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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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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4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12.0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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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업의 그림자 (4) 린

DUMMY

조금씩 멀어져가는 프레이루엘을 보며, 린은 아쉬운 소리를 냈다. “그 대장군의 연설을 꼭 보고 싶었는데.”


프레이루엘에서 보았었던 대장군의 모습은 린이 상상했던 산맥 너머의 기사 그 자체였다. 조금은 희끄무레한 머리와 턱수염에는 기품이 보였었다. 야윈 턱선과 메마른 갑옷은 대장군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린은 새삼, 그런 대장군의 연설을 기대하고 있었다.


앞에서 서둘러 말을 몰던 레이지가 린에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알아요, 알아.” 린은 레이지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룬에서 날아온 전서구는 그들을 서두르게 했다. 다행히 회의의 끝자락이었기에, 그들은 급히 프레이루엘을 떠날 수 있었다. 레이지는 하루라도 빨리 메이룬의 변고를 파악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었다.


무수한 언덕길의 끝에, 드넓은 숲이 보였다. ‘그림자 숲’이라 이름 붙은 그 숲은 산맥 아래와 산맥 너머를 잇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메이룬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를 경비병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광경이었다.


린과 레이지는 말의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비병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경비병들은 그들을 막아 세웠다.


“이 앞은 대영주 페트리반 트리할트 공의 숲이오. 대영주께서는 숲으로의 출입을 엄금하셨소.” 경비병이 단호하게 말했다.


“중요한 일이 있거든. 꼭 이 길을 지나야만 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 레이지가 천연덕스럽게 산맥 너머의 말로 말했다.


경비병은 레이지를 위아래로 훑었다. 레이지의 차림은 단순했지만 제법 격식이 있었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아니 되오, 이방인이여. 대영주님의 명을 어길 수는 없소.” 수염 난 경비병은 여전히 단호했다.


레이지는 어쩔 수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골치 아프게 됐는데···.” 기사단장의 얼굴에서는 특유의 느긋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골치 아픈 노릇이었다. 그림자의 숲을 통하지 않으면, 멀리 덴티넬리오르의 소툴이나 엘모르드 해의 험난한 소용돌이를 지나야 했다. 어떤 길이든 족히 수십 일은 더 걸릴 것이었다.


레이지의 얼굴에는 오만가지 수심이 스쳐 갔다. “그냥 숲을 가로질러 갈까요?” 린은 목소리를 죽이며 레이지에게 물었다.


“···좋은 선택지는 아니야. 말들이 자유롭게 다니기에 그림자 숲은 좋은 곳이 아니지. 게다가 그림자 숲에 ···딱히 좋은 소문은 없으니까.” 레이지가 말했다.


린도 동의했다. 린은 지난 여정에서 만났던 그림자 숲의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숲은 한낮에도 캄캄했고, 사방에서는 항상 기묘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린은 고개를 떨구며 가만히 말의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다지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린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레이지의 얼굴에 집중했다.


“혹시 ···레이지 님 아니 십니까?”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린과 레이지는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꽤 훤칠한 사내였다. 겉보기에 격식이 넘치는 복장을 갖춘 사내의 어깨에는 창을 든 기수의 문장이 있었다. 어린 사내의 눈에서는 총기가 느껴졌다.


레이지는 경계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맞네, 어린 소년이여. 혹여 나를 알고 있나?”


“당연하지요. 제가 더 어렸을 때 프레이루엘에서 당신을 뵌 적이 있습니다. 먼발치였지만요.” 소년이 말했다.


“기막힌 우연이군요.” 린이 곁들였다.


어린 사내는 말을 몰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린과 레이지 뒤편의 경비병들을 보았다. “···저희 경비병들이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는지요?”


“···저희 경비병이요?” 린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레이지는 곧장 반응했다. “아니, 트리할트의 경비병들은 그저 주어진 임무를 했을 뿐이었어. 그들을 책망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어린 사내가 작게 웃었다. “참, 늦었지만 자기소개를 하지요. 저는 데나리오트 트리할트. 대영주이신 페트리반 트리할트 공의 아들입니다.”


어린 사내의 이름을 듣자, 린은 희망을 품었다. 트리할트의 아들은 그림자 숲을 돌파할 마지막 실마리였다. 레이지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이런 데서 트리할트 공의 자제를 만나다니, 놀라운 일이로군.” 레이지는 어울리지 않게 격식을 담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레이지 공.” 데나리오트는 방긋 웃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 뒤에 따라온 말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타이르셔도 저는 이 경비병들을 무를 수 없습니다. 아케투르에서 저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까요.” 데나리오트의 말에는 조소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레이지는 굽히지 않았다. “총명한 소년이여,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산맥 아래로 가야 해. 무슨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방법은 있습니다.” 데나리오트는 곧바로 답했다. “다행히도, 대영주께서는 지금 그림자 숲에 있는 별장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이곳에서 불과 반나절도 안 되는 거리지요.”


“설득은 우리의 몫이라는 소리인가.” 레이지가 작게 중얼댔다.


린과 레이지는 데나리오트 트리할트와 함께 그림자 숲에 들어섰다. 짙은 어둠과 불편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가득 깔린 숲길을 조금 지났다. 그러자, 데나리오트가 말했던 숲의 별장이 보였다.


인위적으로 베어낸 공터 한가운데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데나리오트와 레이지를 따라 린은 적당히 말을 세웠다. 데나리오트는 레이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오두막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곧, 트리할트의 사내는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짧은 기대의 시간이 끝나고, 데나리오트가 모습을 보였다. “대영주께서 흔쾌히 만나시겠다더군요.” 사내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보였다.


린은 앞장서는 레이지를 따라 작은 별장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린은 침을 삼키며 마른 목을 달랬다.


별장 내부는 포근했다. 구석에 작은 모닥불이 좋은 소리를 내며 불타고 있었다. 그 옆에 놓인 흔들의자에 덩치가 큰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정말 다행이야···.” 노인은 무언가를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영주로 보이는 노인의 머리에는 흰머리가 가득했다. 그마저도 듬성듬성 빈 곳이 보였다. 노인은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비단으로 큰 몸을 덮고 있었다. 산맥 너머에서 날아왔던 무수한 소문의 주인공인 페트리반 트리할트는 더는 그곳에 없었다.


“어서 들어오게.” 대영주가 말했다. 노인의 억센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울림이 느껴졌다.


레이지는 기죽지 않고 노인의 흔들의자를 향해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재무장관 각하.”


“허, 그런 이름으로 불린 것도 참 오랜만이로군.” 노인은 작게 헛기침했다. “이제는 그저 변방의 늙은 영주일 뿐일세.”


대영주는 겸허를 갖추며 흔들의자를 돌려 정면을 보였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잔뜩 늘어진 몸에도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노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빛이 있었다.


곧바로 본론을 꺼낸 것은 대영주 쪽이었다. “막내에게 들었다네. 그림자 숲을 지나고 싶다고?”


“예, 그렇습니다.” 레이지도 짧고 분명하게 답했다. “메이룬에 변고가 일어났습니다.”


대영주는 턱을 긁적였다. “숲길을 열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네. 평소라면 말일세. 하지만, 지금의 숲은 너무나도 위험해.”


“도적이나 야수 무리가 날뛰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영주께 피해가지 않게 조용히 지나가겠습니다.” 레이지가 말했다.


페트리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소한 문제라면 나도 이렇게 심려치 않았을 것이야. 착오가 있어서 말이지. 이 숲에 조금 특별한 게 풀려나고 말았거든.” 대영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설마.” 레이지의 얼굴에 기묘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린은 그 기묘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그 설마일세.” 대영주는 계속해서 입을 떼려다 린의 눈치를 살폈다.


레이지는 그 눈길을 순식간에 눈치챘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가장 믿고 이해하는 아이니까요. 그녀만큼 믿을 만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레이지는 대영주를 향해 말했다.


“···알겠네.” 대영주는 수긍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자 숲에는 ‘그림자들’이 봉인되어 있었다네. 그런데 아케투르의 학자들이 그놈들을 연구하다가 그만, ···깨워버린 모양이야. 다행히도 수는 적고 크기도 크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우리 기수들은 그놈들을 상대하는 전문가가 전혀 아니지. 그렇기에 비밀리에 수소문하고 있었다네. 타니아 선생은 물론이고, 바이그까지도.”


“···타니아 선생이 모습을 감춘 지도 수년이 됐군요. 그래서, 선생은 찾으셨습니까?” 레이지가 물었다.


대영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선생은커녕, 바이그도 찾지 못했다네. 그렇기에 레이지, 자네의 도움이 절실하다네.”


잠시 레이지의 얼굴이 굳었다. 린은 그 변화를 눈치채고, 레이지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말인가요?”


대영주는 레이지 대신 대답했다. “자네의 기사단장은 한때 타니아 선생에게 지도를 받았었다네, 호기심 많은 소녀여.”


“도움을 몇 번 받았을 뿐입니다.” 레이지가 말했다.


“어쨌든, 여기까지 들었으니 대답을 듣고 싶다네. 자네가 흔쾌히 도와준다면 아케투르도 자네를 도울걸세.” 대영주가 말했다.


레이지는 잠시 고민했다. 린이 생각하기에도 아케투르의 지원은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물론, 린은 ‘그림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알지 못했다.


고민하던 레이지가 입을 열었다. “그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오히려 우회로보다 더 늦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얻는 이득이 있겠습니까?”


대영주가 웃었다. “좋은 질문일세, 레이지. 좋은 질문이야. 정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메이룬으로 데려다주겠네. 아케투르의 방식으로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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