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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498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12.19 23:50
조회
115
추천
2
글자
8쪽

업의 그림자 (5) 아라기

DUMMY

“당신들은 참 동굴을 좋아해.” 찝찝한 동굴에 손을 올리며, 아라기는 아이마르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아이마르는 발걸음을 멈추고 아라기를 향해 돌아보았다. “이젠 우리지요, 형제여.”


“참, 그랬었지.” 아라기는 아직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아라기는 피로 가득 물든 테르훈트를 떠나, 어느새 예스트라에 와있었다. 보름도 채 안 되는 여정이었다. 그 동굴은 아홉 대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동굴이었다. 동굴이 자리한 언덕에서는 데네르만이 훤히 보였다.


아라기는 동굴 바깥에서 보았던 바다의 풍경을 기억했다. 좁은 데네르만 너머로 넓은 크레게올드 고원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예스트라가 보였다. 하지만 얼핏 보았던 예스트라의 풍경은 그다지 아라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테르훈트를 그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나?” 아라기가 물었다.


어느덧 제법 트인 공간이 보였다. 자연의 손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동굴의 가운데에서 아이마르가 말했다. “물론입니다. 형제님을 게리안트님께 소개해 드리기 위해, 테르훈트에는 잠시 들렸을 뿐이니까요. 테르훈트는 대장님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


아이마르의 어투에서는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그대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아라기는 그 믿음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위적인 동굴에 은은한 횃불이 흔들렸다. 한구석에 어색한 나무통이 보였다. 아이마르는 아라기의 시선을 인식한 듯 말했다. “아, 보셨습니다. 저게 말했던 그 물건입니다.” 아이마르는 의미심장하게 천천히 그 물건으로 향했다.


아라기도 천천히 발소리를 내며 그 뒤를 따랐다. 아이마르의 어깨너머로, 희미하게 나무통의 내부가 보였다. 작은 통은 불그스름한 가루로 가득했다.


“화포장 형제들이 즈오투에서 어렵게 구한 것입니다. 보기엔 평범한 가루지만, 불에 닿기만 하면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아이마르가 말했다.


아라기는 그 가루를 기억했다. 스타르니올드에서 압류했던 선박에서 만났던 물건이었다. ‘그 이후, 그 기묘한 가루가 든 통들이 어떻게 됐더라?’ 또다시 찾아온 두통이 아라기의 기억을 흐리게 만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아이마르가 걱정을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라기는 인상을 찌푸리고, 흐트러진 몸을 기대기 위해 팔을 어디론가 뻗었다. 차가운 동굴에 기댄 아라기가 말했다. “···그래서 통을 예스트라로 옮기려고 이곳에 온 것인가?”


아이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통을 옮길 마차도 진작에 마련해두었고, 통을 숨길 장소도 예스트라에 마련해두었지요. 그저, 평범한 상인으로 변장하여 마차에 든 짐을 무사히 은신처로 가져다주는 게 끝입니다.”


“정말 간단한 일이로군. 내가 직접 이런 곳에 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야.” 아라기가 말했다.


아이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장한 사내 두셋이면 충분하지요. 하지만, 우리 사령관께서는 완벽함을 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형제께서는 만일의 사태를 위한, 좋은 무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일은 지루한 하루가 되겠어.” 아라기는 여전히 아픈 이마를 매만졌다.


이튿날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평선 너머로 이른 아침의 햇살이 보였다. 두꺼운 로브로 온몸을 덮은 아라기는 낡은 마차의 짐칸에 올라탔다. 짐칸에는 예스트라로의 여정을 함께할 통들이 여럿 있었다.


누군가가 짐칸에 쳐진 천막을 들어 올렸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화려한 복식을 차려입은 아이마르였다.


“준비는 진작 끝났으니 그쪽이나 제대로 챙기게.” 아라기가 언짢은 듯 말했다.


조용히 천막이 내려갔다. 아라기는 잠시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천천히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위 언덕 위로 바퀴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라기는 흔들리는 마차에서 눈을 감았다. 한동안 마차는 꾸불거리는 흙길을 내려갔다. 아라기는 피곤한 눈꺼풀을 일으켰다. 마침, 경쾌한 소리를 내며 포장길을 달리던 마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예스트라의 관문에 닿자, 마차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아라기는 상인으로 위장한 아이마르에게 기대를 걸며, 두꺼운 후드로 이마를 감쌌다.


한동안 멈춰 섰던 마차의 바퀴가 다시 움직였다. 그제야 아라기는 마부 쪽의 휘장을 걷었다. 마부석에는 아이마르가 차분하게 말의 고삐를 당기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나 봐?” 아라기가 물었다.


“예스트라가 허술하다고는 자주 들었지만, 이 정도로 손쉬울 줄이야.” 아이마르는 여전히 앞을 보며 대답했다. “짐칸이 답답하시면, 앞으로 나오시지요. 딱히 보는 눈도 없을 겁니다.”


아라기는 흔쾌히 그 말을 따랐다. 물론, 두꺼운 후드는 빼먹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두드렸지만, 아라기가 예스트라의 거리를 살피는데 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한적한 아침의 예스트라 거리는 조용했다. 마차는 ‘명예의 거리’라 이름 붙은 유명한 장소를 지나고 있었다. 예스트라를 비롯한 데네르의 유명한 전투와 영웅을 기리는 장소였다.


거리에 세워진 수많은 비석과 석상들은 데네르가 겪은 수많은 전쟁을 말해주었다. 루테네르 삼두정의 카이가르의 석상이 보였다. 영웅 아이케르의 첫 번째 전투인 ‘비명 노래 전투’의 비석도 보였다.


트리할트 가문의 함대를 쳐부수는 제독의 석상과 데네르 공방전에서 용감히 전사한 에르하곤트 태자의 석상도 있었다. 그리고 아라기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크레게올드 반란의 비석도 빠르게 마차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프레이가 루테네르를 지배하고, 데네르에 프레이의 기사단이 세워졌지만, 이 명예의 거리는 여전히 루테네르의 것이었다. 아직, 이곳에서는 루테네르의 영웅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영웅들의 석상은 마차 옆으로 흐릿하고, 빠르게 사라져갔다. 두통에 취한 아라기는 주변을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마차는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아이마르의 고삐가 멈춘 곳은 뜨거운 연기 냄새가 자욱한 곳이었다. 모루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라기의 두통을 물리쳤다.


마침내 마차는 작은 대장간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우리들의 협력자가 있는 곳입니다.” 아이마르가 말했다.


“대장장이라도 매수했나?” 아라기가 물었다.


“대장장이들은 입이 무겁고, 충직한 이들입니다. 한번 마음을 얻으면, 웬만해서는 배신하지 않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도시의 대장장이들과 주로 일하곤 한답니다.” 아이마르가 말했다.


아이마르는 마차에서 내려,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작은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대장장이라···.’ 마차에 홀로 남은 아라기는 생각에 잠겼다. 등에 칼을 꽂았던 이를 기억해냈다. ‘키아렌 녀석, 분명히 대장장이의 아들이라고 했었지···.’


아라기는 더 깊은 생각을 원했지만, 두통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라기는 양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어금니를 깨물고, 천천히 아픔을 이겨내려 했다. 아이마르를 기다리며, 천천히 시간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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