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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5.11.06 14:34
최근연재일 :
2016.12.27 02:36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573
추천수 :
25
글자수 :
20,143

작성
16.12.27 02:36
조회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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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2. 이태백 (2)

DUMMY

얼굴에 스타킹을 쓴 두 동남아인은 편의점으로 들어서자마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계산대로 돌입했다.

그들은 곧바로 신문지로 감싼 회칼을 꺼내들고 가방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배불뚝이 사장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며 바닥에 넙죽 주저앉았고 연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방에, 돈, 넣어.”

둘 중 빨간 셔츠를 입은 남자가 연주의 가느다란 목에 칼날을 들이대며 어눌한 말투로 명령을 내렸다.

그사이에 곱슬머리를 한 다른 남자가 계산대로 돌아가 몸을 숨긴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장의 뒷덜미를 잡고 밖으로 끌어내 무릎을 꿇렸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목에 칼날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이전에도 여러 번 강도행각을 벌인 게 틀림없다. 동남아인들은 경동맥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빨리, 빨리.”

연주가 겁에 질려 그저 떨기만 할뿐 아무것도 하지 않자, 빨간 셔츠가 칼을 쥐지 않은 손으로 계산대를 톡톡 두드리며 채근했다.

그때서야 연주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 금전등록기를 열어 떨리는 손으로 현찰은 물론이고 동전까지 가방에 죄다 담았다.

생각보다 돈이 얼마 없었다.

빨간 셔츠가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사장을 흘끗 쳐다봤다.

“이게, 다야? 돈, 더, 없어?”

사장이 대꾸를 하지 않자, 곱슬머리가 칼날의 옆면으로 뺨을 몇 차례 두드렸다. 그러자 사장은 눈을 허옇게 뜨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히이이익!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빨간 셔츠가 성큼성큼 다가가 사장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사장은 뒤로 나자빠졌다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돈, 더, 없어?”

빨간 셔츠가 다시 물었다.

그때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누군가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두 동남아인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출입문에 네눈박이 탈을 쓴 지훈이 서 있었다. 물론 그 누구도 탈을 쓴 남자가 지훈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뭐야, 당신, 비켜, 다친다.”

곱슬머리가 칼을 거꾸로 쥐고 지훈에게 걸어갔다.

칼을 쥔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지훈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곱슬머리를 말없이 쳐다봤다.

쉭. 지훈에게 공격을 시도한 것은 오히려 곱슬머리가 아니라 빨간 셔츠였다.

그는 지훈에게서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기습을 감행했다.

회칼의 시퍼런 칼날이 허리 높이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결코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끔찍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질 거라 생각한 연주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지훈이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면서 몸을 틀었다.

동시에 손바닥으로 빨간 셔츠의 귀를 가격했다.

빨간 셔츠는 이명을 느끼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집중력을 발휘해서 칼은 여전히 쥐고 있었다.

곧바로 곱슬머리가 튀어나와 빨간 셔츠와 자리를 바꾸며 회칼을 휘둘러왔다.

지훈의 입에서 휘파람 같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다음 순간 회칼이 바닥에 떨어지고, 곱슬머리가 신음을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훈이 곱슬머리의 어깨를 짚고 몸을 날려 그대로 빨간 셔츠의 뒷목에 강한 발차기를 꽂았다.

빨간 셔츠는 옆으로 쓰러지다가 계산대 모서리에 다시 관자놀이를 찧고 나직이 신음하며 의식을 잃어버렸다.

지훈은 여세를 몰아 몸을 돌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곱슬머리의 턱을 무릎으로 걷어 올렸다.

편의점을 강탈하려던 두 동남아인은 제대로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바닥에 길게 누웠다.

“어어?”

그때까지 머리를 숙이고 있던 사장이 고개를 들더니 바닥에 쓰러진 동남아인들을 보고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서 중요한 장면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연주도 계산대에서 넋 나간 얼굴로 지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훈이 연주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괜찮은지 물어보려는데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장이 어느 틈에 경보 버튼을 눌렀던 모양이다. 아마도 동남아인들이 처음 들이닥쳤을 때 계산대 바닥에 있는 버튼을 밟았을 것이다.

‘진짜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네.’

지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편의점 밖으로 뛰어나갔다.

순찰차가 경광등을 번뜩이며 달려오다가 지훈을 발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 쫓아왔다. 뒤이어 또 다른 순찰차가 편의점 앞에서 멈추더니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권총을 빼들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지훈은 혀를 차고 계속 달렸다.

옆의 차도에서는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집요하게 쫓아왔다.

한 블록, 두 블록, 세 블록, 추격전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간격이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벌어졌다.

시내라서 무작정 밟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속 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고 있었다.

100미터 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라도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훈은 순찰차보다 훨씬 앞서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점점 간격을 벌려가면서.

순찰차에 탄 경찰관들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몇 분 후, 지훈이 경찰관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경찰관들은 브레이크를 발고 순찰차에서 내려 망연자실한 얼굴로 지훈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둘 다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선배님, 우리가 뭘 봤죠?”

운전대를 잡았던 후임이 얼빠진 얼굴로 조수석 문을 열고 서 있는 나이 지긋한 선배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근데 저거 사람 맞아? 어떻게 사람이 차보다 빠를 수 있지. 이게 가능해? 경찰 생활 17년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야, 그나저나 이거 뭐라고 보고해야 되는 거냐. 믿어주기나 하겠냐.”

“그러게요.”


지훈은 네 블록을 더 지나고 나서야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순찰차는 보이지 않았다.

겨우 한시름 놓은 지훈은 탈을 벗어서 백팩에 넣고 보도에 설치한 벤치에 털썩 앉았다.

“후우. 하마터면 일이 꼬일 뻔했네. 망할 사장 새끼, 언제 버튼을 눌렀대. 하여간에 손해는 절대로 안 볼 위인이야.”

지훈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전히 연주가 마음에 걸렸지만 안부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괜히 메시지를 보냈다가는 의심만 살뿐이다.

경찰관들이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나저나 이젠 어쩌지. 사장 새끼가 끝까지 급여를 안 준다고 버티면 이번 달 월세는 뭘로 감당하나.”

지훈은 월세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열악한 주거 문제는 오늘날 이태백으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공통적인 고민 중 하나였다.

아무리 뼈 빠지게 돈을 번다고 해도 자기 명의로 번듯한 집 한 채 얻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집은커녕 빚을 안지고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대학 시절에는 학자금 융자가, 사회에 나와서도 유복한 집안의 자녀가 아닌 이상에는 금융권에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빚이, 또 빚을 양산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이 서민들의 목을 죄는 게 오늘날 이 나라의 현실이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마치 현대판 카스트 제도처럼 타고난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불행히도 지훈은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닌 흙수저다.

“낭패네. 주인아줌마가 눈 시퍼렇게 뜨고 내일 찾아올 텐데. 이번에는 무슨 핑계를 대야 넘어갈 수 있지······.”

속이 쓰렸다.

좋은 일을 하고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지훈은 고개를 흔들며 백팩에 넣었던 탈의 일부만 꺼내서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탈을 얻은 것이, 남들은 상상도 못할 ‘힘’을 손에 쥐게 된 것이, 과연 축복인지, 아니면 저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 모르겠다. 일단 집에 가자.”

지훈은 다시 탈을 백팩에 넣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한 걸음 내딛는데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이상해서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밑창이 너덜너덜해져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양쪽 다 비슷한 상태였다.

“갈수록 태산이네.”

지훈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자동차보다 빨리 달렸으니 그 마찰로 발생하는 열기를 평범한 신발로 감당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지훈은 툴툴거리며 벤치에 앉아서 백팩 안을 뒤적거렸다. 마침 전에 쓰고 남은 박스테이프가 있었다.

지훈은 한숨을 푹푹 쉬며 박스테이프로 신발을 칭칭 감았다.

임시방편이지만 적어도 집에 갈 때까지는 밑창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훈은 손으로 무릎을 탁 치고 다시 벤치에서 일어나 자취방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월세 걱정은 뒷전이고 빨리 집에 가서 따듯한 온수로 샤워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적어도 그 정도는 자신에게 보상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좋은 일을 했으니까.

비록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선행(善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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