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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일 님의 서재입니다.

데우스 논 불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백일
작품등록일 :
2020.09.05 23:48
최근연재일 :
2020.11.02 08:10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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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3
추천수 :
311
글자수 :
370,832

작성
20.09.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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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괴물 (6)

DUMMY

수석성기사 에텔과 유다와의 대련.

나이, 경력, 실력, 실적, 기교, 체격, 신성.

모든 면에서 불리한 유다는 당연하게도 졌다.


그러나 주교와 마찬가지로 놀란 에텔.

혹시나 했는데 자신과의 대련에서도 버텨낸 것이다.

익숙해지거나 강인해지지 않으면 쓰러질 그 울림을.


그 놀라움은 곧 웃음과 칭찬으로 바뀌었다.


“아주 훌륭한 기개야. 기술은 좀 더 연습하면 되겠고.”

“감사합니다.”

“어쩌면 케파보다도 훌륭하게 성장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계속되는 시험, 상투스.


유다는 일찌감치 대련을 마치고 구경을 했다.

영광의 기술을 쓰지 않고 대련하는 기사와 재목들을.

굴욕적이게도 거기엔 케파와 카인도 포함됐다.


본 실력을 내는 이들에게 처절하게 깨진 뒤,

자존심도 유리처럼 와장창 박살 난 케파.

공격적이던 소년의 기세가 자꾸만 흐려진다.


‘빌어먹을.’


이게 다 저기 있는 저 자식 때문이다.

집중이 흐려지는 이유,

정신이 저쪽으로 팔리는 사유.


잔잔한 물결과도 같던.

단단한 바위와 똑같던.

마음이 무뎌지고 무너지는 이유.


자신을 이기고 시험에서 고평가를 받는 유다의 탓이다.

다음에는, 다읍 번에는, 다음 시험에서는.

보란듯이 너를 꺾고 일등을 차지할 거다.


그래야만 성기사가 될 수 있고.

그래야만 반석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며.

그래야만 너에게 속죄를 할 수 있으니까.



시기와 죄책감.

모순된 감정이 케파의 가슴 속에 공존했다.

언뜻 보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의 상태.


그러나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몹시 신묘하고도 간사하여.

애증이란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가.

사랑함과 동시에 증오를 하는 그 상태.


케케묵은 역사를 지닌,

간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울림.

비슷한 울림이 케파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뿐이다.


***


짝짝짝짝짝!


크고 우렁찬 박수소리.

거울 속의 앨리스가 박수를 친다.

평소의 여유롭고 우아한 모습이 아닌.

대견함을 대변하는 함박웃음으로.


‘정말 대단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잘 해낼 줄은 몰랐는데. 특히 케파를 이긴 것 말이다! 마지막에 그토록 유연한 허리놀림으로 내 충고를 실현시키고···’

“잠깐, 왜 그렇게 흥분을 한 거야.”

‘그토록 고대하던 승리인데 유다, 너야말로 너무 침착하구나.’

“나도 기쁘긴 하지. 하지만 아직 시험이 남았어. 긴장을 풀어서는 안 돼.”


굳은 얼굴을 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


‘음! 좋은 자세야, 유다. 나도 너무 흥분했네. 외신답지 않게.’


그리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앨리스의 응원.

머릿속에 직접 앨리스의 말이 울린다.

영광스런 대련을 할 때의 그 느낌.

마력의 울림이 머리와 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유다가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말한다.

그 말에 맘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까닥이는 앨리스.

5년 전, 외신의 품격 운운하던 앨리스의 체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상한 말을 꾸역꾸역 내뱉는 거울 속 친구.


유다의 말마따나 이젠 친구나 다름없다.

아니 어쩌면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쭉,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하고 말을 나누었으니 그것보다도 더 깊은 관계일지도 모른다.

물론 둘은 그걸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그래, 입이나 다물고 있어. 도대체 뭐였던 거야? 마력의 울림이니 뭐니 하는 거. 그냥 너랑 격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느낌이었어. 다른 애들은 다 쓰러졌다는데.”

‘그걸 굳이 설명해야 하나?’


귀찮다는 듯 앨리스가 허공을 응시한다.

거울을 톡톡 두드리는 유다.


“깨버린다? 다들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고.”

‘···마력의 울림이란 파장이 다른 마력이 부딪혀 주변 생명체의 정신과 영혼을 조금씩 마모시키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앨리스는 빠른 속도로 정의를 읊었다.

마모라는 단어에 흠칫 놀란 유다.


“잠깐, 마모? 조금씩 닳는다고?”

‘무슨 문제라도 있나?’

“계속 들으면 막 수명 줄어들고 그러는 거 아니지?”

‘고위 마법사와 성기사는 어떻게 장수를 하겠어.’


한껏 진지해진 어투.

앨리스가 말을 이어간다.


‘더욱 불공평한 것이지. 강한 자는 힘, 권력, 수명. 모든 것을 얻는데 반해 약자들은 철저하게 짓밟히는···’

“몰라 그딴 거. 내가 궁금한 건 네가 말하는 방식이라고. 영혼과 정신을 갉아먹는다는 그 울림이! 왜 네가 말하는 거랑 똑같이 느껴지는 건데. 머릿속을 간지럽히는 그런 느낌 말이야.”

‘음. 내 말이 그렇게 느껴졌나? 마법적인 힘으로 직접 전달하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앨리스도 살짝 놀란 듯 반문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는 유다.


“너도 몰랐단 말이야? 스스로 말하는 게 마력의 울림이라는 걸?”

‘아니. 그럼 넌 말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어?’

“목을···어···”

‘숨을 쉰다, 먹는다, 똥을 싼다, 말을 한다. 여기에 갇힌 나에게 있어 머리로 직접 의사를 전달하는 건 그런 것과 비슷한 수준의 마법이야.’

“그랬구나.”


우연이라면 우연.

필연이라면 필연.

앨리스의 말하는 방식이, 마법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양쪽 다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아무튼 고마워.”

‘아이고, 그 말 좀 그만해라. 없는 귀가 닳아 사라질 지경이야.’

“고마운 건 확실히 전해야 한다고 천부님이 말씀하셨···”

‘잠이나 자! 사흘 뒤면 또 시험이니까 푹 쉬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앨리스.

그 말을 시작으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케파 빼면 말상대도 없으니까 형식적인 관계는 유지해야지!’


‘그리고 마리도! 내 생각엔 걔가 유일한 희망이다!’

“아, 시끄러워.”


껴안을 때 쓰이는 작은 담요.

유다가 담요로 자기 머리를 돌돌 만다.

여전히 앨리스의 잔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지만.

왠지 그 소리가 작아진 듯한 느낌.


“그럼 잘 자.”

‘내 생각에 두 번째 시험은 협력이 주제일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내 말 듣고 있어?’


유다는 이미 꿈나라로 떠난지 한참이었다.


***


평소보다 일찍이 눈을 뜬 시몬.

아니, 정확히는 눈을 뜬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지 못한 여기사.


이른 새벽의 선잠을 빼고 나면.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오늘은 자신이 그토록 걱정하던 날.


5년 전, 눈물을 쏟으며 어린 재목들을 걱정했던 그녀.


‘이 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침대에 누운 채 두 눈을 깜빡인다.

한 줌의 빛도 없는 조촐한 방안.

어둠을 응시하며 고요히 생각에 잠긴다.


재목들···아이들은 훌륭하다.

10년에 걸쳐 천천히 배워야 할 것들.

절반의 시간 동안 기사가 가져야 할 기술과 덕목.

모든 것을 익히고 끊임없이 향상시켰다.

자신과 에말, 대장격인 케파를 잘 따라오며.


무기술, 맨손 무술, 갑주 무술.

신성의 기초, 응용기인 글로리아.

무당과 외신을 상대하는 방법.

에말이 가르치는 따분한 공부까지.


그런데도 불안하다.

너무나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지금 당장 시험의 내용을 밝히고서.

포기해도 좋으니 고통받지 말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불안하다.


많은 이들을 기사로 만드는 시험.

소수의 성기사와 다수의 기사들.

자리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많은 기사들이 성기사가 되지 못한 이유.

가장 끔찍한 두 번째 시험.


몇 시간만, 해가 뜨고 나면 곧바로···!


끼익.


“누구냐.”


벌떡.

시몬이 몸을 일으켰다.

머리맡에 있는 단검을 칼집에서 빼며.


“에말입니다.”

“?”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던 시몬.

그녀는 익숙한 목소리가 대는 이름에 깜짝 놀랐다.

새까만 어둠 속에 서 있는 마른 체형의 사람.

그 사람이 대놓고 문을 열고 들어온다.

침대 앞에서 장난스레 손을 접었다 펴는 괴한.


“정말 에말이야?”

“그럼 내가 마법사처럼 환술이라도 썼을 것 같아? 때려 부수면 누군지 알아 보려나.”


가벼운 투로 말하며 탁자를 두드린다.

시몬이 그의 행동을 보고 단검을 거둔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어떻게 왔어? 금남구역에.”


제3선임기사 시몬이 머무르는 곳.

중앙교회 내의 몇 안 되는 여성부제들의 숙소였다.

남자가 접근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이곳.


“말하면 한 대 맞을 것 같지만, 뭐···여우처럼 날렵하게 담을 넘어왔지.”

“그래, 마지막으로 물을게.”


그녀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에말에게 다 보이는 행동.

가엾게 여기며 한숨을 푹 내쉰다.


“들키면 둘 다 파문인데 왜 온 거야?”

“음, 글쎄. 내가 잠이 안 오니까 너도 잠이 안 올 거라 생각해서...그랬겠지?”

“왜 의문으로 끝내는 건데.”

“이십 몇 년을 함께한 감으로 찍어 맞춘 거라.”


에말이 머쓱한 듯 자기가 한 말에 웃음을 작게 터뜨렸다.

큰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그.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통해 금색 정수리가 시몬의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얼면 썰렁해~

-신이 날고 있으면 신난다!

-1+1은 2가 아니라 3!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장난.

일곱 살부터 열 살까지.

어린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만 나오는 일.

그 때 매일같이 보던 금발의 정수리.


“아무튼, 그냥 말이나 섞으려고 왔어. 내 영적인 삶의 목숨을 걸고서! 위대하지 않아? 하나뿐인 동기이자 동생을 위해서···”

“조용히 좀 해, 들키겠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거짓말같이 들려오는 발소리.

저벅저벅.

두 사람은 한 치의 미동도 하지 않고 얼어붙었다.


이내 멀어지는 발소리와 바깥문이 열리는 소리.

한 여부제가 뒷간에 가는 길이었다.


“휴우. 위기가 지나갔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나 해보자고.”


에말은 탁자 옆에 있던 의자를 침대 바로 옆까지 옮기고 척하니 앉았다.

한걸음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

서로 체취를 맡을 수 있는 그런 간격.


교회의 남녀가 서로 마주본다.

여자는 참고 있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남자는 슬픔으로 가라앉은 파란 눈을 지닌 채.


“또 우는구나.”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몸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마음이 괴롭고 어둠이 무서울 때마다.

항상 이렇게 울었지, 너는.

지금처럼 기사라는 가면을 쓰지 않고서.



에말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저번에···5년 전이네 벌써.”

“흑흑···”


시몬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가녀린 모습을 내보이면 안 된다.

에말의 앞이라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동기라도.

이곳 숙소에서 자신은 기사이니까.

언제나 엄격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시몬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시간 또한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왜···왜 이런 시험이 남은 걸까···오빠.”

“아아. 오랜만에 듣네, 그 말.”


십 년도 더 됐나?

정식으로 기사가 되고 난 다음.

아니,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한 다음이었지.

그 뒤로 시몬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한 모습만을 보였어.


지금 시스랑 케파가 그러는 것처럼.

더 옛날에는 얘가 나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주교는 사제였고, 다른 늙다리가 주교이던 시절.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외신과 복자를 구별 짓던 때.


모순적이게도 외신이 가장 뜸하던 시절.



에말은 억지로 웃었다.

균형을, 무거운 분위기를 맞추려고.

엄중하고 경직된 교회의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타개하고자 열렸던 공의회.

제2차 아젤리나 공의회의 뜻.

순수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신자와 사제, 기사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사제가 된 남자.

하늘나라를 위해 고자가 된 이.

그는 시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시몬. 울리려고 온 게 아닌데.”


에말이 주먹을 꽉 쥐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

손바닥을 파고드는 손톱.

핏방울이 주먹에 맺혀 뚝뚝 떨어진다.


“이십 년 넘게, 아무것도 못 바꿨어.”


“우리 다음 세대도 쓸모 없는 시험을 치뤘고.”


“그 다음 세대인 지금 아이들도 치룰 거야···오늘 아침부터.”


“케파, 유다, 카인, 아벨, 에녹, 마리···모두. 나중에는 시스까지.”


“일개 사제로서, 내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아무것도···”


능력과 노력.

가진 것이라고는 신성 하나.

장작이 될 운명이었던 재목.


재목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스스로를 태웠지만.

배경도 연줄도 없는 그의 능력과 노력은.

한줌의 재가 되어 바람을 타고서.

이름 모를 흙 한줌의 자양분이 되었을 뿐.


공의회가 열린 지 십 년도 더 지났지만.

외신이 날뛰자 그 뜻은 수포로 돌아갔다.

전쟁이나 다름없는 외신의 등장 빈도.


성기사가 몇 달씩 소속교구를 떠나 있을 정도의 고난.

전쟁 중 신자를 고려하고 배려하는 이는 없었다.

의심이 가면 삿된 것들과 엮고 추방이나 죽임을 당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제와 기사가,

시몬과 에말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기도를 올리고 가르치는 것 외엔···아무것도···”


주교의 명대로 가르침을 전하고.

똑같은 고통을 겪을 다음 아이들을 위해.

하늘을 보며 기도를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달이 진다.

빠르게.


***


남자 재목들과 기사들이 지내는 숙소.

케파를 비롯한 재목 모두 복도로 나와 있다.

한참 전에 준비를 마치고 나서.


“오늘은 다들 일찍 일어났네?”

“형아. 형 같으면 제대로 잤겠어? 나만 해도 제대로 못 잤는데.”


케파 옆에 꼭 달라붙은 막내 시스.

시스는 끝내 직접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런 관계가 끝날까 두려워서.


케파도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유품을 돌려주지 않은 대장.

미안함과 시기심.

두 가지 다른 감정이 가슴을 괴롭힌다.

그런 관계라도 유지하고픈 열 일곱 소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볍게 웃는 케파.

성기사로서, 대장으로서 강인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와 몸을 지배한다.


“하긴. 사실 나도 얼마 못 잤어. 유다, 너는?”

“응? 난···그럭저럭 잘 잤어.”

“담이 커졌네. 옛날에는 그렇게 겁쟁이었는데.”

“하. 누가 겁쟁이였다는 거야.”

“왜? 옛날에 칼날이 무섭다고 덜덜 떨었잖아.”

“5년도 더 지난 이야기 가지고 그러지 마.”


마지못해 인정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유다.

반은 연기였고, 반은 몸에 익은 응답.

5년간 적응된 케파와의 형식적인 친애.

이제는 몸이 먼저 자연스레 반응한다.


“애들아?”


조용히 있던 에녹이 입을 연다.

가장 과묵하던 이가 입을 열자 잠이 번쩍 뜨이는 다섯 재목들.


“무슨 일인데?”

“그래서 두번째 시험이 도대체 뭘까.”


에녹은 심각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시험.


-두번째 시험은 사흘 뒤 아침 일찍 시작한다.

-아침은 먹지 말고, 복도에서 기다리도록.


이 두마디가 전부였다.

에녹의 말에 아벨이 신음한다.


“내 생각에는 협력 같은데. 첫번째 시험은 순수하게 일대일이었잖아?”

“아니지. 몸을 썼으면 다음은 머리 아니겠냐?”


카인이 아벨의 말을 부정했다.

그 말에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두 사람.

에말의 수업에서 가장 뒤떨어지던 케파와 아벨이었다.


“크흠. 어쩌면 무제한 체력 시험일 수도 있어. 저번에도 했던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그거.”

“대장으로서 한마디 거들면 우린 역시 성기사가 될 재목이니 몸을 쓰는 일을 하겠지.”

“유다 네 생각은 어떠냐?”


둘의 말을 무시하고 카인이 물었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유다.

카인은 왠지 무시당하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는 제일 좋은 놈이 싱겁기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뭘 어떡해.”

“괜히 어려운 말 쓰지 마라.”

“기사도?”


누군가의 중얼거림.

시스가 유다와 비슷한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도랑 관련된 거 아닐까?”

“하나. 최선을 다해 신자를 보호하는 것.”


곧바로 입을 여는 유다.


“둘. 성기사를 보좌하여 외신들을 퇴치하는 것.”

“셋. 성직자와 발을 맞추어 교회를 위해 봉사할 것.”

“데우스 불트.”


나머지 세 명이 차례대로 말을 이었다.

기적심사원의 문구까지 더해서.

잠시간 침묵이 흐른다.

먼저 입을 연 이는 시스.


“첫번째 같은데? 외신 퇴치랑 성직자와 발을 맞추는 건 세번째 시험 아니야? 응? 형아.”


시스가 옷깃을 당기며 말한다.

고개를 젓는 케파.


“아직 확정된 건 없어. 모두, 적당히 긴장을 한 상태로 몸과 마음의 준비를···”

“케파.”


벌컥 열리는 숙소의 문.

케파보다도 큰 거한이 무거운 표정을 짓고서 나타났다.

수석성기사의 선임기사, 아비가일.


이미 준비가 끝난 재목을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다들 준비가 끝나 있었네.”

“네, 기사님. 다들 바싹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좋아, 좋은 자세야. 그럼 잘 따라오도록.”

“네!”

“아, 시스 너는 따라오지 말고.”

“히잉.”


열 네 살이나 먹었지만 막내라는 호칭 하나 때문에 나잇값을 하지 않는 아이.

꼬마가 낼 법한 소리를 내며 울기 일보 직전이다.


“오래 걸려요? 첫번째 시험처럼 몇 시간이면 끝나죠?”

“아니. 오래 걸릴 거다. 최소 사흘은 못 만나.”

“형아, 꼭 잘하고 와야 돼?”

“알았어. 알았으니까 떨어져.”


시스가 매달리자 걱정말라며 떼어 놓는다.


일제히 출발하는 재목들.

그런데 숙소 앞 작은 마당.

기사들이 모두 모여 응원을 하고 있다.


“힘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

“끝까지 버텨!”


힘찬 응원에 재목들의 눈이 확 뜨인다.

유다도 그 광경에 잠이 깼다.

고작 시험인데 이 정도 관심이라니.


재목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약식 경례로 응원에 환답했다.

박수를 치며 더욱 거세게 응원하는 그들.

창가에서 지켜보던 앨리스도 아리송했다.


‘멀리 나가면 못 따라갈 수도 있는데.’


지금 앨리스가 이동할 수 있는 범위는 교회 내부가 한계.

분위기상 왠지 원정을 나가는 것 같다.

고개를 젓는 외신.


‘하는 수 없지. 돌아온 뒤 유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


“저기, 기사님?”

“···”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안대를 쓴 여섯 아이들.

그들은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사를 따라가기만 했다.

일체의 말소리도, 숨소리도 내지 않는 아비가일.


사실 그는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해가 질 때까지 근처의 숲을 거닐다가.

다시 마차를 타고서 교회로 오기까지.


모두가 잠든 시간까지 쉬지도 않고 그러했다.


물론 재목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멀리, 조용하고 신비로운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뿐.

아주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시험을 치룬다고 상상을 한다.


그리고 세 시간마다 울리는 교회의 종이 울리기 몇 분 전.

미리 예배당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재목을 넘겨받았다.

마치 다른 곳의 사람인 것처럼 말하며.


“앞으로 보는 모든 것들은 비밀에 붙여야 한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니 긴장하도록.”

“네!”


그 기사는 케파에게 자신의 어깨를 붙잡게 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향했다.


대걸레, 빗자루, 회초리, 해져서 못 쓰는 책 등등.

훼손되어 읽지 못하는 책이 담긴 책장.

실제론 속이 텅 빈 책장을 가볍게 밀자 계단이 나타났다.


“앞에 내려가는 계단이 있으니 잘 잡고 따라와.”

“네, 네?”


엉성한 대답에도 기사는 재목을 끌고 내려간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아래로, 아래로.

맨 뒤에 선 유다가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을 때까지.


“여기 어디야?”

“말이 울리는데···”

“이쪽으로.”


어두컴컴한 비밀스러운 지하실.

벽에 달린 횃불 몇 개가 일렁인다.

함께 휘청거리는 커다란 그림자.


와인저장고와는 또 다른 곳.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자들.


다름아닌 아침에 응원을 하던 기사들이었다.

복면을 쓰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있던 재목들을 하나씩 데려가기 시작한다.


“뭐야!”

“누구야? 여기 어딘데!”

“기사님! 이게 뭡니까!”

“무슨···!”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


“으으···”


유다는 신음을 하며 양팔을 붙들린 채 어딘가로 끌려갔다.

갑자기 멈춰 서는 양옆의 사람들.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육중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코앞에서.


‘뭐야?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건데?’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강제로 들어가는 유다.

다시 육중한 무언가가 요란한 소리를 낸다.


철컥.


‘문? 자물쇠?’


여기가 방안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챈다.

곧 벽으로 몰리는 유다.


“어? 뭐하는 거에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버둥을 친다.

자기 뒤에 느껴지는 딱딱한 물체.

그 모양은 분명 십자가였다.

박달나무로 만든, 천자가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한 번 죽었을 때의 십자가.

능지형을 받았을 때의 그 십자가.


“웰링턴 교구 중앙교회의 성기사 후보. 유다 드 발도르!”


방안을 가득 메우는 목소리.

몇 번 들어본 듯한 울림.


“지금부터 두번째 시험을 시작하겠노라!”

“네?”

“두번째 시험의 정식 명칭은 ‘라보르(Labor)!’ 아젤어로 천자님의 고난을 뜻한다!”

“자, 잠깐! 잠깐!”


유다가 몸을 바둥거린다.

신성까지 쓰면서.

그러나 뒤에 있는 십자가가 덜컹거릴 뿐,

베테랑 기사들에게 꼼짝도 하지 못한다.


“이 고난으로 하여금 그대의 인내심과 정신력!”


다가오는 소리.

쩔그럭, 쩔그럭.

쇳소리를 울려대며 누군가 다가오는 울림!


“가장 중요한 신앙심까지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외신과의 싸움에 대비하는 유용한 선행학습이 될 터이니.”


“비록 그것의 편린에 불과하지만 잘 버티도록!”


복면을 쓴 기사는 성호를 긋는다.

따라서 성호를 긋는 다른 이들.


“데우스 불트!”

“데우스 불트!”


귀에 울리는 기적심사원의 문구.

유다는 벌벌 떨기 시작헀다.


“잠, 잠깐···! 살려···”


콰직!


금속과 살덩이가 부딪혔다.


작가의말

마그나:흠, 우리 천교에서 과거에 이런 짓을 자행했다니. 아주 부끄럽구만.

이백일:네? 주교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의외네요.

마그나: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생각해보게, 자네는 새끼발가락을 선반 모서리에 찧이기만 해도 온갖 난리를 피우는 겁쟁이가 아닌가? 대못에 박히면 비명을 지르겠지.

이백일:21세기 현대에서 그런 고문이 벌어질 리가 없...을려나요.

마그나:글쎄. 자네 입의 침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는 아메리카 합중국이란 이름의 제국에서도 그런 기록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백일:(한숨을 쉰다) 하기야, 폭력없는 권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권력의 본질이 바로 그건데.

마그나:무슨 소리인가?
이백일:남이 싫은 걸 물리적인 힘으로 억지로 시키는 게 곧 힘이죠. 주교님이 반강제로 저를 201번쨰 엮은이로 만들...읍읍!


(검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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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논 불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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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정화 +1 20.11.02 72 4 17쪽
46 너는 케파일지니 (6) 20.10.31 49 4 21쪽
45 너는 케파일지니 (5) +2 20.10.30 48 4 24쪽
44 너는 케파일지니 (4) +2 20.10.27 46 4 16쪽
43 너는 케파일지니 (3) +4 20.10.26 50 4 19쪽
42 너는 케파일지니 (2) +4 20.10.24 57 6 20쪽
41 너는 케파일지니 +2 20.10.23 59 4 16쪽
40 샛별 (4) +2 20.10.22 59 5 22쪽
39 샛별 (3) +2 20.10.21 62 5 16쪽
38 샛별 (2) +6 20.10.20 63 7 15쪽
37 샛별 +2 20.10.19 62 5 16쪽
36 땅의 짐승 (2) 20.10.17 68 5 19쪽
35 땅의 짐승 +2 20.10.16 67 5 17쪽
34 첫번째 뒷이야기 (4) 20.10.15 67 3 11쪽
33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4 70 3 18쪽
32 첫번째 뒷이야기 (2) 20.10.13 69 5 15쪽
31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0 79 3 12쪽
30 Deus Non Vult (5) +4 20.10.09 94 7 35쪽
29 Deus Non Vult (4) +1 20.10.08 97 3 17쪽
28 Deus Non Vult (3) +4 20.10.07 85 4 21쪽
27 Deus Non Vult (2) +1 20.10.06 88 5 18쪽
26 Deus Non Vult +3 20.10.05 148 4 20쪽
25 Deus Vult (4) +1 20.10.03 94 3 20쪽
24 Deus Vult (3) +1 20.10.02 108 5 19쪽
23 Deus Vult (2) +4 20.10.01 92 7 18쪽
22 Deus Vult 20.09.30 150 7 18쪽
21 괴물 (7) +1 20.09.29 157 6 19쪽
» 괴물 (6) +3 20.09.28 110 7 22쪽
19 괴물 (5) +2 20.09.26 104 9 17쪽
18 괴물 (4) +2 20.09.25 158 9 24쪽
17 괴물 (3) +4 20.09.24 137 11 20쪽
16 괴물 (2) +4 20.09.23 123 7 16쪽
15 괴물 +6 20.09.22 154 8 15쪽
14 길들임 (4) +1 20.09.21 119 9 14쪽
13 길들임 (3) +4 20.09.19 163 7 14쪽
12 길들임 (2) +3 20.09.18 124 9 16쪽
11 길들임 +1 20.09.17 140 8 14쪽
10 거울 (4) +2 20.09.16 126 8 18쪽
9 거울 (3) +1 20.09.15 139 8 13쪽
8 거울 (2) +2 20.09.14 132 10 14쪽
7 거울 +5 20.09.12 193 10 14쪽
6 재목 (4) +1 20.09.11 151 9 14쪽
5 재목 (3) +2 20.09.10 165 8 15쪽
4 재목 (2) +1 20.09.09 207 8 14쪽
3 재목 +2 20.09.08 234 10 14쪽
2 광대 (2) +3 20.09.07 309 15 13쪽
1 광대(도입부 수정) +9 20.09.06 535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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