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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5.11.06 14:34
최근연재일 :
2016.12.27 02:36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569
추천수 :
25
글자수 :
20,143

작성
16.12.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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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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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 이태백 (1)

DUMMY

지훈은 온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봤다. 기다리는 메시지가 있었다. 하지만 해질 무렵이 되었는데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밤 10시쯤, 지훈은 노트북을 챙겨서 백팩을 메고 자취방을 나섰다.

목적지는 얼마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전철역 근처의 편의점이다. 받아내야할 '빚'이 있어 사장과 담판을 지으러 가는 길이다.

지훈이 편의점 사장과 사소한 시비를 벌이고 해고당한 게 2주 전이다.

일방적인 갑질이었지만 따지지도 묻지도 않았다. 지훈도 사장의 횡포에 질려 진즉부터 그만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잘릴 땐 잘리더라도 응당 받아야할 임금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흘 전에 사장에게 문자메시지로 밀린 임금을 달라고 했더니 오늘까지 입금해준다는 답문을 받았다.

그런데 은행 영업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망할 놈의 사장이 거짓말을 한 게 분명하다.

‘이 배불뚝이가 또 나를 엿을 먹이려고 드네. 오늘은 기어이 담판을 짓고 만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지훈은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씩씩거리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지훈은 매번 마지막 고지에서 쓴잔을 맛보았다.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졸업 성적이 준수해도,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줘도, 합격통지는 번번이 남의 몫이었다.

실패를 거듭하자 점점 자신감을 잃으면서 지원 업체의 허들도 덩달아 낮아졌다.

졸업할 당시만 해도 대기업이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았던 지훈은 구직 사이트를 검색하며 쥐꼬리만 한 월급만 줘도 좋다는 심정으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불운의 여신은 지훈을 너무나 사랑했다.

이제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에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할 정도지만 취업이라는 결승선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 없는 자위에 불과하다.

그렇게 힘겨운 일 년을 보냈다.

이제는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자존심을 다 버리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PC방에서 몇 달, 커피숍에서 다시 몇 달.

하지만 깐깐한 성격 때문에 매번 업주들과 마찰을 빚는 바람에 한곳에서 반년도 채 버티지 못했다.

이번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지훈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때마다 업주들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PC방에서는 사장이 술 취한 손님들을 상대로 사용시간을 속여서 요금을 더 받는 것을 보고 항의하다가 잘렸고, 커피숍에서 일할 때는 점주가 일회용 용기를 아낀다고 손님들이 내버리고 간 테이크아웃 용기를 씻어서 재활용하는 것을 두고 시정을 요구했다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이번 편의점의 경우에는 노총각 배불뚝이 사장이 같이 일하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추근거려서 그것을 막다가 말싸움까지 벌여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편의점에 도착한 지훈은 출입문에 붙은 구인 공고문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얀 프린트용지에 ‘가족 같은 직원을 구합니다!’라는 문구가 몹시 거슬렸다.

너는 가족 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하냐? 지훈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 지훈 오빠.”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지훈을 알아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홍연주라는 이름의 재수생으로 배불뚝이 사장이 집요하게 추파를 던졌던 대상이었다. 지훈은 연주가 아직까지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다.

마지막으로 현장을 목격했을 때는 거의 성추행 수준이었고 그것 때문에 지훈이 참지 못하고 사장과 언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때 연주도 더는 못 참겠다며 일을 그만두겠다고 사장한테 통보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시각에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지금 타임은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구간이다.

지훈은 혼란스러웠다.

“너, 그만둔 거 아니었어?”

지훈이 물었다. 연주는 무슨 까닭에선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지훈의 시선을 피했다.

“연주야,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건데?”

지훈이 계산대로 다가갔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사장은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 출근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거나 재고 상태를 파악한다.

문제는 그 시각에는 누가 되었든 아르바이트생과 단 둘이만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사장은 마음에 드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오면 고의로 한두 번씩 새벽 시간대에 근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르바이트생들이 이유 없이 일을 그만두곤 했다.

물론 나중에서야 원인이 무엇인지 지훈도 알게 됐다.

전형적인 갑의 횡포. 지훈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폭력’의 한 형태였다.

“미안. 나 오빠랑 할 말 없어. 오빠야말로 여긴 왜 온 거야? 그만뒀잖아.”

연주가 오히려 따지고 들었다. 묘하게 연주의 말투에서 적대감이 느껴졌다. 2주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 나는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사장 이 자식이 아직 월급을 입금하지 않아서, 그래서 따지러 왔어.”

지훈은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뭐냐, 너.”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들렸다. 한없이 거만하고, 상대가 누구든 자기 아래라고 보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투.

지훈은 입술을 깨물고 돌아섰다.

예상대로 배불뚝이 사장이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며 입구에 서 있었다.

입가에 묻은 국물자국이나 뺨이 불그스름한 것으로 보아 또 길 건너 순댓국집에서 한 잔 걸치고 온 모양이었다.

“뭐냐고, 묻잖아. 잘린 새끼가 여긴 왜 왔어?”

사장은 아니꼬운 눈빛으로 지훈을 위아래 훑으며 대뜸 욕설을 내뱉었다.

지훈은 눈을 부릅떴다. 나이도 기껏해야 서너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누구는 장학금 받아가며 죽자 사자 스펙을 쌓아도 취업을 못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이 재수 없는 배불뚝이는 부모 잘 만나서 아무런 걱정 없이 속 편히 잘도 산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

“왜 입금을 안 해줍니까? 오늘까지 넣어준다고 답문까지 줬으면서.”

지훈이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잇새로 내뱉었다.

“입금? 무슨 입금?”

사장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표정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지훈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빴다.

“두 달이나 밀린 알바 비, 아직 안 주셨잖습니까.”

그러자 사장이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손가락으로 눈 밑을 가리켰다. 거기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생채기가 있었다.

“너, 이거 안 보이냐? 그때 네가 나 때려서 상처 났잖아. 새끼야, 고소 안 한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뭐? 지금이라도 고소해서 콩밥 먹여줄까?”

순간 지훈은 어이가 없어졌다.

사장의 주장은 얼토당토 않는 것이었다.

그 상처는 그날 제 성질을 못 이긴 사장이 진열대의 상품들을 집어던지다가 벽을 맞고 도로 튕겨 나온 과장상자 모서리에 긁힌 자국이다.

즉, 엄밀히 말하면 자해인 셈이다.

적반하장이라더니, 도리어 지훈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었다. 지훈은 헛웃음을 삼키며 사장을 노려봤다.

“지금 나하고 장난치자는 겁니까?”

지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장난? 너는 내가 장난치는 거 같냐? 이 깡패 같은 새끼야. 하아, 이게 사람을 쳐놓고 어디서 큰 소리야?”

사장이 눈을 부라렸다.

“내가 언제 당신을 때렸습니까. 그건 당신이 물건들 패대기치다가 다친 거잖아. 왜 그걸 나한테 뒤집어씌웁니까.”

지훈이 언성을 높였다.

사장도 지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

“뭔, 개소리야. 이젠 오리발까지 내미네. 야, 연주야. 내 말이 맞아, 틀려? 그때 이 새끼가 나 쳤지? 안 그래?”

지훈은 연주를 돌아봤다. 그래, 연주는 진실을 알고 있지.

“연주야. 넌 봤지. 그때 사장님이······.”

연주가 굳은 얼굴로 지훈과 사장을 번갈아보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고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맞아요. 그때 오빠가 사장님을 때렸어요. 내가 봤어요.”

지훈은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어떻게 연주가, 연주가 사장의 편을 들 수 있지.

그것도 거짓말까지 하면서.

지훈은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장이 그것보라며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봤지? 증인도 있잖아. 어떻게,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할까?”

갚의 횡포. 지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이 상황에서 감정을 토해내 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훈은 사장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섰다.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라. 다음에는 국물도 없다.”

사장이 편의점을 나서는 지훈의 뒤통수에 대고 쏘아붙였다.

지훈은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꾹 참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런 기분으로는 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지훈은 잠시 거리를 배회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더니 다시 편의점 근처에 와 있다는 걸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유리문 너머로 계산대가 보였다.

배불뚝이 사장이 음흉하게 웃으며 연주의 어깨에 그 투박한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연주는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사장의 더러운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거기까지

지켜본 지훈은 욕지기를 느끼고 단호히 돌아섰다. 그러자 배불뚝이가 자주 가는 순댓국집에 보였다.

착잡해진 지훈은 곧바로 길을 건너 순댓국집으로 들어가 소주 한 병과 해장국을 주문했다.

해장국을 안주 삼아서 소주를 반병쯤 비었을 때, 지훈은 무심코 편의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편의점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그들의 행동이 수상쩍게 보였다.

보도에 설치한 파라솔에도 앉지 않고 그렇다고 편의점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계속 그 앞을 서성거렸다.

마치 주변에 ‘목격자’가 없어지기만을 가다리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전철이 끊길 시간이고 그러면 행인들도 뜸해진다.

그리고 다시 몇 분이 흘렀다.

동남아인들이 머리에 뭔가를 쓰더니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등을 보이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멀리서나마 겁에 질린 연주의 표정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지훈은 자리를 박차고 계산대로 가서 밥값을 낸 다음 급히 가게 밖으로 나갔다. 출입문을 지나치면서 양면 후리스를 뒤집어 입었다. 회색에서 빨간색으로.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옆면의 지퍼를 백팩에서 뭔가를 꺼냈다.

네눈박이 탈, 옛 문헌에서 '방상시'라고 전해지는 나무로 만든 탈을 얼굴에 쓰고 천천히 길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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