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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진 님의 서재입니다.

마교연기록(魔敎演技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날진
작품등록일 :
2024.03.06 22:51
최근연재일 :
2024.04.0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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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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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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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聖山

DUMMY

19화 성산聖山


거뭇거뭇한 고목들의 산세가 울창하다. 그러나 이파리들이 없다. 대부분 썩은 나무들이기에 그러하다.


산이라면 마땅히 들려야 할 생물들의 소리 또한 없다. 다람쥐가 나무를 타는 소리도, 사슴이 풀숲을 스치는 소리도 찾을 수 없다. 가지만 앙상한 산세가 괴적하게 느껴졌다


기이하리만치 생기가 없는 숲이다. 울적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그곳에 두 사람이 산길을 걷고 있다. 느린 발걸음으로.


“굳이 느리게 가는 이유가 있소이까?”


가면을 쓴 자가 물었다.


“이야기하면서 나긋하게 갈 생각이라. 여기서 성산이 가깝기도 하고. 아니면 전속력으로 가고 싶나? 나야 환영이네만.”

“···그건 광명좌사도 못따라잡지 않소이까.”

“그렇긴 하지.”


잿빛의 숲을 둘이 지난다. 혼명은 아까부터 궁금한 걸 물었다.


“이 산, 왜 이렀소이까?”

“잘 모르는 걸 보니 연배가 이립도 안 되는 모양이야.”

“······.”

“소령교와의 전쟁 당시에 황폐해진 곳이다. 걔들이 요상한 수작을 부렸는지 여기는 이제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않아.”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은 단어가 등장했다. 소령교(蘇靈敎). 전쟁 직전 불현듯 나타난 사교(邪敎)다. 기이한 이능을 지닌 이들이 신교의 땅을 무참히 유린했다고 한다.


그때 천태월과 천무월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다. 무도한 사교도 놈들이 감히 신교의 안가까지 침입했기 때문에.


그 전쟁 때문에 정사(正邪)가 힘을 합쳐야 겨우 상대하던 신교가 이제는 무림맹 놈들과 위상이 대등해졌다. 그래서 중원의 문파들은 오히려 그 전쟁을 기꺼워했다고도 한다.


천태월이 속으로 소령교를 욕하면서 발을 옮길 때다. 문득 궁귀가 말을 이었다.


“소령교가 이번 일과 관련이 있다.”


궁귀의 몸에서 진기의 자락이 흘러나왔다. 위협의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기다란 물줄기처럼 그의 손에서 쏟아진 진기가 비단처럼 주위를 감는다. 기막을 세워 말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밖에 나돌아서는 안 될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성산의 영물은 알고 있겠지.”

“천마조사께서 산에 심어놓은 영기로 말미암아 영물이 된 생물들로 알고 있소이다.”

“그 말이 맞네. 단 한 영물만 제외하면.”


궁귀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설영(雪永)이라는 영물이 있다. 백색 다람쥐이지.”

“들은 바가 있소.”

“다행히 그 정도 식견은 있군. 뭐 워낙 유명한 영물이기는 하니.”


설영. 성산의 가장 오래된 영물이다.


천마조사가 등장하기 전부터 영물이라 하였으니 나이가 시황제보다도 오래되었을 것이다.


“설영은 성산의 오래된 영물로써 전쟁 당시에 이교도 놈들이 성산에 침입하는 걸 막았네. 대신 상처를 입었지.”

“아직 낫지 못한 것이리까?”

“보통 상처가 아니네. 이교도 놈들의 영기가 깃든 조각이니 법보라 봐야 해.”

“그 상처를 회복시켜 주려 가는 것이구려.”


혼명이 이해했다는 듯 머리를 주억거릴 때였다. 궁귀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죽여야 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말이리까?”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법보가 보름 전부터 어떤 기운을 띠기 시작했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 기운이 영물의 이지를 파먹겠지.”

“신교의 오랜 역사를 지닌 상징성 있는 동물로 아오이다. 지존의 허락 없이 함부로 죽여도 되오?”

“그 허락은 이미 선대께 받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 선대의 지존께서 내게 성산을 맡기시며 당부하셨지. 그 영물이 이교도 놈들의 손에 농락당하는 것이 더 큰 치욕이니까.”


말이 거기까지 당도했을 때 드디어 잿빛이기만 했던 숲이 녹빛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나왔다. 분명한 선을 기준으로 죽은 고목들 대신 싱그러운 풀잎들이 시야를 채우고 있다.


푸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풀잎과 흙바닥을 포함하여 주변이 스스로 반짝거린다. 부유하는 공기마저 그러했다. 먼 옛날, 천마조사가 불어넣었다는 영기가 아직 생기를 띠고 있었다.


성산(聖山).


몹시 신령스러웠다. 순수한 마기가 자연지기로써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었고 대기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자란 식물이나 그들이 뿌리내린 땅조차도 신성한 마기를 계속 내뿜고 있다. 정종무학을 익힌 이라면 근처에 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천태월에게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몹시 포근했다. 아버지가 떠오를 정도다. 어린 천태월에게는 태산처럼 보이던 인물. 그 공간이 있다 보면 아버지의 어깨에 기대고 있노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직 제대로 성산에 발을 디딘 것도 아닌데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편안하다. 묘하게 감각이 뭉개진 듯한 느낌조차 신비롭게 다가왔다.


“도착했군.”


궁귀가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럴 때가 아닌데.’


천태월이 속으로 생각을 삼켰다.


천마조사가 땅에 불어넣었던 영기가 아직도 남아 그 기운을 흩뿌리기에 영산이다. 그 때문에 성산은 천마의 혈족을 인식하고 그에게는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는다.


문제는 옆에 궁주가 있다는 점이다. 천마의 혈족으로 오해받을 만한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떨어진담···.’


혼명이 그리 생각하며 영산에 발 한걸음을 디딜 때였다.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경계를 밟는 순간부터였다.


“잠깐 무언가 이상하···.”


궁귀의 말조차 다 듣지 못한 혼명의 신형이 흐릿해진다. 그의 형체가 그대로 사라져버린다.


“설마 이 망할 이단 놈들이.”


궁귀가 곧바로 기감을 흩뿌렸다. 저 경계선을 기점으로 몹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성산 전체 위에 얇은 진법이 덧대져 있다.


성산의 외곽 노목들에서 그 기운이 은은하게 퍼져나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경계망을 밟아야 모습을 드러내는 진법이기에 인식이 늦었다.


‘며칠 전만 해도 이딴 건 없었건만.’


누군가가 그사이에 성산에 와서 수작을 부렸다. 그렇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파직.


경계에 손을 대자 손이 튕겨 나온다. 빌어먹을 진법은 더 이상의 손님을 받지 않았다.


욕을 뱉은 궁귀가 활을 들었다. 진법의 외축(外軸)을 찾기 위해 보법을 밟았다.


별무리가 성산의 외곽을 스치고 지나갔다.



******



동시각.


“사룡은 들어와라.”


광명전에서 누군가가 사룡을 불렀다.


사룡. 그는 오늘 광명전에 입단 시험을 보고 있었다.


광명전은 원래 이리 사람을 바로 받지 않는다. 보통 어느 정도 인원이 모였을 때 한 번에 시험을 보고 개 중 몇몇만을 뽑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밤을 새워 달려온 사룡이 광명전의 문을 두드리자마자 시험을 보자는 말이 나았다. 좌사에게서 나온 말이다.


좌사야 원래 감정대로 사는 자라는 풍문이 파다하다. 그래서 우사가 말리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우사 또한 바로 시험을 보자는 말을 했다.


조금은 얼떨떨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그 때문에 그는 좀 전에 무공 시험을 보았고 아주 쉽게 통과했다. 정예라면 응당 통과할 수준의 시험.


그리고 지금, 그를 다시 부르고 있다. 면접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교양과 충심을 보는 것이라 했다.


사룡이 조금 떨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터운 문이 열리자 면접장에 좌우사가 있다. 둘 다 대단히 심각한 표정이다. 심지어 좌사는 한쪽 다리마저 떨고 있다.


‘원래 면접에 좌우사까지 오나?’


의아했지만 일단 그러려니 했다. 그는 광명전이 면접이 처음이었기에.


그가 준비된 곳에 서기도 전에 좌사가 입을 열었다.


“필궁에 별고 있어? 네가 여기에 왜 왔어?”


다짜고짜 필궁의 일을 묻는다. 입단 동기를 묻는 건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사룡이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스스로 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혼명 선배님을 존경해서···.”

“뭐?”


좌사의 눈이 돌연 커진다. 뒤이어 작게 중얼거렸다. 그놈은 필궁에 가서 뭔 일을 벌이는 거야.


“혼명이 필궁에서 벌인 일을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우사가 물었다.


사룡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는 그가 아는 데까지만 좌우사에게 설명했다.


적시의 계략과 혼명의 도움 그리고 궁귀의 난입까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좌우사의 표정이 대단히 복잡해진다.


좌사가 우사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거 지금이라도 필궁을 족치러 가야 하나?

-가도 지금은 거기에 없을 텐데 어디에 있는지 어찌 알아낼 것이오?

-가서 아무나 뚜드려 패면 답이 나오겠지.


“하···.”


우사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뱉었다.


-일단 들킨 것 같지는 않으니 사건의 경과를 지켜봐야···.


우사가 그리 전음을 전할 때였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창가를 향했다.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누군가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이곳으로 당도하고 있다. 무척이나 거칠고도 방대한 기파를 지녔지만, 체구가 작은 이다. 신교에는 한 명밖에 없는 인물.


동시에 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사가 잿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변명 생각해 둔 거 있소?

-있어도 의미가 있나?

-···없지.


“사룡, 나가 있어.”

“예?”

“면접 끝났으니까 나가 있으라고.”


사룡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거역할 수는 없다. 그가 그저 고개를 기울이면서 다시 밖을 향하려 할 때다.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쪽 벽면이 완전히 폭발했다. 초월적이기까지 한 기파가 우악스러운 파공음을 내며 창가의 벽면을 완파시켰다.


광명전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였다.


길게 이어진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양광. 그 양광을 등진 작은 체구.


“좌우사.”


분노가 억눌린 목소리가 압축된 진기의 흐름과 함께 나왔다. 듣는 이의 소름까지 돋게하는 거친 목소리가 소년의 목을 타고 울린다.


아이 외관의 노인이 말도 안 되는 기파를 뿜으며 걸어들어온다. 밑에서 광명전 무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총사께서 떴다. 오늘 수련은 취소다.”

“저 정도면 극대노군.”


아래에서 무인들이 작게 말을 나눈다. 이어 그들은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노련하기까지 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총사의 격노다. 잘못 걸리면 그날로 끝이다.


총사는 가볍게 사룡을 흘기고 시선을 돌렸다. 제삼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좌사에게 전음을 보냈다.


-공자는 어디 갔느냐.

-잠시 상황을 정리할 시간을···.

“어디 갔냐고.”


좌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후-.”


좌사의 날숨과 함께, 단전에서부터 공력이 흘러나와 전신을 덮는다. 투명한 진기가 그녀의 전신에서 아른거린다. 호신강기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한 그녀가 힘들게 진기의 소리를 보냈다.


-궁귀 놈이 데려가서···.


그녀는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총사의 권이 그걸 허락지 않았다.


벼락같은 출수다. 하단전에서 나온 공력이 중단전을 통해 전신에 이르기까지 벼락처럼 빠르게 이어졌다. 순식간에 진각을 밞은 총사가 주먹을 내질렀다.


공간을 찢을듯한 굉음은 덤이다.


파괴적인 권이 좌사의 명치로 향한다. 권 주변으로 쉼 없이 회오리치는 진기의 흐름이 그녀의 호신강기를 찢으며 무복에 닿았다. 어마어마한 권격이 그녀의 몸과 부딪쳤다.


천근추도 소용이 없다. 그대로 몸이 떴다.


내쳐진 좌사의 몸이 내벽부터 외벽까지 일직선으로 몇 겹의 벽면을 뚫었다. 사룡은 작게 한 발짝 물러났다. 엮이지 말자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곧이어 총사가 허공에 손을 휘적이자, 문방사우가 날아온다. 그는 그것들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허공섭물의 묘리로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사룡은 어디로 도망갈 곳도 없었기에 그 광경을 무척이나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총사가 작성하는 내용이 무척 또렷하게 들어온다.


비무첩. 총사가 필궁주 낙성궁귀를 향한 비무첩을 적었다.


그는 순식간에 비무첩을 작성한 후 그걸 접어 품 안에 넣었다. 작성과 동시에 삼매진화로 말린 서신은 바로 접어도 문제가 없다.


총사가 매서운 눈길로 우사를 바라봤다.


“좌사하고 여기를 치키고 있거라.”


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좌사 꼴이 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심하면서다.


“난 궁귀 놈 족치러 간다.”


한 줄의 선언과 함께, 총사의 신형이 찰나에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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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명昏冥 24.03.11 7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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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명-천마를 연기하라 +1 24.03.11 11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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