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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진 님의 서재입니다.

마교연기록(魔敎演技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날진
작품등록일 :
2024.03.06 22:51
최근연재일 :
2024.04.0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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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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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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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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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화궁火宮

DUMMY

7화 화궁火宮


좌사는 믿기 힘든 표정으로 다시 한번 일공자를 바라봤다.


“왜··· 됐지?”

“되던데요?”


천태월이 오히려 당황하며 덧붙였다. 너무 오만하게 답했나.


“단전이 없을 뿐 혈맥 공부는 했습니다.”

“혈맥 지식이 있는 건 화궁의 장로들도 마찬가지야.”

“제가 사람을 읽는데도 능한지라.”


좌사가 일공자에게 다가갔다. 솟구치는 진기와 함께 따라온 머릿결이 일공자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까슬한 감촉을 뒤늦게 느낀다.


굳은살 박인 손이 천태월의 턱을 살짝 잡았다. 어느새 한쪽 다리까지 책상에 걸치고 있는 좌사가 천태월의 눈을 지긋하게 바라본다. 붉은 입술이 매끄럽게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말 흥미롭긴 하단 말이지.’


좌사가 천태월이 앉은 의자 등받이를 잡았다. 자연스레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위협적으로 천태월을 내려다보는 자세다.


그 자세로 좌사가 간드러지게 말했다. 눈에는 진기가 형형히 맺혀 있었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배교하지 말렴.”

“생각지도 않은 일입니다만.”

“그럼 됐어.”


좌사가 다시 일공자에게서 물러났다. 눈에서 광채를 내던 진기 대신 장난기가 어렸다.


“그런데 왜 바로 보고를 하지 않았어? 사흘이나 안 나와서 걱정했잖아.”

“대법에 문제가 없으나 실행하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궁주를 제압해야해요. 제압하기 위한 방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한테 물어봐도 좋았을 텐데.”

“일단 적안화마 관련 서적은 모두 읽고 묻고 싶었습니다. 다만 전쟁 때문에 당시 정보가 중구난방이어서···.”

“다 읽어도 많은 정보를 얻기 힘들 것이오.”


조용히 있던 우사가 말을 꺼냈다.


“광극과는 달리 적안화마의 행적을 기록한 건 거의 없소. 전쟁 때문에 기록할 시간이 없었으니. 차라리 우리에게 듣는 편이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소.”


좌사가 작게 웃음꽃을 피웠다. 마치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어조로 책상에 걸터앉았다.


“공자, 옛날이야기를 해줄게.”



******



콰광-.


또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도자기가 깨지는 소리도 함께다. 뒤이어 괴이한 고성 또한 함께 일었다.


“궁주께서 또···.”


장로 하나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멈칫했다. 곁에 소궁주가 있기 때문이었다.


소궁주는 궁주위를 승계받아야 하는 인물임과 동시에 화궁주의 친아들이었다. 미쳐버린 제 아버지를 보는 것이 편치 않음이 당연했다.


“내가 진정시키겠네.”


장차 궁을 책임져야 하는 자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위신후가 화궁주의 방 앞에 섰다.


“들어가겠습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초로의 사내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도자기 병이 굴러다니고 있다.


“흐흐 왔느냐.”


제멋대로 잘라 길고 짧은 것이 섞여 있는 머리카락의 중년인. 푸석푸석한 머릿결과 메마른 입술은 눈앞의 무인을 병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과는 달랐다.


위신후는 초연하게 깨진 도자기 조각을 주우며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노복 하나를 또 때렸다지요. 이번에 장로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죽이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죽을 만한 자였다. 그놈이 내 부인을 모독하였으니.”

“어머니를 말입니까.”

“죽은 사람이라 하더군. 감히 말이다.”


위신후가 순간 움찔했다. 주화입마가 더 심해진 듯했다.


화궁주는 이제껏 부인의 환영이나 환청을 본다고 말한 적은 있다. 하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부인이 살아있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제 어머니가 살아있다니. 그럴 리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전쟁 중에 신교의 본산까지 찾아온 무뢰배들이 제 어미를 죽이는 것을 수많은 장로들이 보았다. 그녀의 시신을 묻는 것은 어린 자신마저 보았다.


망가진 상단전이 정신까지 영향을 미친 지는 오래다. 그래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었기에 궁주로서 군림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점점 이성을 잃는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길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무위가 다른 궁주들에 비해 낮다고 평가받는 화궁주다.


식솔들은 당연히 폐궁이 될 것이라 속삭인다. 정신이 망가진 아버지는 죽은 부인을 찾는다. 장로들은 하루빨리 자신이 궁주의 무위에 오르기만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맨정신인 궁주에게 가르침을 받아도 이립은 돼야 궁주의 자리에 오른다. 아니 이립도 빠르다고 취급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정신도 박히지 않은 궁주에게 어떻게 가르침을 받아야 이립도 안 된 나이에 궁주가 되겠는가?


미친 아버지를 보는 것만 이십 년째다. 이제는 질릴 대로 질리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이십 년도 더 지났습니다.”


무심코 나온 말이다. 이제는 광인의 장단을 맞추기에도 지쳐서 나온 말일지도 몰랐다.


형형한 적안이 위신후를 향한다. 매서운 살기를 띠는 눈은 과연 궁주의 일익을 자처할 만한 자의 것이었다.


말 그대로 적안의 화마가 위신후를 주시했다.


“무어라 했느냐.”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네놈이 감히 제 어미를 능멸해!”


적안화마의 두 손에 광채를 머금은 불꽃이 아롱졌다. 시전자에게는 따스함을 선사하는 백염(白炎)이지만 적에게는 불교의 겁화를 인세에 드리운 것 같은 재앙이다.


위신후는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이글거리는 저 불꽃이 자신을 삼켜버리라 확신했다. 이윽고 제 아버지마저 삼킬 불꽃이리라.


진각 소리와 함께 거센 기파의 압박감을 느꼈다. 다가오는 것은 보지도 못한다. 제 아버지는 광인이면서도 빌어먹게 강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찢어지는 소리. 온갖 소리와 함께 붉은 선혈이 자신의 눈에 담겼다.


‘죽겠군.’


순간 그리 생각한 위신후는 두 눈을 감아버린다. 차라리 이게 속은 편할 듯 싶기에.


‘·········?’


이상하게 고통이 뒤따르지 않았다. 꽤 아파 보이는 권이었는데.


기이함을 느낀 소궁주가 눈을 떴다.


제 아비가 보였다. 그는 다친 곳 하나 없는 몸으로 당황하고 있는 아비를 응시했다.


궁주가 뻗던 주먹의 경로가 뒤틀렸다. 중간에 스스로 팔뚝을 내쳐서 그렇다. 뻗어나가는 오른팔을 왼팔이 쳐서 경로를 바꾸었다. 기행이다.


그 기행으로 위신후는 목숨을 건졌다. 빗겨나간 주먹은 그의 옆을 강타했다. 벽면 몇 개를 가볍게 분쇄하고 건물 전체를 흔든 강권. 뒤늦게 올라온 장로들이 헛숨을 삼켰다.


위신후는 그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못 박혀있었다. 피를 흘릴 정도로 강하게 자기 팔을 타격한 아버지는 손을 떨고 있다.


그의 이성이 돌아왔다. 늦게서야 자신이 한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어···.”


부인과 맺은 결실을 이 손으로 없애려 들었다. 그러려고 연마한 무공이 아닌데도 순간적으로 손이 나갔다.


스스로의 감정도, 이성도, 심지어 행동마저도 조절할 수 없다. 그렇기에 주화입마다.


“미···안하다.”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기운 없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는 아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장로들은 제 궁주에게 감히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길을 열었다. 궁주는 그들을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따라오지 말게.”


아버지는 그리 말했다.



******



화궁주의 이야기를 다 들은 천태월은 광명전에서 서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읽은 물건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면서도 좌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다.


“네 말대로 하면 화마를 문제없이 잡을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너무 위험하다니까?”


목탁에 다리를 꼰 채 앉아있는 좌사가 말한다.


“그럼 다른 방법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나랑 우사가 화마를 제압하는 방법을 말했잖아.”

“말씀드렸다시피 싸움을 크게 가져가면 안 됩니다. 그럼 화마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도 만방에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러다가 네가 다치면? 나 그럼 총사에게 진짜 죽어.”

“그래서 혼자 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사 있잖습니까.”

“우사 있다고 네가 무적이 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을 나누고 있는 와중이다.


좌사의 얼굴이 순간 가는 주름이 졌다.


“누가 왔습니까?”


표정을 바로 읽어낸 천태월이 물었다.


“화궁의 작은 주인이 찾아왔어.”

“생각보다 이르군요.”

“뭐가?”

“화궁이 수습하기 어려운 일이 난다면 광명전을 찾으라 일러두었습니다. 이리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천태월이 한쪽에 놓인 가면을 집어 얼굴에 덮었다. 품이 큰 흑의는 이미 입고 있었다.


“일단 가보죠.”


천태월과 좌사가 방 밖의 계단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걸음걸이와 자세가 바뀐다. 옆에 있던 자는 일공자 천태월에서 광명전의 암검 혼명으로 변모했다.


언제 보아도 신기한 모습이다.


그들이 계단까지 당도하자 예상대로 광명전의 대문에는 위신후가 서 있었다.


“소궁···.”


위신후를 부르려던 좌사의 소매를 혼명이 작게 잡아당겼다.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의미였다. 그는 이미 소궁주의 얼굴에 드리운 강렬한 불안과 후회를 읽고 있었다.


혼명이 한층 부드러운 어조로 위신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리까?”

“아버지··· 아니 화궁주께서 사라지셨소.”


좌사가 돌연 얼굴을 찡그렸다. 옆에 일공자가 있는 게 아니었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따질 분위기였다. 그나마 옆에 일공자가 있기에 속으로 삭혔다.


그에 반해 혼명은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위신후에게 상황을 자세히 물었다.


위신후는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화궁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화궁주의 병세와 주화입마, 그리고 사라지기 직전에 있었던 일까지.


말이 거듭될수록 소궁주의 울대가 떨렸다. 평소보다 더 공손해진 언행만 보아도 그가 절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마지막 말을 힘겹게 꺼냈다.


“이미 주화입마가 심하오. 좌우사께서 발견하시더라도 베는 것밖에 방도가 남아있지 않을게요. 그리고··· 궁주께서는 궁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명을 끊을까 저어되오. 아니, 아버지 성격이라면 확실히 그러시겠지.”

“그럼 우리는 왜 찾아오셨소. 궁주의 죽음을 알리러 온 것이오이까?”

“···나는.”


소궁주의 목소리가 더욱 떨렸다. 두 손은 긴장한 듯 소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놓았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위신후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스스로 죽지 않았으면 한다. 동시에 주화입마에 빠진 아버지가 타인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주화입마에 빠진 이상 그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았다. 스스로 죽거나, 죽임당하거나.


한 명의 무인으로서는 스승인 궁주가 깨끗한 죽음을 원한다면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 옳다.


‘그것을 지지하는 게 옳지만···.’


위신후의 기억 한 자락에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따뜻한 등이 어미를 그리워하는 작은 아들을 업고 있는 모습은 세화를 모르는 듯 홀로 선명하다.


아들의 의견은 무인의 의견과 달랐다.


“죽지 않았으면 하오.”


그러자 혼명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화궁주를 살릴 것이외다. 대법을 복원했으니.”

“예?”


위신후는 순간 눈앞에 있는 자가 농을 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좌사가 가만히 있었다. 위신후의 눈썹 한쪽이 순간 칫켜 올라갔다. 농이 아니라고?


“되던데?”


혼명이 장난스럽게 다가왔다. 여전히 알기 힘든 보법을 살랑이며 경쾌한 태도를 겸비한 자였다.


그자가 좌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좌사, 생각보다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하오이다. 좌사께서는 화궁에서 대법을 준비해 주시지요. 저는 우사가 돌아오는 대로 소궁주와 함께 화궁주를 제압하고 가리다.”

“···다치지 마.”


작은 대답과 함께 진기의 폭풍이 일어났다. 일순간 휘몰아친 장포와 머릿결이 진정될 새도 없이 좌사는 눈앞에서 떠나 버렸다. 아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증발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 듯하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는 위신후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대법을 발동시킨다 쳐도 일단 화궁주의 위치를 알아야 하고 또한 화궁주를 진압해야합니다.”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이리 안일하오?”

“안일이라니?”


혼명의 입술 한쪽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그는 오히려 여유롭게 계단 위로 오르며 위신후에게 설명을 더했다.


“올라가서 일단 차 한 잔이나 하고 있으시오. 어차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어떻게 진압할지도 생각해 놓은 바가 있으니.”

“생각해 놓은 바?”


혼명이 난간에 기대어 소궁주를 내려다봤다. 위신후와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았다. 서로의 자리는 뒤바뀌었지만.


“궁주가 부인의 환상을 본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보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믿는 것 같소.”


여유롭게만 보이던 혼명의 입술에 좌사와 같은 장난기가 어렸다.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였다.


“그 환상, 진짜로 만들어 주려고하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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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궁火宮 24.03.15 45 1 13쪽
6 화궁火宮 +1 24.03.14 51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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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명昏冥 24.03.11 7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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