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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15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11.28 23:50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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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업의 그림자 (3) 프리아

DUMMY

하늘은 가을의 황금빛으로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프리아는 기사단 저택의 어느 테라스에서 한적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프리아의 눈에 그 평범한 도시는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거대한 새장에 갇힌, 프리아와는 대비되는 모양새였다.


프리아의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 있었다. 위험한 타지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이었지만, 프리아에게는 그저 단순한 감시로 느껴졌다. 프레이루엘의 기사들과 사용인들은 항상 꾹 닫은 입과 함께 프리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프리아는 그 광경이 무척이나 답답했다. 마이아르에서의 자유로운 나날들이 그리웠다. 마이아르 해안의 시원한 파도가 그리웠다. 저택의 요리장이 만들어주던 신선한 요리가 그리웠다. 뒤뜰의 숲에서 불어오던 바람과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이 그리웠다.


테오가 그리웠다.


프리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프리아의 아름다운 머릿결을 스쳤다. 어째서 갑자기 테오가 떠오른 걸까? 프리아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저택 내부로 돌아갔다.


기사단의 복도에는 하인이 하나 있었다. 어느덧 프리아의 눈에 익기 시작한 하인은 프리아를 식당으로 인도했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었다.


넓은 식당에는 거대한 식탁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홉 대륙의 다양한 요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넓은 식탁에 앉은 이는 프리아 혼자였다. 프레이루엘에 온 이후 이따금 아버지가 만찬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최근, 프리아는 거의 매번 혼자 식탁에 앉았다. 그것은 대강 프레이의 달 이후의 시점이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대장군이 된 것과 관련이 있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대장군 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사용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였다. 아버지의 딸인 프리아도 몰랐던 사실을 다른 이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프리아는 실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어째선지 요리들은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프리아는 평소보다 빨리 외로운 만찬을 마쳤다. 차가운 복도를 조금 걸어, 구석에 자리한 방으로 돌아왔다. 꽤 익숙해진 방이었지만, 아직 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프리아는 가벼운 치장을 벗었다. 창밖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잠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프리아는 침대에 누웠다. 두껍고 부드러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이아르 영주의 딸은 잠을 선택했다.


그러나 프리아는 쉽게 깊은 잠에 빠지지 못했다. 오랫동안 잠자리에서 몸을 뒤척이던 프리아는 굶주린 배를 조아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리아는 조금이라도 더 배를 채워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굶주린 배를 채울만한 것을 찾기 위해, 프리아는 복도로 나섰다. 누구보다 모험을 좋아했던 프리아는 마이아르의 그 누구보다 밤눈이 밝았다. 덕분에 조그만 횃불 없이도, 프리아는 어두운 밤의 복도를 낮처럼 날뛸 수 있었다.


프리아는 발소리를 죽이며 컴컴한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말소리가 들렸다. 프리아는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했다. 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복도의 끝에는 조그마한 안뜰이 있었다. 안뜰에는 작은 사당이 있었다. 그리고 사당 앞에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두 개의 그림자는 저마다 목소리를 뱉고 있었다. 프리아는 낮게 몸을 숙이고, 목소리에 집중했다.


“···언제까지 이 지겨운 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어쩔 수 없어. 거래니까. 주인의 말씀이니 우리는 군말 없이 따라야겠지.” 차분한 목소리가 다그쳤다.


한숨 소리가 크게 울렸다. “뭐, 맞는 말입니다.” 신경질적인 사내는 계속해서 투덜댔다.


“그렇게 불평하지 말게. 그래도, 이 지겨운 일도 내일이면 끝나지 않는가. 꾹 참고 오늘을 즐기라고.” 차분한 사내가 타일렀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프리아는 발걸음을 돌렸다. 어느새 배고픔은 사라졌고, 의혹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들이 나눈 대화는 무슨 의미였을까? 방으로 돌아와 다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쓴 프리아는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프리아는 꽤 늦은 시간에 눈을 떴다. 프리아는 깜짝 놀라며, 이부자리에서 박차듯 일어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볕은 다가오는 아침을 대변하고 있었다.


프리아의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겼다. 급하게 프리아는 가벼운 치장을 끝내고,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일어나셨습니까?” 로나트의 목소리였다.


프리아는 벽장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나트의 발소리가 방에 울렸다.


“아가씨···?” 말투에서 로나트의 당황함이 느껴졌다. “아가씨!” 멍청한 로나트가 짧은 외침을 뱉었다. “어디로 가신 거지···?” 이윽고 밖으로 사라지는 발소리가 들렸고, 프리아를 위해 마련된 방에는 다시 조용함이 찾아왔다.


잠시 프리아는 눈치를 살폈다.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프리아는 조용히 벽장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프리아는 창문 너머를 살폈다. 창 아래는 어느 정도 높이가 있었지만, 못 내려갈 높이는 아니었다.


프리아는 마이아르에서 그랬던 것처럼, 창문 아래로 사뿐히 몸을 날렸다. 물론, 얼굴을 가릴 적당한 후드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후드를 뒤집어쓴 프리아는 도이르바스의 거리를 무작정 뛰었다. 오랜만에 만끽한 자유는 달콤했지만, 주변을 편히 둘러볼 여유는 그다지 없었다. 도이르바스 거리의 아침은 이상하게도 소란스러웠다. 수많은 인파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도이르바스의 사람들은 대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프리아는 한 손으로 후드 끝을 꽉 쥐며 자연스레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인파를 따라 거리를 걸었다. 인파의 북적임은 소란스러웠지만, 프리아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프리아는 인파 속을 가르며 빠르고 날렵하게 대광장에 다다랐다. 월광궁에 가까이 자리한 넓은 대광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사람들 틈으로 갑옷을 갖춰 입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높은 단상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아버지···.” 프리아는 작게 말끝을 흐렸다. 단상에는 겉보기에도 고귀해 보이는 이들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그들 가운데에서 있었다.


아버지는 단상에서 소리 높여 외쳤다. “프레이의 자식들이여, 아홉 대륙의 자식들이여! 우리는 항상 승리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우리 프레이가 가진 역사이자 문화이다. 그런 오래된 전통을 우리의 손으로 깨부수어서는 안 될 말이겠지. 나는 너희들과 함께 프레이의 전통을 지키고 싶다. 너희들이 자식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멜리시아를 비롯한 아홉 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북부의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승리와 함께! 프레이를 위하여!”


대광장에 환호가 울려 퍼졌다. 귀가 울릴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한 환호였다. 하지만, 프리아의 마음을 어지럽힌 것은 단순한 환호 소리가 아니었다.


‘북부···? 반란···? 도대체 무슨 소리지?’ 프리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단상에 선 아버지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대광장에 펼쳐진 군사들의 모습을 보며, 프리아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북부로 가는구나, 아버지.’ 프리아는 실망감과 함께 등을 돌렸다. 인파 속을 빠져나와 대광장을 빠져나왔다. 조금씩, 프리아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좋았다. 프리아의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가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프리아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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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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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17 1 7쪽
71 안개빛 희극 (9) 카이 바르도나 21.06.19 3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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