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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일 님의 서재입니다.

데우스 논 불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백일
작품등록일 :
2020.09.05 23:48
최근연재일 :
2020.11.02 08:10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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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3
추천수 :
311
글자수 :
370,832

작성
20.09.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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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괴물 (4)

DUMMY

세 사람.

유다와 에녹과 마리.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성인식.

축제 같던 성인식이 끝난 그날 밤.


유다는 홀로 자기 방에 앉아 있다.


둥근 보라색 눈동자와 오똑한 코.

얇은 입술과 가는 턱선.

털 한 가닥 보이지 않는 얼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백발까지.


유다는 거울을 보며 한껏 길어진 머리를 정리 중이다.

자신의 아름다운, 정확히는 건강할 적의 엄마를 닮은.

거울 속 엄마를 보았지만 웃지는 않았다.

결의와 긴장으로 가득 차 딱딱하게 굳은 얼굴.


‘드디어 내일이로구나.’

“그러게. 벌써 5년이 지났어.”


자연스레 거울 속에 나타난 앨리스.

유다와 마찬가지로 기다란 머리를 찰랑거린다.

머리끈으로 말총머리를 한 채.


“내일이면 드디어 통쾌한 복수를···”

‘이루는 건 아니지. 시험은 총 세 번이고,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알고 있어. 그냥 선언 겸 결심 같은 거야.”

‘이제는 잘도 그런 어려운 단어를 쓰는구나.’


어려운 말을 쓰는 유다를 보며 대견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앨리스.

유다는 그런 앨리스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언제 멍청했다고.”

‘케파가 개 짓거리를 할 때는 멍청해지던데.’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일 년이나 지났는데.”

‘흠.’


벌써 1년.

케파가 유다를 흰둥이 취급하는 일.

정확히는 개를 패듯 화풀이를 하던 나날.

그런 짓이 어느 날 갑자기 끊어진지 1년이 되었다.


‘그래, 그렇게 오래 되었지. 그런데도 아직 복수심에 불타는 거냐?’

”그럼 내가 고리타분한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고뇌라도 할 것 같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네.’

“당연하지. 4년 가까이 장난감 노릇을 했어. 거기에 나머지 1년. 1년 동안 유품을 못 돌려받았다고!”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할 때는 비교적 침착하게 말하다가.

유품 이야기가 나오자 매섭게 소리치는 유다.

앨리스는 진정하라는 듯 손짓했다.


‘시스가 옆방인데 듣겠다.’

“앨리스, 난 너를 믿어. 정말로 못 찾은 거 맞지? 막 친우니 어쩌니 하면서 못 찾은 척하는 건 아니지?”

‘몇 번이고 말하지만 적어도 유리나 거울이 있는 곳에서는 못 봤다. 그리고 그 자식이 얼마나 독한지···’


앨리스는 말끝을 흐렸다.

무려 4년.

비록 나머지 1년은 괴롭히지 않았지만.

외신인 앨리스조차 학을 땔 정도의 괴롭힘과 폭력.

케파의 참회는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


“맞아. 반드시, 반드시 성기사가 돼서 코를 납작하게 누른 다음에 유품을 되찾을 거야. 상관으로서 명령을 내려서.”


주먹을 꼭 쥐는 유다.

이 년 전과는 조금 달랐다.


두꺼워진 손목과 조금이나마 붙은 근육.

케파처럼 끈질기게 노력하여 얻은 결과다.

유독 왜소한 체구와 체질을 타고난 소년.

아직도 덩치나 어깨는 마리와 비등했다.


한편 4년 가까이 꿈속에서 수련을 도운 앨리스.

앨리스는 소년의 성장에 흐뭇하게 웃었다.

마력과 꿈의 근원은 유다의 것이지만.

허상이나 다름없는 꿈을 조작한 것은 자신.

스승이 제자를 하나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일찍 자야지. 꿈속에서의 수련도 쉬고···’

“아니. 절대로 안 쉬어. 더 강하게 할 거야. 감각을 잃으면 안 돼. 게을러지면 안 된다고.”

‘유다, 휴식도 훈련의 일종이라는 말을 시몬에게서 배웠을 텐데?’

“어차피 꿈속이야. 이젠 나도 엄청난 봉술가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봉술가라 칭하는 유다.

유다의 말마따나 꿈속에서 수백, 수천, 수만.

케파를 비롯한 동료들과 기사들, 시몬까지.

온갖 사람들을 꿈속에서 상대하며 감각과 기술을 쌓아 올렸다.


잠을 자면서도 수련을 할 수 있다는 유리한 조건.

그 유리함을 유다는 십분 활용했다.

이렇게 긴장되는 시험 전날까지.


앨리스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 대신 절반만, 절반만 해라.’

“알았어. 꿈속에서 봐.”

‘그러지.’


등불의 불을 끄고 금방 꿈나라로 떠난다.


이내 꿈속에서 눈을 뜬 유다.

바로 벌떡 일어나 몸을 풀었다.

뼈마디 사이사이 으드득 소리를 내면서.

앨리스는 그런 유다를 보며 흙을 만지작거렸다.


‘성기사가 되기 이전의 마지막 수련···누구를 상대로 하고 싶나?’

‘당연히 케파랑 시몬 스승님이지! 일단 케파부터.’

‘알았다.’


오른손을 휘저어 케파를 만들어내는 앨리스.

왼손은 손가락을 까닥이며 온갖 무기를 만들어냈다.

유다가 주로 쓰는 무기는 봉이었지만.


혹시 몰라 봉과 비슷한 크기의 날붙이들.

다양한 형태의 날이 달린 폴암도 연습했다.

봉술만큼의 기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리고 수많은 날붙이 중 당연하다는 듯.

처음에는 그 무거운 철봉을 척하고 집어서.

가볍게 휘두르다가 봉끝을 케파에게 겨눈다.


‘흡!’


유다의 선공으로 시작된 꿈속의 대련.

나무봉보다 몇 배는 무거운 철봉을.

5년간의 수련 끝에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신성과 굵어진 힘줄, 몸이 기억하는 것까지 합세하여.


유다가 묵직한 철봉을 휘두르자.

압도적인 무게에 한 합 만에 박살이 난 칼날.

다음 순간, 흙으로 빚어낸 케파의 머리통도 박살났다.


‘계속해줘!’

‘그래.’


그렇게 계속해서 덤벼드는 케파.

다른 무기도 마구잡이로 사용하였다.


칼날을 단 봉, 창과 비슷한 폴암, 도끼날을 단 폴암.

시험을 위해 나무로만 된 봉까지.


초조함과 불안함.

두 가지 감정이 소년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검술은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봉술 하나만큼은 케파조차 웃돈다.

첫 번째 시험은 대인전이니 무기도 자유.


하지만 나머지, 두 번째와 세 번째 시험.

불명인 시험 하나와 외신사냥을 돕는 일.

그 일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앨리스가 주교와 보좌사제들을 아무리 감시해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던 두 번째 시험의 내용.

무지로부터 오는 불안함이 제일 컸다.


그리고 소년은 그 불안을 훈련으로 달랬다.

케파와 5년 가까이 지내며 닮아버린 점.

끊임없는 훈련으로 잡념을 떨쳐내는 것.


‘닮아도 너무 닮았는데.’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는 앨리스.

거울 같은 두 아이를 보고 흥미를 가졌으나.

일이 이렇게 틀어지니 불안해지는 외신이었다.


친우이자 동료.

가해자와 피해자.

끈질김과 끈질김.

강건함과 왜소함.


아직 대비되는 것은 많지만.

오래 붙어 있으니 알게 모르게 비슷해졌다.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한 채.


앨리스는 다소 찝찝한 기분으로 꿈속의 케파를 계속 일으켰다.


***


훌쩍 자란 여섯의 재목.

케파, 유다, 카인, 아벨, 에녹, 마리.

일곱 명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무장했다.


전신이 판금으로 이루어진 값비싼 갑옷.

온몸에 무게가 분산되는 훌륭한 설계.

시야가 제한되는 것만 제외하면 최상의 방어구.


갑옷과 진검을 쓰는 실전과도 같은 대련.

그 대련을 목전에 둔 채.

각자의 무기를 들고 뻣뻣하게.

시몬과 기사, 주교와 사제까지.

교회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재목들.


“지금부터.”


주교 사스포가 손을 들며 나지막이 말한다.


“웰링턴 교구의 주교, 사스포. 천부님의 뜻에 따라,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성기사.”


“개중에서도 웰링턴 교구 제3성기사직의 공석을 채우기 위한 세 가지 시험 중 첫번째.”


“상투스(santus)의 시작을 엄숙히 선서하노라.”


“데우스 불트!”

“데우스 불트!”


마지막으로 기적심사원의 문구를 아젤어로 늙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스포.

교회의 모든 이가 주교의 말을 따라 외친다.

그 우렁찬 외침에 화답하는 희미한 환호성과 박수 소리.

출입이 금지된 교회 앞에 모인 시민들의 소리였다.


“시몬, 설명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주교 각하.”


시몬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척척 앞으로 나아갔다.

두세 걸음이면 재목들과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강한 기세로 콧김을 내뿜고 입을 연다.


“첫번째 시험은 아주 간단하다. 지난 5년간 너희들이 배운 성취. 그 성취를 보여주면 되는 거야.”


침을 튀겨가며 말을 이어가는 시몬.

어느 때보다도 목소리와 기세가 굵고 드셌다.


“우선 너희들끼리 돌아가며 대련을 한 다음! 나와 여기 계시는 수석, 차석 성기사 두 분. 에텔 님과 프레디 님까지!”


“총 세 명과 대련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대련은 우리가 평가하니 유의하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버럭버럭 화가 난 사람처럼.

목청껏 대답을 하는 재목들.

시몬은 그들의 모습을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자신 뒤에 있는 교회 사람들 몰래.

지금껏 지었던 어떤 표정보다도.

가장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최선을 다 해라. 알겠나!”

“···네!”


부드러운 미소와 부조화를 이루는 거칠고 낮은 목소리.

그러나 재목들은 희미하게 웃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곧 원래의 엄한 표정을 짓고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몬.

눈치 빠른 몇몇만이 왜 재목들이 웃었는지 짐작할 뿐이다.

영적 형제, 사제 에말을 포함하여.


***


손과 발은 각각 1점.

팔꿈치와 다리, 허벅지와 어깨는 2점.

머리와 목, 가슴과 허리, 고간까지 3점.


잃어도 전투를 계속할 수 있는 부위.

사지를 절반 이상 잃는 공격.

마지막으로 죽음에 이르는 공격까지.

가기 다른 점수를 부여해 총 15점.

한쪽이 15점에 이르면 대련은 끝이 났다.


카인과 대련하는 유다.

유다는 금속테를 두른 봉을,

카인은 케파를 따라 기다란 양손검을 들었다.


카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보통 칼보다 긴.

간격 차이에서 유리한 장병기를 들었다.

대인전은 칼날의 베기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으며,

긴 무기가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람을.

특히 무당을 제압할 수 있으니까.


“흡!”


카인의 목을 노리는 찌르기.

유다는 봉으로 궤도를 틀며 간신히 막았다.

이어지는 유다의 찌름.

카인은 막지 못하고 목을 내주었다.


“목, 9대10.”


기계처럼 말하는 차석 성기사 프레디.

시몬과 성기사 둘이 심판을 보고 있었다.

목 부위를 쓰다듬으며 물러서는 카인.


‘젠장. 역전당했네.’


카인은 초조해졌다.

지금까지 전적은 1승 1패.

유다는 2승이었다.

자신이 진다면 1승 2패와 3승.

더욱 벌어지는 차이.


무엇보다도.


‘케파 저 괴물 같은 놈.’


케파는 세번째 대련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3연승.

압도적인 실력과 힘으로 내리 승리를 취한 케파.

그럼에도 전혀 자만하지 않고 있다.


“시작.”


열정적인 수석 성기사와 달리.

차분한 어조로 시작을 외치는 프레디.

카인과 유다의 사이의 거리가 좁아진다.

이제 서로 무기가 닿을까 말려 하는 거리.


유다가 먼저 봉을 휘두른다.

살짝 늦게, 움찔거리며 반격을 하는 카인.

찰나 같던 시간이 지나고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테와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

카인이 급하게 휘두른 공격은 닿지 않았다.


“어깨, 9대12.”


판정을 듣고 물러서는 둘.

물러서고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하면 3승이야, 3승.’

‘이 녀석이 날 꺾는 꼴은 못 보겠다.’

“시작.”

“으랴!”

“!”


카인이 기합을 내지르며 무기를 내던졌다.

유다는 몹시 당황하여 눈을 깜빡였고.

그 새 날아온 카인이 부닥치자 덩치 차이 때문에 넘어졌다.


갑옷에 튕겨 나간 양손검.

아슬아슬하게 잡아챈다.

그대로 목을 긋는 시늉.


“···목. 12대12.”

“후우.”


잠시 망설이던 성기사 프레디.

위험하고, 단 한 번만 쓸 수 있고 뒤도 없는 기술이지만.

어느 정도 실전성은 있었고, 어려운 기술을 성공시켰기에.

점수를 인정했다.


그의 판정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물러서는 카인.

유다는 분한 듯 바닥의 흙을 꾹 쥐다가 일어섰다.


‘방심했다.’


자신이 방심했다는 분함.

저런 기술에 당했다는 짜증.

거기에 점수는 12대12로 원점.


‘이대로는 안 돼. 점수로만 보면 난 네 번이나 죽은 거라고.’


정신차리자.


그렇게 다짐하고 카인과 마주선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점수.


“시작.”


중요한 순간임에도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프레디는 자기 일 아니라는 듯 시작 신호만 보냈다.

시작 신호가 두 사람의 귀에 울리는 순간.

유다는 봉을 마구 휘둘렀다.

기교를 과시하는 행동.


“?”


뜬금없는 상황,

의아해하는 카인.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다가선다.


촥.


“뭔!”


서로의 무기가 닿을 정도.

그렇게 거리가 좁혀졌을 때.

유다의 오른손.

오른손을 펼치자 나온 것은 흙.

흙과 모래알이었다.


요란한 소리.

철과 흙이 부딪히는 소리.

동시에 유다는,

봉을 휘둘렀다.

카인의 정수리를 노려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힌 봉과 투구.

카인은 방금 전의 유다와 마찬가지로 당황하여.

무기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머리를 내주었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심판, 프레디.

그는 꽤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켰다.

지켜보던 기사와 사제들까지 긴장시키는 침묵.

주교 사스포도 황당한 일격에 이목이 끌렸다.


‘흠. 무당도 눈과 마음이 있으니 저런 게 통하기는 할 텐데.’


과연 어떤 판정을 내릴지.

프레디의 몫이다.


“···머리. 12대15. 유다 승.”

“감사합니다.”

“젠장!”


성기사 프레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유다의 편을 들어주었다.


***


케파는 4연승을 달성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한 번만 더, 그 아이만 이기면 전승.

전승을 하고 당당하게 스승님과, 성기사들과 맞설 수 있다.

그토록 고대하던 성기사와의 대련.


케파가 쥔 칼끝이 조금씩 흔들거린다.

긴장과 고양감으로 가득 찬 가슴 때문에.


“손목! 15대8, 유다 승!”

“후우.”


일찍이 마리와의 대련을 마친 케파.

그는 유다와 아벨의 대련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결과는 두 배 가까운 점수차로 유다의 압승.

아벨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섰다.


아벨이 투구를 벗으며 재목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제 마지막 대련, 유다와 케파의 대련이 남은 상황.

아벨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 말 맞잖아. 유다 강해졌다고.”

“닥쳐, 아벨. 저 자식이 비겁한 수를 쓴 거야.”

“참나. 유다가 먼저 시작해서 그런 술수는 우리들도 가끔씩 사용하게 됐잖아. 한참 전에.”

“···”


아벨과 카인 사이에 끼어드는 마리.

세 사람이 뭐라고 떠드는 동안 에녹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자신을 포함한 네 사람을 모두 꺾은 거목들.

케파와 유다라는 이름을 지닌 거목의 5연승 도전을.


“혹시나 했는데 역시 저 두 사람이네.”


에말은 사제들의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와 에녹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에녹.

에녹은 늘 그랬듯 침묵을 유지했다.

초기의 유다보다도 말이 없믐 아이.


“뭐, 그래. 너처럼 조용히 있는 게 나을 때가 많아. 딸딸이 치고 나서 고해성사할 때 빼고.”


에말이 그렇게 말하자 에녹은 얼굴을 붉혔다.

키득대며 어깨에 팔을 걸치는 사제.


“우리도 너 때 그랬으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말아라. 여기 있는 놈들 다 자발이든 강제이든 고자이니까.”


하늘나라와 신자를 위해 고자가 된 이들.

결혼과 연애, 성행위를 금기하는 그들.

그것을 고자로 비유하자 에녹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넌 쟤들 중에 누가 이길 것 같냐? 난 유다.”

“케파요.”

“에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고.”

“선생님! 아무리 유다라도 대장은 못 이기죠.”


마리가 이번에는 이쪽에 끼어들었다.

마리의 일 때문에 얼굴을 붉혔던 에녹은 눈길을 피한다.

또 그런 광경을 보며 웃음을 참는 사제.

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준비 다 된 것 같은데 보기나 하자.”


에말의 말대로 잠시간의 숨 고르기를 마친 유다.

유다는 면갑을 내리고 손을 들어올렸다.

유다의 신호에 면갑을 쓰는 케파.

두 사람은 각각 양손검과 봉을 들고 마주섰다.


심판을 맡게 된 이는 수석성기사, 에텔.

모든 일에 열성적이고 타의 모범이 되는 이.


“시작!”


차석과는 다른 힘찬 목소리.

케파와 유다는 기합도 내지 않고 그저 거리를 좁혔다.

침묵으로 가득 찬 훈련장.

걸음걸이의 울림.

그것만이 광활한 대기를 채운다.


‘싸움은 선제필승!’

‘선빵필승이라 했지.’


같은 생각, 같은 행동, 같은 부위.

둘은 동시에 옆머리를 노린다.

공격과 공격, 강 대 강.

봉과 검이 쇳소리를 내며.

머리 위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곧바로 이어지는 연계.

봉이 칼을 타고 휘둘러진다.

아래로, 하체를 노려서.

유다의 공격.


반면 케파는 레슬링을 시도한다.

한손으로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훅 당겨버리는 기술.


“!”


압도적인 체격 차이.

가장 큰 재목과 가장 작은 재목.

다른 아이들을 상대로는 높은 신성력에서 나온 힘으로 비등하게 버틴 유다였으나.

봉술 하나를 빼면 뒤쳐지는 케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금속이 자석에 이끌리듯,

케파 폼으로 들어간 유다.

공격이 빗나갔다.

이어지는 안다리걸기.


유다는 중심을 잃는다.

목을 울리는 경쾌한 소리.

무기와 방어구가 부딪히는 소리.


“목! 3대0!”


판정이 끝나자 케파가 손을 내밀고 유다가 자연스레 그 손을 붙잡았다.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고 재개되는 대련.


“머리! 3대3!”


“손목! 4대3!”


“다리! 6대3!”


“팔뚝! 6대5!”


점수를 주고받는 대련.

보는 사람들이 시민이었다면 도박판을 벌이고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교회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생각보다 유다가 선방하는군요.”

“그러게요. 듣기론 케파가 압도적이라고 했는데.”

“그···검기나 장풍이 금지되었으니까요.”

“글로리아(Gloria)겠죠.”


자연스럽게 신체로 신성을 다루는 것 외에.

신성을 외부로 방출하고 응용하는 기술.

보통 사람들 사이에선 장난스레 검기나 장풍, 아우라.

정식으로는 축복, 신성이란 표현과 잘 어울리는.

신의 영광, 글로리아라고 불렸다.


‘음.’


가장 신성력이 짙은 케파.

도리어 그 점이 약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글로리아를 사용하기 위해 기초부터 쌓아 올렸으나.

정작 대련에서는 금지되는 기술.


‘이러다가 질 수도 있겠어.’


깡.


금속성의 소리.

금속테를 두른 봉과 칼날의 울림.

서로가 옆머리를 노린다.


계속해서.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빈틈을 보일 때까지.


“흡!”


이번에는 유다가 발을 걸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케파.

그러나 가만히 있지 않고 유다의 팔을 쑥 끌어당겼다.


“!”


같이 뒤엉켜 넘어지고.

무기까지 놓친 둘.

점수는 8대6, 유다가 밀리는 상황.


“중···”


양측이 무기를 놓친 상황.

에텔이 중지를 외치려던 그때.

둘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포개진 채 몸부림친다.

무기를 쥐려고.

방해를 하려고.


두 젊은이의 기세.

왕성한 핏덩어리.

에텔은 입을 다문다.

대신 두근거리는 심장.


“끄악!”


힘과 체격에서 밀리는 유다.

봉을 잡으려던 한쪽 팔.

왼팔이 꺾이기 직전.

케파가 겨드랑이에 낀 채 힘을 주는 탓이다.


한쪽 손이 빈 케파.

왼손으로 가까이 있던 봉을 집고서.

가볍게 머리를 톡 친다.


“머리! 11대6!”

“역시 대장이네.”

“덩치 차이가 심해.”

“저런 몸으로는 힘들지.”

“계집애 같은 놈이 뭘 어쩌겠어.”


각자 한마디씩 거드는 와중.

유다는 다시 일어나 케파를 마주할 뿐이었다.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은발의 아이는 전의를 불태우며 낮은 자세로 거리를 좁혔다.

그 자세에 찌르기나 하체 공격을 예상하는 케파.

케파는 칼을 아래로 내려 반격을 준비했다.

유다가 흙을 뿌린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서.


촥,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지는 흙과 모래.

유다가 봉을 땅에 밀어 넣고 올려 치기를 한 것이다.

깜짝 놀라며 방어와 함께 뒤로 물러서는 케파.

그 틈을 타 유다는 케파의 면갑을 찍었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생생하게 전해지는 진동.


“머리! 11대9!”


유다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유다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는 케파.

아니, 어느새 노려보고 있었다.


싸움 중에 흙을 뿌리는 치졸함.

이기고자 하는 마음에 나온 발악.

케파의 천성은 변치 않는다.

꼼수와 편법을 혐오하는 그 마음.

진실되고 정당한 것을 사랑하는 자세.


‘너는 변하지를 않는구나.’

“손목! 12대9!”


먼 거리, 손목을 노린 공격.

방어를 시도하나 실패한 유다.

그대로 1점을 내주었다.


앞으로 급소 한 번.

급소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잔뜩 긴장한 유다.

조심스레 거리를 좁힌다.

무기가 닿을 간격.

그 간격까지 거리를 좁힌 순간.


“어?!”

“응?!”


놀라움과 호기심이 여린 목소리.

깜짝 놀란 듯 휘둥그레 뜨이는 면갑 사이의 눈.

뒤에 괴물이라도 있는 듯한 표정.

유다의 감쪽같은 연기.


케파는 거기에 넘어가 뒤돌았다.

그 사이 톡, 목을 찌른 유다.


“목! 12대12!”

“···”


목을 매만지며 매서운 눈으로 유다를 바라보는 케파.

괴롭힘에 대한 미안함이 일순 사라진다.

눈을 마주한 유다의 어깨가 잠시 떨렸다.

한편, 유다의 속임수에 빵 터진 교회 사람들.

케파의 정직함과 아둔함을 비웃는 것만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치사한 새끼.’


칼을 높게, 머리 위로 드는 케파.

공격에 치중된 자세였다.

정석대로, 공세로서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알림.

반면 유다는 천천히, 방어 자세를 굳히고 접근한다.


“흐읍!”


크게 휘두른다.

정수리를 노린 공격.

유다는 그걸 막고서,

옆머리를 노렸다.


-공세는 공세로 받아친다.

-절대 주도권을 잃으면 안 돼.

-공세를 잃는 그 순간이.

-바로 하늘나라로 가는 때야.


케파의 머릿속,

스승의 말을 떠올린다.

공세에는 공세로.


공격일변도의 자신을 위한 검술.

공방일체의 북부식 검리.


그 말대로 받아친다.

손목을 틀어 노린다.

유다의 옆머리를.


같은 부위를 노리자,

다시 허공에 머무르는 무기.

케파는 무기를 거두고.

자세를 확 낮추었다.

복부를 향한 찌르기.


“!”


찰나, 영겁과도 같은 그 순간.

몇 배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

아니, 그렇게 느껴지는 유다.


지금까지 열심히 휘두른 봉.

4년 가까이 꿈속에서 갈고 닦은 봉술.


케파의 낮은 자세.

꿈속에서 수백, 수천 번을 본 자세.

수만 번이고 당한 공격.


-켁!

-또 밀린 건가.

-그럼 어떡해? 앞으로 휘둘러도, 반대로 휘둘러도 그 전에 내가 찔리면서 밀려. 원래 대련에서는 공세를 한 번 잃으면···

-간단한 해답을 내주지. 피해라.

-네가 한 번 피해 보던가.


머릿속을 스치는 대화.

꿈속과 현실의 간극.

4년간 허용한 공격.


‘이번에는 안 돼!’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콧대를 꺾는다!


유다의 끈질김.

유다의 집념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다.


몸을 옆으로 트는 유다.


“?!”


유연한 몸짓.

꿈속에서는 해내지 못한 회피.

허리와 하체의 힘으로 해내고야 만다.


케파의 공격이 빗나간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


깡!


나무와 금속판이 부딪히는 소리.

뒤통수에 느껴지는 울림과 진동.


“머리! 12대15. 유다 승!”


유다의 승리였다.


작가의말


 마그나 주교:두 편 분량을 단번에 올리다니, 자네 피곤하지는 않은가?

 엮은이 이백일:당연히 피곤하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무리를 안 할 수 있습니까.
 마그나:이런 상황이라니, 어떤 상황 말인가.
 이백일:주교님의 번역물이자 저의 편집물을 보시려고 온라인 입교를 택하신 분들. 그러니까, 글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사상 최대라고요!
 마그나:자네가 왜 다섯 번이나 연재를 중단했는지 알겠근.
 이백일:네?
 마그나:글이 얼마나 쓰레기 같았으면 37명이 최대였는지...쯧쯧.
 이백일:(분한 듯 주먹을 쥐지만 휘두르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8 리배리즈
    작성일
    20.09.25 08:22
    No. 1

    뭐가 좀 길다 했더니 2편 분량이었네요.

    얼마나 독한 지 -> 얼마나 독한지 로 알고 있습니다. 띄어쓰는 지는 이 소설을 처음 보고나서 며칠이나 됐는 지가 궁금해. 이런 식으로 날짜의 흐름?을 나타낼 때 쓰는 걸로 알아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이백일
    작성일
    20.09.25 14:41
    No. 2

    맞춤법 지적 감사드립니다, 형제님.
    시정 완료했습니다!
    -엮은이 이백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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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너는 케파일지니 (5) +2 20.10.30 48 4 24쪽
44 너는 케파일지니 (4) +2 20.10.27 47 4 16쪽
43 너는 케파일지니 (3) +4 20.10.26 50 4 19쪽
42 너는 케파일지니 (2) +4 20.10.24 57 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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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샛별 (4) +2 20.10.22 60 5 22쪽
39 샛별 (3) +2 20.10.21 63 5 16쪽
38 샛별 (2) +6 20.10.20 65 7 15쪽
37 샛별 +2 20.10.19 62 5 16쪽
36 땅의 짐승 (2) 20.10.17 68 5 19쪽
35 땅의 짐승 +2 20.10.16 67 5 17쪽
34 첫번째 뒷이야기 (4) 20.10.15 67 3 11쪽
33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4 71 3 18쪽
32 첫번째 뒷이야기 (2) 20.10.13 71 5 15쪽
31 첫번째 뒷이야기 +3 20.10.10 79 3 12쪽
30 Deus Non Vult (5) +4 20.10.09 94 7 35쪽
29 Deus Non Vult (4) +1 20.10.08 97 3 17쪽
28 Deus Non Vult (3) +4 20.10.07 88 4 21쪽
27 Deus Non Vult (2) +1 20.10.06 89 5 18쪽
26 Deus Non Vult +3 20.10.05 148 4 20쪽
25 Deus Vult (4) +1 20.10.03 94 3 20쪽
24 Deus Vult (3) +1 20.10.02 110 5 19쪽
23 Deus Vult (2) +4 20.10.01 92 7 18쪽
22 Deus Vult 20.09.30 151 7 18쪽
21 괴물 (7) +1 20.09.29 158 6 19쪽
20 괴물 (6) +3 20.09.28 113 7 22쪽
19 괴물 (5) +2 20.09.26 104 9 17쪽
» 괴물 (4) +2 20.09.25 160 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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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괴물 (2) +4 20.09.23 123 7 16쪽
15 괴물 +6 20.09.22 154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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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재목 (3) +2 20.09.10 165 8 15쪽
4 재목 (2) +1 20.09.09 209 8 14쪽
3 재목 +2 20.09.08 236 10 14쪽
2 광대 (2) +3 20.09.07 314 15 13쪽
1 광대(도입부 수정) +9 20.09.06 536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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