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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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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5.11.06 14:34
최근연재일 :
2016.12.27 02:36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571
추천수 :
25
글자수 :
20,143

작성
16.12.10 14:09
조회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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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4쪽

1. 자경단 (1)

DUMMY

이곳은 어디일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혜진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자각을 하는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전신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낯선 사내들의 목소리. 듣기 거북한 육두문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따, 오늘 우리 형님, 확실히 몸을 푸시겄네.”

“이 쌍놈의 새끼야! 아가리 닥치고 빨리 준비해. 넌 입으로 일하냐. 새끼가 입만 살아가지고 일은 안하고 좆나 나불거리네.”

“아, 알았으니까, 말 좀 곱게 써라. 이 썩을 놈아! 그리고 넌 주둥아리는 안 나불거렸냐. 개놈의 새끼, 네가 나보다 더 시끄럽거든. 나 한 마디 할 때 넌 백 마디 한다고, 이 씹 새끼야.”

“하긴 글타. 내가 좀 말이 많기는 하지? 흐흐흐.”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 혜진은 조용히 눈을 떴다.

사방이 탁 막힌 듯한, 어둡고 습한 지하실 풍경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너무도 낯설고 두려운 공간.

혹시, 납치된 것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두려운 나머지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신체기능이 회복되진 않았다. 혜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거의 치사량에 가까운 마취제를 흡입한 상태여서 목소리를 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마치 가위눌림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긴장한 탓이지 아직은 시야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반면에 다른 감각은 평소보다 예민해진 상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들의 대화가 점점 또렷하게 들렸고 역겹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러 견디기 힘들었다.

도대체 얼마 동안이나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몸은 여전히 굳어 있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이 부쳤다.

정말로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숨쉬기도 힘들었다. 납덩이를 달고 있어도 이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마침내 흐릿하던 시야가 선명해지면서 주변의 풍광이 명확하게 보였다.

혜진은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만 아주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천장의 모양은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아서 대략 서너 평쯤 되는 것 같았다.

페인트가 벗겨진 회색벽면은 어딘가 황량해보였고 군데군데 물이 흘러내린 결로 자국이 남아있었다.

지하실인지 한쪽 구석에는 낡은 철제계단이 놓여있고 그 끝에는 역시 녹슨 철문이 있었다.

계단 바로 밑에는 소형 2단 냉장고가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그 외에 다른 가전제품이나 가구는 일절 없었다.

천장은 꽤 높아서 3미터는 가뿐히 넘어보였고, 조명은 그 천장 한가운데 매달린 백열등 하나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백열등의 불빛 아래 사내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쑥덕거리고 있었다.

불현듯 검정색 가죽재킷을 입은 사내가 혜진에게 다가왔다.

나이는 대략 서른 살 전후.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체격이 다부지고 오른쪽 눈가에 기다란 흉터가 있어서 인상이 험악해 보였다.

껌을 질겅질겅 씹어가며 구부정한 자세로 혜진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불량배였다.

“헤에?”

사내는 입술 끝을 묘하게 치켜 올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어라, 이년이 정신을 차렸나 본데? 야, 멸치야. 내가 아까 약 좀 듬뿍 치라고 하지 않았냐? 근데 이게 뭐야. 시작도 하기 전에 깨어났잖아.”

그러자 멸치라고 불린 깡마른 체구의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멸치라는 별명처럼 정말로 메마른 인상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입가에 역겨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몸에서 배어나오는 폭력적인 기질, 일견해도 그가 건전한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엥, 벌써 깼습니까?”

멸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혜진을 내려다보았다.

탐욕스럽고 끈적끈적한 시선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샅샅이 훑고 지나간다. 마치 발가벗겨지는 것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그 느낌이 너무나 실감나고 끔찍해서 혜진은 손으로 가리고 싶었지만 아직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하, 고것 참. 듬뿍 친다고 쳤는데······.”

멸치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가죽재킷을 입은 사내가 혜진을 음흉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됐어. 일찍 깨어나면 어때서 그러냐. 그냥 이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뭘. 고고 싱 하자.”

그때 냉장고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사내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사내는 긴 말총머리에 하관이 날렵하게 뻗어 내려간 인상에 키도 무척 컸는데, 일부러 공포를 조장하려는 듯 오른손에 쥐고 있는 쇠파이프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깡, 깡, 소리가 울릴 때마다 혜진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맞아, 상관없잖아. 어차피 필름 돌릴 물건인데 이왕이면 실감나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안 그래? 적당히 반항도 해주고 비명을 지르면서 앙칼지게 대들어야 보는 사람들도 더 흥분을 한다고. 도리어 잘된 일이네.”

말총머리가 말했다.

가죽재킷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말총머리를 돌아보았다.

“하여간 상구, 네놈 꼴통은 매사에 그런 쪽으로만 돌아가는구나. 그래도 네 의견은 맘에 든다. 맞아, 뭔가 액션이 좀 들어가야 맛이 나는 법이지. 야! 짱돌. 빨리 시작하자. 준비 다 됐지?”

짱돌이라고 불린 체구가 가장 작은 사내가 캠코더를 들어 보이며 짐짓 그럴싸하게 카메라맨다운 폼을 잡았다.

나이도 가장 어려 보였는데, 체구는 작았지만 군살 없는 단단한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아마도 짱돌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여진 것 같았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예, 형님. 저는 진작부터 스탠바이입니다요.”

짱돌은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캠코더의 전원을 켰다.

“좋았어!”

말총머리가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구석으로 내던지더니 상의를 벗어서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았다. 평소 열심히 관리를 했는지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상체 근육이 드러났다.

“그럼, 간만에 예술영화 한 번 찍어볼까? 흐흐흐.”

혜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사내들이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혜진은 소리를 지르며 저항을 하고 싶었지만 몸이 천근처럼 무겁고 비명도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아직까지도 체내에 남아있는 마취제의 기운이 족쇄처럼 그녀의 몸을 단단히 옭아맸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혜진은 할 수 있는 한,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기껏해야 팔을 허우적거리는 것에 불과했지만.

‘안 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말총머리가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누군가의 허락을 받으려는 듯 갑자기 구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어, 형님?”

그곳에서 그때까지 담배를 빨아대던 중년남자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얼마나 지독한 골초인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진한 니코틴 냄새가 풍겼다.

“상구부터 할 거냐?”

말총머리, 상구는 대답 대신에 바지까지 벗어버리더니 팬티차림으로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중년남자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선의(善意)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악한 웃음이었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전형적인 악당들의 모습이었다.

정말로 끔찍했다.

혜진은 두려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몸을 떨었다.

“모처럼 상품도 A급으로 들어왔는데, 간만에 형님도 몸을 푸시렵니까? 어때요, 제가 양보를 할까요.”

상구란 사내가 선심을 쓰듯 말하자 중년남자는 고개를 흔들며 새롭게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됐다. 내가 하면 필름의 질이 떨어진다. 다 늙어서 카메라 앞에 서고 싶지도 않아. 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내. 짱돌. 필름 돌려라.”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상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팬티까지 훌러덩 벗어버렸다.

우람한 양물(陽物)이 고개를 내밀자, 혜진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혜진의 반응이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졌는지 상구가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짱돌을 돌아보더니 지시를 내렸다.

“짱돌, 형님이 빨리 끝내라고 하시잖냐. 한 번 멋지게 찍어 봐라.”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갑니다. 레디, 큐! 캬하, 감정 좋고! 카메라 빨 죽이게 받습니다. 좋아요.”

짱돌은 캠코더의 플레이버튼을 누르며 제법 호기 있게 큐 사인을 보냈다. 마치 역량 있는 중견 영화감독이라도 된 양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뒤에서 가죽재킷을 입은 사내와 멸치가 키득거렸다.

“자, 들어간다!”

상구는 멋쩍게 손으로 V자를 만들어보이고는 그대로 혜진에게 돌진했다.

혜진은 질겁하여 몸을 뒤로 빼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사내의 우악스런 손길이 혜진의 브래지어 속으로 파고든다.

순간, 혜진은 두려움과 수치심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혀를 깨물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차라리 계속 정신을 잃고 있었더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누군가 자신의 구원요청을 들어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어쩌면 이곳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외딴 장소일지도 모른다.

죽음보다 더한 절망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싶었다. 진심으로.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왜 내가······.’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그녀는 회식장소였던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환영하는 회식이었다.

한동안 마감에 시달린 탓인지 평소랑 달리 과음한 것 같았다.

실제로 혜진은 떠들썩한 회식 분위기에 휘말려 자신의 주량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많은 술잔을 비웠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블루스 타임 때, 짓궂은 상사들을 피해 화장실을 갔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고 그 순간 희뿌연 그림자가 눈을 가렸다. 곧 의식을 잃었다.

그것이 혜진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오지 마······! 아악!”

간신히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몸의 움직임은 여전히 자연스럽지 못했다.

혜진이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지만 사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자들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조용히 해. 쓸데없이 소리 지르고 하면 입에 팬티를 쑤셔 박아버린다?”

상구는 나직한 목소리로 위협을 하고는 팬티까지 벗어던지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혜진은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몸을 떨었지만 오히려 사내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행위가 될 뿐이었다.

“크크, 이번에도 상태가 좋은 물건이 걸렸는걸.”

상구의 어깨너머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발정 난 수컷들이 탐욕스런 시선으로 혜진을 쳐다다보고 있었다.

혜진을 납치한 다섯 명의 사내.

이들은 여자를 납치해서 실제로 강간하는 장면을 필름에 담아 개인적인 구매희망자나 외국으로 고가에 팔아넘기는 스너프 필름 제작자들이었다.

지금처럼 적당한 상대를 골라 납치를 해서 필름을 제작하는데, 그렇게 제작된 스너프 필름은 각본이 전혀 없는 실제상황이기 때문에 흔한 포르노보다 훨씬 비싸게 팔렸다.

그러고 나서는 장기밀매업자들에게 비싼 값에 여자를 넘긴다.

예전 같으면 섬이나 사창가에 소개비를 받고 팔아넘겼겠지만 그러면 꼬리를 밟힐 위험도 있고 수익도 그리 높지 않다.

차라리 싱싱한 육체에서 장기를 뽑아 내다 파는 쪽이 증거도 남지 않고 고수익을 보장해준다.

혜진은 그런 인간들에게 재수 없이 걸려든 것이다.

“······.”

혜진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 자세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말총머리의 타액이 그녀의 검은 머리칼 위로 점점이 떨어졌다.

욕지기가 일었다.

그의 손이 혜진의 다리에 결박된 끈을 풀고 있었다.

“야야, 꾸물대지 말고 빨리 시작해!”

중년남자가 서두르라며 채근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흐흐흐, 팬티도 죽이는 걸로 입었네. 이거 끈 팬티 맞지? 야! 짱돌, 잘 찍어라!”

캠코더가 혜진의 몸 위로 조명을 뿌리며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들어가 볼까?”

말총머리가 혜진의 팬티를 사정보지 않고 힘껏 끌어내렸다. 손바닥보다 작은 앙증맞은 팬티가 형편없이 구겨지며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때였다.

별안간 바깥으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들은 반사적으로 지하실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낡은 문이 세차게 열리면서 피투성이가 된 사내 하나가 계단을 굴렀다.

“뭐······뭐야!”

중년남자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내들도 하던 짓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사내의 몰골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만큼 형편없이 짓이겨져 있었고 신체의 다른 부위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숨이 붙어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사내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사내는 출입문을 지키던 똘마니 중 하나였다. 누군가 온 것이다.

“혀, 형님, 저기!”

캠코더를 돌리던 짱돌이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구를 가리켰다.

입구에 서 있는 거뭇한 실루엣.

얼굴에는 기이한 탈을 쓰고 있었다.

마치 불가(佛家)에서 전해지는 나찰(羅刹)과도 같은 형상.

게다가 네눈박이다.

그 모습이 음습한 지하실에서 맞닥뜨린 탓인지 상당히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누······누구냐! 어떤 자식인데 겁 없이······.”


작가의말


위에 등장하는 ‘상구’는

흑상어에서 은색 스타렉스를 몰던 그 ‘상구’입니다.


흑흑.


안녕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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