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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499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1.08.07 23:50
조회
16
추천
1
글자
7쪽

마지막 장작 (2) 린

DUMMY

“도착했습니다!” 갑판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린은 갑판 위로 향했다. 곧, 트리할트의 함선 너머로 익숙한 메이룬의 공기가 느껴졌다. 린은 익숙한 공기 사이로 무언가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위화감과 함께, 린은 천천히 부둣가로 내려왔다.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데나리오트.” 린이 말했다.


트리할트의 도련님이 말했다. “별말씀을요, 아가씨.”


린을 뒤따라 레이지가 부둣가로 걸어왔다. 레이지는 데나리오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대영주께 안부 전해주시오.” 레이지는 두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데나리오트는 ‘산맥 너머’의 방식으로 손을 내밀다가, 이내 두 손을 모았다. “꼭 전하지요, 기사단장.” 레이지는 고개를 돌려 선박 아래로 걸어갔다.


린은 데나리오트에게 재차 인사를 보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데나리오트.”


“멜리시아의 축복이 함께 하길, 아가씨.” 데나리오트는 산맥 너머의 인사말을 건넸다.


트리할트의 선박을 뒤로 한 채, 린은 부둣가로 내려갔다. 어느새 레이지는 부둣가의 초입에 있었다. 그곳에서 레이지는 익숙한 얼굴의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린은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갔다. 익숙한 일등지휘관 호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기사단장.”


호안은 이내 린의 얼굴을 발견하자, 밝은 미소를 띄웠다. “오. 잘 다녀오셨습니까, 린?” 무언가를 이야기하던 레이지는 입을 굳게 잠그고 팔짱을 꼈다.


“오랜만이에요, 호안.” 린은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산맥 너머는 즐거우셨나요?” 호안이 물었다.


린이 말했다. “뭐, 그럭저럭요. 나쁘진 않았어요. 새로운 경험은 언제든 즐거우니까요.”


호안은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군요.”


레이지는 속삭이듯 나지막이 말했다. “어쨌든 말했던 건 제대로 부탁해.” 레이지는 호안의 어깨 위에 손을 살짝 얹었다.


말을 남긴 레이지는 호안이 준비해둔 마차에 올라탔다. 린은 호안에게 곁눈질로 인사하며, 레이지를 따랐다.


곧, 레이지와 린을 태운 마차가 메이룬의 시내로 향했다. 린은 말없이 레이지의 시선을 관찰했다. 레이지는 메이룬의 뿌연 안개를 올려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린도 차창 너머로 메이룬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뿌연 하늘은 린에게 이름 모를 불안감을 심어 주었다.


마차 너머로 조금씩 잔해가 다가왔다. 벌써 한 달 넘게 훌쩍 지났음에도, 참혹한 현장에서는 아직도 생생함이 느껴졌다.


메이룬의 병사 너머로, 마차는 화재가 맴돌았던 현장에 다다랐다. 현장을 통제하던 낯익은 병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기사단장님.” 병사가 말했다.


“그래, 고생하네.” 레이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재중일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주게.”


잔뜩 기합이 들어간 병사는 크게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연습한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로부터 약 한 달 전, 류 가문의 저택은 화염으로 휩싸였습니다. 사건 발생과 거의 동시에, 일등지휘관은 메이룬의 모든 관문에 병사를 보내 모든 출입자를 조사했지요. 그렇지만, 꽤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레이지가 물었다. “현장에서는 뭔가 찾은 게 없었나?”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등지휘관은 현장을 보존하라 했습니다. 기사단장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하시면서요.”


레이지가 말했다. “그만하면 됐네. 자리로 돌아가게.”


“필요하실 때 말씀해주십시오.” 병사는 크게 절하고 물러났다.


병사를 물린 레이지는 천천히, 그리고 유심히 저택의 잔해를 살피기 시작했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잔해에서는 그날의 참극이 느껴졌다. 린은 레이지를 따라, 조심히 잔해 사이를 탐색했다.


지루하고 고요한 탐색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뿌연 하늘 사이로 햇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린은 몇 번이고, 레이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이지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고도 꽤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무의미한 탐색을 지속하던 린에게 레이지가 다가왔다. “이 정도면 충분해. 본부로 돌아가자.” 레이지가 말했다.


“무언가를 찾으셨나요?” 린이 물었다.


“그래, 예상했던 것과는 꽤 다른 물건을 찾았지만 말이다.” 레이지는 잔해에서 찾은 무언가를 품에 숨기며, 마차로 돌아갔다.


끔찍했던 류 저택과 달리, 황궁 주변의 거리는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메이룬은 여전히 멋진 장소였다. 린은 레이지를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황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지겹도록 걸었던 길이었다. 그렇기에 평소와는 다른 마차의 숫자를, 린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상하게 평소보다 사람이 많네요.” 린은 의문을 보냈다.


레이지는 차갑게 말했다. “당연하지. 저들은 내가 초대한 이들이야. 메이룬의 오래된 가문을 이끄는 자들이지. 예전에는 ‘명가’라는 이름이 붙어있었지만, 더는 덧없는 이름이지.”


“어째서 그들을 초대한 건가요? 명가··· 라는 이들을요.” 린이 물었다.


레이지는 작게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진실을 위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레이지의 손에는 낡은 묵주가 있었다.


린은 거대한 미닫이문을 지나, 작은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황궁에서 가장 깊고 은밀한 장소였다. 회의장에는 ‘명가’라 불렸던 이들의 얼굴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제법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반갑소, 메이룬의 잔재들이여.” 레이지는 호통치듯 말했다.


당장 이름 모를 이들의 불평이 쏟아졌다. 오래된 명성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미천한 태생의 레이지는 눈엣가시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레이지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레이지는 그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내였다.


린이 레이지나 다른 이들을 향해 어떤 단어를 내뱉기도 전에, 레이지는 다시 큰소리쳤다. “나는 그대들이 저지른 만행을 기억한다. 그대들이 쌓아 올린 업을 기억한다. 그대들이 사소하게 내버렸던 장작들의 무게를 기억한다.”


레이지는 멈춤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주 오래전, 용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북방감시대’는 그대들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었지. 거기에 모자라 그대들은 북방감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이용했지.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말이야.”


린에게는 처음 듣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린은 레이지의 시선을 살피며, 레이지의 심호흡에 집중했다.


레이지는 한 손에 쥔 묵주를 회의장에 모인 이들에게 내밀었다. “이 묵주는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했던 수많은 벗 중 하나가 늘 쥐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감시대를 떠난 직후부터 나는 그들을 절대 잊은 적이 없지.”


“그대들이 보낸 도발의 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언젠가 이 도발을 보낸 이들에게···, 반드시 나는 차가운 칼날을 선물할 것이다.” 분노가 담긴 이야기를 끝마친 레이지는 곧바로 회의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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