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
방상시는 본래 주(周), 한(漢) 등 중국 고대 나례(儺禮: 궁중과 민간에서 잡귀를 쫓기 위하여 섣달 그믐날에 베풀던 의식)의 대표적인 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방상시가 들어와 장례와 구나 의식(驅儺儀式)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장례 때 행렬의 맨 앞에서 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하고, 광중(시신을 묻는 곳)에 도착하여 네 귀퉁이를 찔러 악귀를 쫓는다. 사용한 탈은 무덤 근처에서 태워버리고 장례식 때마다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나무?종이?짚 등의 재료로 만들었는데, 나무로 된 방상시는 조정이나 규모 있는 사대부가에서 썼고, 종이로 된 방상시는 일반 양반층에서 썼으며,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은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였다.
<역사>
우리나라 최고의 가면유물로서 4목(目)을 가지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방상시는 고대 중국 주 이래로 장례 풍습에서 악귀를 몰아내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도 전하여 5,6세기경 신라시대부터는 장례와 구나 의식에 사용되어 왔다.
위의 유물은 창덕궁에서 발견된 것을 모작한 것으로, 조선시대의 유물로는 유일한 것이다.
방상시탈은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1930년대까지도 장례행렬의 선두에서 행진하며 악귀를 쫓는 역할을 맡았다. 원래 방상시의 탈은 황금사목 즉 황금색 네 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태평광기(太平廣記)]의 `견이록(甄異錄), 순자(荀子) [非常篇], [유양잡조(酉陽雜俎)] 등에 두 눈을 가진 방상시 탈인 기(?)탈이 소개된 점을 보아, 눈이 두 개인 것도 방상이라고도 하고, 기탈이라고도 불렸다.
유양잡조 권 13에는 "눈이 네 개인 것은 방상이라 하고, 눈이 두 개인 것은 기라고 한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므로 기도 방상시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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