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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14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1.07.17 23:50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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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DUMMY

차가운 강물이 바위를 내려치는 소리가 귀를 간질었다. 짐마차에 올라탄 에리크는 조용히 숲의 끝자락에 자리한 폭포로 눈길을 옮겼다.


“아름다운 폭포군요.” 에리크가 말했다.


“옴브린 숲의 자랑거리 중 하나야.” 할코르가 짐마차를 몰며 말했다. “지겨운 숲에서 살아가게 하는, 좋은 원동력이지.”


에리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 폭포는 그리 크다거나, 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폭포였다.


할코르는 말을 계속 덧붙였다. “처음 옴브린 숲에 왔을 때, 수많은 것들에 놀랐지. 저 폭포도 그중 하나고.”


짐마차는 폭포를 지나치며, 좁은 언덕길을 올랐다. 에리크는 할코르에게 질문은 던졌다. “옴브린 숲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계셨나요?”


할코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곧, 할코르는 입을 열었다. “나는 북부의 작은 요새에서 태어났어.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북부는 모처럼의 전쟁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지. 레데오르 라투스가 일으킨 반란은 북부에 수많은 과부와 고아를 만들었지. 아마, 나도 그중 하나였을 거야.”


레데오르의 반란. 프레이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에리크는 아는 체하지 않고, 조용히 할코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나이에 길거리에 나온 나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어. 바닥에 떨어진 빵이나 동전을 찾으려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지. 덕분에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은 기억도 나지 않아.” 할코르는 차분하게 말했다.


언덕길을 지나 어느새 짐마차는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할코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지긋지긋한 생활에 질릴 때쯤, 수호자를 만났지. 운 좋게도, 나는 수호자의 병사가 될 수 있었어. 수호자는 내게 기회를 주었지. 차가운 길거리에서 벗어날 기회를 말이야.”


에리크는 옴브린 숲의 수호자를 떠올렸다. 은빛 생머리의 수호자. 스쳐 가듯 잠시 본 광경이었지만, 누구보다도 기억에 남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선택을 후회한 적 없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할코르는 그 말을 남기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조용히 앞을 바라보며 마차를 움직였다.


짐마차는 어느새 숲의 한가운데에 도달했다. 숲을 지탱하는 거대한 나무가 눈앞에 들어왔다. 에리크를 태운 짐마차는 곧 거목 앞에 멈춰 섰다.


할코르는 거목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수호자여.”


에리크는 할코르가 건넨 말을 쫓아 거목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은색 머리의 수호자가 있었다.


“무사히 다녀왔는가, 할코르여.” 옴브린 숲의 수호자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이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할코르는 마부석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예, 수호자여. 스톨리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안전했습니다.” 할코르가 말했다. 스톨리그는 옴브린 숲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참 다행이구나.” 수호자가 말했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은 할코르를 지나, 에리크에게로 향했다. 에리크는 자기도 모르게 수호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년도 함께하였구나. 그래. 스톨리그는 어땠나, 소년이여.”


에리크는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다. “포근함이 있었습니다. 북부도 프레이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더군요.” 에리크가 말했다.


수호자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가···. 고생했네, 가도 좋아.” 그녀가 말했다.


할코르는 가볍게 절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호자여.” 에리크도 할코르를 따라 절했다.


짐마차는 거목을 떠났다. 저장고로 이어지는 숲길에서는 차분함이 느껴졌다. 수호자가 만들어낸 긴장감이 제법 사라질 무렵, 에리크는 겨우 숨을 골랐다.


“긴장했나?” 할코르가 물었다.


에리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누구도 아닌 수호자의 앞이었는걸요.”


“너무 그러지 말라고. 수호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니까.” 할코르가 말했다.


에리크는 가볍게 수긍하고 잎으로 울창한 숲을 올려다보았다. 넓고 아름다운 숲을 바라보며, 에리크는 꽤 오래 품어왔던 궁금증을 꺼냈다. “수호자는 왜 이런 숲에 있는 겁니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할코르가 대답했다. “수호자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한가?” 에리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도와준 보답으로,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할코르는 여전히 짐마차를 앞으로 이끌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호자의 이름은 나르비아나. 자세히는 모르지만, 프레이의 제법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더군.” 할코르가 말했다.


“북부인이 아니었어요?” 에리크가 물었다.


할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애초에 외견도 북부인이 아니지 않나?” 할코르는 짧게 헛기침했다. “각설. 그녀는 모종의 이유를 품고, 옴브린 숲에 찾아왔지. 옴브린 숲은 신비함이 가득 품은 곳이야. 이 넓은 숲 어딘가, 그녀의 목적이 숨어있을지도 모르지.”


“···모른다니. 할코르 씨도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소리잖아요.” 에리크가 말했다.


“뭐, 그렇지.” 할코르는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짧은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할코르는 나지막이 스쳐 가듯 말했다. “···어쩌면 그녀도 마지막 기회를 붙잡은 걸지도.”


어느덧 짐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할코르는 고삐를 쥐며 마차를 멈춰 세웠다. 에리크는 할코르를 따라, 짐을 옮기려 했다. 그러자 할코르가 제지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에리크.” 할코르가 말했다. “한창 수련에 열중하고 있을, 네 친구에게 안부나 전하러 가는 게 어때?”


에리크는 쉬이 수긍했다. “예, 그러겠습니다. 나중에 봬요, 할코르.”


에리크는 숲길을 걸었다. 테오가 있을 공터로 이어지는 숲길은 이제 꽤 눈에 익숙해졌다. 우거진 수풀 너머에서는 벌써, 테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무거운 양손 검을 휘두르던 테오의 곁에는 다른 이질적인 것이 있었다. 테오는 왼손에 가벼워 보이는 방패를 쥐고 있었다.


“어쩐 일이야, 테오.” 에리크가 말을 건넸다.


에리크의 목소리는 훈련에 열중하던 테오를 멈춰 세웠다. “아, 에리크.” 테오는 비밀이 들통난 것처럼 행동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기는. 그 어울리지 않는 방패는 뭐야?” 에리크는 놓치지 않고, 테오에게 물었다.


테오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대단한 건 아니야. 내 작은 고민을 들은 할코르 씨가 그러더라고. 방패를 한번 써보는 건 어떻냐고.” 테오가 말했다.


에리크는 작게 웃었다. “썩 어울리진 않지만, 나쁘지 않은데?”


테오는 다시 몸을 돌렸다. “상관없어. 이건 내게 마지막 수단이니까.” 그러더니 테오는 다시 방패에 열중했다.


손이 근질근질해진 에리크는 자신의 검을 뽑았다. “그럼, 오늘도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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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마지막 장작 (9) 에리크 22.03.19 20 0 12쪽
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75 마지막 장작 (4) 글라드 21.10.09 15 0 7쪽
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5 0 7쪽
73 마지막 장작 (2) 린 21.08.07 17 1 7쪽
»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17 1 7쪽
71 안개빛 희극 (9) 카이 바르도나 21.06.19 3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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