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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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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6.02 12:42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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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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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2,959

작성
24.01.1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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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현태룡과 방원철의 재회 1 (1959년 여름, 강원도)

DUMMY

현태준에 가르니에 신부마저 파리로 떠나고 나서 현태룡은 이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을 기다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동생과 장교는 원래 고독한 존재라며 그 속에서도 더욱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한다고 조언한 신부를 생각하며 현태룡은 더더욱 군 생활에 매진했다. 그 태도가 상관들의 눈에 띄인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석 중령이 공병대대장실로 따로 현태룡을 불렀다.


“대대장님, 현태룡 중위입니다.”


“들어오게.”


현태룡이 들어오자 정원석 대대장이 그를 특별히 접객용 좌석에 앉게 했다. 그는 현 중위의 인사기록카드와 추천서를 들고 일어나 접객용 좌석에 앉았다.


“현 중위, 내래 전쟁 때부터 수많은 장병들을 봐왔지만, 자네처럼 유능한 친구는 처음 봤디. 상관들 중에서도 드물다우. 부교 건설, 진지 공사 등 자네가 감독한 건들은 사고율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단 말이디. 그 외 상급부대 검열, 훈련, 평가 죄다 최고 점수라우.”


“하하. 그래서 대대장님께서 저를 군수소대장 뿐만 아니라 작전장교까지 시키시지 않았습니까.”


정원석의 칭찬에 현태룡은 농담으로 받아쳤다. 태룡은 일할 때는 매우 진지하지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때는 적당 선에서 농담을 하곤 했다. 상관들은 그런 현태룡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디. 기래서 우리끼리 얘긴데, 작전과장 일을 자네가 사실상 다하지 않나.”


“아닙니다. 과장님께서 많이 가르쳐주신 덕에 업무 능력이 많이 향상됐습니다.”


“이 친구, 참. 이런 야전부대에서 자네 역량을 썩히기 아깝다우.”


정원석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를 합동건설본부 창설 단원으로 추천했다.”


“합동건설본부에 제가 말입니까?”


합동건설본부는 국방부에서 육해공 전군 시설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신설된 부대였다. 아닌게 아니라 현태룡은 얼마전 작전장교로서 합동건설본부 창설 및 단원 추천에 대한 공문을 접수해 대대장에게 송신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때 한번 합동건설본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묘한 운명이랄까, 바로 오늘 정원석이 현태룡을 그 자리에 추천하려는 것이다.


“전방에서 휴전선 지키는 것도 의미있지만, 자네 같이 앞날 창창한 초급 장교는 합동건설본부에서 여러 부대를 관리감독하는 경험을 쌓는 게 자네 본인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나을 게야.”


“감사합네다.”


보통 일을 잘하면 붙잡아 두는 게 조직의 생리인데, 정원석은 현태룡을 더 큰 물에서 놀 수 있게 보내준 것이었다.


“창설일 전에 연수를 받아야 하니까네, 바로 전속 준비하라우. 후임자 인수인계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 말라.”


“감사합네다. 대대장님. 정말 감사합네다.”


정원석은 미소를 지었다.


“아 참, 자네 동생, 파리에 잘 도착했던가?”


“네, 배려해 주신 덕에 잘 배웅했고, 동생도 잘 도착했다 합니다.”


“형제가 참 대단해. 육사 수석에 경기중고수석 불란서 국비유학에.. 둘이 인물이야 인물. 이런 동량을 자기 일신의 영달을 위해 간첩으로 몬 그 김창환이하고 그 딸랑이 에미나이.. 누구더라..”


“방원철 대위입니다.”


“기래 맞아. 기런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현태룡이 급작스러운 정원석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해방 직후 용당포에서 배 타고 월남할 적에 그 친구가 나랑 같이 월남했다우.”


“아...그렇습니까...”


“정말 꾀죄죄한 몰골에 눈가에는 정말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기가 서려있는 애였디. 무슨 일을 당했는지 바로 짐작이 갔다우. 아내와 나도 신천에서 비슷한 일을 당했으니까. 몇 년이 지나 휴전하고 나서 육본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이 악명높은 특무대 장교가 바로 용당포의 그 소년이었다는 걸 알아봤디. 내가 아는 척을 하려 했는데 이 자식은 진짜 나를 기억 못하는 건디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디 모른 척 했다고.”


“...”


현태룡은 이미 한참 전, 박천에서부터 이미 자신과 가족이 방원철 일가와 얽혀있었다는 그 사실, 그러니까 아버지 현승호와 방경훈과의 막역한 사이부터 그날 아침 불타버린 방씨 일가의 뼈대만 남은 집과 시신들을 목격한 그 처참한 광경을 정원석에게도 고백하고 싶은 욕망이 목구멍까지 솟아나오려는 걸 겨우 참아냈다.


“빨갱이들에게 원한이 크게 있는 건 이해가 가다만 월남한 사람 중에 안 그런 사람 어디 있네? 나도 안해와 딸 현숙이만 데리고 겨우 나왔고, 친척들은 다 몰살당했거나 소식이 끊겨버렸는데. 허참... 똑같이 원한 있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지고...”


정원석 중령은 월남하던 때를 생각하니 기분이 갑갑해져서 담배꽁초를 꺼냈다. 현태룡은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라이터를 항시 소지하고 다녔기에 대대장의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정원석은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김창환이는 염라대왕 만나러 간지 오래고 방원철이도 아내가 대신 죽었디. 죽은 여자는 참 안타깝지만 방원철이가 천벌 받은거라우 천벌. 그런 자식이 안 잘리고 군대에 남아 있다는 게 국군의 수치다. 그놈, 지금 뭐하려나...”


“...”


...


강원도 양구에서 최전방을 지키는 독립 중대 중대장으로 복무하는 방원철은 술을 입에 대며 폐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는 김창환이 죽고 아내마저 잃고 특무대에서까지 축출된 이후 최전방에서 몇 년째 뺑뺑이를 돌고 있었다.


“캬, 낄낄낄낄.”


방원철은 연병장 계단에 앉아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에이 씨팔!”


방원철이 소주병을 계단 아래로 던졌다.


“썅!”


소주병은 산산조각 났다.


“어이 최진철이! 당장 오라!”


현태룡의 육사 선배 최진철은 불운하게도 방원철의 휘하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그나마 그는 육사에서 후배들을 못살게 굴던 전형두 무리들의 괴롭힘을 받으면서 꿋꿋이 생도 생활을 견딘 덕분에 방원철의 못된 성정을 견딜 수 있었다.


“멸공! 중대장님. 찾으셨습니까?”


최진철은 이등병처럼 군기 바짝 든 자세로 쏜살같이 달려와 경례를 붙였다. 본래 경례구호는 사단 별칭인 ‘백두’ 또는 전군 공통 구호인 ‘충성’으로 하는 게 상례였으나, 방원철은 ‘멸공’을 경례 구호로 하게 했다.


“어이, 내가 대낮부터 술 쳐먹는 게 우습나?”


“절대 아닙니다!”


“우습잖아, 이 간나야!”


“전혀 아닙니다. 중대장님.”


“으하하하하. 장난이다. 어이 최진철이.”


“중위 최진철!”


상급자가 부를 때 하급자가 관등성명을 외치는 건 병사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간부끼리는 악수할 때나 관등성명을 대지, 그렇지 않을 땐 관등성명을 크게 외치지 않았다. 방원철은 휘하 간부, 특히 육사 나온 최진철에게는 병사나 생도 때 할 법한 예를 강요했다.


“육사 차석 졸업한 최진철 중위하고, 느이 육사 엘리뜨들이 우습게 보는 갑종장교에 38따라지 고아인 이 방원철이의 공통점이 뭔지 아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 강원도 산골짜기에 처박혀서 삽질이나 하고 있다는 기다! 낄낄낄낄낄 낄낄낄낄낄.”


방원철은 실실 웃어댔다. 최진철은 방원철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고, 그 예상이 맞았다.


“옘병. 기래도 먼저 네 후배 놈이 내 집에 총질한 거 감안해서 불명예 전역은 면했다우. 하긴 특무대에서 빨갱이 놈들 조지면서 에미나이들에게 원한 쌓은 것치곤 아~주 자비로운 처사였디. 안 기래? 특무대 경력은 끝장났디만, 여기 촌구석에서 왕 노릇 하게 해주니 아~주 감사하디요.”


이제 울 차례였다.


“여보.. 왜 그렇게 떠났어... 나한텐 당신밖에 없었단 말이디.”


‘정숙아, 정숙아.’


최진철이 늘 듣던 대로 방원철은 목 놓아 울며 “정숙아, 정숙아”라고 말했다.


“중대장님, 근무시간입니다. 진정하십시오.”


“뭘 진정해 인마! 그때 내가 씹할, 느이 생도 놈들 다 조졌어야 했다우!”


방원철이 최진철을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현태룡이, 오상호. 그 삶아 먹어도 시원찮은 놈들.. 특히 그 현태룡.”


“...”


방원철은 생도들을 욕하면서도 박광세 얘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정말로 쓰라린 역린을 꺼내기에는 그의 정신이 너무 약했다.


“야! 김봉중 그 아새끼는 작업 확인하러 간지가 언젠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니? 또 내 말 엿으로 듣고 뻗대는 거네?”


방원철은 신세 한탄을 관두고 업무 이야기를 하며 벌컥 화를 냈다. 방원철이 욕하는 김봉중은 중대 행정보급관이었다. 김 상사는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으로 6.25 때 낙동강 전선에서 귀순한 인민군 출신이었다. 방원철은 단지 인민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김봉중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김봉중이 인민군 무리들을 증오했기에 포로로 붙잡힌 것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 국군에 귀순했지만 방원철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빨리 데려오겠습니다.”


최진철은 계단을 내려갔다.


“야 이 간나야. 너 미쳤네?”


“네? 무슨 일이신지.”


“야 이 새끼야, 저거 안 치우네? 정신 빠졌구나.”


“죄송합니다!”


방원철이 근무 시간에 술 마시고 억지 부리는 것은 예사였기에 최진철은 감정의 동요 없이 주머니에서 천을 꺼내 병 잔해를 주섬주섬 담고 김봉중 상사를 찾으러 갔다.


한편, 그 시각 최진철이 그렇게 의지하는 육사 후배는 국방부의 명령을 받아 양구를 향해 오고 있었다. 현태룡은 동기들로부터 최진철 선배의 근무지가 마침 자신이 파견가는 그 부대라는 것을 어렴풋이 듣고 그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중대장이 누구인지는 미처 듣지 못했지만 최진철을 만날 수 있다면 아무래도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의 직속 상관이 아니기도 하고.


‘진철 선배님은 잘 계시려나? 선배가 임관하고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현태룡은 최진철이 좋았다. 순수하게 학업에 열중하는 게 동생 현태준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부드러운 성품 때문에 군 지휘관을 하기에는 염려되었으나, 사관생도 생활을 견뎌낸 것을 보면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태준이 자신보다 형이었다면 최진철 같았을 것이었다.


합동건설본부 감독관 자격으로 양구, 인제, 원통이라는 국군이 주둔한 최격오지 부대의 시설 공사를 관리 감독하게 된 현태룡은 중대 위병소로 감독관용 지프를 몰고 갔다.


“멸공!”


중대 위병소 병사가 경례했다.


“합동건설본부 감독관 중위 현태룡이야.”


현태룡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최진철을 만날 생각에 설렜다. 여기서 방원철을 또다시 만나게 될 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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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5 2 9쪽
64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8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6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4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7 2 12쪽
60 불사조 방원철 1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17 64 2 9쪽
59 센 강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9 52 2 13쪽
58 상봉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2 26 2 15쪽
57 김용덕과 현태룡의 꿈 (1963년 여름) 24.02.27 33 2 12쪽
56 신라의 달밤 (1963년 여름) 24.02.24 70 2 12쪽
55 영남계 VS 이북계 (1963년 여름) 24.02.21 49 2 12쪽
54 4대 의혹 사건 (1962년 ~ 1963년 3월) 24.02.18 67 2 18쪽
53 혼인, 중앙정보부 입사 (1962년) 24.02.15 60 2 17쪽
52 파리 학살 (1961년 10월 17일, 프랑스 파리) 24.02.12 71 3 12쪽
51 인종 차별 (1961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2.07 59 3 13쪽
50 상견례 (1961년 겨울) 24.02.04 53 3 10쪽
49 첫 연애 (1961년 겨울) 24.02.01 80 3 13쪽
48 미래의 장인을 취조하다 (1961년 여름) 24.01.30 55 3 13쪽
47 미래의 배우자 (1961년 여름) 24.01.28 72 3 13쪽
46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 18일) 24.01.25 58 3 11쪽
45 살아있는 쿠데타의 밤 (1961년 5월) 24.01.24 92 3 9쪽
44 두 건의 적발 – 미완의 쿠데타 (1960년 3월) 24.01.23 59 3 12쪽
43 부정선거 (1960년 2~3월) 24.01.22 142 3 12쪽
42 팡세-단상들 (1960년 2월, 프랑스 파리) 24.01.20 91 3 12쪽
41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2 – 새로운 기회 (1959년, 강원도) 24.01.19 59 3 10쪽
40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1 (1959년, 강원도) 24.01.18 56 3 13쪽
39 되살아난 협잡 본능 3 (1959년, 강원도) 24.01.17 124 3 10쪽
38 되살아난 협잡 본능 2 (1959년, 강원도) 24.01.16 68 3 7쪽
37 되살아난 협잡 본능 1 (1959년, 강원도) 24.01.15 65 3 10쪽
36 현태룡과 방원철의 재회 2 (1959년 강원도) 24.01.14 6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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