이 아닌 듯한 것을 느끼며 산슈카를 바라보고, 듣고, 만져보는 중이었다. MP로 인해서 말이다.


지베르트의 의식 세계는 광활한 산슈카 전 국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인의 눈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지만. 그 스스로는 마치 거인이 되어 산슈카를 굽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초감각이다. 이것이 MP를 다루며 대현자의 길에 다다른 이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베르트 마샬은 닿아본 적 없는 경지에 대해 추론하기 시작했다.


유적지라고 부를만한 거대한 건축물들에서 유색 선명한 빛줄기들이 뿜어져나왔다.


각지의 시민들. 목격자들은 비명이나, 혹은 경탄의 함성 따위를 내지를 테였다.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뻔하다. 누가 보아도 기이하고 심상치 않은 상황이 아닌가.


산슈카에 무슨 커다란 변고가 일어나는 전조로 보기에도 충분하다. 실로 그게 맞기도 했고.


각 대도시. 혹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奧地. 그런 곳에서 산슈카 제국 시절 주입되었던 대술사들의 MP가 뿜어져나왔고. 수천 여 년의 역사를 지나서도 여전한 방대한 힘이 한 군데 모이기 시작했다.


알사드 슈트령 근처로 모이고 있었다. 다만 초고도의 상공이었기에, 알사드 슈트와 빛무리의 움직임을 곧바로 연결지어 생각하는 건 어려우리라.


뭐든지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중요한 법이었다. 지베르트는 그렇게 여기며 현란한 지휘자가 된 마냥, 거력을 컨트롤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서. 산슈카를 부숴버릴만한 힘이 허공에 모였다.


그런 힘이 허공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SP들이 술렁대기 마련이었다.


바깥에서 아직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군사들이 있었다. 지독하게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전쟁은 쉬이 끝나지 않았고. 수 만의 목숨을 대가로 시간을 벌고 있는게 작금 대공령의 현황이었다.


아마 자신의 저택 내부에 있는 알사드 대공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리라. 아니. 도리어 지루함으로 인해 하품이나 하면 모를까. 그 작자는 인정이나, 인간의 목숨에 대한 존중이 없는 부류였으므로 말이다.


지베르트도 그런 이의 일을 돕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동류일지도 몰랐다.


까마득한 하늘 위. 구름보다 더 높은 곳.


각지의 건축물에서 솟아난 빛줄기들이 순식간에 모여들고 있었다.


주변의 구름의 움직임, 대류의 움직임이 기묘하게 변했고.


하늘이 술렁거렸다.


전쟁 중에 있는 병사들조차 느낄 정도의 변화였다.


산슈카 전역에 이르고 미치고 있는 거대한 전조이다.


어두운 하늘에 생겨난 빛줄기.


구름 너머에 숨어버렸기에 그 전모가 보이지는 않지만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지베르트는 그 MP들의 흐름을 선연하게 느끼며 자신이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사드 슈트령. 그가 다루는 네 가문의 약속에서 곧바로 수직 상공.


십 수 키로미터 이상의 상공에, 인공적인 광원이 생겨나서 그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정교하게 조작되는 MP체體였고.


구체 형태의 물건이었다.


크기가 거대해질수록, 심상찮은 진동을 주변에 뿌리고 있었다. 다만 광채가 더욱이 빛나며 주변을 밝히지는 않았다.


강력한 초상술사들은 늘 스킬을 다룰 때. 필요한 이외의 현상은 일으키지 않게끔 조절을 한다. 지금 지베르트 역시 그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역량이라기보다는. 그가 쥐고 있는 네 가문의 약속, 이라는 아티팩트의 뛰어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짐작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리라.


왕도의 성벽 보호막이 깨진 것을 알아챈, 궁정 술사단의 단장이나, 뭐 그런 작자들은 혹시 예상이나 하고 있을까.


MP의 흐름에 민감한 자들. 그리고 고대의 아티팩트 따위를 깊이 연구하고 학식이 충분한 인간들이나 간신히 떠올릴만한 일이었다. 현재 그가, 대공의 명命에 따라 저지를 짓은.


지베르트 외에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이가 별로 없을만한, 광원은 점차 크기를 키워간다.


산슈카의 여러 지방에서 전이되는 에너지는 마치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끝이 없는 에너지라는 건 무엇보다도 확실한 허상이란걸 과학자는 모두 알게 마련이었다. 과학으로 정의되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에서나 찾을 수 있는 표현이다. 무한한 힘같은 건.


그러나 일시적으로 그것을 다루는 지베르트에게 전능감과 비슷한 감각을 줄 정도로 방대한 힘이었다.


제국의 전성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힘이다. 지베르트는 아티팩트를 연구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산슈카의 옛 역사에 대해 박식해져야만 했다.

산슈카 제국의 위용을 묘사하는 많은 문헌들이 있었는데. 지금 그가 당시의 힘의 편린을 직접 보고 있었다. 제국은 실로,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던 대국이었다. 이런 나라를 어떻게 무너뜨렸는가, 역사를 파다보면 의구심이 들 정도로 강대한 국가다.


그러나 제국의 발전은 신민들을 완벽하게 위하는 것에서 벗어났고. 일부 계층만이 그 영광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소외된 자들은 반발이 쌓이게 마련이었고. 제국의 오랜 집권에 반감을 가진 특권 계층들이 합류하면서 일은 벌어졌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당시 제국에 비해서 작금의 기술력은 훨씬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일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인프라가 있는 도시에 머문다면, 누구나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시대는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만일 대공의 계획이 그 자신의 말대로 성공으로 끝난다면. 이후에 대공에게 힘을 보탰던 이들은, 과연 고대의 제국과 다른 완벽한 국가를 세울 수 있을까.


지나치게 먼 미래를 상상하는 것 같았고. 또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제국의 영광을 제 몸으로 느끼고 있는 지베르트는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인간은 생각이 변하는 법이었으니. 거시적인 힘을 다루며 왕국을 내려다보는 그는 자연스레 그런 역사적 흐름과 최후에 대해서도 생각이 닿는다.


곧,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에너지는 완벽하게 모였다.


하늘 위에 달과 같은 형상이 떠 있었는데. 구름이 짙게 가리고 있는 곳 위였기에 아마 지면에서는 그 형상이 잘 보이지 않고 있으리라. 더군다나 쓸데없이 밝은 빛을 내지 않게끔 조절하고 있기도 했고.


그러나 정말 천체의 일부가 대륙의 상공에 떠 있는 것만큼이나. 강렬한 힘을 품고 있는 것이 그가 만들어낸 물체였다. 항성, 태양이 그러하듯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끊임없이 약동하고 있었다.


금빛, 에메랄드빛, 백색. 여러 색깔이 합쳐져 있는 구형의 에너지체.


한 번에 제국기 시절 유물들의 힘을 모조리 뽑아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지베르트는 미리 연구와 계획으로 정해두었던 수준의 에너지가 모이게 되자.


허공에 떠 있는 힘에 방향성을 정해주기 시작했다.


방향과 속도. 그 목표 지점까지의 궤적을 설정한다.


목표는 모여있는 그 힘만큼이나 거대한 무엇이다.


산슈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발사.”


라고,


중얼거린 건 지베르트는 아니었고.


알사드슈트, 대공령 내 자신의 자택에 있는 대공이었다.


그는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는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특제의 아티팩트가 여러 종 있었고. 개중에서 몇 가지를 다시 복구해서 직접 가지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네 가문의 약속을 컨트롤하는 장치는 아니었지만, 그 장치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들을 측정하는 일 정도는 가능한 물건이었다.


그는 연구소, 연구단의 단장인 지베르트 마샬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구나, 알 수 있었다.


생애 느껴본 적이 없는 수준의 거대한 힘이 초고도의 상공에 모여 있었고.


적당한 수준을 넘었을 때 대공은 홀로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공령 근처의 평야에서는 그가 평생 심혈을 기울여 모으고 길러낸 병사들이 죽어 나자빠지고 있었는데.


세르게이 알사드에게 그것이 그리 큰 의미는 아니었다.


병사는 애초에 죽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던가. 세르게이는 그리 생각을 했다. 인간의 목숨을 소모품 이하로 보고 있는 사이코패스이기에 말이다.


어차피 버림패로 쓰려고 모은 것이 대공가의 정예병들이었다.


버리는 말로 쓸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 능력자들, 초인병들이었고.


왕실을 전복시키고 산슈카의 통치권을 얻게 된다면.


다소의 희생들은 모두 복구할 수 있으리라.


계획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아직도 로멜리아 가문을 멸족시키지 못한 것은 머리 한 켠에 짜증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계획에는 가끔 변수나 아쉬운 점도 생긴다는 걸. 세르게이 알사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상 어느 인간보다도 계략에 능숙한 인간이니까 말이다.


세상사가 모두 그 사이코패스의 뜻대로만 이루어졌다면. 진즉에 필리아 대륙 정도는 무너지고 말았으리라.


세르게이 알사드는 파괴를 원했고. 제 입맛대로의 변화를 원했다. 언제나. 세상을 그저 놀기 좋은 장난감 정도로만 보고 있는 인물이었고. 거기에는 어떤 애정도 없었다. 예전에 이미 싸늘하게 식은. 아니, 태어난 이래로 한 번도 정상적인 온도로 뛴 적이 없는 심장을 가진 인간이 그였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말이다.


그는 다른 누구, 혹은 다른 무엇이 부서질 때만 쾌감을 느끼는 부류였고. 사실 이토록 긴 세월을 살아온 지금은. 그런 파괴에서도 충분한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지독한 병신이었다.


그렇기에 긴 시간을 들여 이런 일을 획책하고 저지르는 중이다.


여태껏 역사적으로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위업을 저지른다면. 조금이나마 즐거움이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대공은 달빛이 비추는 하늘을 바라보며, 산슈카 왕성이 있는 방향 즈음을 가늠하여 손가락으로 가리켜보았다.


그 손가락 끝의 연장선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


하늘에 있는 광원은 힘, 그 자체였다.


거대한 힘을 사역하고 있는 주체는 곧바로 아래에 있는 고대의 아티팩트였고. 그 아티팩트를 다루는 술사, 지베르트 마샬이다.


지베르트는 때가 되었노라 여겨서, 그 힘을 방출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자그마한 성채 수준의 크기를 하고 있는 광구가 움직였다.


광구가 움직이며 긴 궤적을 남긴다.


광구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남으며 사라지지도 않았으므로, 조금 느린 광선의 움직임이라고 보는 게 나을 테였다.


거대한 광선이, 먼 하늘을 짚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구름을 찢고, 초고도의 상공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온다.


사람의 시선에서 보자면 너무나도 아득한 거리를 순식간에 내달렸다.


빛의 움직임이라고 한다면 한없이 느린 속도이기는 했다. 실제 광선이 아니라 MP를 이용해 만들어낸, 비슷한 투사체일 뿐이었다.


대공령 앞 평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어느 일반병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 그어질 동안.


거대한 광선포는 수 키로미터를 이동했다. 음속은 가뿐하게 넘는 수준이었고. 열 배 즈음은 되는 속력이었다.


지치고, 이미 예전에 한계에 달한 병사들이 죽어 나자빠질 때.


몇 명의 대공군이 또다시 목숨을 잃는 동안.


다채로운 빛깔이 섞여 있는 광선포는 곧 왕성의 어귀에 닿았다.


상당한 고도의 상공에서 그대로 질러 오는 무식한 공격이었다.


그 위용에, 수도 사르삿에 거하고 있던 방위체계의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아연실색을 했다.


그대로 성벽 부근을 때려도 문제다. 그 근처 민가를 때려도 그렇고.


가장 최악은 왕성을 직접 타격하는 것일 테다.


갑자기 날아오는 미상의 물체가, 그 정도의 정확도를 가지고 있는가.


사르삿의 중심부, 왕성 중 붉은 독수리궁에서 초상술사들이 뛰쳐나왔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인지를 한 상황이었지만. 갑자기 이따위 공격이라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규격의 공격이었고.


정신이 나갈듯한 상황임에도 왕실을 지키는 수호자들은 강한 의지로 그것을 막아서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한참이나 불행이겠지만.


광선포는 왕성을 곧바로 타격하지는 않았다. 방향은 맞았으나 거리가 조금 틀렸다.


거대하게 지어진 사르삿 성벽의 윗부분을 조금 깎아내면서, 광선포가 대각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었다.


본디 사르삿 성벽에 걸려 있는 보호 아티팩트, 스킬들이 동시에 작동을 하며 저런 공격을 일차적으로 방어해야 했는데.


어느 괴인들의 습격으로 인해 방위 체계가 일순간 무너져 있는 상황에 벌어진 난리였다.


밤하늘, 빈 허공을 지나 광선포는, 그대로 사르삿 외곽 지대의 한 구석을 강타했다.


콰앙,


하는 몇 글자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길고 지독한 폭음, 굉음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강렬한 빛무리에, 폭발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곳까지도 순간적으로 낮만큼이나 밝아졌고.


왕성에서 그 광경을 관측하던 초상술사들의 표정에서, 핏기가 전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사르삿 외곽지대. 키로미터 단위의 반지름을 가진,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그들이 지어놨던 건물들까지 모조리.


폭발이 아니라 소멸이라는 말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깔끔한 파괴였다.


높쇠매의 궁에서 상황 보고를 받던 벨케임 7세, 국왕의 표정 역시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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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331. 무수한 게임 오버Game Over 24.05.31 9 1 15쪽
» 330. 착탄 24.05.30 14 1 22쪽
330 329. 계획, 본격적(2) 24.05.29 11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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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324. 전쟁, 한창(2) 24.05.21 14 1 14쪽
324 323. 전쟁, 한창 24.05.20 10 1 15쪽
323 322. 몸을 부대끼며 24.05.19 11 1 14쪽
322 321. 어느, 한 명의 탈락 24.05.19 9 1 13쪽
321 320. 전쟁(5) 24.05.19 10 1 18쪽
320 319. 전쟁(4) 24.05.18 6 1 18쪽
319 318. 전쟁(3) 24.05.18 9 1 16쪽
318 317. 전쟁(2) 24.05.15 9 1 14쪽
317 316. 전쟁 24.05.15 10 1 16쪽
316 315. 호출 24.05.14 7 1 14쪽
315 314. 건너가는 24.05.14 12 1 11쪽
314 313. 로그, 아웃. 24.05.13 11 1 11쪽
313 312. 요식업자 24.05.13 10 1 17쪽
312 311. 영감 24.05.12 13 1 16쪽
311 310. 아이템들Items 24.05.11 11 1 18쪽
310 309. 가쁜 숨을 편히 내쉬며 24.05.11 8 1 20쪽
309 308. 박제가 될 뻔한 천재를 아시오 24.05.11 11 1 23쪽
308 307. 파고 들기 24.05.10 9 1 21쪽
307 306. 제 몸 살라먹기 24.05.10 7 1 12쪽
306 305. 늑대의 뱃속에서 24.05.10 7 1 13쪽
305 304. 뇌검雷劍 24.05.09 8 1 24쪽
304 303. 검은색. 금청색. 24.05.08 10 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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