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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일 님의 서재입니다.

데우스 논 불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백일
작품등록일 :
2020.09.05 23:48
최근연재일 :
2020.11.02 08:1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724
추천수 :
311
글자수 :
370,832

작성
20.10.07 08:10
조회
86
추천
4
글자
21쪽

Deus Non Vult (3)

DUMMY

유약한 소년의 갑작스런 행동에 강인한 소녀는 화들짝 놀랐다.

죽음을 각오하고 엄마와 함께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자신의 목숨을 거두려던 사신과도 같던 무서운 성기사가.


가족을, 고향을, 세계를 잃은 사람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강직하고 잔혹해 보이기만 하던 새하얀 사신.

사신, 아니 겁쟁이에 유약하고 눈물 많은 소년이 감정을 드러냈다.


”으아앙···흑···훌쩍···”


한손으로는 가슴을 꽉 부여잡고,

남은 손으로 눈물을 계속 닦는다.

눈물이 마르지 않아 계속해서 눈물을 닦고 또 닦는다.


“뭐야? 지금···지금 누가 울고 있는 거니?”


여우수인의 모습을 한 암컷 외신.

눈까지 녹아내려 앞을 못 보는 그녀가 소녀에게 물었다.


지금 여기 있는 건 셋 명.

자신들과 목숨을 거두러 온 사신과도 같은 성기사 뿐인데.


외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 왔다고 착각을 했다.


“기사···예쁜 언니가 엄청, 엄청 서럽게 울고 있어요.”

“뭐?”

“잠시만요.”

“피샤!”


소녀가 자신의 품에서 사라지자 다급하게 이름을 외쳤다.

어두컴컴한 세상 속에서 홀로 남겨진 외신.

그러나 자기 배로 낳은 딸 피샤가 더 걱정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딸, 피샤는 조심스럽게 유다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엉엉 울고 있는 하얀 머리 소년.

소녀가 다가온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울기만 한다.


“기사···님?”

“훌쩍···미안해···”

“네?”


뜬금없이 사과를 건네는 유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그대로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소녀가 소년에게 살려 달라고 빌 때 흙바닥에 이마를 문질렀던 것처럼.


그 이상으로 머리를 쾅쾅 들이박으며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과거를 마주하는 고통을.

홀로 남겨진 괴로움을, 죄책감으로 짓눌린 가슴의 괴로움을.

다른 고통으로 털어내려고.


피샤라는 이름을 지닌 어린 외신은 깜짝 놀라며 유다를 뜯어말렸다.

아예 달라붙어서 어깨를 잡고 말리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마가 찢어지고 재생되는 것을 반복하며 피를 튀긴다.


‘끙···유다, 뭐가 이리 흔들리는 거냐.’


그리고 유다의 광기어린 사과를 멈춘 것은 바로 앨리스였다.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는 유다.

덕분에 소녀는 뒤로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앨리스! 괜찮은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진정해라. 환영이 사라진 직후에 네가 얼마나 멍청하게 굴었는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 있었어?”

‘끙. 모르면 됐다. 모르는 게 약이니까.’


유다는 기억에 없다는 듯 얼굴을 들이댔다.

계속 대답을 거부하며 떨어지라고 손짓하는 앨리스.

피샤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엄마와 자기를 죽이려던 기사가 무릎을 꿇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다가 사과까지 하고.

마침내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기까지.


피샤에게 앨리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앨리스가 무의식적인 주술을 유다에게만 사용해서.


‘왜 갑자기 저렇게 미친 사람이 된 거지···’


피샤는 다른 의미로 겁을 먹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한편 앨리스는 바깥 세상을 살피며 상황을 물어보았다.


‘지금 무슨 상황이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이마에는 상처까지. 카인이랑 싸우기라도 헀냐?’

“아니, 그···지금 내가 너무 미안한 짓을 해서, 그래서···저기 앞에.”


유다는 말을 흐리며 거울을 앞으로 돌렸다.

거울 속 앨리스는 그제서야 모녀의 존재를 깨닫고.


‘으악!’

“뭐, 뭐야! 거울 속에 귀신이 있어 엄마!”

“뭐?”


깜짝 놀라며 뒤로 자빠졌다.

모녀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유다의 모습을 빌린 자신을 보여주자.

소녀도 동그랗게 눈을 뜨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백 년 만에 제대로 마주한 다른 외신.

여우가족과 망령이 만난 순간이었다.


***


“빌어먹을.”


숲에 들어온 지 사흘째 저녁.

에말이 건빵과 채소, 육포를 한데 모아 만든 곤죽을 먹다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다른 재목과 기사는 재잘재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해소하려고,

조금씩 강해지는 숲의 환영에 맞서고자.

이야기를 나누고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에말이 울리는 은은한 종소리를 들으며.


그의 말에 헛기침을 하는 마법사 블론디.


“사제님. 분위기 좋은데 왜 그러십니까.”

“이 숲에서 분위기가 좋다니 장난해요? 유다 버린 걸 잊으려고 입이나 나불거리는 건데.”

“아니, 그걸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유다를 버린 건 우리라고요. 그 귀한 인재가, 유약한 아이가 혼자 환영에서 빠져나올 수나 있는지···”


에말은 답답해서 그릇을 내려놓고 가슴을 친다.


자신의 탓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건가.

아니면 단순한 답답함에 그러는 것인가.

어쩌면 둘 다 해당될 수도 있다.


에말의 행동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블론디.

이쪽을 힐끔거리는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특히 시몬.

그녀가 눈알을 계속해서 굴리며 에말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눈알 굴리기에 기가 찬 마법사.


‘답답하면 자기가 말리던가. 나는 외부인인데.’

“사제님. 대를 위해 소는 희생될 수 있는 법입니다. 희생학파는 아니지만 이 말은 오래된 속담으로 자주···”

“법사님. 제가 개인적인 감정 따위에 매몰될 멍청이로 보입니까?”

“예.”


블론디가 일말의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마법사의 대답에 잠시 멍 때리는 에말.


“아니었나요? 전형적인 입이 걸걸하지만 속으로는 따듯한 사나이···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전혀 아닙니다. 제가 안타까워하는 건 인재의 손실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재산을 저희의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니.”

“아니요. 사제님, 방금 그 표정은 명백했습니다. 솔직히 말씀하세요. 지금 당장이라도 그···유다라는 후보생을 찾고 싶으신 거죠?”


블론디는 어느새 시몬의 권유도 잊고 대화에 푹 빠졌다.

유도심문을 하는 교회의 재판관처럼 주도권을 틀어쥐었다.


그의 말에 에말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

곧 고개를 맹렬하게 젓더니 킥킥 웃는 사제.


“아닌데? 내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계산적인 사람인지 모르나 보네, 법사양반. 난 아주 속물적이고 부패한 사제라고.”

“예?”

“티는 안 내지만 내가 술이랑 담배를 얼마나 마시고 피우는지 알면, 또 고해를 내 맘대로 발설하는 꼴을 보면 실망할 거야.”


에말은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자라고 칭했다.

한쪽 손으로는 끊임없이 신성한 종소리를 울리면서.

작은 모닥불을 바라보며 손목을 움직인다.


어느새 뚝 끊긴 기사와 재목들 사이의 대화.

에말을 위로 좀 해달라는 의미로 눈짓했던 시몬도 이상하게 흘러가자 주목했다.

철저한 세속인과 순수한 성직자.


성직자는 쏠리는 시선을 받고서 어깨를 으쓱했다.


“왜 다들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에말. 그렇게 소리를 내는데 주목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종소리?”


그는 시몬의 말에 억지로 딴소리를 하며 종을 거세게 울렸다.


땡-

땡-

땡-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입밖으로 튀어나려고 하는 한마디를 꾹꾹 누르고 누른다.

자신이 느끼는 죄악감을 무게추로 짓누른다.

광기와 열정으로 죄책감을 덮으려고.


“임무에나 집중하자고, 케파 말마따나. 외신을 죽이면 되는 거야. 그럼 여기 있는 후보생 씨가 저절로 성기사가 되겠지.”


에말이 케파를 비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료이자 경쟁자를 버리는 행태.

케파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에말.


보속을 위한 이기적인 속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싫은 속물.

5년 동안 사과 한 번 안 한 가해자.


사스포 주교와 다름없는 권력과 명예, 힘에 대한 갈망.

거기에 쐐기를 박은 건 어제 있었던 일.

칼같이 수색을 포기하고 임무를 속행하자는 의견.


에말은 천교의 사제이자 선생으로서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고 말았다.

자기 아래에 있는 신자이자 제자에게 혐오감을 품는 일.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속죄하겠다는 마음을 몰랐기에.

선생은 제자를 미워하고 경멸하였다.


케파는 선생의 비꼼에도 침착하고 냉정하게 응대했다.

자신의 스승 시몬이 그랬던 것처럼.


“저는 모두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것입니다. 결정권한은 스승···대장님에게 있었고요.”

“야, 케파! 너 정말 그러기야?!”


책임전가를 하는 케파의 발언.

에말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럼에도 짐짓 슬픈 얼굴을 하는 제자.


진심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제님. 저도 슬프고 스스로에게 화가 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마력이 가득한 숲 앞에 한없이 무력한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야. 우리 케파가 언제 이렇게 똑똑했대? 어려운 말도 술술 잘 나오네. 전에는 그렇게 무식했던 것 같은데. 아, 내가 아니라 유다랑 꼭 달라붙어 있을 때 같이 배운···”


부웅!


그가 극적인 몸짓을 펼치며 제자에게 적의를 표출하고 있을 적.

잔뜩 흥분하여 잠시 종을 울리지 않을 때.

등 뒤에서 기척도, 잔향도 없이 나타난 존재.

에말의 머리통을 노리고 팔을 휘두르려던 순간.


케파는 에말의 말에 경청하며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고 있다가 반사적으로 옆에 있던 부지깽이를 집어 던졌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쇳덩이.

외신과 싸우는 전사로서 무의식적인 공격.


빠각!


뼈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케파의 힘에 에말 등 뒤에 있던 존재의 뼈가 부러지는 듯했다.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무기를 뽑는 일행.

에말도 뒤돌아 물러서며 자세를 갖추었다.


“외신이다! 전원 전투태세!”


시몬의 우렁찬 외침에 기사와 재목들이 위치를 잡는다.

카인과 아벨이 각각 에말과 마법사와 가까이 붙고,

나머지는 시몬이 지휘하는 가운데 외신을 둘러쌌다.


“저 녀석이 목표로 했던 놈인가?”

“전혀. 털 색깔이 달라.”

“그것 참 안타깝네!”

“조용! 지금은 시험 겸 임무다!”


마법사의 설명에 웃음을 짓는 에말.

시몬은 에말에게 쓴소리를 했다.


일행의 대화에 아랑곳 않고 제 할 일을 하는 블론디.

외신의 힘을 약화시키는 간단한 비전마법.

간단한 마법임에도 길고 긴 영창을 중얼거린다.


“녀석이 약하다고는 해도 외신은 외신! 방심하지 마라! 마리와 케파는 측면을 잡아! 나와 에녹이 정면에서 맞선다!”

“예!”

“아가리와 목을 집중적으로 노려! 너희들은 재목들을 보조하도록!”

“네!”


긴장이 잔뜩 담긴 목소리.

재목과 기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한편 시몬은 속으로 안심했다.


첫 실전이 곧바로 3단계에 달하는 외신을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서.

적당히 약한 외신을 상대로 위치선정과 공격, 방어를 하는 법까지.

좋은 연습감이라고 생각한다.


저 늑대 모습의 외신이 이상한 짓만 안 한다면.

재목들이 훌륭하게 목과 아가리를 봉한다면.


고개를 까닥이며 신호를 주고받는 마리와 케파.

외신의 양 옆에서 동시에 찌르기를 시도한다.


한밤중, 대기를 가르는 세 개의 검.

외신의 뇌리에 박힌 것은 두 자루.


마리의 찌르기는 한손으로 간신히 막았으나.

케파과 기사의 매서운 공격은 그러지 못하였다.

머리와 가슴을 꿰뚫린 외신.


“크으···그릉!”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고 어설픈 신음만 내지른다.

참수를 하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 존재.


장검을 깊숙이 박은 다음 새 장검을 꺼내는 케파와 기사.

견고한 자세에는 틈이 보이지 않았다.


“꺅!”

“흐읍!”


그래서 왼편에 있던 마리를 노렸지만 또 다른 기사가 육탄방어를 하였다.

위로 처올리는 공격에 잠시 허공에 떴다가 바닥에 엎어진 기사.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그는 갑옷이 찢기고 그대로 기절했다.


그 사이 영창을 마친 마법사와 새 칼을 뽑아 든 케파.

기사가 마리를 돕고 케파의 주도로 외신과 맞서는 사이.

블론디가 외신에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저 삿된 것의 힘을 거두소서!”

“크르르···”


영창을 마치고 대상에게 손을 뻗자.

외신은 급작스런 탈력감을 느끼며 움찔거렸다.

곧 목과 눈, 턱에 처박히는 세 자루의 칼.


실제 외신의 목을 벤다는 건 매우 어려웠다.

강인한 신체능력에 더해 마력으로 보호되기까지.

케파의 칼날이 목을 반쯤 벴지만 거기에 그쳤다.


외신은 힘이 쑥 빠져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괴로워하며 시뻘건 피와 뇌수를 뿜을 뿐.

목을 베이지 않는 이상 죽음에 이를 수 없다.


“크아악!!”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외신.

그 주변을 마리와 케파, 기사가 둘러싼다.

시몬은 결정타를 날릴 때라며 앞으로 나섰다.


“에녹. 우리가 붙들고 있을 테니까 그 때 목을 쳐. 아주 크고 강하게.”

“네!”


땀이 흐르는 손바닥.

칼손잡이를 꽉 쥔다.

외신에게 다가간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삿된 기운과 마력으로 상처를 재생하는 외신에게.


일행 중 가장 큰 카인과 비슷한 크기의 외신.

늑대와 사람 중간의 형태를 띈 얼굴의 이빨을 드러내며 성한 오른쪽 눈을 번뜩였다.

잔뜩 으르렁거리며 종을 울리는 사제를 바라본다.


평소보다 더욱 짙은 신성이 담긴 울림.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측면의 재목들을 바라본다.

아직도 끈덕지게 들러붙어 칼부림을 부린다.


정면에서 돌격하는 기사와 재목.

반인반수의 외신은 죽음을 직감했다.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한다.


“크으으···그릉! 아우!”

“안 돼!”


달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반인반수의 외신.

지휘를 내리던 시몬이 갑자기 나섰다.

노리는 것은 이미 서슬 퍼런 칼날이 박힌 모가지.

보통 생명이라면 소리도 지르는 게 불가능할 터인 상처.


좌에서 우로, 한 방을 노리는 큰 동작의 횡베기.


서걱.


외신의 목이 허무하고도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피를 내뿜으며 맥없이 앞으로 쓰러지는 몸뚱아리.

동강난 머리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머리와 몸통에서 스산한 기운이 올라온다.

원과 한이 가득 담긴 외신의 저주.

목숨을 거둔 자에게 내리는 최후의 흔적.

영적 수행을 쌓은 보좌사제가 필요한 이유.


약한 저주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비전마법처럼 탈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제의 구제의식을 받을 여유 따위 없다는 듯.


“스승님?!”

“늦었나? 빌어먹을! 너희들 무기 챙겨! 얼른 뭉쳐!”


뭉치라고 명령한다.

에녹의 궁금증도 무시한 채.


대장의 명령에 빠르게 뭉치는 일행.


댕-

댕-


계속해서 울리는 종소리.

에말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우-!”

“아우-!”

“좆됐다! 빨리!”


점점 가까워지는 외신의 울음소리.

저 멀리 번뜩이는 안광이 보인다.

여러 쌍의 안광을 보고 움찔거리는 카인.


“저게 뭔···”

“외신!”

“왜 저렇게 많아요!”

“닥치고 대장 말이나 들어!”


에말이 일행을 조용히 시키고 종을 계속 울렸다.

더 크게, 더 격하게.

온 세상 사람들의 귓가에 들릴 기세로.


일행을 둘러싸는 외신에게 맞서며.


***


겨울과 가까운 나날, 아침 햇살은 어머니의 품처럼, 너무나도 따듯했다.

적어도 유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입을 벌린다.

밤새 이야기를 한 탓에 선잠을 잤을 뿐.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꾸벅꾸벅, 비몽사몽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는 유다.


그 상태로 어제까지만 해도, 엄마가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만 해도.

양심을 억누르고 의무감과 복수심으로 칼날을 들이대고 살려 달라고 빌던 사이.

사신 같은 성기사와 사냥감인 외신.


두 존재가 나란히, 자매처럼 혹은 남매처럼 숲을 거닐고 있다.

한쪽은 바구니를 들고 퉁퉁 부은 눈을 깜빡이며.

작은 소녀는 허리를 수그리고 풀떼기를 바라보며.


“찾았다!”


그러다 피샤가 소리쳤다.

고목나무에 붙어 있던 까만 버섯.

콧노래를 부르며 버섯을 딴다.


피샤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다.

난생 처음 보는 버섯에 살짝 당황했다.


“그거 먹을 수 있는 거야?”

“언니···가 아니라 오빠. 그럼 우리라고 독버섯을 먹겠어?”


유다의 질문에 키득대며 대답하는 소녀.

즐겁다는 듯 큼직한 꼬리를 살랑거린다.

소녀의 반응에 목을 가다듬는 소년.


“난 이런 거 잘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야. 이름이 뭔데?”

“모기버섯?”

“모기? 앵앵거리는 그 모기?”

“아마도···? 엄마가 그렇게 알려줬는데.”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 소녀.

발음이 나는 그대로 목이버섯을 모기버섯이라 불렀다.

유다도 오해를 하고 그대로 수긍한다.


“모기버섯···생긴 건 귀처럼 생겼는데.”

“귀?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 오빠.”

“미안. 그치만 너무 닮은 걸 어떡해.”


유다가 동굴에서 지낸 지 이틀째.

다르게 말하면 숲에 들어온 지 사흘째 아침.

어제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펑펑 울고 난 유다가 기력이 다해 혼절한 일.

그 사이 앨리스가 수인 모녀와 대화를 나눈 일.

깨어난 유다가 식사를 하고 또 눈물을 흘린 일.

고해를 하듯 두손을 모으고 또 울며 죄를 고한 일.

모녀가 그런 유다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용서한 일.

같이 저녁을 먹으며 함께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한 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마지막.

새벽까지 소년과 소녀가 가정사를 나눈 것.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 닮은 둘의 이야기.


도망친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

쓸쓸하게 홀로 일을 하는 아이.

희망을 좇고 기도를 올리는 아이.


모든 것이 똑같았다.

나이와 성별, 종족을 제외하고.

유다가 의무와 복수를 뒷전으로 할 정도로.

자신의 과거라 생각하며 눈물을 보일 정도로.


“아무래도 좋은 거지만 말이야.”


어제 일을 생각하며 피샤를 따라 동굴로 돌아가는 유다.

특히 극적으로 모녀에게 고해를 한 일을 떠올리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외신인데···그러니까 신인데 왜 다른 신에게 기도를 하고 있는 거야.”

“응?”

“응이라니? 너는···피샤. 넌 외신의 자식이야. 그럼 적어도 절반은 신 아니야?”

“절반은 신?”


유다의 말에 놀란 듯 귀와 꼬리를 쫑긋 세우는 소녀.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뒤돌아보자 유다는 부담스러웠다.

자기보다 어린아이라고는 시스밖에 없던 소년.

여섯 살이나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건 처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응, 그러니까···반신. 반은 신이고 나머지는 인간이거나 다른 종족의 핏줄을 이어받은 신화나 동화속의 존재···”

“그럼 그런 사람들처럼 엄청 강해질 수 있어?!”

“음···? 아마도?”


애매한 질문과 애매한 대답.


확실히 외신은 강해질 수 있다.

앵간한 성기사와 맞먹거나 그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다.

천부, 천자, 신성의 도움도 하나 없이.

제국의 체계적인 마법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마력과 신체능력, 주술만으로.


그런데 무당과 외신 사이의 자식.

반쪽자리 외신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유다는 정작 마주하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귀엽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은 분위기의 소녀.


눈앞의 소녀가 교회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는 존재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아니 자신의 교회의 사람인만큼 믿기 싫었고 부정하고 싶었다.


애매한 대답에 피샤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게. 재미없어.”

“재 질문에나 답해줘. 왜 천부님께 기도하는 거야.”

“천부? 오빠는 하늘님을 그렇게 불러? 어제도 그랬더니.”

“너야말로 왜 그렇게 부르는 건데. 여기 사람들은 다 그러나.”


루츠 사람들이 천부를 부르는 방식.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없는 호칭.

하늘에 님자만 붙여서 부르는 법.

자치령과 그 부근에서 천부를 부르는 방법이었다.


“응. 하늘님이나 하느님이라고 불러.”

“왜 기도하는지···아니 뭘 위해 기도하는지 대답이나 해줘.”


유다는 질문을 살짝 바꾸었다.

어릴 적의 자신과 비교하며.


마잘린과 자신에게 희망과 구원의 손길을 내려 달라던 기도.

터무니없는 꿈과 희망을 광대처럼 웃으며 기대했던 한심스런 작태.

엄마가 예전처럼 예뻐지고 행복했으면 하는 소원.

순수한 기도가 아닌 복을 바라는 기복신앙.


그러나 소녀는 달랐다.

피샤는 힘차게 대답하며 앞서 나간다.


“이대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대로···?”

“응. 엄마가 죽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있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기억해준다고 했어.”

“···그렇구나.”


유다가 힘없이 대답했다.

피샤는 여전히 버섯을 땄다.


소녀는 강인했다.

소년은 유약했다.


작가의말

이백일:저기, 주교님. 여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마그나:무슨 일인가, 백일 군.

이백일:외신이랑 무당, 그러니까 사람이랑 반인반수 사이에서 어떻게 아이를...가질 수 있는 겁니까? 완전히 다른 종인데. 과학적으로 불가...

마그나:가능.

이백일:네?
마그나:내가 살던 곳에서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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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컨셉)(필독)이름없는 기록물에 관하여 20.09.28 146 0 -
공지 안식일(주일=일요일)은 쉽니다. +2 20.09.12 99 0 -
47 정화 +1 20.11.02 73 4 17쪽
46 너는 케파일지니 (6) 20.10.31 49 4 21쪽
45 너는 케파일지니 (5) +2 20.10.30 48 4 24쪽
44 너는 케파일지니 (4) +2 20.10.27 47 4 16쪽
43 너는 케파일지니 (3) +4 20.10.26 50 4 19쪽
42 너는 케파일지니 (2) +4 20.10.24 57 6 20쪽
41 너는 케파일지니 +2 20.10.23 59 4 16쪽
40 샛별 (4) +2 20.10.22 60 5 22쪽
39 샛별 (3) +2 20.10.21 62 5 16쪽
38 샛별 (2) +6 20.10.20 64 7 15쪽
37 샛별 +2 20.10.19 62 5 16쪽
36 땅의 짐승 (2) 20.10.17 68 5 19쪽
35 땅의 짐승 +2 20.10.16 67 5 17쪽
34 첫번째 뒷이야기 (4) 20.10.15 67 3 11쪽
33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4 71 3 18쪽
32 첫번째 뒷이야기 (2) 20.10.13 70 5 15쪽
31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0 79 3 12쪽
30 Deus Non Vult (5) +4 20.10.09 94 7 35쪽
29 Deus Non Vult (4) +1 20.10.08 97 3 17쪽
» Deus Non Vult (3) +4 20.10.07 87 4 21쪽
27 Deus Non Vult (2) +1 20.10.06 88 5 18쪽
26 Deus Non Vult +3 20.10.05 148 4 20쪽
25 Deus Vult (4) +1 20.10.03 94 3 20쪽
24 Deus Vult (3) +1 20.10.02 109 5 19쪽
23 Deus Vult (2) +4 20.10.01 92 7 18쪽
22 Deus Vult 20.09.30 151 7 18쪽
21 괴물 (7) +1 20.09.29 158 6 19쪽
20 괴물 (6) +3 20.09.28 113 7 22쪽
19 괴물 (5) +2 20.09.26 104 9 17쪽
18 괴물 (4) +2 20.09.25 159 9 24쪽
17 괴물 (3) +4 20.09.24 137 11 20쪽
16 괴물 (2) +4 20.09.23 123 7 16쪽
15 괴물 +6 20.09.22 154 8 15쪽
14 길들임 (4) +1 20.09.21 121 9 14쪽
13 길들임 (3) +4 20.09.19 164 7 14쪽
12 길들임 (2) +3 20.09.18 125 9 16쪽
11 길들임 +1 20.09.17 142 8 14쪽
10 거울 (4) +2 20.09.16 126 8 18쪽
9 거울 (3) +1 20.09.15 139 8 13쪽
8 거울 (2) +2 20.09.14 133 10 14쪽
7 거울 +5 20.09.12 193 10 14쪽
6 재목 (4) +1 20.09.11 152 9 14쪽
5 재목 (3) +2 20.09.10 165 8 15쪽
4 재목 (2) +1 20.09.09 209 8 14쪽
3 재목 +2 20.09.08 235 10 14쪽
2 광대 (2) +3 20.09.07 313 15 13쪽
1 광대(도입부 수정) +9 20.09.06 536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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