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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 님의 서재입니다.

가재모의 중단편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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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
그림/삽화
가재모
작품등록일 :
2021.09.29 20:54
최근연재일 :
2021.10.01 11:43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21
추천수 :
0
글자수 :
35,079

작성
21.10.01 11:43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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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7쪽

붕어빵

1차로 단편, 어미소는 6학년부터 게재합니다.




DUMMY

붕어빵

가재모


아내는 그렇게 고은 미인은 아니였지만 수수한 편이고 그 당시엔 명문인 국립체신고등학교 막내기인 9회 졸업생에 공무원인 요조숙녀였다.


어머니는 여자 간택의 중요 착안 사항으로 경국지색인 양귀비는 나라 망하게 했고 백일홍도 100일이면 떨어진다면서 미인보다는 복스럽고 마음씨 곱고 착하면 끝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서울 올라오셔서 첫인상이 순수하고 마음씨 고와 보이고 올 곱게 자란 것 같다면서 내 색시 감이 동갑내기에 생일이 나보다 빠른 데도 불구하고 첫 상견례에서 10분 만에 그냥 OK를 놓으셨다.


아내는 체신고 졸업 후 자동적으로 일찍 체신 공무원 서기보로 발령받아 현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나는 총무처 시험을 거쳐 공무원으로 현업에서 근무하다가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남파된 김신조 등 대남무장공비사건 발발한지 1년 후에 징집되어 입대했고 보병 대대 작전과 사수 병장으로 야간에는 상황반장으로 열과 성을 다해서 복무하고 만기 전역했다.


당시 한신 장군이 1군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부터 기존의 모든 작전계획을 방어개념에서 방어와 공격의 양면 개념의 작전계획으로 대대적인 작전계획 수정 작업을 완성했다.


또한 주요 전방 고지별 벙커 작업과 주요 간선 별로 적 탱크 저지 벽(Anti tank Barricade) 공사를 무수하게 설치했다.


나아가 유격훈련, 야간 행군, 혹한기 훈련, 군단과 사단 급 연합훈련으로 정병강군을 위한 계속된 군사 작전훈련 등 과도기에 보병 대대 작전과 병장으로 12일 모자란 만 3년을 복무하고 만기 전역해서 다시 복직했다.


군 대대 참모부에서 힘들었던 일은 차트 병과 후임 작전 조수가 어느 정도 업무를 파악했다 싶으면 참모부 작전과는 타부서보다 업무량이 과다해서 기피부서였기 때문에 금방 충원이 되지 못했다.


또한 당시 한창 붐이 일었던 월남전에 후임조수가 연속적으로 파병 지원신청을 하는 바람에 사수인 내가 제대 1주일 전까지 대대 작전과 사수, 야간 상황반장에 차트 작업까지 고역을 치룬 업무 과중이었다.


전역 후 복직해서 현업으로부터 본부로 발령받아 맡은 보직은 국제협력업무로 근무 인원이 너무 적어서 젊은 나에게도 업무량이 과도했다.


어머니는 둘째 아들인 나에게 대학 졸업에 군목무도 마쳤고 다음 코스는 신부 감 골라 장가가는 것이라면서 한살이라도 빨리 장가가라고 등을 떠미셨다.


그래서 현업 근무할 당시 옆방에서 근무했던 과년한 처자였던 아내와 연애 끝에 벗꽃 흐드러지게 만개한 4월 화창한 봄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운 좋게 결혼 후 2개월 만에 임신했고 직장에서는 여성 계장, 집에서는 한 남자의 아내요 주부 역할에 임산부로 배가 점차 불러와 남산만 해서 직장 출퇴근에 곤혹을 치렀다.


결혼식으로 부터 꼭 1년이 되던 날이었다.


전날부터 한-일간 쌍무회의 참석차 일본 대표단이 방한해서 김포공항을 다녀왔다.


오전 10시에 쌍무회의가 중 회의실에서 개회되고 12시까지 의제별 토의가 진행되고 오찬 후 2시까지 회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오찬 끝나고 오후 회의가 막 시작되는 시간에 사무실 여직윈이 하얀 종이쪽지에 쓴 메모가 내 자리에 올려졌다.


내 아내가 양수가 터지고 해산을 위한 진통이 심해서 성모병원에 급히 입원했으니 원만하면 일찍 병원으로 와 달라는 장모님의 전갈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뻤으나 만혼이라서 순산이 걱정되고 가던 날이 장날이고 “하필이면 이 바쁜 한-일간 쌍무회의가 열리는 날에 10개월을 잘 참았다가 세상에 인정사정없이 나온 다는 거야”라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후 회의가 끝날 시간인 오후 3시만을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기다렸던 그 두 시간이 나에겐 이틀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회의록 초안과 회의 지료를 대충 동료 주무관에게 인계하고 직장 인근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옥수수 사들고 택시 타고 성모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산모 실에 도착해보니 아내는 뱃속 아기가 예상보다 커서 오랜 진통 끝에 예쁜 딸을 낳았다고 했다.


난산의 찢어지는 고통으로 아내는 출산 후 골아 떨어져 잠자고 있었다.


장모님의 안내로 영아 보호실 창밖에서 간호원이 우리 아기를 강보에서 들춰 보여 줬다.


진짜로 주먹 보다는 다소 큰 아기, 첫눈에도 보물이 따로 없었다.


강보에 다시 누워있는 아기는 일순 배내 짓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자세를 취했다.


아기가 조그마한 양다리를 앙증맞게 포갠 것이다.


"아니 저게 뭐야. 참 신기합니다. 나처럼 저 애가 다리를 포갰어요!"


나는 너무나 신기해서 장모님한테 아내가 평소 침대에서 내가 잠 잘때 두 다리를 포개고 잘 때 마다 엉덩이 뼈 어긋난다고 포개진 내 두 다리를 억지로 띄어 놓았다며 함께 신통하다고 웃었다.


이렇게 첫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사실적 부녀관계를 명쾌하게 입증해 보였다.


조금 있으니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내 곁에 가서 두 손 붙잡고 고생했다며 위로해주고 국제회의 때문에 출산 시 옆을 지키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사가지고 온 옥수수를 꺼니 주었더니 장모님이 출산하면 산모가 잇몸이 약해져서 오징어, 땅콩, 옥수수는 금방 씹어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내는 그냥 마실 것을 사오지 하필이면 옥수수를 사왔느냐고 불평하다가 애기를 봤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기가 아주 예쁘고 귀엽게 생겼다면서 아빠 보는 앞에서 다리를 포개서 상견례를 했다는 말을 듣고는 해산의 고통을 잊은 듯 환하게 웃었다.


"아니 금방 태어나서 주먹만 한 게! 아베 다리 포개는 안 좋은 버릇이나 따라하고... 참말로 웃기 네"


장모님까지 애가 다리 포갠 사실을 목도했다고 거들었다.


아내는 믿기지 않은지 영아보호실 쪽으로 가서 강보에 누어있는 애기를 잠시 동안 물끄러미 처다 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가 발을 살짝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오른발에 왼쪽 발을 포갰다.


" 에이그 붕어빵이네! 저 애가 내 뱃속에서도 다리 꼬고 있어서 왼쪽 엄지 발 가락으로 내 배를 자주 찔렀구만"


이 장면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아내의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둘째 애는 사내로 꼭 2년 후에 순산했다.


어머니는 아들딸 열 명을 낳았다며 하나를 더 낳으라고 말씀하셨다.


아내가 셋째 아기를 임신했는데 아기가 뱃속의 주소지를 잘 못 찾아들어갔다.


토요일 오후에 집으로 퇴근한 아내가 갑자기 복통이 심해서 인근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엑스레이를 촬영해 보았더니 불행하게도 자궁 외 임신으로 판명되었고 수술 후 더 이상의 임신을 단념하고야 말았다.

부부 여수 여행.jpg




많은 애독과 지도편달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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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빵 21.10.01 26 0 7쪽
6 아시안게임과 아차 메달 아빠 21.09.30 24 0 9쪽
5 천리포 해변의 야경 21.09.30 31 0 18쪽
4 백세시대와 일석이조 21.09.30 36 0 15쪽
3 영리한 모성 본능 21.09.29 35 0 7쪽
2 귀소본능과 모성애 21.09.29 25 0 8쪽
1 어미소는 6학년 21.09.29 4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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