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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23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12.26 23:50
조회
101
추천
2
글자
8쪽

업의 그림자 (6) 하인츠

DUMMY

하인츠는 잠시 고삐를 쥐며, 자리에 멈춰 섰다. 대장군은 고개를 돌려, 기나긴 행렬을 바라보았다. 북부로 향하는 병사들이 만들어낸 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정도 속도면 모레쯤에 옌드리케에 도착할 수 있을게요, 대장군 나리.” 살짝 뒤에서 말머리를 이끄는 헤스마르 케멜이 말했다.


기나긴 행렬 위에 펼쳐진 하늘은 조금씩 붉은 빛으로 변했다. 하인츠는 차분히 갈기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쉬는 게 좋겠군.” 하인츠가 말했다.


프레이루엘의 북부에는 드넓은 초원지대가 있었다. 아름다운 초원을 가로지르는 거대하고 긴 강이 있었다. 북부에서 흐르는 ‘거인의 강’은 대초원을 지나 프레이루엘로 이어졌다.


거인의 강이 만드는 차분한 물소리와 함께, 하인츠는 막사 사이를 천천히 살폈다. 이제 겨우 행군을 시작했기에, 병사들의 표정에는 아직 활기가 보였다. 하지만, 하인츠는 달랐다.


진압군의 대부분은 갓 소집된 풋내기들이었다. 그마저도 긴급히 모았기에 숫자가 부족했다. 남은 여분은 프레오른이 덧붙여준 자유 기수들과 사병들이었다. 그들은 전혀 믿음직하지 않았다.


이런 병사들로 모한 바르도나를 진압할 수 있을까? 하인츠의 얼굴에는 근심이 드리웠다. 혹여 돈에 목숨을 거는 자유 기수들이 하인츠의 등을 찌르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하인츠에게 헤스마르 케멜이 다가왔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이까?”


하인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런 일도 없소.” 하인츠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대초원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조잡한 진영에 불었다. 하늘은 어느새 잿빛으로 변했고, 겨울의 차가운 반달이 보였다. 하인츠는 주변을 살피는 것을 그만두고 대장군의 막사로 돌아갔다.


하인츠는 장막을 들추고 막사 내부로 걸어갔다. 은은한 횃불이 조용히 타오르던 막사에 누군가가 있었다.


지팡이를 쥔 프레오른 황자는 막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황자의 얼굴은 흉터가 가득해 흉측했지만, 프레오른 황자는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장군.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평범한 비단으로 만든 셔츠를 걸친 황자가 말했다.


하인츠는 깜짝 놀라 그만 소리를 지를뻔했다. 가까스로 목소리를 죽인 하인츠가 곧바로 물었다. “어째서 황자님이 여기 계십니까?”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황자는 아랫자리로 손짓하며 말했다.


하인츠는 묵묵히 걸어가, 황자의 손끝에 놓인 자리에 앉았다. 프레오른 황자는 언제든, 누구한테든 공손하게 대했다. 하지만, 그런 예의 바름에는 왠지 모를 위압감이 있었다.


“갓 만들어진 부대를 통솔하느라 고생이 많으시군요.” 황자가 말했다.


“아뇨, 아닙니다. 앞으로는 더 큰 일이 생길 텐데,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죠.” 하인츠가 겸허히 대답했다.


황자는 지팡이 끝으로 나무 의자의 다리를 두드렸다. “그렇지요. 모한 바르도나를 토벌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많은 걸음을 걸어가야겠지요.”


“격려 감사합니다, 황자 전하. 하나 프레이루엘에서 머나먼 길을 오신 이유가 그 격려를 위해서는 아니겠지요?” 하인츠가 다시 본론을 물었다.


“딱히 머나먼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대의 훌륭한 연설도 아직 보름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요.” 황자가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하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겨우 그런 허울뿐인 격려를 위해 이곳에 온 것도 결코 아니지요.” 마침내 황자가 본론을 꺼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그저, 그대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 내 직접 그대를 찾아왔지요.”


하인츠는 마른 침을 삼켰다. 황자가 직접 행차하여서 하는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닐 터였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중요한 이야기니, 각설하고 본론을 이야기토록 하겠습니다.” 황자는 짧게 한숨을 뱉었다. “나는 그대에게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황자는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나는 프레이루엘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 말은 놀라운 이야기였지만, 하인츠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프레오른 황자가 그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 하인츠 충분히 예상하였다.


“···놀라운 이야기군요.” 하인츠는 짐짓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구태여 제게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물론 이유가 있으니 이곳에 왔지요. 방금은 제안이라고 표현했지만, 제안보다는 명령에 가까울지도 모르겠군요.” 황자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하인츠는 아직 그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명령입니까?” 하인츠가 말했다.


“그대는 사람을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황자가 말했다.


“···예?” 하인츠는 의아한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황자는 여전히 이상한 미소와 함께, 하인츠의 대답을 기다렸다. “···명예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하인츠는 뻔한 대답을 뱉었다.


프레오른 황자의 얼굴에서는 실망감이 비췄다. “명예라···. 흔한 기사의 대답이로군요, 대장군.” 황자가 말했다. 하인츠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황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포입니다. 위압적이고, 담대한 공포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지요. 그 두려움은 사람들을 위축시켜, 손쉬운 통치를 가능케 하지요. 그러니, 공포는 참으로 훌륭한 수단이지 않습니까?”


하인츠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벌써 황자가 내뿜는 공포에 주눅이 든 하인츠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제게 하려는 명령이 그것과 상관이 있습니까?”


“프레이루엘에 공포를 심기 위해, 작은 계획이 있습니다. 이 계획에는 그대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하지요.” 황자가 말했다.


“어떤 계획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인츠가 물었다. 황자가 자리한 대장군의 의자보다 훨씬 낮은 자리에 앉은 하인츠는 두 사람의 자리처럼 공손했다.


“나는 프레이루엘을 장악하고, 내게 반대한 이들에게 작은 벌을 내려주려고 합니다. 그대의 양해가 필요한 일이지요.” 황자가 말했다. “나의 작은 연극의 배우가 되어줘야겠습니다.” 황자는 여전히 작은 미소를 띠었다.


하인츠는 황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그대의 반란에 협력할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명예롭지 않은 일에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인츠는 황자의 미소에 반발하여 큰소리를 냈다.


하지만, 황자의 얼굴에는 여전히 음흉함이 있었다. “그대의 협력을 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통보니까요.”


황자의 대담함에 하인츠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그대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 겁니다. 프레이루엘에서는 그대가 황자의 횡포 때문에 별수 없이 협력했다고 소문을 낼 테니까.” 황자가 말했다.


그 명령은 하인츠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쉽사리 거절할 수도 없었다. 어느새, 대장군의 막사 뒤편에는 헤스마르 케멜과 그들의 부하가 있었다. 진압군의 대부분은 하인츠가 아닌 황자의 명령을 듣는 이들이었다.


이런 적진에서 하인츠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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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마지막 장작 (9) 에리크 22.03.19 20 0 12쪽
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75 마지막 장작 (4) 글라드 21.10.09 15 0 7쪽
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5 0 7쪽
73 마지막 장작 (2) 린 21.08.07 17 1 7쪽
72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1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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