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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진 님의 서재입니다.

마교연기록(魔敎演技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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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진
작품등록일 :
2024.03.06 22:51
최근연재일 :
2024.04.0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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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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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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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화궁火宮

DUMMY

9화 화궁火宮


천태월이 장포를 수차례 털어내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소?”


우사가 천태월에게 다가와 물었다. 기침을 몇 번 하여 목소리를 가다듬은 천태월은 가벼운 어조로 답했다.


“사내를 안았더니 기분이 다쳤지만 그것 빼고는 없소이다.”

“위험하니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시오.”

“알았소이다.”


천태월은 수혈이 짚인 화궁주를 잠시 쳐다보다가 소궁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천태월이 아닌 혼명으로서 이야기했다.


“소궁주가 나설 일이 없어서 다행이외다.”

“······.”

“왜 그러시오이까?”


위신후의 표정이 조금 복잡했다. 그는 제 아버지가 부인으로 변장한 혼명을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주화입마에 빠져 계시긴 했지만 그렇게 밝은 표정의 아버지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저리 환하게 웃으실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소.”

“누구나 젊은 시절은 있는 법이외다.”


소궁주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천태월이 답했다. 그는 전생의 나이까지 합치면 환갑이 넘는 노인이었다.


그가 화궁주를 들어 위신후에게 넘겼다. 외공을 깊게 익힌 터라 성인 남성을 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위신후는 궁주를 업었다.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다. 그때는 자기가 업혔는데.


소궁주에게 혼명이 말했다.


“화궁에 가면 좌사가 대법의 준비를 마쳐두었을 것이외다. 우리는 광명전에 갔다가 화궁에 가야하니 먼저 화마를 모시고 가시오. 금방 가리다.”

“···감사합니다.”


꾸벅하고 고개 숙여 인사한 위신후는 쾌속한 보신경과 함께 사라졌다. 순식간에 화궁이 있는 방향의 발자국만이 남았다.


점차 그가 멀어지고 나서야 혼명이 아닌 천태월이 나타났다.


“우사,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없소.”

“다행입니다.”


천태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무위가 낮아 싸움의 양상을 보지 못했다. 혹여나 자신 때문에 우사가 다친 곳이 있을까 계속 염려하고 있던 차였다.


“여하튼 적안화마가 눈치채지 못하여 다행입니다.”

“당연하오. 누구 솜씨인데.”


자부심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그럴 만한 실력이기도 했다.


천태월의 분장은 우사가 시켜준 것이다.


비록 주화입마에 빠졌다고는 하나 우사의 인피면구와 변복을 궁주마저 눈치채지 못했다. 역시 암궁(暗宮) 출신이었다. 우사가 진지하게 변장한다면 천하에서 그를 알아볼 자가 몇없을 것이다.


“광명전에 들려서 인피면구도 떼고 흑의로 갈아입어야 하오.”

“알고 있습니다.”


이제 천태월은 화궁주의 부인인 월화가 아니라 혼명이 되어야 했다.


“광명전을 들렸다가 화궁까지 가야하는데 공자의 속도로는 택도 없으니 잠시 실례하겠소.”

“예?”


천태월이 우사에게 짐짝처럼 들렸다. 옆구리에 끼인 게 숫재 장작을 옮길 때와 같은 모양새였다.


“저도 혹여 업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우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죄송합니다.”

“출발하겠소.”


곧바로, 호숫가에는 아무런 신형조차 남지 않았다.



******



일이 어느정도 정리된 후 화궁의 응접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소궁주와 화궁의 장로들, 좌사와 혼명까지 함께한 자리였다.


우사는 없었다. 그는 다시 광명전에 가서 대외적인 서류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광명전이 화궁에서 보고하지 않은 대법이 있어 찾아간 것으로 처리될 것이다.


우사는 없는 그 응접실에서.


“음?”


혼명이 아까부터 이상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차 내왔습니다. 은공.”


대법은 무사히 실행된 이후다. 화궁주는 정신을 차릴 때까지 침실에서 요양을 취하고 있다. 잠깐일지라도 선천진기를 사용하였으니 회복은 필수였다.


그런데 왜인지 아까부터 소궁주가 혼명에게 이상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다. 소궁주가 상단전을 다쳤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기이했다.


혼명이 고개를 기울이며 좌사를 바라본다.


“좌사, 소궁주 괴롭협소이까?”

“내가 무슨 애를 못살게 구는 놈으로 취급하니?”

“그런데 왜 저러는 게요?”

“대법을 너 혼자서 복원했다고 말한 이후부터 계속 저러던데?”


그 부분에 대해서 위신후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궁의 장로들 몇몇이 함께 노력하여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은공의 자질이 우월하시니 존대를 하는 게 맞습니다. 물론 은인이기에 그렇기도 하고요.”


위신후가 작게 미소 지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도 훨씬 밝아 보였다. 원래도 이런 성정인데 병수발을 드느라 예민해진 것일까.


“궁에서 그 주인의 위상은 실로 무겁습니다. 궁주의 무위를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 또한 그렇지요. 이에 본궁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시지요.”

“소궁주님 아무리 그래도···.”


장로가 소궁주의 말에 반박하려 하자 위신후의 눈매가 바로 매서워졌다.


“무능하면 착하기라도 해라. 옆에서 염병하지 말고. 너는 본궁을 보은도 모르는 호로자식으로 만들 생각이냐?”

“···아닙니다,”


천태월은 바로 제 생각을 고쳤다. 소궁주는 원래 좋지 않은 성정인 듯하다.


‘그래도 장로면 소궁주보다 나이가 수십이 많은데···.’


신교에서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가 나이와 배분을 따지는 곳이었다면 정파였겠지.


장로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슬쩍 들고 있는 혼명이었기에 그들의 실책을 수습해주고자 했다. 그의 성정과 같이 잔망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마 의념을 잘못 해석하여 복원을 잘못했을 터외다.”

“의념 말입니까?”

“대법에 관해서도, 비급에 관해서도 의념을 잘못 파악하였을 것이외다. 화궁의 비급은 원래도 해독이 어려우니 충분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혼명이 계속해서 말했다.


“일단 초대 화궁주인 화극의 이야기부터 해주겠소이다.”


혼명은 자신이 그린 화극의 인물상을 묘사했다. 그리고 그건 무공의 이야기로 이어졌고 이윽고 그는 무리(武理)를 담론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화극의 염려가 있다. 후인에 대한 선조의 깊은 심려가 서려있는 무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렇게, 소궁주는 제 무공의 요결을 전해들었다. 때때로 동공이 작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혼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럼 역대 화궁주의 무위가 다른 궁주들보다 낮았던 것도···.”

“아마 그 영향이 있었을 것이외다. 비급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대성은 몰라도 극성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니.”


아마 극성에 다다른 불멸백환공은 백색 안광을 자아낼 것이다. 천태월이 읽어낸 진기 운용에 의하면 그러했다. 어쩌면 나중에는 백안화마(白眼狂魔)라는 별호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혼명은 이제껏 제 무공을 확신하지 못했던 청년을 바라봤다. 그 스스로 몇 번이고 물었을 질문에 답을 건네 주었다.


“불멸백환공은 신공절학이외다.”


소궁주의 손이 잘게 떨렸다. 본궁조차 헤아리지 못한 대종사의 심중을 읽어낸 자의 말이다. 타인의 진심 어린 말이 와닿았다. 받은 것이 너무 많아 어찌 보은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혼명은 너스레를 떨었다.


“좌사, 내가 오래 살았나 보오. 소궁주에게 저런 말도 듣고.”

“나이도 어린 놈이 별스런 말을.”


혼명은 궁주를 염려하던 소궁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공과 시전자의 의념이 잘 맞는 듯하니 수련만 꾸준히 한다면 대성에 닿을 것이다. 극성은 자질의 영역이라 확답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충분할 것으로 보였다.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홀로 무공을 익힌 것이 저정도니까.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대성에 닿든 극성에 도달하든 그때 자신은 없겠지만.


‘수명이 그 전에 다하겠지.’


천태월은 문득 제 천명이 생각나 조금 우울해졌다.



******



회의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중간에 들어온 의원에 따르면 화궁주의 상단전은 완전히 치료되었으며 선천진기 또한 거의 상하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라는 것이 있기에 천태월은 화궁에서 주려는 영단은 받지 않았다. 절맥증에 걸린 놈이 영약을 먹는 것보다는야 궁주가 섭취하는 게 열갑절은 낫다.


‘소궁주가 계속 미안한 눈치이기는 했다만.’


대신 혼명이 필요로 할 때 화궁이 힘이 되기로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사실 무공을 못 쓰는 천태월 입장에서는 영약도 신병이기도 의미가 없다. 위신후가 자꾸 주려던 것을 거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니면 다 챙겼을 텐데.’


이제 화궁에서 떠날 시간이다.


논의가 끝나자마자였다. 천태월은 혼명으로 계속 연기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빠르게 떠나려 했다.


은인을 귀히 대접하려는 화궁만 아쉬워할 뿐이다.


“은공, 나중에 필요하시다면 불러주십시오.”


위신후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화궁의 대문 앞에서다.


혼명이 웃으며 답했다.


“나중에 잔뜩 부려먹으리다.”


동시에 천태월은 안도했다. 이제는 정말 천마전에 박혀 있을 생각이 만발하고 있다.


불현듯.


사아-.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진기의 압박감이 숨을 쉬기 힘들 정도다.


안가에서 나온 후에 두 번째로 겪는 압박감이었다. 좌사에게 혼명을 처음 보였을 때와 같은 종류의 압박감. 복마포가 보호해줄 때나 좌우사가 배려하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본능적 공포감이 엄습한다.


곧바로.


좌사의 손끝에서 유형화된 진기가 맺혔다. 기다란 손톱과 같은 형체를 맺은 공력은 칼날이 되어 주변의 진기를 가닥가닥 끊어냈다. 숨을 옥죄던 진기의 파동이 꿈결처럼 사라졌다.


등에 가득한 식은 땀이 그것이 현실이었다는 걸 알릴 뿐.


‘다행히 얼굴은 차분했다.’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천태월은 화궁의 인물들을 둘러봤다. 화궁 쪽 인사들도 굳은 얼굴이었다.


‘화궁이 아니면 누가?’


화궁의 외곽에서부터 누군가 걸어온다. 좌사가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애들 괴롭히기는. 취미 한번 고약해.”

“어라? 손님들이 있었군.”


얼굴에 흑색의 안대를 한 채, 긴 꽁지 머리를 살랑거리는 사내가 다가왔다. 어깨에는 긴 활대를 맨 채 히히덕거리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좌사가 건들거리는 말투로 경계를 표시했다.


“필궁주(彃宮主)가 무슨 일이래? 어지간히 할 일도 없나?”

“좌사의 입담이 더러운 건 여전하네.”

“누구만 할까.”


필궁주. 신교의 열두개의 검 중 하나가 또 나타났다. 좌사와 묘한 신경전을 벌이면서다.


그러나 이 공간의 주인은 위신후였다.


“필궁주, 화궁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화마의 병문안을 왔지. 저번에 상단전을 치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만 내가 심히 걱정되어서 말이야.”


개소리였다. 누가 봐도 화궁주가 괜찮지 않은 것을 알고 그 신경을 긁으러 온 것이 훤했다.


‘그러고보니 궁주와의 회합에서도 위신후을 겁박한 게 필궁주 아니었나.’


천태월이 며칠 전 기억을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필궁주가 내 병문안까지 찾아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화궁 쪽에서 비꼬는 목소리가 또렷하다. 필궁주 못지 않은 선명한 존재감이 공간을 양분했다. 눈에서 적색의 광채를 보이는 자의 목소리가 공기를 진동시켰다.


화궁주가 깨어난 것이다.


‘멀쩡해 보이네.’


천태월이 한편으로 안심하고 있자 필궁주가 화마에게 말했다.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네.”

“육갑은 그만 떨자. 네가 그 이유로 온 게 아닌 걸 여기 있는 자가 다 알 텐데?”


화마가 거칠게 말하자 필궁주가 안대를 잠시 매만졌다. 동시에 한쪽 입꼬리 또한 살짝 끌어올렸다.


“사실 화마를 보러 온 건 아니지.”


필궁주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시선을 화마에게서 좌사와 자신이 있는 쪽으로 돌렸다.


“이쪽이 궁금해서 온 거라.”


좌사의 몸에서 진기가 흘러나왔다. 필궁주와 화궁주로 양분되어 있던 존재감 사이로 좌사의 존재감이 거대하게 부풀었다. 좌사의 거친 성정과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그녀의 장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왜? 나랑 한판 붙으려고? 나 인기 많아. 너랑 놀아줄 시간 없어.”

“다 늙은 할망구는 관심 없네.”


필궁주는 좌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혼명에게 다가왔다. 불쾌한 미소를 머금은 채 펼치는 쾌속한 보신경은 좌사조차 재치고 제 코앞에 자리하게 했다.


“좌사, 이놈 좀 빌려가도 되나?”

“그게 무슨···.”

“화궁주의 말이 맞소이다.”


좌사가 신경질을 부리기 전에 혼명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마치 중얼거리는 말투로 내뱉은 말이 혼잣말이 아니었음을 주변 모두가 알았다. 혼잣말이라 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 필궁주에게 들으라고 한 말임이 명백하다.


필궁주가 미간을 살짝 모으며 혼명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냐?”

“육갑 떨지 마시오.”


이번에는 혼명이 궁주에게 조소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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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기극 24.03.18 4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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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궁火宮 24.03.15 44 1 13쪽
6 화궁火宮 +1 24.03.14 51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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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명昏冥 24.03.11 72 1 16쪽
2 가짜 천마 +1 24.03.11 77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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