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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파이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드라마

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6.0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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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2,959

작성
24.01.2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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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 18일)

DUMMY

“박정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군. 정보가 새서 포기한 걸까?”


5월 16일 0시. 수사관들은 6관구사령부 앞에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지친 이광성 대령이 김기전을 쳐다봤다. 헌병차감은 헌병대에서 서열 2위였다. 김기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보가 이미 여러 차례 샜기 때문에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는 못할 겁네다. 박정희가 왔든 안 왔든 6관구사령부만 접수하면 반군의 지휘체계는 무너지게 돼 있습네다. 바로 들어가십시오.”


“유혈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기러니까 지금 바로 들어가서 접수해야 차감님이 우려하시는 사태를 피할 수 있습네다.”


“...”


이광성이 고민하는 사이 현태룡이 뛰어왔다.


“지금 김재천 참모장 이하 다른 반군 수뇌부들은 모두 저 건물에 모여 있습니다. 박정희가 나타나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것 같습니다.”


이날 반란군의 우두머리 박정희는 그의 임지인 2군사령부가 소재한 대구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거사를 위해 무단으로 서울로 올라와 친한 장군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당초 계획은 전날인 5월 15일 밤 10시에 6관구사령부 건물로 나타나서 반란군을 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 소장은 정보가 누설됐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당황하여 술을 마시고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차감님. 지금 들어가셔야 합니다.”


김기전의 재촉에 이광성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다들 잘 들어라. 우리는 지금 보통 범죄자가 아닌 반란군을 잡으러 가는 거다. 빨갱이들과 싸울 때 이상으로 격렬한 교전이 벌어질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도록. 그럼 들어가자.”


이광성의 지시에 무장한 수사관 70여 명이 6관구사령부로 들어갔다. 그들의 예상과 달리 반란군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이광성은 끝까지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김기전, 현태룡과 십여 명의 수사관을 대동한 채 반란군의 지휘소인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로 들어갔다.


“무기 버려. 손 들어.”


수사관들이 참모장실로 몰려왔다. 하급자이지만 진압군인 현태룡의 명령에 안에 기다리고 있던 반란군 장교들이 권총에서 손을 떼고 손을 들었다. 참모장 김재천 대령만이 손을 들지 않았다. 이광성이 다가오자 김재천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대령,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소.”


“변명이라도 하시려고?”


“내 말을 한 번 들어보시고 우리를 체포하든지 말든지 결정하시오.”


김재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광성에게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 이광성의 신변을 위협하는 것으로 오해한 현태룡이 권총 방아쇠에 손을 댔다. 그러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알아챈 이광성이 고개를 현태룡 쪽으로 돌려 머리를 저으며 손을 떼라는 신호를 보냈고 김기전 역시 현태룡을 제지했다. 김재천이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우리가 하는 혁명은 전 군이 궐기한 거요. 해병 1여단이 30사단과 합류해 서울 서부권을 장악했고, 6군단 포병대들이 출동해 서울 동부권을 장악했소. 이제 1공수특전단이 한강을 건넜을 거요. 후방 부대들도 움직이고 있소. 공군참모총장도 비공식적으로 혁명에 지지를 보냈소. 여차하면 전투기가 뜬다 이 말이오.”


김재천의 말에는 과장이 섞여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 말을 의심하지 못했다.


“우리 혁명군이나 당신들 진압군이나 지금 대립하고 있지만, 나라를 위하는 충정은 매한가지요. 삼천리강산이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피로 적셔진 게 얼마 되지 않았소. 우리가 체포된다면 내전이 일어날 거요. 이 젊고 어린 친구들을 보시오. 이들만큼은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하지 않소. 다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는 몸들인데...”


김재천의 마지막 말에 이광성의 표정이 흔들렸다.


“차감님..”


김기전은 김재천을 체포하자는 의도로 이광성을 불렀다.


“이 대령. 우리 함께 애국합시다. 지금 나라를 보시오. 이게 나라요? 자유당 시절보다 나아진 게 없소. 오히려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나라가 분열됐소. 이래 가지고 북괴가 다시 침략해올 때 막을 수 있겠소.”


이광성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떴다.


“김재천 대령님. 내가 여러분에게 협력하는 길은, 이 장면을 묵인하고 돌아가는 것밖에 없겠소. 모두들 총 내리게.”


“차감님!”


김기전이 소리쳤다. 현태룡은 총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현 대위, 자네도 총 내려. 김재천 대령님. 꼭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시오. 모두 나가지.”


“정말 고맙소, 이 대령. 정말 고맙소!”


이광성과 수사관들이 참모장실을 나가자 김기전과 현태룡도 따라 나왔다.


“차감님! 반란군 놈들을 그냥 놔두시면 어떡합네까? 저희까지 반란에 가담하라는 겁네까?”


“그러면 어떡하겠나? 어차피 대세는 기울었어. 자네 혼자 총질하다 죽겠나? 이 젊은 친구는 어떡하고? 다들 개죽음하게 만드느니 반란에 가담하겠네. 우리 헌병대는 철수할 테니 뒷일은 자네들이 하시게.”


이광성이 지프에 올라타고 떠나자 다른 수사관들도 이광성을 따라 헌병대로 복귀했다.


“이 반란이 성공해서 우리가 수혜를 입어도 우리는 영원히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거라우. 신이 군인의 본분을 망각한 우리를 용서해주시기를...”


“...”


김기전의 푸념에 현태룡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무언가 거대한 시대의 ‘정신’이 자신의 믿음과 군인 정신을 일거에 부숴버리는 느낌에 현태룡 대위는 머리가 멍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알딸딸하게 술기운이 올라온 박정희가 조카사위 김종일의 부축을 받으며 6관구사령부에 나타났다.


“임자들도 혁명의 대열에 참여하는 건가? 하하하.”


그렇게 현태룡과 김기전은 얼떨결에 혁명군의 일원이 되었다. 제2공화국은 1년도 안되어 소위 ‘혁명’을 내세운 군인들의 총칼에 무너져버렸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었다.


...


“아이고, 교장님.. 지금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민주당 정권 끝났습니다. 이제 박정희 장군님의 세상이 되었는데 강 교장님께서는 왜 대세를 거스르려 하십니꺼. 별거 없습니다. 생도들이 서울 시내 퍼레이드 한번 하면 됩니다. 그러면 혁명군도 면이 서고, 교장님도, 우리 후배들도 탄탄대로 걷는 겁니다.”


“하려면 기냥 날 죽이고 하라우. 나는 절대 못한다.”


정변이 성공하자 전형두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교장 강영호 장군에게 육사 생도들에게 혁명을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시키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전형두가 헌병들을 대동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음에도 강영호 장군은 요지부동이었다. 그의 고향 평북 창성은 벽동과 함께 다름아닌 벽창우(벽창호)의 유래가 된 지역일 정도로 좋게 말하면 대쪽같은, 나쁘게 말하면 대단히 고집 센 서북 사람들의 성정이 압축된 지역이었다. 강 장군 역시 아주 대쪽같은 인물이었다. 작년 4.19 혁명 때 전차 부대를 출동시켜 시위를 막으라는 윗선의 명령을 무시했던 강영호 교장에게 전형두의 겁박이 먹힐 리가 없었다.


“말로 해서는 안 되시는군요.”


4.19 혁명 때는 군부가 자유당을 지지하지 않아 항명했어도 잡혀가지 않았으나, 이번은 달랐다. 전형두가 대동한 헌병들이 강영호를 반혁명 죄로 체포했다. 강 장군은 ‘반혁명 장성 1호’로 체포되어 서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형무소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으나 그의 지휘에서 벗어나버린 육사 생도들은 전형두의 좋은 정치적 ‘요릿감’이 되었다.


“이번 군사 혁명은 어떤 권력을 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성 정치인을 불신하고 도탄에 빠져 헤매는 민생을 건져내기 위한 우국 장병들의 의거이며 우리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군사 혁명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5월 18일이 되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대표가 시가행진에 앞서 혁명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전형두가 준비한 것이었다. 기자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가운데 생도 대표가 성명서 낭독을 마쳤다. 그렇게 생도들은 시가행진을 시작하며 세상이 뒤집어졌음을 온 서울 시민들에게 과시했다.


본인들의 의도와 달리 혁명 주체 세력에 포함된 현태룡과 최진철은 혁명군 대열에서 이탈했다. 둘은 시민들과 함께 시가행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기해하는 시민들과 달리 둘은 후배 생도들의 행진의 의미를 알고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학교로 간다고 했을 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이틀 전 5월 16일 오전에 현태룡은 육군본부에서 전형두와 마주쳤다. 전 대위가 학교로 간다고 했을 때 현태룡은 그 학교가 전형두가 학군단 교관으로 근무하는 서울대학교인 줄 알았다. 그는 이틀 전에 이어 또 다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네가 후배 생도들을 이용 못 하게 막을 걸 잘 아니까, 선수 친 거지. 무식하게 사람 팰 줄로만 알았더니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최진철이 전형두의 새로운 면을 깨닫고 어이없했다.


“군대를 권력 장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습니다. 그때 저 사람들과 함께 죽었어야 했습니다.”


현태룡은 맞은편에 있던 김재천과 이광성 등 혁명군 지휘관들을 가리켰다. 그 말에 최진철이 목소리를 높였다.


“야 태룡아, 그런 소리 마. 네가 죽으면 불란서에 있는 동생은 어떡하려고? 이미 일은 벌어졌고, 대세는 거스를 수 없게 되었어. 여기 있는 시민들을 봐봐. 본인들이 뽑은 내각이 무너졌는데 더 좋아하고 있잖아.”


“...”


현태룡은 즐거운 구경하듯이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해. 대신 우리가 어떻게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고.”


“네.”


현태룡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군생활보다도 이 나라 경제를 살리는 일을 하고 싶은데...”


최진철은 생도 대열을 보면서 혼잣말로 자신의 본심을 드러냈다.


그렇게 최진철과 현태룡의 경력은 여기서 갈리게 되었다.


훌륭한 학업 성적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최진철은 자신의 유약한 성품 때문에 장교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김에 자신이 원하는 걸 최대한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최진철은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팀에 들어가 장면 정부에서 수립한 경제개발계획을 실정에 맞게 고치는 업무를 맡았다. 반대로 현태룡은 김기전과 함께 부정축재자 조사위원회에 들어가 1, 2공화국 때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기소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들의 신념과 별개로 역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었고 이들의 삶은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경력에서든 사생활에서든 말이었다.


작가의말

강영훈 전 국무총리(1922~2016)는 5.16 군사정변 당시 서울형무소에 감금되었다가 육군 중장으로 예편당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거쳐 외교관으로 변신했고 1988년부터 1990년까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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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6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4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7 2 12쪽
60 불사조 방원철 1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17 64 2 9쪽
59 센 강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9 52 2 13쪽
58 상봉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2 26 2 15쪽
57 김용덕과 현태룡의 꿈 (1963년 여름) 24.02.27 33 2 12쪽
56 신라의 달밤 (1963년 여름) 24.02.24 70 2 12쪽
55 영남계 VS 이북계 (1963년 여름) 24.02.21 49 2 12쪽
54 4대 의혹 사건 (1962년 ~ 1963년 3월) 24.02.18 67 2 18쪽
53 혼인, 중앙정보부 입사 (1962년) 24.02.15 60 2 17쪽
52 파리 학살 (1961년 10월 17일, 프랑스 파리) 24.02.12 71 3 12쪽
51 인종 차별 (1961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2.07 59 3 13쪽
50 상견례 (1961년 겨울) 24.02.04 53 3 10쪽
49 첫 연애 (1961년 겨울) 24.02.01 81 3 13쪽
48 미래의 장인을 취조하다 (1961년 여름) 24.01.30 55 3 13쪽
47 미래의 배우자 (1961년 여름) 24.01.28 72 3 13쪽
»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 18일) 24.01.25 59 3 11쪽
45 살아있는 쿠데타의 밤 (1961년 5월) 24.01.24 92 3 9쪽
44 두 건의 적발 – 미완의 쿠데타 (1960년 3월) 24.01.23 59 3 12쪽
43 부정선거 (1960년 2~3월) 24.01.22 142 3 12쪽
42 팡세-단상들 (1960년 2월, 프랑스 파리) 24.01.20 91 3 12쪽
41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2 – 새로운 기회 (1959년, 강원도) 24.01.19 59 3 10쪽
40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1 (1959년, 강원도) 24.01.18 5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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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되살아난 협잡 본능 2 (1959년, 강원도) 24.01.16 68 3 7쪽
37 되살아난 협잡 본능 1 (1959년, 강원도) 24.01.15 65 3 10쪽
36 현태룡과 방원철의 재회 2 (1959년 강원도) 24.01.14 6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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