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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일 님의 서재입니다.

데우스 논 불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백일
작품등록일 :
2020.09.05 23:48
최근연재일 :
2020.11.02 08:1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694
추천수 :
311
글자수 :
370,832

작성
20.10.0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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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Deus Vult (3)

DUMMY

도심지, 광장과 가까운 노점상.

사제와 소년이 싸구려 튀김을 먹는다.

밀가루를 튀겨 만든 빵 비슷한 무언가를.


“야, 야. 요즘 세상 편해졌다 야.”

“···”

“옛날에는 저~기 있는 저 산맥을 빙글 돌아서 왔잖아. 기억나냐?”

“···”

“무려 한달이 걸렸지. 그 때 겁 없는 도적까지 만났는데 시몬이 혼구멍을 내주고. 하하.”

“···”

“고작 일주일만에 이렇게 네 고향까지 오다니. 응?”

“···네.”

‘아니 시발.’


참도 못한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린다.

화를 참기 위해 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리는 그.

몇몇은 유다의 외모를 보고 추파를 던지고,

추파를 받는 유다는 아무 말도 않는다.

요소 하나 하나가 에말의 정신에 금이 가게 한다.


‘뭘 어쩌라고. 왜 나 보고 이런 걸 하래.’


‘하필 이런 분위기에서 마지막 시험인 거냐고.’


세번째 시험을 위한 적절한 사냥감을 찾았다는 보고.

케파가 무릎을 꿇은 지 꼭 한달이 된 날이었다.


수 년간의 공사 끝에 누스 산맥을 뚫고 길을 만드는데 성공한 제국.

제국의 굴길(터널)을 통과하고 가도를 지나 일주일만에 당도했다.


-음, 에말! 우린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하다.

-아니, 잠깐. 케파랑 유다가 특별하다고 해도 성기사도 없는데···

-그럼 난 프레디 님한테 간다!

-개새끼가!

-어차피 시몬이랑 네가 제일 죽이 잘 맞을 것 아냐!


다른 보좌사제는 성기사 핑계를 대며 사라졌었다.

성기사의 도움도 없이 진행하는 특별한 시험.


-이번 재목은 특히 뛰어나니 성기사의 도움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각하. 아무리 유다랑 케파가 특출나지만 선을 넘은 거 아닙니까. 그러다 죽으면 어쩌시려고요.

-난 두 사람을 믿네. 천재들은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그 재능을 개화하는 법이지.

-뭐래는 거냐.


대신 선임기사인 시몬이 함께한다.

수석, 차석 선임기사는 성기사와 마찬가지로 바빠서 교구 곳곳에 흩어진 상황.

성기사의 부재 시 선임기사가 성기사를 대리할 정도로 강력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불안한 건 여전하다.


선임기사, 보좌사제, 마법사 한 놈에 성기사 후보 둘.

기사 두 명에 다른 재목들까지.

두번째 시험에서 탈락한 재목들은 세번째 시험을 치루지 못한다.

성기사 후보의 보좌를 맡고 첫 실전을 치룰 뿐.


이번 후보들이 무척 강하기는 하지만.

다들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게 걸림돌.

수인의 모습을 한 사냥감도 3단계에 이르는 녀석.

보통은 성기사가 나서기 마련이다.


‘진짜 그 사스포 자식이 권력욕에 눈만 안 멀었어도 제국 최고의 주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자신의 상사를 안타까워하며 동시에 욕을 주절주절 내뱉는다.

혼잣말을 하는 에말의 옆모습을 멍하니 보던 유다.

품속의 거울을 슬쩍 보고 입을 연다.


“선생님. 저기, 불편하시면 저 혼자 다녀도 됩나요?”

“어, 그럴래?”


유다의 말에 반색하며 말하다 엄한 표정을 짓고 목을 가다듬는 에말.

좋아하는 티를 지나치게 냈다.


“절대로···내가 절대로 이렇게 널 담당했다가 너한테서 해방···헤어져서 기뻐하는 거 아니다?”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해지기 전까지 교회로 돌아오고.”

“네.”


유다는 가볍게 대답하고 남은 튀김을 꿀꺽, 한입에 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사라지는 제자.

선생은 유다가 멀리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아주 신나게 웃었다.

속박된 사지를 자유롭게 쓰는 느낌.


“크하하하! 으하하핫!”

“저기, 손님? 괜찮으세요?”

“아, 크흠. 미안합니다. 너무 기뻐서.”

“예···”


노점상의 주인은 미친 사람을 보듯 에말을 보다가 관심을 끄기로 했다.

상인의 반응에 괜히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제.

평상복을 입었기에 사제라는 것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일부는 팔찌와 묵주를 보고 기적심사원 소속 사제라는 걸 알아챘다.

노점상인도 그 중 하나.


‘심사원 사제 놈이 왜 저렇게 가벼워. 그냥 미친놈인가.’

‘아 씨, 쪽팔려 죽겠네. 웃는 버릇 좀 고쳐야 하는데.’


두 어른이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에말은 유다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을 하지 않았다.

유다가 향한 작은 골목길.

자신이 살던 빈민가로 홀로 떠난 아이.


***


유다가 교회에서 지낸 지난 5년 사이.

필웬과 비슷하게 하고 많은 발도르의 빈민가.

유다는 그 중 한 골목길로 들어왔다.


자신이 살던 곳.

마잘린과 유다가 살던 장소.

낡아빠진 옷을 입고 늘 벌레와 인사를 하던 집.


빈민가 끝자락에 있던 집 몇 채가 통째로 사라져 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석조와 벽돌, 나무로 만들어진 5층짜리 건물.

많아진 도시민을 수용하기 위한 철거와 재건축의 결과물.

안에는 수십, 어쩌면 백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어때? 아직 남아 있어?’


손거울 속 앨리스가 묻는다.

품속에 있어 바깥을 볼 수 없는 탓.

유다는 멍하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 큰 건물 하나가 들어섰어.”

‘저런, 옛날에 있던 집은 헐었나 보군,’

“워낙 오래되고 더러운 곳이었으니까.”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는 유다.

그런 유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옆으로 돌아 골목을 거닌다.


‘더 이상 안 볼 거냐?’

“응. 차라리 잘 된···거야. 추억 같은 걸 계속 품고 있으면 약해지잖아.”


길가에 있던 조약돌을 툭툭 걷어찬다.


꾀죄죄한 차림새, 더러운 냄새와 조급함.

가난한 사람들이 척 봐도 부유해 보이는 유다를 힐끔거린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미모에 쑥덕이기까지.

부러움과 시기심으로 똘똘 뭉친 눈길들.

편한 복장이기에 기사인 줄 못 알아본다.


필웬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5년간 머무르자 그런 눈길이 줄었지만.

낯선 곳에 가면 변치 않는 시선.


넋을 놓고 바라보는 남정네들,

부러움과 시기심을 품는 여자들.

유다에겐 익숙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제 돌아갈까.”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을 텐데.’

“그래, 한참 남았지. 하지만 더 볼 때가 없는 걸.”

‘음···’


앨리스가 깊게 신음했다.


‘앨리스.’

“어?”

‘앨리스. 내 이름과 똑같은 가게는···가기 싫겠지.’

“응.”


창관에 여자 이름을 붙이는 관습.

묘하게도 외신과 똑같은 이름을 지닌 그 가게.


앨리스가 제 이름을 언급하자 유다는 눈살을 찌푸렸다.

발끝으로 툭툭 차며 굴리던 조약돌.

힘껏 차서 저 멀리 날아가는 걸 구경한다.


“그 가게는···아마 가기만 해도 내가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아.”

‘음.’

“그래도 한 번 가볼까.”

‘뭐? 가면 지랄병 도질 것 같다며.”


걱정 반 짜증 반.

거친 울림이 유다의 머리와 귀를 강타한다.

귀를 후비며 골목을 돌아다니는 유다.


“알아. 그래도···그래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 거지 같은 창관에 그런 사람이 있었나?’


앨리스는 신음하며 생각에 잠겼다.


유다와 접촉하고 사제가 올 때까지 두 달.

그 동안 한 거라고는 유다의 하루를 보고 가끔 대화하는 것뿐.


새벽에 먹을 것을 사고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일하는 일상.

친구는 없고 손님과 주인, 창부들만 있는 일상.

이곳에서 유다의 삶은 그러했다.


“기억 안 나? 네스 아줌마.”

‘아. 그 입 더러운 여자.’

“맞아. 아줌마나 한 번 보려고.”

‘그런 년을 만나서 뭐하게? 만날 욕이나 주고받던 사이인데.’


유다는 앨리스의 말에 우뚝 멈추어 섰다.

뜬금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

그렇게 고개를 뻣뻣이 든 채 입을 연다.


“말 좀 섞은 사람은 아줌마밖에 없으니까.”


고개를 내린다.

대답이 없는 앨리스.

유다도 말없이 걸어간다.


집에서 나와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다시 오른쪽.

다리가 기억하는 길.

건물 사이사이를 지나 빠르게 도달하는 법.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

그곳을 빠져나오자 그럭저럭 큰 길가가 나온다.

아직 영업을 개시하지 않은 곳.

밤에만 문을 여는 가게들.

끔찍한 기억만 가득한 거리.


“하아, 하아···”


아니나 다를까 유다의 숨이 거칠어진다.

모르는 사람 손에 놀아나던 그 시절.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이곳.


유다는 역겨움을 참아내고 한 가게로 향한다.

몸이 기억하는대로, 발이 기억하는대로.

비척대며 도착한 곳은 어느 가게 앞.

앨리스란 이름을 대충 휘갈겨 적은 곳.


“휴우.”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다시는 저기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어서 발을 돌려 밝은 곳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시간낭비 하지 말고 에말에게 가자.


유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세차게, 맹렬하게.

머릿속의 잡념들을 털어내려고.


“난 사람을 만나러 온 거야.”


낡은 문을 부서질 기세로 두들긴다.

세차게, 화를 내는 사람처럼.

자물쇠가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틈으로 더러운 인상의 사내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잠에서 막 깼는지 눈을 비비적대는 그.

눈이 침침하여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유다는 흠칫 놀랐다.

말끔하게 콧수염을 길렀던 창관의 주인, 노엘.

노엘과는 얼굴이 완전히 딴판이다.


“흐암···뭡니까. 아직 영업 안 하는데.”

“네스.”

“응?”

“네스라는 창부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네스가 있느냐고 묻느다.

딱딱하고 근엄한 말투와 억양으로.

기사들의 어깨 너머로 배운 기사로서의 태도.

기사가 수상쩍은 신자들을 다루는 법.


그 태도, 특히 억양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내는 목을 가다듬었다.

아젤어를 공부하며 자연스레 혀에 익는 교회의 억양.

덩치는 작지만 살해에 최적화된 근육을 지닌 소년.


기사임을 확신한 사내였다.


“커흠. 네스라 하셨습니까, 나리?”

“그래. 혹시 여기에 있나? 비···싼값에 사겠다.”


비록 연기이지만 스스로 더러운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유다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잠시만요. 네스? 네스···”


사내는 가게로 들어가 장부를 살폈다.

곧 똑같은 자세로 고개를 내미는 사내.


“있느냐?”

“죄송합니다, 없네요. 혹시 여기 단골이셨습니까?”

“그렇다. 몇 년 만에 온 건데.”

“흠.”


그는 어려보이는, 아니 실제로 어린 유다를 유심히 보았지만 머리를 굴리지는 않았다.

어리더라도 이런 사람 앞에서 머리를 굴리면 큰일이 벌어지니.

그냥 정직하게 말하는 게 뒤탈이 없다.


“일 년 정도 전에 여기를 제가 사들였습니다.”

“아···아, 그래서 주인이 바뀐 거로군.”

“예. 그런 일이 있었습죠.”

“그렇군···”


새주인은 유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씁쓸한 눈빛으로 바닥을 쳐다보는 어린 손님.


‘어리석은 사랑인가.’


의외로 흔한 경우라고 생각하며 몰래 웃는다.

몸을 섞다가 어긋난 사랑에 빠지는 일.

대다수가 파탄에 이르는 창부와의 결혼생활.


“난 이만 가보겠네.”

“예, 나리. 살펴가십시오.”


유다는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볼일이 없어진 역겨운 곳을 떠나고자.


***


“아아, 형제님. 오늘로 벌써 마지막 날이로군요 아쉽습니다.”


발도르 선임사제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에말의 손을 꽉 잡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러나 에말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원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입니다, 형제님. 이곳에서 받은 응대, 잊지 않겠습니다.”

“예, 저도 곧 성기사가 될 분들의 무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


에말이 말끝을 흐리고 꾸물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젊은 선임사제.

5년 전의 늙은이는 은퇴한 지 오래.


“오늘 화형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죠! 그걸 깜빡했네요. 아주 중요한 행사인데. 하하. 곧 저희 도시의 대축일이 있는지라 워낙 바빠서.”

‘그렇다고 그걸 까먹나.’


젊은 선임사제를 보며 한심하게 여기는 에말.

에말과 비슷한 나이의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창가로 향했다.

그가 손짓하자 에말이 다가간다.


도시의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저택의 집무실.

광장에는 웰링턴 소속의 기사가 있었다.

분주히 화형을 준비하는 도시의 경비대를 감시하며.


당연히 보좌사제 에말과는 안면식이 있었다.


“저기 반대편에 계시는 시장께서도 보고 있을 겁니다.”

“외신과 무당이라니. 여기 기사님들도 참 용하시군요.”

“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


교구의 중앙에는 성기사가 있고 기사가 수십 명씩 있으나.

그렇지 않은 도시나 마을엔 기사만 하나 둘 파견될 뿐이다.


그나마도 대다수의 작은 마을에선 구경도 힘든 기사.

3개월마다 교대되어 정을 붙일 틈조차 없는 기사들.


“갓 외신과 접촉한 경우였습니다.”

“정말 운이 좋으셨군요. 오늘 정오입니까?”

“예. 화형식은 역시 정오에 해야죠.”

“흠. 그럼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다 갈까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에말.


이번 시험만 마치면 성기사와 기사가 될 재목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외신과 무당은 보는 자리에서 사살이 원칙.

이런 공개화형은 의외로 드물다.


그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칼침 맞고 바로 쓰러질 정도로 약해 빠진 경우가 아니라면.


“그거야 좋지요. 긴장을 해소하는 데는 제격입니다.”

“죽는 놈 구경하는 것만큼 신나는 것도 없죠.”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를 죽이는 일.

남의 고통은 자신의 행복이라 하는가?


자신과 동료들이 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에말이었으나.

기적심사원의 사제인 이상 본질은 변치 않는다.


외신이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

삿된 것과 무당을 잔혹하게 죽이는 일.

교회의 사람으로서 당연한 생각이다.


“필웬에 있을 때 저희 재목들은···한두 달에 한 번 정도씩 봤죠.’

“호오. 역시 중앙교회의 기사들은 다르군요.”

“성기사직 하나 비었다고 나대는 놈들이 늘었을 뿐입니다.”


어깨를 으쓱하는 에말.


“그러하군요. 확실히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기사 한 분이 출정을 오셨죠.”

“다음을 기대하세요. 새 성기사를 볼 수 있을 테니. 제가 기른!”


에말이 당당하게 자신을 가리켰다.



그렇게 결정된 화형식을 구경하는 일.

정오가 가까워지자 광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일 년에 몇 번 보지 못하는 진귀한 구경거리.

짧지만 흥겹고 신나는 축제와 같은 것.


기사, 마법사, 사제, 재목들도 나무기둥에 묶인 채 발버둥치는 외신과 제물을 바라보았다.


“이야. 저건 처음 보네요, 스승님.”

“나도 마찬가지야.”

“예?”

“기사생활을 오래 했지만 무당이랑 외신이 함께 잡히다니. 정말 진귀한 일이지.”

“아아, 그렇구나.”


마리와 시몬의 대화.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쟤 소리 지르는 거 봐라.”

“킥킥. 그렇게 무섭나.”

“야, 넌 대못 박히자 마자 항복했잖아.”

“쟤네는 잘못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지! 우린 시험이었고.”

“예, 예.”

“참나.”


카인과 아벨의 대화.

키득대며 구경한다.


“에녹. 솔직히 말해봐라, 넌 지겹지?”

“···아뇨. 그래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으니깐.”

“또 중간에 조는 건 아니고?”

“···사실 지겨운 거 맞습니다.”


에녹과 에말의 대화.

지겨워서 잠이 올 지경이란다.


모두 두번째 시험을 잊은 것처럼 말한다.

아니, 그걸 잊고자 남의 고통을 즐긴다.

삿된 것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마지막으로 유다와 케파.


“음.”

“흐음.”


짤막한 신음만 내고 말을 만다.

어쩌다가 같이 있게 된 두 사람.

어마무시한 크기의 앙금과 상처.


케파가 가슴을 벅벅 긁는다.

유다를 힐끔 바라본다.

눈치를 보다 혼잣말을 하는 케파.


“남의 일이라고 너무한 거 아닌가.”

“···”

“한달 전에 버틴 사람은 우리 둘 뿐인데.”

“그렇지.”


조용히 대답하는 유다.

케파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일주일 만에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했으니.


마지막 대화는 오늘 저녁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유다. 오늘 저녁 뭔지 알아?

-오늘 금요일이잖아. 튀김이겠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뒤 말이 사라진 둘 사이.

케파에게는 대화가 절실했다.

동료이자 부하이자 친구와의 대화가.


물론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덤덤하게 말을 잇는 케파.


“외신을 죽이는 건 매우 진지한 일인데 다들 축제 분위기야.”

“네가 쓸데없이 진지한 거야.”

“유다, 너도 화형이 있으면 조용했잖아.”

“시끄러워. 그냥 지겨운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고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한다.

애써 졸린 티를 내는 유다.


“자, 자! 지금부터 기름을 붓겠습니다!”


집행인은 박수를 치며 이목을 끌더니 경비병에게 기름병을 넘겨 받았다.

병에 가득 찬 기름을 외신과 무당, 발 아래 장작까지 듬뿍 뿌린다.

무당은 두려움에 떨어 바지에 오줌을 지렸고, 외신은 미쳤는지 웃기만 한다.


집행인의 유쾌함과 사형수의 반응에 흥겨워하는 시민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사방팔방 튀는 기름을 어떻게든 받으려고 난리가 났다.

화형을 할 때의 기름 부음을 받으면 행운이 따른다는 미신.


유다 일행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즐겁게 구경했다.

단 두 명을 제외하고.


한 명은 앞서 말했듯 매사에 진지한 대장, 케파.

젊은 나이임에도 늙은이처럼 혀를 찼다.

진지한 일을 다들 즐길 거리로만 여기고 있다고.


다른 한 명은 바로 유다.

마음을 졸이며 거울 위에 손을 얹는다.


이윽고 마법으로 불을 붙이는 집행인.


품속의 손거울을 톡톡 두드리며 눈길을 돌린다.

불이 붙자 손을 들고 비명과 비슷한 환호를 지르는 시민들.

기사들도 진귀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진짜 비명은 그렇게 묻혀 간다.

갓 붙은 불의 뜨거움과 남의 괴로움을 즐긴다.

유다를 제외하고.


‘나는 괜찮은데. 즐거운 척이라도 하지 그러냐.’

“아니야. 앨리스랑 동족인데 어떻게 그래.”

‘참 나. 외신한테 그런 의식이 있을 리 없다고 몇 번이나 누누이 얘기했는데.”


외신과 외신 사이의 관계.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

동물과 동물 사이와 같다.


사람이란 이유로 무기를 내려놓는 이유가 없듯이.

동족이란 이유로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 짐승이 없듯.

모든 것이 똑같았다.


‘역시 두번째 시험 때 맘고생이 심했구나. 평소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아냐. 정말로 아냐···그냥···즐길게. 네 말대로 즐길게.”

‘그래, 바로 그거야. 이럴 때만큼은 모든 걸 잊고 눈앞의 광경을 즐기라고.’


유다는 시선을 집중했다.

눈앞에서 발버둥치는 외신과 무당을.

서로를 원망하는 눈빛을 보았다.


고기를 굽는 듯한 냄새가 퍼지고.

미약한 재생력에 발버둥을 친다.

죽을 듯하지만 죽지 않는 그들.


최후에 몸통과 머리가 이별을 고하는 순간까지.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 찬 눈을 한다.


하얀 머리 아이는 즐길 수 없었다.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광경을.


작가의말

 이백일:와, 진짜 잔인하네요. 자기 일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인가? 자기들도 라보르라는 끔직한 고통을 겪었으면서...작열통이라니.(몸서리를 친다)

 마그나:자네도 평소에 그렇지 않나?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에 일조하면서 자기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기아와 쓰레기, 비위생적 환경에 허덕이는 이들을 무시...
 이백일:제 일 아니거든요! 그리고 언제 그렇게 우리 지구에 대해 공부하셨습니까! 어서 가서 번역이나 하십시오 각하!

 마그나:(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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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4 70 3 18쪽
32 첫번째 뒷이야기 (2) 20.10.13 69 5 15쪽
31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0 79 3 12쪽
30 Deus Non Vult (5) +4 20.10.09 94 7 35쪽
29 Deus Non Vult (4) +1 20.10.08 97 3 17쪽
28 Deus Non Vult (3) +4 20.10.07 85 4 21쪽
27 Deus Non Vult (2) +1 20.10.06 88 5 18쪽
26 Deus Non Vult +3 20.10.05 148 4 20쪽
25 Deus Vult (4) +1 20.10.03 94 3 20쪽
» Deus Vult (3) +1 20.10.02 109 5 19쪽
23 Deus Vult (2) +4 20.10.01 92 7 18쪽
22 Deus Vult 20.09.30 150 7 18쪽
21 괴물 (7) +1 20.09.29 157 6 19쪽
20 괴물 (6) +3 20.09.28 110 7 22쪽
19 괴물 (5) +2 20.09.26 104 9 17쪽
18 괴물 (4) +2 20.09.25 158 9 24쪽
17 괴물 (3) +4 20.09.24 137 11 20쪽
16 괴물 (2) +4 20.09.23 123 7 16쪽
15 괴물 +6 20.09.22 154 8 15쪽
14 길들임 (4) +1 20.09.21 119 9 14쪽
13 길들임 (3) +4 20.09.19 163 7 14쪽
12 길들임 (2) +3 20.09.18 124 9 16쪽
11 길들임 +1 20.09.17 140 8 14쪽
10 거울 (4) +2 20.09.16 126 8 18쪽
9 거울 (3) +1 20.09.15 139 8 13쪽
8 거울 (2) +2 20.09.14 132 10 14쪽
7 거울 +5 20.09.12 193 10 14쪽
6 재목 (4) +1 20.09.11 151 9 14쪽
5 재목 (3) +2 20.09.10 165 8 15쪽
4 재목 (2) +1 20.09.09 207 8 14쪽
3 재목 +2 20.09.08 234 10 14쪽
2 광대 (2) +3 20.09.07 309 15 13쪽
1 광대(도입부 수정) +9 20.09.06 535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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