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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섬 님의 서재입니다.

반드시 자살하는 가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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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섬
작품등록일 :
2023.05.29 15:17
최근연재일 :
2023.07.03 23:26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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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수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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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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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감옥

DUMMY

기사들의 도움은 빨랐다. 가주가 사라진 상황이니 환혹의 정원에서 마나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규칙을 무시한 것이다. 다만 다른 규칙까지 어기는 모습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이곳의 언어와 귀족의 품행은 뇌리에 습득되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죄를 이해하고 있는 가 물었다.”


베리안은 양손에 채워진 수갑을 들어 보인다. 하지만 기사들은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마치 벽과 말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미로에서 한 여인이 기사의 어깨에 올라탄 상태로 다가왔다. 갈색 머리의 뿔테 안경을 찬 외형은 기억에 있었다.


‘비안나. 데이피스토의 시종장인가.’


드디어 말이 통하는 사람이 왔다. 저택을 관리하는 총괄자며 하녀들의 본보기가 되는 그녀이니까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것이다.


“시종장 지금 기사들이 무슨-”

“분명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인형과 같이 쥐 죽은 듯 살라는 여주인의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제 귀를 의심할 말이었다


“지금 미쳤나?”


비안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즉시 베리안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게 뭔 짓이냐!”


베리안이 반항하자 기사는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는 것 만으로 베리안의 비명을 듣기에 충분했다.


“끄아악!”

“처음도 아니신데 왜 그러시는지? 익숙한 감옥에 가는 것 뿐입니다.”


비안나는 비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이번의 벌은 뭘까요. 빨리 여주인님이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잠깐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고 있는 거냐? 가주의 육체를 구속하고 감옥에 넣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다.”


베리안은 눈을 부라렸다.


“무슨 이유에서 내 손에 수갑을 채우는 거지?”

“오늘 따라 말이 많네요.”

“설마 배반을 일으킬 생각인 건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배신 말고는 없다. 시종장인 그녀가 자신의 주인인 데이피스토의 혈족을 이렇게 대할 리는 없으니까.


“맞는 말이네요. 제가 큰 실수를 했어요.”


베리안의 의문은 지당하고, 적합했다. 베른과의 계약으로 받은 귀족의 지식은 확신을 내리게 만들었다.


“배반··· 웃기지도 않는 소리네요.”


비안나는 조소를 흘렸다.


“언제 부터 인형 따위가 저희의 주인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평소는 반항 없으시더니 오늘 따라 반응이 격하네요. 여주인께서 좋아하실탠데 없어서 아쉽네요.”


툭!


뒤에서 들린 무언가를 치는 소리. 바닥에 얼굴이 맞닿으며 의식이 흐릿해진다.


“대체 왜?”


당연히 답은 들리지 않았다.


*


눈을 뜬 베리안은 일어나자마자 주변을 확인했다. 쉴세 없이 움직이는 동공은 돌 바닥과 거친 벽면들만이 보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제발.’


간절한 심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잠옷의 바지 주머니에는 다행히 반지가 들어 있었다. 반지는 찾지 못했구나. 깊게 안도했다. 만약 반지를 빼앗겼다면 머리가 아팠을거다.

최악은 면한 상태에서 베리안은 천천히 주변을 파악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이곳은 감옥 이겠지.”


정확히는 가문의 지하일 것이다. 귀족이란 누리는 것이 많기에 또한 적이 많은 법, 비밀리에 더러운 일을 해결하는 감옥은 귀족들에게 있어서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공공연한 사실이다.


“어어... 제발 죽여줘.”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해해, 오늘은 스테이크인가?”


진하게 느껴지는 음산한 소리에 베리안은 침을 꼴각 삼켜버렸다. 딱히 춥지 않은 날씨인데 오한이 느껴질 정도다.


“알고 있는 감옥이 아니야.”


끊이지 않는 아우성 사이에 있으니 자꾸만 몸이 위축되려 한다.

이렇게 있으면 안된다는 본능에 베리안은 떨리는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한다.


‘정신 차리자. 떨어봤자 아무런 도움 안된다. ’


빠르게 몸의 떨림이 진정되어 간다. 얼굴에 맞닿아 있는 손의 진동이 느려지는 걸 느끼며 베리안은 손을 내린다.


‘당연히 도망칠 방법은 없겠지.’


평범한 감옥도 아닌 판타지 세계의 감옥에서 아직 아무것도 익히지 못한 육체로 탈옥을 시도하는 것은 차라리 자살이 더 현명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베리안은 바닥에 몸을 뉘었다.


정보란 중요하다. 정보의 중요성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정보들은 많아.’


기사와 비안나의 태도, 이전에 만난 하녀의 반응, 안주인이라 불리는 부모가 감옥에 들이는 것을 허락하는 걸 넘어 기대하고 있다는 말, 더 나아가 원작의 베리안이 자살한다는 사실까지.


여럿의 파편화된 조각이 있으니 남은 것은 하나 완성체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막막하지만, 익숙한 일이다.

예전에 사기를 치려고 했던 대상이 간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난 즉시 사기의 내용을 바꿔 비타민 물을 간에 좋은 건강 식품이라고 하고 비싼 돈을 주고 팔았었다. 그때의 기억은 강하게 남아 경험이 되었다.


흐릿한 실을 억지로 이어가듯 눈을 감은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 베리안은 힘 없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게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나 보지 못하냐.”


나름 부모를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했었는데 하등 쓸모가 없는 고민이었다.


베리안은 한참을 누워 있던 바닥에서 일어나며 기억 속 정보를 하나 수정했다. 원작의 베리안의 사인은 자살이 아니다.

만약 자살을 했다고 해도 그건 자살이 아니다.


“가주의 직위는 분명 매력적이긴 하지.”


피가 엮이지 않은 부모가 아들을 죽이기에 충분한 동기다.


*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나.


“어떻게 만들면 빵이 이렇게 단단하냐. 둔기로 써도 되겠네.”


난 짐승인가 보다.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적응이 안되는 아침 식사에 베리안은 한껏 힘을 주어 찢은 빵을 스프에 넣고 바닥에 다시 누웠다. 맛 때문이 아니다. 맛 없는 것은 오히려 양반이다 문제는 빌어먹을 빵이 충분히 젖어야지 씹어진다는 사실이다. 첫 날에 스프가 없어 침으로 녹여 먹은 사실은 두고 두고 떠올릴 각오의 촉매제였다.

몇 분 가량 누워 있던 베리안은 자리에 일어나 축축한 빵을 입에 쑤셔 넣는다. 더럽게 맛 없는 빵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 있다.


“아무래도 난 편하게 산 게 맞다.”


나름 힘든 일도 당했고 억울한 일도 겪어봤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양지에서 일어난 일, 음지의 일과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

차가운 돌 바닥에서 자다 보니 어깨는 결렸고 햇빛을 못 봐서 그런가 웃음이 안 나온다.


“좀 죽여 달라고! 이 정도면 됬잖아!”

“해해, 오늘 밥은 양고기네.”

“나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거 잠은 안 잡니까?”


잠도 안자고 밤새 소리를 지르는 미친놈들이지만 똑같은 죄수로써 한편으로 도움이 되는 인간들이다.


“너도 시간이 지나봐라 이곳에서 잠은 자는 게 아니야 오는 거지.”


하루 종일 이상한 소리만 질러 대면서 사람이 그리운 것은 마찬가지인지 말을 걸면 나름 친절하게 답해준다.


“언제 죽여 주냐고! 베른 데이피스토!”


대답을 언제 했냐는 듯 바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면 미친 놈들이 맞긴 하다. 미친 듯 어딘가 평범해 보이는 저 모습들을 보자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변하지 않을까?

이곳에 계속 있으면 점차 미쳐가는 것이 아닐까.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몇일 살아본 결과 이곳은 지옥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은 장소다.

그러나, 몇 일 간의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감정적으로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곳에 갇힌 것은 이득이었다.


‘너무 흥분해있었어.’


생명의 위험이나 판타지의 존재 등 베리안이 된 직후의 나는 마치 투우사의 소 같았다.

그러나 감옥에서 일주일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울퉁불퉁한 감정과 사고를 정돈하기 충분했다.

베리안은 벽면에 긁혀진 일곱개의 자국을 확인한다. 하루에 한번 씩 긁은 자국은 이곳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음을 알려주는 날짜였다. 일어 났으니 한번 더 긁어야 하지만 베리안은 손톱을 세우는 대신 벽면에 귀를 댔다.


“헤리안 데이피스토님의 귀환을 축하 드립니다!”


하인들의 격상된 목소리가 감옥까지 들려온다.


“잠시 얘기 괜찮나요?”

“갑자기 왜 좆 같은 말투냐? 꼬맹아.”

“당신들 말고요. 거기 좆 같은 빵 들어 있는 칠판 갖다 주는 것도 귀찮아 하는 너 말이야.”

“갑자기 왜 그래?””


몇 일 동안 대화를 나누던 이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창살 사이로 보인다. 눈빛에 담긴 감정은 걱정이 아닌 기대였다.


“저 새끼 제정신이냐? 아하하학!”

“처음에 안 맞고 들어와서 그래, 맞아 봐야지 정신을 차리지.”

“디안! 저 꼬맹이가 니 무시하는데?”


유흥이 없고 즐거움이 없는 감옥에서 웃을 기회란 드물다. 죄수들이 귀한 기회를 얘기 좀 섞었다고 포기할 리가 없다.


“조심히 대하라 해서 가만히 두니까 선을 넘는 구만.”


뚜벅-


걷는 소리가 들려온다. 파블로브의 개라고 했나. 일부러 확인하기는 했지만 다른 죄인들이 디안의 나무 몽둥이에 얼마나 쉽게 피투성이가 되는 광경을 봐왔기에 오싹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베리안은 디안이 오고 있음을 인지 하면서도 누워 있는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거만하게 다리 한 짝을 접은 다음 창살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태도를 유지 하는지는 알아 봐야겠군.”


허리 춤에 장비 된 몽둥이를 한 손으로 집어 든 디안은 창살의 문을 열었다.


“일단 곤죽으로 만들고 얘기하지.”


몽둥이를 번쩍 들자 베리안은 꽉 진 주먹을 내밀어 보였다. 저 얇은 팔로 막아 보려고 하는 건가? 디안은 코웃음 치며 몽둥이를 내려 치려 했다. 주먹이 펼쳐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이걸 보고도 내려 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인정하고 얼마든지 맞아 줄 수 있다.”


펼쳐진 손 바닥 위에 올려진 것은 반지였다. 링 부분에는 매가 새겨졌고 중심에는 흑색의 오팔이 영롱하게 자리해있는 반지. 판별력이 좋은 상인이 봤다면 후한 값을 쳐줄 반지이나, 데이피스토 가문에 속해 있는 이들에게는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사라진 가주의 반지를 당신이 어떻게..?”


디안의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가문의 직위를 형태로써 나타내는 것, 데이피스토의 심장이자 세간에 저주 받은 검재의 증명이라 불리는 것을 인형 따위가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나? 이해하지. 한낱 옥의 관리인이 이 물건에 대한 처지를 판단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해야 될 행동은 하나가 아닌가?”


베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턱을 까닥 쳐 든다.


“열어. 처지를 판단할 수 있는 이에게 갈거니까.”

“안주인께 말이십니까?”


존칭은 커녕 식은 식판을 대충 던지던 인간이 단번에 저자세로 변하는 모습은 베리안에게 꽤나 가학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역시 난 좋은 사람은 아니야.’


꽤나 어울리는 부자지간일지도, 베리안은 계속해서 말아져 있던 어깨를 활짝 피며 말했다.


“그래, 가주직을 빼았으려는 배반을 저지른 여인에게 안주인이란 호칭은 아깝지만 말이야”


해석에 따라 사형에 까지 이를 수 있는 말을 들은 디안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앞에 있는 인형, 이제는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 뿐이다.


철컹-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베리안이 제 옷을 훑었다. 누추한 옷은 신경 쓰이지 않지만 허리 춤이 허전하다.


“칼.”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디안은 반문했다. 베리안이 칼을 익혔을 리가 없다. 애초에 저 육체로는 칼을 제대로 들 힘도 없을 테니까.

베리안은 무심히 말했다.


“칼 아무거나 가져와.”


작가의말

오늘 좀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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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다툼 23.06.29 16 0 14쪽
29 이상「理想」(2) 23.06.28 17 0 8쪽
28 이상「理想」(1) 23.06.26 19 0 12쪽
27 다르면서 비슷한 둘 23.06.25 22 1 12쪽
26 매(2) 23.06.24 22 1 11쪽
25 매(1) 23.06.23 23 0 16쪽
24 진리회 23.06.22 20 0 14쪽
23 나쁜 짓 (2) 23.06.21 20 0 13쪽
22 나쁜 짓(1) 23.06.20 21 0 14쪽
21 하이에나 23.06.19 22 0 15쪽
20 성질 23.06.18 25 0 14쪽
19 운동 23.06.17 31 0 12쪽
18 오만 23.06.16 23 1 13쪽
17 악연 23.06.15 23 0 16쪽
16 대련(2) 23.06.14 28 0 18쪽
15 대련(1) 23.06.13 24 0 12쪽
14 입학 23.06.12 23 0 13쪽
13 입학 시험 23.06.11 25 0 17쪽
12 눈 먼 대장장이 23.06.10 36 0 14쪽
11 용사와 흑마법사(3) 23.06.09 28 0 15쪽
10 용사와 흑마법사(2) 23.06.08 33 0 14쪽
9 용사와 흑마법사(1) 23.06.07 45 1 10쪽
8 훈련 23.06.06 56 0 14쪽
7 내기(3) 23.06.05 56 0 18쪽
6 내기(2) 23.06.04 67 0 12쪽
5 내기(1) 23.06.03 68 0 16쪽
» 감옥 23.06.02 8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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