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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19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1.01.02 23:50
조회
60
추천
2
글자
8쪽

업의 그림자 (7) 하란

DUMMY

“이건 중요한 이야기야.” 아디옌이 날카로운 검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아주 은밀하고, 어쩌면 눈살을 찌푸리게 할 이야기지.”


얼굴을 거의 다 가리는 후드를 뒤집어쓴 하란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오래된 대리석 아치 너머로 청색 판금을 걸친 기사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날카로운 창을 등에 멘 채 경계하듯 도이르바스의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아디옌은 지나가는 청기사들을 흘깃 보았다. 마침내 청기사들이 어린 기사의 시선에서 사라지자, 아디옌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자들은 프레오른 황자의 하수인이야. 엊그제 황자가 프레이루엘을 장악한 이후, 사방에 저놈들이 쫙 깔렸어. 뭐,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정말 개고생이로군요.” 하란은 허리춤에 단 어울리지 않는 검을 쓰다듬었다. “이 검을 뽑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오늘은.”


“행운을 빌지.” 아디옌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군의 시종으로서 정말 걱정이 많겠어.” 아디옌은 작은 원탁에 팔을 올린 채 작은 잔을 들이켰다.


하란은 후드 너머로 머리를 감쌌다. 아디옌의 말대로였다. 프레이루엘의 도시귀족과 영주들은 청기사들의 먹잇감이었다. 하인츠 다이아르의 심복인 하란 역시, 그들의 칼끝에 노려지고 있었다. 황자가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 하란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디옌은 작은 잔을 내려놓았다. “프레오른 황자의 행보는 정말 무식 그 자체야. 그 사람이 황제가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해.”


하란은 아디옌의 푸념에 맞장구칠 생각은 없었다. “잡담은 제쳐두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하란의 말투는 꽤 예의 없었지만, 아디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디옌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제까지나 기사단이 다이아르의 아가씨를 지켜줄 수 없다고, 단장께서 말씀하셨어.”


하란은 자칫 소리를 지르려다,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주인께서는 나이트 공과 약조하셨습니다. 아가씨를 무사히 지키겠다고.”


아디옌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이트 공과의 약속이지, 기사단과는 관련 없어. 나이트 공은 기사단의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게다가, 기사단의 상황도 꽤 녹록지 않아. 아직 기사단은 황자의 영향력 밖에 있지만, 언제라도 집어 삼켜질지 모를 노릇이라고.” 아디옌이 말했다.


“나이트 공이 떠나신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십니까?” 하란이 따지듯 말했다. 프리아 아가씨를 지켜주겠다던 나이트 공이 쉬이 자리를 비울 수 있었던 이유는 기사단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기사단의 모습은 정말이지 볼썽사나웠다. 하지만, 하란은 그 광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선택이었다.


아디옌이 말했다. “너무 적개심을 표하지 마, 시종. 지금 당장 너희 아가씨를 황자에게 넘기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말하는 거야.”


하란은 쓸데없는 이야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아디옌에게 따져봤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나저나 어째서 황자는 청기사들을 풀어 요인들을 쫓는 겁니까?” 대신, 하란은 다른 것을 물었다.


“인질을 잡겠다는 거겠지. 그대의 주인처럼, 대영주를 손쉽게 손아귀에 놓기 위해서 지금만 한 기회가 없을 테니까.” 아디옌이 말했다.


“···.” 하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정권을 장악한 프레오른 황자는 프레이루엘의 상황을 급격하게 뒤바꿔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하란은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잔을 마저 깨끗이 비운 아디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전부야.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하나 더 충고하지, 시종. 그대도 조심하는 게 좋아. 청기사들은 대영주들의 혈육은 물론, 하인이나 시종들도 노리고 있으니까.” 아디옌은 마지막 충고를 남기고 거리로 사라졌다.


이미 하란은 그 충고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엊그제부터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난히 예민하고 총명했던 하란은 그 사실을 피부에서 느끼고 있었다.


본능은 하란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했다. 하란은 자연스럽게 청기사들의 눈을 피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하란의 주인이 떠난 프레이루엘은 모든 것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온몸을 거적때기로 감싼 하란은 조심스럽게 기사단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아가씨는 아직도 주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위험한 아가씨를 지킬 사람은 오직 하란뿐이었다.


기사단의 저택에 돌아온 하란은 어느 때보다 빨리 아가씨의 방으로 향했다. 낡고 차가운 문을 두세 번 두드렸다. “아가씨, 안에 계십니까?” 찰나의 예의도 절대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예의에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없었다. 하란은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계속해서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무시였다. 하란은 다급히 문을 밀어젖히며 아가씨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프리아 다이아르는 그곳에 없었다. “제기랄!” 하란은 성질을 참지 못했다. 눈치 없이 쾌활한 아가씨는 오늘도 바깥 탐험에 나선 것이 분명했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거리로.


하란은 재빨리 아가씨의 흔적을 쫓았다. 로나트의 도움이라도 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날도 로나트는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종은 거리로 향했다. 눈에 잘 띄는 청기사들이 여전히 거리를 배회했다. 하란은 황급히 거리를 달리며, 지붕이나 성벽 위를 살폈다. 아가씨가 맘에 들어 하는 곳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란은 거친 숨과 차가운 입김을 뱉어냈다. 하늘에 겨우 꽃핀 태양이 벌써 반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가씨를 찾을 수 없었다. 도이르바스는 그 어느 때보다 넓고, 외로웠다.


무작정 거리를 쏘다니는 것보다, 아가씨의 발걸음이 닿을 장소를 추측했다. 프레이루엘에서 아가씨의 눈길을 끈 장소를, 하란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수백 걸음을 걷자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이 자리한 대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사람이 북적거릴 장소였지만, 빛을 잃은 거리 때문인지 유달리 한산했다. 거의 없는 인파 덕분에, 하란은 조각상 앞에 있는 익숙한 이를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아가씨···.” 하란이 소리치며 다가갔다.


하란의 목소리를 들은 프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하란은 프리아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찾았다! 모두 저자들을 잡아라!” 뒤편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청기사들의 목소리였다.


“안돼···!” 하란은 재빨리 검을 뽑았다. 그리고 대영주가 하사한 검을 청기사들을 향해 겨누었다. “도망치십시오, 아가씨!”


“하지만···.” 프리아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를 지켜달라고, 하인츠 공께서 말씀하셨으니까요.” 하란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빨리 가세요!”


더는 프리아도 지체하지 않았다. 청기사들이 도망치는 아가씨의 발목을 잡으려 했지만, 하란이 허락하지 않았다.


오래된 대장군이자, 대영주였던 프란토르 공의 조각상이 대광장 한가운데 우뚝 있었다. 그 조각상 아래에서 하란은 힘겹게 청기사들의 검을 막아냈다. 강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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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마지막 장작 (9) 에리크 22.03.19 20 0 12쪽
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75 마지막 장작 (4) 글라드 21.10.09 15 0 7쪽
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5 0 7쪽
73 마지막 장작 (2) 린 21.08.07 17 1 7쪽
72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17 1 7쪽
71 안개빛 희극 (9) 카이 바르도나 21.06.19 3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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