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중평장 님의 서재입니다.

하우스 오브 스파이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드라마

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6.02 12:42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6,394
추천수 :
246
글자수 :
442,959

작성
24.01.22 20:23
조회
141
추천
3
글자
12쪽

부정선거 (1960년 2~3월)

DUMMY

“귀관은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하는 자들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수호한 공로가 있음에 단기 4293(1960)년 2월 17일 부로 1계급 특진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대독. 국회의장 이기붕. 축하하네, 방원철 소령.”


“소령 방원철!”


이기붕이 방원철에게 악수를 청하고 방원철은 관등성명을 크게 외쳤다. 이기붕은 6.25전쟁 때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어 군대 의전에 밝았다.


불과 3개월 전 방원철은 현태룡의 고발 과 이를 갈던 김기전 덕에 특무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잡혀들어갔다. 그토록 특무대 복귀를 희망하던 방 대위는 소원 성취 대신 그가 야전 중대장으로 복무하는 동안 저지른 각종 비리 행위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대선 정국이 그를 살렸고 그를 마침내 영관급 장교에 오르게 해준 것이다.


사정은 이랬다. 원래 군인사법에 따르면 장교의 진급은 장교 진급 선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각 군 참모총장의 추천에 의하여 국방부 장관이 제청한 것을 대통령이 승인해야 이루어진다. 대령 이하의 장교의 경우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아 진급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영관이나 위관급 장교의 진급은 통상적으로 국방부 장관이 명령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군법 회의에 회부될 것이 뻔한 방원철의 소령 진급은 비상식적이어서 군 내에 알려지면 곤란했다. 해서 방원철의 공작 능력이 절실했던 자유당 정권은 장교 진급 선발 위원회의 심의와 참모총장의 추천, 국방부 장관의 제청이라는 절차를 생략하고 대통령 직권으로 승진을 시켜줬다. 심지어 최종 결재권자인 이승만도 방원철의 소령 진급을 몰랐다. 이승만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이기붕이 비공식적인 선거대책위원장인 내무부 장관 최인규와 짜고서 벌인 일이었다. 군, 정치권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퍼져있던 방원철의 ‘악명’이 불명예 제대 예정자 방원철 대위에서 순식간에 고급 장교 방원철 소령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의 특별 진급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2월 15일 워싱턴 DC에 소재한 미 육군 병원에서 급작스레 사망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부족해. 이래 갖고는 정권 연장 못 해.”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은 몇 년 전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장면에게 패배한 이후로 이번 부통령 선거에서는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4년 전 대선에서 야당 후보 신익희가 유세 중 급사하는 바람에 이승만이 당선되긴 했어도 사사오입개헌의 여파 덕에 이 ‘국부’는 명성이 무색하게 9백만 표 중 500만 표를 얻는데 그쳤다. 진보당 조봉암이 220만 표, 무효 처리된 신익희 표가 185만 표였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이기붕 자신의 당선뿐 아니라 이승만의 4선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난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다음 선거를 준비했었다. 그 준비는 피로 얼룩진 준비였다. 예를 들어 민주당 당원으로 위장한 암살범을 민주당 전당대회에 침투시켜 장면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 다음 공작은 성공했다.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정계를 피로 물들이고 나서 이기붕은 확실한 보험 처리를 위해 최인규와 같은 아첨꾼들을 내무부 장관 같은 요직에 앉혀서 선거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 선거를 준비했음에도, 여론은 요지부동이었다. 국가 살림은 도저히 나아질 길이 없었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86세의 노대통령을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게 생겼다. 그렇게 된다면 이승만은 해외로 축출될 것이고, 자신과 자유당 수뇌부들은 권세와 재산을 잃고 조리돌림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보게 박붕근이.”


이기붕은 아내 박마리아의 친척 동생이자 자유당의 모사 다시 박붕근을 불렀다. 4년 전 막내 아들 박광세가 방원철의 아내 황정숙을 살해하고 바로 그에게 사살된 사건 이후 박붕근은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야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 일이 없었다면 박붕근이 선거를 지휘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기붕은 부통령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이기붕은 박붕근을 선거 참모로 다시 기용했다.


“묘수가 없나?”


박붕근이 선거를 잘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지옥으로 간 지 오래인 김창환 특무대장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었고, 김창환은 방원철의 계략 덕에 박붕근이 지시하는 바를 잘 수행할 수 있었다. 즉, 다시 말하자면 방원철이 있었기에 박붕근이 모사꾼으로서 활약할 수 있던 것이었다. 박붕근은 원수가 된 방원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모략을 짜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죄송합니다.”


“최 장관, 공무원들 중에 쓸 만한 사람들 없소?”


이기붕이 최인규에게 물었다. 최인규는 내무부 장관으로서 일반 행정 관료의 인사와 처우에 관한 사무를 맡으면서 동시에 경찰, 소방, 지방행정을 지휘하고 있었다.


“‘늘공’들이 ‘어공’들도 못하는 정략을 어찌 짜겠습니까.”


‘늘공’은 ‘늘 공무원’인 시험과 같은 일정한 형식을 거쳐 임용되어 정년이 보장된 일반 공무원을,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인 정치적으로 임명되어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정무직이나 별정직 공무원을 의미했다.


“정신들 똑바로 차리게. 이번 선거는 단순히 각하나 내 당선을 위한 게 아니야. 정권 내주면 우리 모가지가 날아간다고. 김일성이가 적화통일하는 것보다 더 쪽팔리는 수가 있어.”


이기붕이 경고하자 최인규가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희 내무부 공무원은 아니고..”


“답답하군. 빨리 말하게.”


“군에 쓸만한 친구가 있습니다. 다만..”


최인규가 박붕근을 쳐다보았다.


“뭐?”


최인규의 뜸 들이기에 이기붕은 짜증이 확 올라왔다.


“박 의원하고..”


“방원철이 말이오?”


최인규의 의도를 알아챈 박붕근이 끼어들었다. 이기붕은 최인규가 왜 뜸을 들였는지 알아차리고 목소리를 한층 누그러뜨렸다.


“광세 신세 망치고 죽이기까지 한 그자 말인가? 붕근이, 괜찮겠나?”


박붕근은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최인규보다도 더 길게 뜸을 들인 박붕근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방가와 저의 일은 사인의 일이므로, 우리가 행하는 대의에 비하면 먼지 같은 일일 뿐입니다.”


박붕근은 모략보다 아첨에 뛰어난 자였다. 아들 일만 아니었다면, 최인규가 아니라 박붕근이 내무부 장관을 맡았을 것이고 거기에 수석국무위원을 겸했을 것이다. 이기붕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흠...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 얼른 데려오게.”


그렇게 방원철은 특무대에서 헌병총사령부로 옮겨졌다가 석방되었고,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무대경찰서로 파견되었다. 명목상으로는 경무대경찰서와 서울 인근의 군부대 간 연락 업무를 맡는 보직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기붕이 주도하는 선거 캠프에 출근해서 계책을 만들어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는 조병옥씨가 되어야겠습니다.”


방원철은 선거 캠프에 처음으로 출근하던 날 이기붕을 보자마자 조병옥이 민주당 후보가 되게 공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지?”


“제가 알아보니, 조씨 건강이 신통찮습니다. 신익희처럼 될 것 같습니다.”


방원철이 제아무리 모략의 명수라지만 석방되자마자 조병옥의 병세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그 정도 역량이 있었다면, 특무대에서 쫓겨나자마자 어떻게든 복귀했었거나, 적어도 현태룡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특별히 있었다.


“원철이, 자네가 우리 일가니 특별히 알려주는 거네만..”


방원철이 조병옥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같은 가문이자 먼 친척인 고려일보 사장 방석주 덕분이었다. 이순영의 소개 덕에 교회에서 방원철과 방석주는 서로가 먼 친척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40이 훌쩍 넘은 방석주는 이 어린(?) 친척을 매우 아꼈다. 방원철에게는 이순영에 이어 방석주라는 든든한 뒷배가 하나 더 생긴 것이었다.


방 사장은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권 인사들과 두루두루 친한 덕분에 조병옥의 병세가 심각하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보도하지 않고 감추고 있다가 방원철이 무언가 정보를 원하는 눈치를 보이자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먼 친척으로서 방원철에게 특별히 베푸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조병옥이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인가?”


이 당시 민주당은 조병옥 중심의 구파와 장면 중심의 신파로 나뉘어 파벌 다툼이 상당하였다. 이승만 정권이 실정을 거듭하면서 민심을 잃자 이들은 김칫국을 마셨다. 정권 교체가 기정사실화됐다고 보고 당권을 두고 다투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우려한 조병옥은 민주당 내홍을 수습하는 것이 먼저라면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달리 불출마 선언은 민주당의 내홍을 더욱 가속화 했으며, 이를 수습하기 위해 신파 의원 몇 사람도 장면에게 대선 후보를 조병옥에게 양보하고 부통령으로 재출마하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병옥은 당내 화합부터 이루라며 아직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지 않았다.


“대감님들께서 나서주셔야 하갔습네다.”


방원철은 자유당 의원들에게 민주당 의원들을 표적으로 하는 정치적 사법적 공격을 가하도록 주문했다. 상황이 급박하다면, 조병옥이 당내 화합 운운하며 불출마 입장을 견지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의 상황이 엄중하므로, 당에서 본인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다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소.”


11월 25일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조병옥은 불출마 선언을 번복했다. 다음 날 전당대회에서 조병옥이 세 표 차이로 장면을 누르고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방원철은 신파 측 대의원 몇 명이 전당대회에 못 오게 했는데, 그 방식이 기상천외했다. 어떤 대의원은 교통사고 때문에, 어떤 대의원은 가게가 불에 타서, 어떤 대의원은 가족이 실종돼서 못 나왔다.


“조병옥이 미국에 갔을 때, 선거 시기를 3월로 앞당기시지요.”


방원철의 모략으로 조병옥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나자, 조병옥의 심각한 병세가 대중에 공개되었다. 1956년 선거가 5월에 있었으므로 1960년 선거도 5월에 하는 게 맞았으나, 1월 29일 조병옥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자, 자유당은 5월은 농번기라면서 3월로 선거를 당기자 했고 당연히 야당은 반대했으나 다수당의 힘으로 이를 관철했다.


“대통령 각하께서 고령이시라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 부통령 선거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조병옥이 죽어서 이승만의 당선은 확정되었지만, 대통령의 나이가 세는 나이로 86살이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승계할 부통령 자리도 민주당에 내줄 수 없었다.


“장면 하나 떨구는 거는 간단합네다. 부산에서 개헌할 때처럼 투표소 가림막 낮추거나 아예 없애고, 거기에 사망자들이 죽기 전에 이기붕 각하께 투표했다 하고, 전당대회 때 대의원 몇 놈 못 나온 것처럼 민주당 참관인들도 선거 참관 못 하게 하면 됩네다.”


이렇게 해서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공개 투표와 사망자들까지 동원한 사전 투표, 야당 소속 참관인의 선거 참관 방해 등 여러 기법을 동원해 부정선거가 이뤄젔다. 그렇게 이기붕은 833만 7천여 표를 얻어 184만 3천여 표를 얻은 장면을 가볍게 누르고 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제 다시 방원철의 세상이 된 듯 했다. 방석주는 다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원철을 별장으로 데려가 ‘격려’했다. 그러나 방원철의 영화는 잠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우스 오브 스파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5 2 9쪽
64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8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6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4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7 2 12쪽
60 불사조 방원철 1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17 64 2 9쪽
59 센 강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9 52 2 13쪽
58 상봉 (1963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3.02 26 2 15쪽
57 김용덕과 현태룡의 꿈 (1963년 여름) 24.02.27 33 2 12쪽
56 신라의 달밤 (1963년 여름) 24.02.24 70 2 12쪽
55 영남계 VS 이북계 (1963년 여름) 24.02.21 49 2 12쪽
54 4대 의혹 사건 (1962년 ~ 1963년 3월) 24.02.18 67 2 18쪽
53 혼인, 중앙정보부 입사 (1962년) 24.02.15 60 2 17쪽
52 파리 학살 (1961년 10월 17일, 프랑스 파리) 24.02.12 71 3 12쪽
51 인종 차별 (1961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2.07 59 3 13쪽
50 상견례 (1961년 겨울) 24.02.04 52 3 10쪽
49 첫 연애 (1961년 겨울) 24.02.01 80 3 13쪽
48 미래의 장인을 취조하다 (1961년 여름) 24.01.30 55 3 13쪽
47 미래의 배우자 (1961년 여름) 24.01.28 72 3 13쪽
46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 18일) 24.01.25 58 3 11쪽
45 살아있는 쿠데타의 밤 (1961년 5월) 24.01.24 92 3 9쪽
44 두 건의 적발 – 미완의 쿠데타 (1960년 3월) 24.01.23 59 3 12쪽
» 부정선거 (1960년 2~3월) 24.01.22 142 3 12쪽
42 팡세-단상들 (1960년 2월, 프랑스 파리) 24.01.20 91 3 12쪽
41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2 – 새로운 기회 (1959년, 강원도) 24.01.19 59 3 10쪽
40 ‘진실’의 문, 그리고 되치기 1 (1959년, 강원도) 24.01.18 56 3 13쪽
39 되살아난 협잡 본능 3 (1959년, 강원도) 24.01.17 124 3 10쪽
38 되살아난 협잡 본능 2 (1959년, 강원도) 24.01.16 68 3 7쪽
37 되살아난 협잡 본능 1 (1959년, 강원도) 24.01.15 65 3 10쪽
36 현태룡과 방원철의 재회 2 (1959년 강원도) 24.01.14 62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