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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의 중단편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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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
그림/삽화
가재모
작품등록일 :
2021.09.29 20:54
최근연재일 :
2021.10.01 11:43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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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079

작성
21.09.2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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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어미소는 6학년

1차로 단편, 어미소는 6학년부터 게재합니다.




DUMMY

어미소는 6학년


가재모


(1회차 편)

짐을 나눠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배려가 없다.




‘대지’를 지은 저명한 소설가 펄벅이 60년에 경주의 석양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골길에 볏단 서너 개를 얹은 달구지를 끌고 가는 누런 황소와 지게에 볏단 두개를 함께 나눠지고 가는 주인, 시골 농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합리적인 서양 농부라면 의당 볏단, 자기 지게와 피곤한 농부 자신도 달구지에 올라타고 가는 게 당연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펄벅의 눈에는 하루 종일 힘들었던 소를 배려하는 한국의 시골 농부의 마음씨가 참으로 경이롭게 보였던 것이다. 흙 묻어 꿰제제한 베잠방이를 입은 시골 농부가 일개 짐승인 소를 가족처럼 아끼는 끈끈한 정과 사랑의 체온을 느끼고 한국 민의 위대성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고 한다. 펄벅은 생전에 한국 국민성의 위대함과 전통문화에 대한 예찬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오늘 따라 먼저 떠나신 고향 아버지가 눈에 어른거렸다. 아버지도 증조가 충량과 과거 급제자로 귀한 집에서 장손으로 태어 나셨다. 그러나 아버지 15세 어린 나이에 조부와 부친이 당시 창궐했던 전염병으로 연이어 급사하셔서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되고 가세는 점차 기울어지고 궁색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주선으로 아버지가 어머니, 몽지 댁과 결혼하셨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6.25 동란의 격동기를 사시다보니 아버지는 지혜로운 어머니의 주장을 받아드려 양반이고 체면이고 다 버리시고 호구지책으로 일꾼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셨다. 그때 아버지도 들 일 끝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소가 끄는 달구지에 아무 것도 싣지 않으시고 자기 지게도 손수 어께에 메고 돌아오셨다. 어미 소를 잃어 버려 마음 고생했던 어릴 적 이야기와 일찍 타계하신 선친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이 글을 쓴다. 당시 시골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맏형이 입대했기 때문에 갑자기 집안에 일손이 부족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와서 내가 하는 중요 일과는 아버지께서 몽산포 인근 풀밭에 매놓은 누런 어미 소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이른 여름철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해변에 매어 놓은 어미 소를 찾아 고삐를 잡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한 소낙비가 쏟아졌다. 어미 소도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를 견디기 힘들었던지 순간 고삐를 힘껏 당겼고 나는 힘이 부쳐서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어미 소는 장대비 속을 헤치며 손살 같이 달아났지만 빗속이라서 어느 방향으로 달아났는지 가름 할 수 없고 잽싸게 날아났기 때문에 내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어른들 말씀에 하늘이 노래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시던 말씀이 어린 시절 내 뇌리를 스쳤다. 낭패였다. 아버지가 재산 목록 5번째이고 매년 송아지를 낳아서 재산 증식 일등 공신이라며 애지중지하시던 어미 소 고삐를 놓쳐서 어미 소를 잃어 버렸다는 자책감과 평상시에는 과묵하신 아버지가 한번 화를 내면 무서운 노기 띤 얼굴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갔다. 옷도 흠뻑 젖어서 일단 두 손으로 짜서 걸쳤지만 지금 그까짓 옷이 대수가 아니었다. 비는 그럭저럭 그쳤다. 평소 같으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이날은 해변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10리길처럼 멀어 보였다. 그친 비 대신에 눈물이 비처럼 흘렀다. 갑자기 가슴이 무거운 짊에 눌린 것같이 답답해졌다. 터벅터벅 몽유병 환자처럼 우리 집이 빤히 보이는 작은 언덕박이까지 당도했다. 어둑어둑한 가운데도 우리 집 초가지붕이 눈앞에 들어왔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으나 형제들이 많아서 약간은 시끄러운 집안인데 오늘 따라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렇게 편안하고 아득한 우리 집이었지만 오늘은 어미 소를 잃어버린 자책감 때문인지 아주 생소한 남의 집같이 느껴졌다. 점점 사방이 어두워지니 무서움도 엄습해서 논 뚝 건너편 자잘한 수풀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집안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문득 내가 유아 때 병치레를 유난히 많이 했고 특히 만4살 때 한번은 초여름 찌는 날에 혼자 놀다가 더위를 먹고 쓰러져 죽었다가 살아난 옛날 일이 생각났다. 현대 의학 용어로는 아마도 심장판막증으로 쓰러졌던 것 같았다. 그러나 금방 회복을 못하고 결국 심장까지 멎어서 땅속에 묻기 전에 강하게 내리는 집중 호우의 덕분에 거적으로 덥혀 있다가 다음날 새벽에 어머니 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 것이다. ..........................................................................


내가 죽었다 살아난 날, 할머니는 숙모 생신이라서 누이 데리고 숙부 집에 가셨고 아버지도 큰형 데리고 태안 장날이라 농산물 갔다 팔고 생필품 사 오신다고 태안시내로 함께 가셨다. 어머니는 내가 만 4살 박이 어린 애였지만 영특해서 혼자서 집도 잘보고 돼지 밥과 닭 모이도 잘 줬기 때문에 안심하시고 두 살 어린 동생 데리고 밭일 나가셨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점심 식사 후 약간의 간식과 물을 병에 담아 가지고 좀 떨어진 밭에 가셔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집에 자주 들리시질 않으셨다. 뒤늦게 어머니가 집에 동생 데리고 들어 오셨다가 쓰러져 축 쳐져 죽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청천병력을 맞은 것 같이 “불쌍한 것, 불쌍한 것” 하시며 연실 눈물을 비 오듯 쏟으시고 정신이 다 나가서 안절부절 하셨다. 동네에 지금은 무허가 의료행위이지만 당시 면내에 병원도 의원도 없던 시절이라 침쟁이로 소문난 최씨 아저씨가 달려와 급소에 침을 놓았으나 큰 효험을 보지 못 했다. 급히 연락받고 오신 할머니도 항상 측은하게 생각했던 둘째 손자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시다가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에 발생한 참변이 한스럽던지 한때 혼절하셨다가 깨어나셨다. 그동안 어머니 엄명으로 항상 내 주위에서 건강이 부실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주던 큰 형과 큰 누이도 그 날만은 다른 일로 내 옆을 지키지 못해 동생이 변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머니를 따라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계속해서 물을 뿌리고 주물렸으나 심장만 가늘게 뛰고 손발이 차갑고 의식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뒤늦게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달려 가셔서 태안읍 공의로 계시는 재종숙한테 급히 왕진해 달라는 전화 연락이 되어서 한 시간 뒤에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진맥, 인공호흡과 주사로 응급처치를 했으나 가늘게 뛰던 심장이 살아나지 않고 결국 멈췄다. 재종숙은 도저히 가망이 없다며 사망진단서를 써주시고 통곡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달래시고는 자전거를 타시고 태안으로 돌아 가셨다.




어미소는 6학년(2회차 편)




가재모




아버지도 억장이 무너진다며 큰 덩치에 넋을 잃고 우시다가 숙부님들에게 일단 연락하고 동네 이장과 매장하려 했으나 갑자기 억수같이 내리는 비 때문에 금방 땅을 파고 묻을 수 없게 되자 시체가 된 나는 헛간에 거적으로 덥혀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불쌍한 둘째 아들 자주 앓기만 하다가 졸지에 숨을 거둔 것이 너무나 한스러워서 깨끗하게 씻겨서 품에 안고 밤새도록 아들 살려달라고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




새벽에 비는 그치고 동이 터서 아침에 이장과 같이 매장 할 심산으로 아버지가 헛간에 가보니 거적이 벗겨져 있었다.




죽은 애도 없어져서 대청에 와보니 어머니가 죽은 애를 끓어 안고 졸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 품에서 죽은 애를 받아보니 차디차야 할 애 손과 발이 약간 뜨겁게 느껴져서 심장에 손을 대니 멈췄던 심장이 병아리 가슴 뛰듯 콩닥콩닥 함을 느꼈다.




아버지는 “애가 살아났다.”고 소리를 치셨다. 할머니와 비몽사몽간에 놀란 어머니가 손발 주무르고 심장 만져보고 동네 침쟁이 아저씨 불러서 손발에 침놓고 해서 기적같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그런 숨 가빴던 순간의 흔적이 최씨 아저씨가 소독제가 없던 시절에 또 경각이 달린 급한 상황에서 내 왼손 넷째 손가락에 놓았던 침 구멍에 염증이 크게 생겨서 그때 수술했던 흉터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이후에는 나는 별다른 후유증 없이 지금까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 어머니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보시고 장대비가 네 목숨을 살렸다면서 명이 길어서 백수는 할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평소 그렇게 불쌍하다면서 작년까지 자기 옆에 애지중지 끼고 주무시던 어머니가 이 저녁까지 귀한 아들이 집에 들어오질 않았음에도 그토록 태평하실 수가 있는가? 불현 듯 속상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미 소를 끔찍이 아끼시는 아버지는 오늘 아침 밥상에서 날씨가 무더워서 저녁에 건너 마을 할아버지 칠순 잔치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으니 아직 집에는 돌아오지 않으신 것 같았다. 누나와 동생도 있는데 집안 식구들이 대문 밖으로 코배기도 비추지 않으니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어두워지는 밤이 무섭게 느껴졌고 갑자기 외톨이라는 고독감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30분나 흘렀다. 갑자기 때문 밖으로 어머니가 등불을 들고 누나와 동생을 데리고 빨리 가서 찾아보자 하시며 집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재모가 여태까지 왜 안와? 바닷가까지 가보자” 누나가 앞서고 가운데서 어머니가 등불을 쳐들고 논 뚝을 건너오고 계셨다. 무섭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고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서서히 평정심이 회복되고 있었다.


“재모야! 재모야!” 어머니가 선창하고 누나들이 따라서 내 이름을 불렸다. 나는 어머니가 오시니 한편은 반갑고 기뻤지만 잃어버린 어미 소 걱정이 앞섰다. “오머니 나 소 잃어 버렸어. 나 어떻게 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나는 어머니한테 달려가서 치맛자락을 붙들고 매달렸다.


“저런! 얘, 소야 고삐 놓아주면 지가 10년 이상을 봄부터 늦가을까지 다니던 길인데 눈감고라도 제집 찾아 오지!” “너 그걸 모르고 소 잃어버린 줄 알고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걱정돼서 집에 못들어 왔구나?” 참으로 이렇게 억울한 경우도 있단 말인가? 소가 집에 들어왔다는 소리에 나는 그만 긴장이 풀리면서 엉엉 크게 소리 높여 울었다. 누나도 “소도 너보다 똑똑해! 너는 4학년이지만 우리 소는 6학년쯤 될 걸” 하고 농담을 했지만 소가 돌아 왔다는 소식에 그냥 고맙게만 들렸다. 어머니 해석에 따르면 소는 비를 싫어하고 소나기는 내리고 소는 빨리 가야겠는 데 어린 내 걸음은 느리고 소가 급한 마음에 뛰어서 집으로 쏜 살같이 달려가서 외양간으로 들어 왔다는 이야기였다. “의그! 불쌍한 우리 아들 소 도망간 줄 알고 쓸데없는 걱정에 마음고생 많이 했구먼” 하시며 어머니도 나를 품에 끌어안으시고 등을 쓸어 주셨다. 등불에 비친 어머니 양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녁 늦게 칠순 잔치 갔다가 집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소 도망치고 아버지가 무서워 어두운 밤에도 집에 늘어 오질 못하고 논 뚝 건너편 숲에서 숨어 망보던 아들 이야기 등 자초지종을 어머니로부터 들으셨다. 아버지는 어미 소가 집으로 혼자 들어오기 전에 잔치 집으로 가셨기 때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가 이내 상황파악이 끝나자 나에게 말씀하셨다. “턱도 없는 소리.... 소가 아무리 비싸도 그 놈은 짐승이야. 짐승이 우리 집 보배인 둘째 아들보다 귀하고 비쌀 턱이 있나! 아베가 무섭긴 뭘 그렇게 무서워 내가 호랑이냐 사람이지...“ “죽었다 살아난 놈이 간이 콩알 만해 가지고 세상을 제대로 살겠어? 너는 약해서 농사는 틀렸고 머리 좋으니 학교나 다녀. 중학교도 보내 줄 터이니 알았지“ 평소 그토록 무섭던 아버지가 다가와서 품에 앉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버지가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알았다. 오늘 따라 어둡던 하늘에 갑 자기 별빛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달아났던 어미소가 처음엔 괘심하고 미웠고 언망을 많이했지만 일이 이렇게 마무리되고 나니 외양간의소가 궁굼했다. 어미소는 오늘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지못한 채 내가 다가가서 머리를끍어주니 고마움의 표시로 내 어깨를 혀로 핥았다. 어머니가 어린 주인 무시하고 어미소가 혼자 도망해서 집에 들어 왔을 때 어미 소한테 어린 애 버리고 혼자 집으로 들어 왔다고 혼내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짐승인 소가 아무리 똑똑해도 사람인 어머니 말씀을 정확히 알아 들을 리 없지만 어머니는 소를 잃어버린 줄로 알고 가슴을 졸였을 어린 아들을 달래기 위해 하신 말씀이었다.




어머니 말씀 덕인지는 또는 어미 소도 영리한 짐승이라서 그날 상황을 눈치 챘는지 그 뒤에는 아무리 비를 맞아도 저 혼자 절대로 집을 향해 달아나지 않았다.




역시 우리 어미 소는 누나 말처럼 지능지수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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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애독과 지도편달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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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붕어빵 21.10.01 25 0 7쪽
6 아시안게임과 아차 메달 아빠 21.09.30 24 0 9쪽
5 천리포 해변의 야경 21.09.30 30 0 18쪽
4 백세시대와 일석이조 21.09.30 36 0 15쪽
3 영리한 모성 본능 21.09.29 34 0 7쪽
2 귀소본능과 모성애 21.09.29 25 0 8쪽
» 어미소는 6학년 21.09.29 4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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